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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필 - 꽃길을 걸으며 댓글:  조회:240  추천:0  2022-02-18
수필 / 안수복   꽃길을 걸으며       하루에 최소한 두번은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다. 꽃길을 걸으며 출퇴근한지가 벌써 4년 철이 되여온다. 집과 가게 사이에 생겨난 이 작은 공원의 꽃길, 봄이면 의장대처럼 잘 진렬되여 심은 꽃나무들이 너도 나도 뒤질 세라 붉은 꽃을 활짝 피워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연분홍진달래가 무더기로 활짝 피여난 것 같다. 머리만 들면 온통 분홍빛이다. 여름에는 파란 잔디 우로 유난히 이색적인 꽃들이 방긋방긋 인사를 건넨다. 옛날에 산동네였는지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여 아름답게 펼쳐지는 진풍경들을 뒤로 보내며 걷다 보면 숨박곡질하듯 불쑥불쑥 만나는 꽃들중에서 노란꽃들이 참 많다. 꽃다지, 냉이, 민들레, 씀바귀, 고들빼기꽃들이… 가을에는 화단에 심어놓은 각양각색의 국화꽃과 더불어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일매지게 자란 나무잎들이 붉고 노란 단풍으로 길손들의 마음을 끝없이 일렁이게 한다. 겨울에는 소복소복 내리는 흰눈이 마치 천사의 날개옷이 떨어져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여난 것처럼 나무잎을 죄다 떨구고 잔가지 훤히 보이는 라목에 매혹적인 눈꽃을 소담스레 피워 한껏 겨울의 정취를 돋우어준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랍도록 감사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또는 삶의 방향과 새로운 발견의 길이기도 한 것 같다. 길을 걸을 때는 누군가의 동행이 있어야 하지만 동행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나무 하나, 풀 한포기, 꽃 한송이, 작은 돌 하나, 솔솔 부는 바람이나 저 하늘에 흐르는 별빛까지도 훌륭한 동행이다. 그래서인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겨울에도 꽃길을 걷노라면 저도 모르게 봄날의 향연을 느낀다. 마치도 봄이면 뾰족하게 솟아나는 파란 쑥이나 조뱅이, 소라지, 능쟁이, 토끼풀, 쇠비름 같은 풀들의 봄내음을 맡으며 봄날의 정취에 흠뻑 취하게 되는 것 같다.   꽃길, 아무리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고 있어도 가슴 속에 한송이라도 꽃을 키우고 살아가면 그 길은 꽃길인생일가?30년을 한 우물만 파며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헤쳐온 지난날들은 결코 꽃길만이 아니였던 것 같다. 인생에 지름길은 없다. 무수히 많은 조각들을 밟고 지나가야 만했던 그 길은 수많은 암초와 낭떠러지, 위험과 추락이 동반된 가시덤불길이였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 아니라고 방황하거나 불평한 적도, 황량한 길이라고 주저앉거나 바꿔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혹한을 참아낸 들꽃의 생명력이 더 강하다고 삶이라는 사막에서 용케도 악착같이 살아남은 나다. 봄이면 저 꽃길의 팝콘처럼 다닥다닥 꽃을 피워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매혹적인 분홍꽃나무나 나무줄기에 찰싹 달라붙어 눈이 부시게 새하얀 꽃을 피운 몽글몽글한 오얏꽃이 아닌 밟히면 밟힐수록 더 끈질기게 살아남아 봄부터 늦가을까지 행인들에게 웃음을 보여주는 저 노란 민들레꽃이나 씀바귀꽃 같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원의 꽃이 가슴 속에서 싹 트고 자라나고 있었음을 이 꽃길을 걸으며 비로소 터득하게 되였다.   