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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색 기억을 수호하고 홍색 유전자를 전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5년3월23일 21시27분    조회: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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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모범’ 김춘섭

그는 사회의 힘을 빌어 자금을 마련했고 선후하여 유명 항일전쟁 영웅, 중요 전투 유적지, 중대 력사사건을 기념하는 기념비 117개를 세웠다. 60세가 되던 해에 컴퓨터 타자를 배우기 시작했고 100만자가 넘는 청소년 홍색교육자료 34권을 집필했다. 또한 동장영(童长荣)렬사릉원을 책임지고 건설했으며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 소재지인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유적지를 재건했다. 그가 바로 ‘시대의 모범’ 김춘섭이다.

2005년 4월부터 지금까지 김춘섭은 왕청현 차세대 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을 맡고 있다. 20년간, 50여년의 당령을 가지고 있는 이 로당원은 시종 항일전쟁 력사와 영웅사적들을 기록하고 보존해왔다. 그 과정에서 김춘섭은 홍색기억을 수호하고 홍색유전자를 계승하며 홍색후계자들을 양성했다.

2014년, 한 민간수집가가 ‘왕청영렬넷(汪清英烈网)’을 보고 김춘섭을 찾아와 가치가 백만원이 넘는 200여점의 일제 강점시기 유물들을 넘겨주었다. 김춘섭은 이 유물들을 토대로 왕청현당안국의 지지하에 ‘왕청현항일전쟁기념관’을 설립했다. 같은 해 9월 16일, 기념관이 대외에 개방됐고 참관자는 연인수로 만명에 달했다.

김춘섭은 기념관 개관 초기에 전문 해설원이 없어 관장도 하고 의무 해설원도 겸했다. 관람객이 한명이든 몇명이든 그는 열심히 해설했다. 김춘섭은 “련속 해설하는 것은 힘들지만 누군가 와서 보는 것 만으로도 기쁘고 보람차다.”고 말한다.

대량으로 왕청현의 항일전쟁 력사자료들을 읽던 중 27세에 희생된 동장영 렬사의 사적이 김춘섭의 관심을 끌었다. 이 영웅에 대한 존경심은 김춘섭을 영웅이 잠든 곳을 직접 보고 싶게 만들었다. 오랜 세월 탓에 동장영 렬사의 묘지는 초라했다. 김춘섭은 동장영 렬사의 묘를 수리하고 비석을 세우며 릉원을 건립해 후손들이 그의 위대한 공적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릉원의 건립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 부족이였다. 시작 된 일을 되돌릴 수 없어 김춘섭은 체면을 내려놓고 옛 부하, 동료, 민영 기업가들을 찾아가 자금을 신청했다. 이외 ‘오로(五老)’(로간부, 로전사, 로전문가, 로교사, 로모범) 들에게도 기부할 것을 호소했다. 모금에 앞서 김춘섭이 들려준 동장영 렬사의 사적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매번 모금을 할 때마다 수확이 있었다. 2년의 꾸준한 노력에 마침내 자금이 마련되였다.

자금 마련이 어려웠기에 쓰는 데 더욱 신중했다. 김춘섭은 렬사릉원과 기념비의 계획, 설계, 시공을 직접 맡았다. 한정된 자금을 알맞게 쓰기 위해 물과 빵으로 허기를 달래며 왕청현에서 수백킬로메터 떨어진 채석장을 몇번이나 오갔는지 스스로도 모를 정도였다. 2011년 6월, 동장영 렬사릉원이 완공되였을 때 김춘섭의 체중은 72kg에서 60kg으로 줄었고 거의 형체를 잃을 지경이였다.

유명한 항일전쟁 렬사의 사적을 수집하기 위해 김춘섭은 전국 10여개 성을 찾아다녔고 2만킬로메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며 두발로 왕청현의 ‘항일 전경도’를 그려냈다.

1932년 11월,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는 왕청현 소왕청 항일유격근거지로 전이했다. 당시 상황을 회복하기 위해 김춘섭과 그의 동료들은 잇달아 동만특별위원회의 병기공장, 인쇄공장, 병원, 이불, 복장 공장 등 8 곳의 항일전쟁 밀영을 재건했다. 그리고 동장영(童长荣), 위증민(魏拯民), 양림(杨林), 김금녀(金锦女), 강춘화(姜春花) 등 9명의 영웅들을 위해 동상을 세웠고 자연석(自然石`) 31개를 사용해 총길이가 1,400m에 달하는 ‘동만항일전쟁 력사회랑’을 건설했으며 왕청현의 당사학습교육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김춘섭과 그의 동료들은 20년간 117개에 달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를 세웠으니 비문을 새겨야 했다. 이를 위해 김춘섭은 대량의 자료들을 찾으면서 렬사들의 생애를 고찰, 론증했고 2만자가 넘는 조선어와 한자 비문을 작성했다.

항일전쟁 정신을 전하고 렬사를 기리며 비석을 세우는 동시에 김춘섭은 차세대 관심사업을 꾸준히 하면서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홍색유전자를 혈맥에 새기고 홍색전통을 대대로 전하기 위해 2010년 김춘섭은 왕청현 제4소학교의 사상품덕교육 량염(梁艳)주임을 찾아가 항일영웅 동장영의 이름을 딴 중대를 설립할 데 대한 의견을 제안했다. 그후로 김춘섭은 여러번 학교를 방문했고 방문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왕청 영웅들의 사적을 들려주었다.

10여년간, 김춘섭은 수많은 학생들을 인솔하여 동장영 렬사릉원, 김상화(金相和) 렬사릉원 등 애국주의 교육기지를 참관, 방문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김춘섭은 학생들에게 혁명선렬들이 강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투쟁하며 용감하게 승리했던 혁명정신을 깨닫게 했다.

현재, 김춘섭은 전 현 42개 중소학교에 영웅중대(반)를 설립했고 홍색씨앗을 학생들의 마음속에 심어주고 있다. 김춘섭은 학생들이 인생의 첫 단추를 잘 맞추고 항일전쟁정신을 계승하며 시대의 새로운 사람이 되는 새로운 로정을 잘 걸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팔순을 넘긴 김춘섭은 “차세대 관심사업은 당대에 공을 세우고 후세에 리익을 남기는 것이며 위대한 사업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는 이 자리에서 계속 일하며 국가와 사회에 유용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다.”고 말한다. 

/길림일보

编辑:정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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