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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쓰기는 자신의 삶을 가치롭게 꽃피우는 자각행위이다...
2017년 05월 28일 01시 01분  조회:3474  추천:1  작성자: 죽림

처음 수필을 쓰는 사람들을 위해 


鄭 木 日 

수필은 멀리 있지 않다. 나의 생활 곁에, 삶의 곁에 있다. 슬픔의 곁에, 눈물의 곁에, 기쁨의 곁에, 그리움의 곁에, 정갈한 고독의 한가운데에 있다. 
삶과 가장 근접해 있는 문학이 수필이다. 원대하거나 화려하거나 압도하려 들지 않는다. 수필은 자신의 삶과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맑고 투명한 거울이다. 한숨이 나오거나, 그리움이 사무칠 때나, 외로움이 깊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때 백지 위에 무언가 끄적거려 보고 싶어진다. 그냥 낙서일 수도 있고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이 '끄적거림'은 별 의식 없이 나온 것이지만 마음의 독백, 마음의 토로로서 이 속에 자신의 인생과 느낌이 담겨진다는 뜻에서 중요하다. 이 끄적거림이 발전하면 삶의 기록, 인생의 기록이 되며,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다. 기록한다는 것은 자아(自我)의 발견이며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기록함으로써 비로소 역사의식과 영원성을 수용하게 된다. 

기록은 삶을 성찰하여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다. 기록하는 일을 통해 삶은 더욱 진지해지고 충실해지며 가치로워진다. 기록은 사실 그대로를 쓴 것이다. 체험(사실)에다 상상과 느낌을 보태어 재구성과 해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수필이다. 기록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지만, 수필은 사실에 상상과 느낌을 불어넣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담아 낸다. 우리 삶의 얘기가 그냥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수필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상상과 의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필은 누구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일기, 고백, 기행, 감상, 편지- 어느 형식이든지 자유롭게 마음을 토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신과의 대화이다. 수필을 쓰기 위해선 동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과의 대화에 과장과 허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긴장을 풀고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장신구도 떼어내고 화장도 지워버리고 홀가분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실에 눕거나, 턱을 괴고 앉아 친구에게 마음을 토로하듯 쓰는 글이다. 애써 잘 쓰려는 의식이나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도 없이―. 권위의식, 체면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일체의 수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동심으로 돌아가 순수무구의 마음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욕심에서 치장하고 수식하고 싶어 안달을 부리게 된다. 겨울 언덕에 선 벌거숭이 나무처럼 녹음· 꽃· 단풍도 다 떨쳐버린 맨 몸으로 보여주는 진실의 아름다움을 가져야 한다. 수필이 '마음의 산책' '독백의 문학'이라 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 내는 문학임을 말한다. 

수필의 입문(入門)은 어느 문학 장르보다 쉽지만 수필의 완성은 실로 어렵다. 성공한 인생은 많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시작은 쉬웠지만 점점 들어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글이 수필이다. 시, 소설, 희곡 등 픽션은 작가와 작품이 일치하지 않아도 되지만 논픽션인 수필의 경우엔 작가와 작품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 인생의 경지에 따라 수필의 경지가 달라진다. 수필은 인생의 거울이므로 사상, 인품, 경륜, 인생관 등이 그대로 담겨진다. 심오한 사상, 고결한 인품, 맑고 따뜻한 마음, 해박한 지식, 다양한 체험이 수필을 꽃피우는 요소이고, 이런 인생 경지에 도달한다는 자체가 구도, 자각, 실천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수필은 완성의 문학이 아니라, 그 길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문학이다. 수필은 자신의 삶을 통한 의미와 가치를 최상으로 높이는 도구다. 수필을 쓰려면 무엇보다 겸허하고 진실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꽃피우는 문학이므로 스스로 교만과 허위의 옷을 벗어야 한다. 마음속에 항상 자신의 영혼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을 깨끗이 닦아 두어야 한다. 마음속에 양심의 종을 매달아 두어서 불의나 탐욕의 손길이 뻗힐 때 스스로 자각의 종소리를 내게 해야 한다. 마음속에 맑고 깊은 옹달샘을 파 두어서 거짓의 먼지를 깨끗이 씻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마음의 경지를 얻은 사람이라면, 진실과 겸허의 눈으로 말하고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마음속의 울림 그대로를 끄적거려 보는 데서 시작하면 된다. 낙서라고 해도 좋다. 단 몇 줄의 문장을 만들고 점차 자신의 마음을 토로해 나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수필과의 만남을 얻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습성을 가지는 일이 수필을 쓰는 첩경이 된다. 삶의 기록이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① 체험의 서술 
② 체험 + 느낌 
③ 체험 + 느낌 + 인생의 발견, 의미부여 
④ 체험 + 느낌 + 인생의 발견, 의미부여 + 감동 