누군가는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꽃이 피여난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꽃들을 생각하며 걷는 길일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한마디로 꽃길만 걷는 인생, 무척 랑만적이고 행복하고 복 받은 사람만이 걷는 일 같다. 하지만 인생은 뒤로 걷는 꽃길이나 예측할 수 없는 빗나간 삶 같다고 할가? 잠시나마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꽃 무지개 꿈의 인생길을 걷는 것처럼 위안이 된다. 흰 소의 기운으로 보다 상서롭고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은 요즈음 매일 아침 핸드폰을 펼치면 모멘트나 카톡에서 친척 친구, 지인들로부터 “좋은 아침, 새해는 꽃길만 걸으세요. 사랑합니다.”하는 가슴 뭉클한 문자 메시지나 축복의 인사말을 전해 받을 때면 감출 수 없는 솟구치는 감동과 파도처럼 일렁이는 설레임, 알 수 없는 행복과 무언의 기쁨이 활력소로 승화 되여 저도 모르게 온하루 사랑의 도가니에 빠져 랑만과 즐거움을 만긱하게 된다.    꽃길만 걷자는 말, 꽃길이라 함은 꽃과 함께 걷는다는 말일 수도 또는 인생에서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살자 라는 중의적 표현이리라.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 길이든 행복하지 않는 길은 없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선택의 순간 갈림길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찬비에 우수수 떨어진 꽃잎일지라도, 꽃잎 가득 채워진 아름다운 꽃길 아니래도 꽃길만 걷고 싶다.   삶이란 예상보다 더 잔인한 것, 때론 고독이, 고행이 극한에 달한다. 20년 전 십년나마 피땀을 쏟아 십만여원을 투자해 어렵게 마련한 가게를 한번도 아니고 련속 두번이나 상상도 못한 단돈 2만원이라는 헐값으로 파가이주통지서를 받았을 때, 예고없이 방문한 불행의 그 황당한 쓰나미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직 잘살아보겠다는 소망 하나로 출근하던 공장이 파산되자 한돌 되는 아들애를 둘쳐업고 부부가 십여년을 밤낮없이 손발이 터지게 애면글면 아등바등 악착스레 경영해온 생명줄과 다름없는 음식점 가게였다. 소도시발전계획의 수요라지만 너무 억이 막혔다. 30만원에 맞먹는 1, 2층으로 새로 완공된 그 자리에서 다시 영업하자니 2만원의 파가이주비는 보탬은 고사하고 가게 장식재료 값으로도 엄청 부족이였다. 되려 고슴도치 외 따지듯 수십만원의 빚만 잔뜩 걸머졌다.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듯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량가부모님들은 년로하고 중병으로 매일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갔다. 실로 촌보난행이였다. 그러나 생존본능이라 할가 살기 위해 해볼 건 다 해보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우리 부부는 사처로 뛰여다니며 은행에 대부금을 신청한다 고리자돈을 얻는다 가게 규모를 확대한다 경영항목을 늘인다 하면서 밤낮으로 고군작전을 펼쳐 코에 넣은 생콩이 익도록 생존이라는 들판을 치렬하게 뛰였다. 뭐든 하나에 전념하면 통달한다더니 하도 악착같이 버티고 열심히 애쓴 보람으로 가게경영아마추어에서부터 일약 프로로 도약해 시작할 때는 30평 되나마나한 코구멍 만한 세집부터 시작한 가게지만 30년이 된 지금에는 가치가 수백만원이 되는 가게로 탈바꿈 했다. 도시에 가게 하나 차리는 것이 인생의 작은 소원이고 핑크빛 꿈이였는데 그 소박한 소원과 꿈이 드디여 저 꽃길의 아름다운 붉은 꽃으로 피여난 것이다.    그래서 꽃길을 걸으며 꽃처럼 살짝 웃어본다. 꽃이 피여난 리유와 꽃이 피는 그 진가를 터득하고 있기에.   