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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공메달은 없지만 피와 살로 나라를 지켜나선 강철장성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12월23일 14시31분    조회: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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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병사의 이야기](9)

군공메달은 없지만 피와 살로 나라를 지켜나선 강철장성

―지원군 제1진으로 조선에 나간 홍룡준옹을 만나보다 

“저는 중국인민해방군 입대 3년만에 중국인민지원군 제1진으로 조선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조선땅을 밟은 아흐레 만에 미군 비행기의 폭격으로 배가죽이 찢어지고 창자가 흘러나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치료 받기 위해 후방병원을 거쳐 귀국길에 올랐지요.” 

94세 고령의 로병사 홍룡준과 91세의 부인 리찬화 

최근, 통화시에 살고 있는 94세 고령의 홍룡준옹은 입고 있던 웃옷을 들어 74년전에 생긴 흉터를 기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한뼘 남짓한 수술자리가 그의 배꼽 우 몇센치메터 되는 위치에 기다랗게 가로 나있었다.  

참전 아흐레만에 중상

1950년 10월 19일, 20살의 홍룡준은 중국인민지원군의 일원으로 기세 드높이 압록강을 건너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길에 올랐다. 3년의 군생활에서 다져진 다부진 몸매와 강한 군사소질, 게다가 조선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관계로 그는 지원군 모 퇀의 통신병으로 배치받았다. 

홍룡준로병사의 장애군인증 캡처본

조선땅을 밟은 황룡준과 그의 전우들은 평양으로 가는 길에서 전례 없는 도전에 맞닥뜨렸다. 울퉁불퉁한 지형과 미군 비행기의 맹렬한 폭격은 그들로 하여금 시시각각 고도로 되는 긴장 상태에 처하게 했다. 평양으로 향해 전진하던 그의 소속퇀은 저격전을 벌이기로 결정했고 퇀 참모장이 한 개 영의 전사들을 이끌고 며칠째 악전고투를 이어갔다. 

홍룡준로병사가 74년전에 입은 복부의 상처를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해 10월 28일 오전 11시경, 홍룡준은 2명 전우와 함께 마을에 내려왔다. 저격전을 하느라 20시간이나 밥 한끼 먹지 못한 전우들에게 먹거리를 구해주기 위해서였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다 안전지대로 대피한 터라 마을에는 개미 한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이 집, 저 집 훑다가 어느 한 빈집에서 쌀을 찾아낸 세 사람는 쌀을 씻어서 솥에 앉히고 불을 지폈다. 그들은 배부르게 밥을 먹고 적과 용감하게 싸워이길 전우들을 생각하며 행복감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굴뚝을 따라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연기를 발견한 미군 비행기가 갑자기 들이닥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홍룡준로병사의 장애군인증 캡처본

갑자기 하늘에서 귀를 찢는 듯한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전투기가 공중에서 급하강하며 폭탄을 퍼붓었다. 그들이 밥을 짓고 있던 초가집은 삽시간에 허물어졌고 파편이 사처에 튀였다. 문가에 있던 두 전우는 집밖을 뛰쳐나가 산속을 향해 달렸고 부엌에서 불을 때던 홍룡준은 미처 피할 새가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대문밖으로 뛰여나가던 홍룡준은 갑자기 복부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미군 비행기는 계속하여 폭탄을 투하했고 지면에서 그 어떤 반항의 기미도 보이지 않자 멋쩍은듯 돌아갔다. 

한참후 전우들이 달려와보니 홍룡준은 몸 곳곳에 상처가 나있었고 창자가 흘러 나온채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전우들은 군의관을 불러 홍룡준에게 간단한 긴급처치를 하고나서 재빨리 들것에 싣고 전선병원으로 호송했다. 

조선의 전선병원에서 간단한 수술치료를 받은 홍룡준은 다른 부상병들과 함께 군용트럭에 실려 국경을 넘어 흑룡강성에 있는 부대병원으로 실려왔다. 