①은 자신이 겪은 대로 쓴 것이어서 기록문에 불과하다. 
② 수필이 되려면 체험과 느낌이 조화를 이뤄야 함을 말한다. 체험이 많고 느낌이 적을 땐 정서감이 부족하여 딱딱하게 느껴지고, 체험이 적고 느낌이 많은 경우엔 추상적이고 현실감의 결여를 느끼게 한다. 
③의 수준이면 수필에 진입한다.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창출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험을 통한 인생의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④의 경우엔 '감동'을 주문하고 있다. 수필이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한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나 인생의 의미를 일깨우고 읽는 보람을 안겨 주기 위해선 '감동'이 있어야 한다. '감동'은 문학성의 핵심 요소이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 수필 쓰기는 자신의 삶을 가치롭게 꽃피우는 자각과 의미 부여의 행위이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의미의 꽃으로 피워낼 수 있을까, ― 이것이 수필을 쓰는 핵심이며 궁극적 목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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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기게 나를 찾아다니는 전화
―고옥주(1958∼)

몇 개의 숫자 속에서 나는 숨지 못한다
무수한 기억을 뚫고 네가 나를 추적해 올 때
뇌세포보다 더 많이 입력된 정보와 영상 사이로
나는 아무 기억도 상상력도 없다
파묻힌 찬 세월 속에
얼음공주 미이라 손가락의 문신처럼
움찔거리며 살아나는 네 그리움을 이해할 수 없다
죽었던 모기가 다시 살아난다면
해체된 지뢰가 다시 폭발한다면
끝난 사랑이 다시 불붙는다면
나는 갈갈이 찢어지고 말리
날 찾지 마
빠득빠득 잊혀지고 싶어
부족함이 가득한 이 세상
지난 시간을 내게 남겨 줘
묻힌 인연들이 제가 세운 둥지를 틀어 안고
흘러간다
흐르는 대로 흘러가면 좋으리

 

 

멀쩡하게 살다가 느닷없이 옛날 친구나 옛날 애인을 찾는 병이 도질 때가 있다. 가슴이 욱신거린다.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으로도 욱신거리고 젊은 날의 자신에 대한 그리움으로도 욱신거린다. 그토록 가까웠건만, 이제는 자기가 그의 인생에서 너무도 오랜 세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아서도 욱신거린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그 사람도 내가 그리웠을 거야. 얼마나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던가. 아, 그 아름다웠던 시절, 그 아름다웠던 관계! 내 목소리를 들으면 엄청 반가워하겠지.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해져서 이리저리 수소문해 드디어 전화번호를 알아낸다. 아, 그러나! 해체된 줄 알았는데 지뢰가 폭발하면 어떻게 되나? 그리움에 사무치는 목소리로 함께했던 시절의 열정을 되살리며, 혹은 재밌었던, 혹은 아름다웠던 에피소드를 끄집어내지만 화자는 그에 대해 ‘아무 기억’이 없을 뿐 아니라 ‘상상력도 없다’. 돌이켜보기도 싫은 것이다. ‘날 찾지 마!’ 당황과 아픔 속에서 화자는 애원하고 비명을 지른다. ‘빠득빠득 잊혀지고 싶다’고 한다. 너를 만나면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렵다.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네가 날 찾으면 어쩌란 말이냐? 

당사자는 힘들겠지만 나는 부럽구나. 이삼십대는 뜨거운 열정으로 뭐든 도전하고 경험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패를 깔아놔야 사오십대에 ‘다시 살아나는’ 이변도 있으련만…. 무라카미 류가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어가는 거야.’ 안전하게 사는 게 다가 아니다. 은근히 재밌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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