꽃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 힘들다.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일이 내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요즈음 우리 동네에는 ‘꿈에 그린 집’이라는 영업집이 오픈했는데 지날 때마다 은은하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게의 인테리어에 저도 모르게 자석에나 끌린 듯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비밀을 간직한 숲처럼 내부시설이 마치 공원의 꽃밭이나 벤치에 앉아 커피나 차를 홀짝이는 것처럼 편안하고 정교한 폭신한 의자들에서 여유로움이 물씬 풍긴다. 가게를 리용하는 젊은 고객들을 상대로 아이들의 놀이터마저 아이들의 동심이나 취미에 맞게 꾸며 놓아서 아늑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아이 손목을 끌고 산책하러 나온 부부들의 편안한 쉼터로도 되였다. 꽃잎처럼 예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주인이 진정 돋보인다. 꽃처럼 화려하게 보여도 걸어온 꽃길에는 수많은 곡절과 힘들었던 사연 그리고 숨은 노력이 깔려있으리라. “부모의 혜택이나 외국나들이도 없이 애 둘을 낳아 키우며 창업해서 모은 돈으로 가게를 오픈했다는 젊은 부부의 ‘꿈에 그린 집’가게, 어쩌면 내 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꿈에 그린  집’을  그려보며 꽃길만 걷기를 소망한다. 생물학적으로 그 의미가 무엇이든 꽃의 미덕은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뿌리와 잎이 혼신의 힘을 다해야 꽃이 피는, 그리고 꽃이 제 생명을 다 바치고 시든 다음에야 열매가 맺히는 것이 고단한 현실임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걸으면 생각이 새로워지고 만남이 새로워지고 느낌이 달라진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연과 함께 동화되는 것이며 삶의 뒤안길을 보는 것이다.   추억의 그림을 한걸음 한걸음마다 그리며 길을 걸어온 세월의 향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인생에 한번 쯤 꽃들이 물들이는 길 우에 마음 가득 향기를 담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걸림돌을 디딤돌로 생각하며.   《도라지》2021년 4기(계정)  
5    시 - 그늘(외 3수) - 김춘산 댓글:  조회:211  추천:0  2022-02-11
▣ 시 그늘(외 3수)  김춘산     해를 등지면 그늘이 생긴다   나무는 키가 커서 그늘이 진다        터밭에, 길가에 납작 엎드린    가장 낮은 풀인 질경이와   봄에만 피는 민들레꽃의 향기에서    어두움을 본 적 있는가       너무 오래    내 가슴속에서 커진 네가   돌아서며 입가에 흘린   그 미소의 끄트머리에서도    난 그늘을 보았다       어느 날 하늘을 등지고 서면    내 앞에도 그늘이 길게 늘어질 것을   그리고 난 그것을 털어내지 못할 줄 안다    휘―휘 휘저으면    뻗은 팔마저 긴 그늘이 될 것을       세월에 흔들리며    나도 나무처럼 높이 컸나 보다       솔잎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솔잎은 평생    자신을 펼쳐 보인 적이 없다   늘 송곳처럼 뾰족해서   바람은 짓거리를 못하고   해빛은 자리를 못 찾는다       산자락이나 중턱 쯤에 서서   흘러가는 봄과 여름을 퍼덕이다가   스쳐가는 비바람에 허물을 만들다가   가을이 선사한 단풍이 벅차면   궂은 골짝에 주저앉아   끝나지 않은 계절을 연주하는   떡갈나무나 느릅나무의 하모니여!        