해방전쟁의 여러 전역에서

1930년 2월, 통화시 통화현의 쾌대무진(快大茂镇)에서 태여난 홍룡준의 혁명이야기는 1947년에 시작되였다. 17살의 홍룡준은 입대하여 중국인민해방군 모 사단 포병대대의 신병으로 되었다, 그는 부대에서 여러 차례의 중요한 전투를 거쳐 강인한 의지와 끈기를 련마하면서 급성장했다. 

그는 료심전역, 평진전역 등 전역에 참가했으며 북평(현재의 북경)이 해방된 후 부대를 따라 해남도해방전투에까지 참가했다. 

홍룡준의 용감함은 전쟁터에서 구현되였을 뿐만 아니라 당에 대한 충성심에서 더더욱 구현되였다. 1948년 11월 14일, 그는 료심전역 전선에서 정식으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입당후 홍룡준은 여러 차례에 거친 생사의 시련이나 고난속에서도 늘 공산당원의 본색을 잃지 않고 용감하게 전진했다.

1950년 6월 조선전쟁이 폭발하자 조선족이고 조선어에 능숙한 홍룡준은 상급으로부터 료녕성 안동(현재의 단동)으로 파견받았다. 약 3개월 동안 주둔해 있으면서 강습을 받은 그는 1950년 10월, 중국인민지원군의 일원으로 보가위국의 로정에 올랐다. 

새로운 일터에서

1951년 3월, 근 5개월간의 회복치료를 마친 홍룡준은 마침내 병원에서 퇴원했다.

부상으로 부대 잔류가 불가능했지만 황용준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1952년, 그는 제대하여 고향인 쾌대무진에 돌아와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사회와 가정에 더 잘 봉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화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 학생들과 함께 몇달간 문화학습에 참가했다.

쾌대무진에서 농사일을 시작한 그는 그동안 익숙히 배워둔 농업기술들을 실제 생산에 응용하여 농작물의 품질을 높이는 데 힘썼으며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 한편 적극적으로 이웃들을 도와 농업생산중의 난제를 해결해주었다. 하여 실제 행동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보여주었고 더불어 마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1958년, 풍부한 농사경험을 쌓은 홍룡준은 조직의 배치에 따라 통화시 이도강제철소(二道江钢铁厂)에서 제철로동자의 길을 시작했다. 조직에서는 홍룡준이 과중한 육체로동을 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일자리에 배치했다. 하지만 홍룡준은 부대에서와 다름없는 넘치는 열정으로 사업을 대했으며 국가의 사회주의 공업화 건설에 혼신의 힘을 이바지했다.  

1986년, 홍룡준은 통화시동광(铜矿)에서 퇴직했다. 그는 퇴직후에도 당원으로서의 책임을 잊지 않고 여전히 사회구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경험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수하고 홍색 유전자를 전승해주었다. 황용준은 몸이 장애여도 사회에 공헌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홍룡준은 수많은 평범한 로병사중의 한사람이다. 비록 그들에게는 빛나는 군공메달이 없지만 그들은 피와 살로 나라를 지키는 강철장성을 쌓았다. 

아들딸과 함께

“비록 적군의 폭격에 배가 찢어지고 창자가 흘러나오는 고통을 겪은 후 국내에 호송되여왔고 치료받고 회복하여 제대한 후 허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친 전우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행운스러운 것이지요.” 

1933년생인 홍룡준의 부인 리찬화는 가족 5명이 항미원조에 참가했는데 삼촌과 남동생만 살아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홍룡준과 리찬화 부부는 슬하에 2남5녀 일곱 자식이 있다. 그중에서 넷째딸이 현역군인에게 시집갔고 아들을 무장경찰로 배양했다면서 로일대 군인의 훌륭한 홍색유전자를 후대들에게 대대손손 물려주고 있다고 리찬화는 말한다.

/길림신문 유경봉, 오건 기자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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