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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떡치는 녀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1월29일 11시04분    조회:4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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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설을 의미한다. 설날이면 의례 들려오던 떡메소리이다. 시골의 년중 명절가운데서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떡을 쳤다. 그만큼 놓치지 않고 떡보로 쇠였다는 얘기다. 어릴적부터 설과 떡은 하나로 인식해 몸에 배였다. 참대저가락으로 집은 커다란 찰떡 낱개를 팥고물에 묻혀 설빔입고 냠냠거리며 즐겼으니 말이다.

세시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건 뽕나무집 ‘뽕꼬대' 라는 별명을 가진 녀인이다. 원명이 배순덕이지만 본명보다 더 익히 통하는 ‘실명'이였다. 그것도 ‘떡치는 녀자'라는데서 더 팔방미인이였다. 주부가 남자구실로 떡을 쳤으니 그럴만 했다.

여느 세대는 물론, 가가호호마다 바깥량반이 떡메를 휘두르기 마련인데 하필이면 뽕나무집만은 ‘뽕꼬대'가 남정네 역을 맡았을가? 그렇다고 배순덕은 남편이 사망한 미망인 상부거나 소박맞은 과부는 아니였다. 또한 서방님이 장애자인 것도 더욱 아니였다. 결국 멀쩡한 실농군 남편을 둔 부녀자였음에도 힘장수라는 불행 아닌 불행 때문에 ‘떡치는 녀자'라는 놀림가마리로 된 ‘뽕꼬대'였다.

전해 설날이였다. 여느 때 없이 시루에 찐 떡쌀을 안반이라는 떡돌에 놓고 찰떡을 쳤다. 절반쯤 쳤을가 할 때였다. 갑자기 남편이 세게 휘두른 원목 떡메의 대가리가 방망이에서 빠져나갈 줄이야...불발탄이래도 에누리 없이 그녀의 태양혈과 귀방울을 일격했다. 다행히 관통상은 아닌 찰과성이였다. 붕대는 커녕 당금 처치할 헝겊도 미처 없었다. 바빠 맞은 가해자는 얼른 가제로 된 흰 떡보자기를 북 찢어 안해의 상처를 싸맸다.

피가 떡돌에 떨어졌다. ‘뽕꼬대'는 기겁해 죽는 소릴 질렀다. 떡메가 뚝심 관성을 못이겨 탈선해 ‘뽕꼬대'를 피습하고는 봉당벽에 부딪쳐서야 바닥에 떨어졌다. 데굴데굴 나뒹구는 떡메와 빈 자루를 보던 남편이 툴툴거린다.

“어허...개 보름 쇠듯 설을 쇠는구려...”

그녀는 떡쌀이 튕긴 남편의 얼굴을 째려 보았다. 그리고는 떡돌의 피를 행주로 닦고나서 밖으로 씽하니 날라 갔다. 이렇게 설이건만 채 치지 못한 찰떡 아닌 찰밥 범벅으로 굼땠다면 떡돌도 떡판으로 교체된 시점이였다.

“돌에 사람을 잡는 귀신이 붙었나보지, 나무로 된 떡구유를 써야 안전할 것 같아요!...”

청석으로 된 떡돌이 안반모탕이로 바뀌였다. 이어 떡메 임자도 남자로부터 녀자로 교대되였다.

며칠 후다. ‘뽕꼬대'가 동강 난 떡메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왔다.

“울 집 나그네 어찌나 도깨비 힘을 쓰는지...또 떡메 손잡이가 빠져 나올가봐 무섭스꾸마, 좀 잘 손질해서 든든하게 고쳐줍소!...”

동네 도목수 아버지를 찾아온 ‘뽕꼬대'녀인의 속사정이자 통사정이였다. 아버지는 내색을 하지 않고 손자귀와 끌 그리고 진드레가 담긴 목수상자를 들고 나왔다.

“새로 떡메 자루를 맞춰야겠구만”

아버지는 굵고 짧은 나무토막의 중간에 구멍을 뚫었다. 연후에 자투리를 쐐기처럼 넣어 애교로 밀봉하니 수리가 끝났다. 일손을 거두던 아버지의 우스개 또한 걸죽했다.