돌바위 꼭대기에 서서    눈빛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솔잎은   남들이 다 떠나간    시린 겨울을 지키고 있어도   곁에는 아무도 없다   사철 푸른 솔잎일지라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먼 곳의 너       먼 곳의 너의 얼굴 보려고   봄, 여름 내내 키돋음하던 해바라기는   가을이 되면 고달픈 목 떨어뜨리고       먼 곳의 너의 노래 들으려고   밤마다 바람이 오는 쪽으로   귀 기울이던 나팔꽃은   가을 되면 울바자 그늘에 주저앉고       먼 곳의 너에게로 가려고    굽이 돌고 여울 지나던 시내물은    가을 되면 빈 가슴에 자갈돌을 내보이고       먼 곳의 너를 기다리는 나는    가을이 저 멀리 떠나간 아침에도   호수 속의 힘찬 버들치나 새끼붕어가 되여   해뜨는 동녘 향해 점프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미소       바람 한올에   기슭, 저 멀리 수풀 속   물미나리 잎새까지 퍼지는    물결의 흔들림을 보았다       해볕 한줌에    툭 터져 저 멀리 하늘가   구름의 자락까지 붉게 익는   봉선화의 향기를 보았다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에   너의 눈망울에    출렁이며 넘쳐나는 미소   만조의 밀물처럼 차올라    다시 내게로 덮쳐오는   세상에서 제일 큰 미소를 보았다. 《도라지》2021년 3기(계정)
4    시 - 아버지(외 9수) - 최화길 댓글:  조회:123  추천:0  2021-12-30
시 - 비소리(외 9수) ▣ 시 / 최화길   아버지(외 9수)       칭송에는 쪽걸상 신세지만   자식 사랑엔 암장입니다       매끄러운 성격이 아니여서   호랑이라 불리우신 우리 아버지       평생 그 독한 배갈 맛을 즐기며   줄담배로 근심은 혼자 태웠습니다        머리 한번 살갑게 쓸어주지 않았어도   깊은 속으로 우려주신 진한 차향기        내 머리 희기 전까지 까맣게 몰랐던   입이 비뚤어지게 쓴 맛이 다가섭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름 활 터시고 가셨지만   당신이 오르셨던 산마루엔 노을이 곱게 비꼈습니다       어머니        내가 울면 어머니는 아프셨습니다   내가 아프면 어머니는 우셨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품을 나에게 다 내주셨습니다   내가 그 품을 떠나면서 비여버린 항아리        나의 체온 고이 간직한 그 품에서   된장은 숙성하고 김치는 익고…        머나먼 타향으로 엄마 체온은   한치의 차이 없이 송달되였습니다        아직도 철부지여서 무릎을 내주시는   자장가의 멜로디에 파도가 일렁입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하얀 메아리지만    내 가슴의 온돌은 아직도 따뜻합니다        아, 아 당신에게서 하늘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원천, 땅도 알았습니다        안해       나의 선택 존중하고 아껴준 사람    살다보면 험한 꼴도 보여주었건만   약점까지 껴안은 무던한 사람        꽃 한송이 안겨주는 랑만조차 모르는   무뚝뚝한 어둠에도 밝게 웃을 줄 아는   세상에 이런 녀자 또 있을지 의심 드는 사람       ‘큰 애기’라 이르는 소박한 롱담에는   생명을 잉태하는 무궁한 크기 만큼    세상 끝까지 가도 다는 알 수 없는 사람        빛은 올올이 볼 수 없어도 밝고   공기는 만질 수 없어도 떠나서는 못사는      없는 듯 숨쉬는 생명의 기원이라 이르옵니다       남편        어느 한 위대한 녀성이 점지하여 얻은    평생 싫지 않은 자랑스러운 칭호       땡볕이 지지면 양산이 되고   폭우가 찌르면 우산이 되는 일        아홉을 주고도 주지 못한 하나로   평생 가슴 앓아야 하는 숙명        스스로 원하기에 원했기에    몸과 마음 다 태우는 피빛 노을이다        아들       사람들은 나와 판박이라 말하는데   성질머리 하난 나의 적수인 듯하다    사춘기 때는 내가 동을 가르키면    기어이 서쪽으로 빠지곤 했다        내가 자랄 때도 아버지와 저렇게 맞섰는지?   자신을 검토해도 답안이 없던 허허벌판         장가 가서 자식 하나 생기더니   어딘가 내 눈치 얼마간 아는 듯하다        아버지대 아버지라야 공언이 있는 건지?   아들이 알아줄가 하니 나는 할아버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들 키울 때보다   손주놈 키우는 재미 더 쏠쏠한 건…        이왕지사 어찌 됐든    래일의 배심 하나 두둑하다        며느리        나하고는 말도 잘 안 섞는   뚝뚝한 아들놈의 최고 선물       어쩜 아들놈이 타고 난 결함    미봉하려 우리 집에 온 천사        묘하게도 아들한테서 받은 서운함    비자루 챙겨들고 깨끗하게 청소한다       딱히 고운 데 없이 곱기만 하고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주고만 싶다       너로 하여 아들은 더는 무릎 아래 아니지만    너로 하여 아들을 빼앗긴 듯하기도 한데        그래도 그냥 벙글써 좋게만 생각되는 나   며느리 앞에서는 항상 바보상이 아닌지?       그럼에도 시름이 다 가셔진 듯    구름 한점 없는 하늘처럼 청정하다        딸        엄마 곱니? 아빠 곱니?   하는 동네분들 물음에       똑 부러지게    “아빠 더 곱다”고 대답한 딸이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나는 아들의 눈에 난 딸바보       시집가던 날 끝내 참지 못하고   어느 모퉁이서 엉엉 방성한 딸바보       사위를 질투할 만큼 어리석은 딸바보   사위를 하늘 높이 받쳐올린다       내가 고와하는 절반이라도    우리 딸 고와해라고 공연히 설친다         평생 퇴직 없는 행복한 직업    살뜰한 딸 가진 아버지!        사위       오직 존중할 수밖에 없는    우리 딸의 자아 선택        기대 이상으로 나보다 더    살가운 놈 낚아올렸어요        밉다고 보자 해도 미워지지 않는   피 한방울 섞지 않은 자식       하기에 내 앞에서 남편 질책할 때면   은근히 사위편이 되는 못난 장인        속심이야 콩밭에 두고 있지만    남자의 자존은 구길 수 없는 일        남자 대 남자로 짝꿍이 되여   술 한잔 나누어도 편해서 좋다        손군       내 성씨 타고 난 손군은    밉게 놀아도 고운데    사위 성씨 타고 난 손군은    곱게 놀아야 곱다       물론 겉으로 보건대는    차이가 별로 나지 않지만    두 손군 데리고 밖에 나가면    오른쪽에 친손군 왼쪽에 외손군        애들에겐 꼭 같은 할아버진데   어쩜 그렇게 유치할 수 있냐구요   가볍게 웃을 일이 아니옵니다    내 마음이 깜쪽같이 나를 속여요       그렇다고 딸도 서운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딸 시집 보내고 아들 장가 들어    할머니로 되는 그 날이면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거니깐!        선생님        엄마의 회초리 이어받으신   피를 섞지 않은 ‘엄마’   사랑 깊이 감추는 지혜로        비뚤게 쓴 글씨 바로 잡아주시고   넘어진 연유 차근차근 풀어주시며   심지에 불을 달아 어둠을 밝혔습니다        래일을 살자면 날개가 필요하다며   자신이 아끼던 깃털마저 내게 주시고   내 몸에서 돋는 날개에 꽃을 피웠습니다        내 생애에 숨어 사는 꺼지지 않는 등불    파도에 기우뚱거릴 때마다 손잡으시는    당신은 나의 인생과 함께 약동하고 있습니다 《도라지》2021년 2기  (계정)
3    김영능 시-자가용(외 7수)와 한영남의 시평 댓글:  조회:120  추천:0  2021-12-14