“인절미나 흰떡 따위를 치는 메라지만...두번 다시 사람 머리는 박지 말게나. 공연히 복수한답시고 남편 머릴 치지 말게나...”

그날에야 우리는 물론, 온 동네에서 ‘떡치는 녀자'의 비밀을 알게 됐다. 결국 그녀는 ‘찰떡 녀장군'으로, ‘떡메 왈패'로 동네방네 소문이 났다.

그때로부터 긴 세월이 흘렀다. 가목사시 교통국의 지인 최광흔이 돈화로 출장 왔던 김에 나를 찾아왔다. 서시장 찰떡을 사갖고 로모한테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음식매장에 들렸다. 그런데 거기서 ‘뽕꼬대'녀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그녀도 나도, 우린 서로를 한눈에 알아 보았다. 귀가의 잔주름이 늘었지만 자주색 토시와 옥색 행주치마를 입은 그녀의 시원시원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뽕꼬대'도 너무 반가워 팥고물을 찍느라 비닐장갑을 낀 손을 내밀다 말고 지갑에서 작은 메모지를 건네준다. 구겨진 담배종이같았는데 들여다보니 기다란 아라비아 수자로 된 BP번호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난 그때도, 그 후에도 BP를 갖춘적 없었다. 며칠 후 다시 서시장 매대를 찾았을 땐 그녀가 이미 자리를 떴다. 옆사람들 말로는 서시장매대를 접고 남편과 함께 대련인지, 청도인지 옮겨 갔단다. 타관객지에서 떡장사를 크게 한단다.

아, 떡치는 녀자의 주소판도가 넓어지고 멀어졌다.

간혹 새벽시장이나 북대야시장, 철남야시장을 돌면서 혹시나 떡치는 녀자를 볼가 싶어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새벽시장에서 끝내 다시 떡치는 녀자를 만났다. 사연을 물으니 그 동안 천진에 가 떡장사를 해 짭짤하게 수입했단다. 요새 친손자 첫돌잔치로 잠간 연길에 왔던 김에 일일 난전을 벌인 것이란다. 말하는 한편 련속부절히 떡판에 떡쌀을 올려놓고 떡메를 휘두른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진다. 곁에서 남편이 물기 묻은 손으로 떡을 반죽한다. 아직도 남편이 아닌 안해가 떡을 치고 있었다.

아득한 기억을 떠올리노라니 웃음이 나왔다. 난 피뜩 주변을 둘러 보았다. 다른 떡 가게들에서는 자동기계로 떡을 치고있었다.

“왜 기계로 떡을 안치고 힘들게?...”

“떡은 쳐야 제 맛이 난다오, 떵떵 ...떡치는 소리 성수나오!”

잠간 숨을 톺던 ‘뽕꼬대'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더니 소매를 걷어 올린다. 탱탱한 알통을 밴 팔뚝이 드러났다.

구럭과 장바구니를 든 손님들은 ‘뽕꼬대' 떡집을 둘러싼채 줄을 지어 기다린다. 아마도 현장에서 가공한 패스트푸드나 스낵에 대한 선호도를 보여준 풍경이라겠다.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즉석식품의 인기를 긍정할만 했다.

이번엔 광동성 심수에서 떡가공회사를 차린단다. 그러던중 ‘뽕꼬대'의 실적을 공식계정에서 보았다. 남방도시의 조선족련환모임에서 ‘뽕꼬대표' 찰떡민속전통음식전시회를 개최했다는 기사였다. 산뜻한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떡메를 메고 웃는 모습이 너무나 시대적이고 혁신적이였다. 곁에 선 남편의 얼굴도 미소가 가득 피여 올랐다. ‘찰떡궁합'과 ‘찰떡같다'와 ‘찰떡금슬'과 같은 찰떡근원의 형상묘사들을 가득히 떠올린 순간이였다.

‘떡치는 녀자'가 들려온다. 보인다. 가마에 찐 찹쌀을 절구에 담고 절구공이 찰싹찰싹 오르 내린다. 이어 떡메가 떵떵 마찰음을 연주한다. ‘떡치는 녀자!' 동질성의 보유자이자 전승인으로 묶인 덩어리이다. 설과, 떡과, 또한 떡과, 설의 고향사람과, 고향사랑 담합 그 자체이다.

/정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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