시-자가용(외 7수)-김영능(《도라지》2020년 5기) ▣ 시 / 김영능 자가용(외 7수)   내가 너를 머슴으로 부려먹는지 네가 나를 몸종으로 부려먹는지 어리둥절 알고도 모를 일이다   네가 배가 곯아서 헐떡거리면 말이 없어도 때를 어기지 않고 주머니를 털어 배불리 먹여주고   네가 고단하여 탈이 나면 지체없이 병원으로 모셔가서 오장륙부 검진 치료하고   너의 모양새가 허름하게 얼룩이 지면 대중 모욕탕에 모시고 가서 안팎을 깨끗이 샤워 시키고   네가 동서남북 눈치 없이 앉을 자리 갈 자리 헛갈리면 내가 벌점을 먹고   네가 급한 성격 덤벼치며 앞뒤 꽁문 접촉 사고를 내면 내가 벌금을 당해야 하고   네가 장부 호걸 깡패행세 재산인명 큰일을 저지르면 내가 감옥으로 가야 하니   피땀으로 애써 모은 돈 수없이 밀어넣었는데 또 얼마를 말아먹어야 하는가   아차하면 재산을 탕진하고 가문이 망하고 인생이 끝장 나는 판   도대체 알고도 모를 일이다 누가 주인인지 누가 노복인지   그래도 너들 무리들 큰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만 빵빵 치고 싸다니니   거꾸로 만들어진 세상 거꾸로 살아야만 하는 세월 알고도 모를 일 너무도 많아   삼색등이 색망이고 밤낮이 삭갈리고 하늘땅이 헛갈린다   시라지   한 뿌리 한 혈줄 한 족속인데   익고 여물어 하얗게 속대 탱탱 살아난 놈들 빠알간 맛갈양념 꽃단장 랭장고 고급호텔에 모셔가 식탁무대에 올라서는데   바람을 막아주고 먼지 오물 뒤집어쓰며 애지중지 품어주며   껍데기 울타리로 퍼어렇게 멍이 들어 후줄근 꼴기 없으니   새끼줄에 목 졸리여 엄동설한 칼바람 속 사랑채 이영새에 교수형   피가 마르고 뼈가 삭아서 눈물마저 거덜이 났구나   록차   맑고 투명하여 거짓 없다 순결하고 뜨거운 가슴에 무작정 뛰여들었어요   야위고 여린 한몸 짜릿한 몸부림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어요   따가움으로 살이 터질 듯 뼈 속까지 타들어가는 정열 온몸이 녹아 무너지는데   그리움은 슬픔이였어요 정은 아픔이였어요 사랑은 죽음이였어요   그래도 후회없이 마지막 숨결로 향기를 주고 싶어요   풀이고 싶다   꽃이 아니고 풀이고 싶다   화사하여 나비들한테 밟히우고 허비우고 사방의 눈총질에 고달프고   요염하여 벌들한테 쏘이고 할키우고 팔방의 발길질에 아프고   짙은 체취로 바람의 품에 안겨 벌님네 혼을 앗아가고 나비님 얼을 홀려가며 순진한 봄날을 희롱하고 무심한 세월을 간지르는   한순간 피였다 지는 가녀린 꽃이 아니라 한결같이 푸르른 이름 없는 작은 풀이고 싶다   수증기   나의 족속들은 아래로 낮은 곳으로만 찾아가는데 나는 우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나의 사촌 비방울은 구중천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깨여져 땅 속에 스며들고   나의 팔촌 우박들도 구름차에서 뛰여내려 분신쇄골 부서져 흙 속에 사라지고   나의 본가집 하천강물들도 밤낮 구을러 바다에 침전되여 자취를 감추는데   나만은 훨훨 하늘을 날아 자유자재로 자유를 즐긴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작아지고 가벼워져야만 올라갈 수 있는 한정된 자유의 세상   더 올라가면 사촌처럼 팔촌처럼 곤두박질 나뒹굴고 만단다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신들메 조여매고 톺아오른다 정상을 노리고   욕망의 구렁이 릉선을 기여오른다 희망의 꽃너울 가발로 둘러쓰고   새소리 흘러보내고 꽃구경 제쳐놓고 비지땀 쥐여짜고 가쁜 숨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서서 앞을 살펴보니 더 높은 봉우리 소소리 건너편에 솟아있네   끝없이 오르고 싶은 욕구 오금이 저려나는데 올라온 가파름보다 내려갈 골짜기 더 깊구나   솜구름   할아버지 한숨 하아얗게 숨 가쁘게 서리여   할아버지 산소 뒤산마루 오솔길에 꼬부랑 허리로 서성거린다   떠나가버린 수십성상 차마 잊을 수 없어 오늘도 이마에 손을 얹었는가   쓰라린 설음 함박으로 쏟아붓던 키 낮은 초가삼간   룡마루가 주저앉고 구새통이 기울어지고 쑥대가 무성한데   황소의 영각소리 꿀꿀이 떼질소리 수닭의 홰치는 소리   바람이 쓸어갔나 비물이 씻어갔나 세월이 잡아갔나   뭉게뭉게 솜구름 하아얀 수염발 날리며 마른 눈물 휘뿌린다   자욱                            지나온 발자욱 지워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무겁게 밟아놓아도 티끌 먼지 속에 파묻히고 뒤따라온 자욱에 묻혀버리는 운명인데   누구나 열심이 깊게 얄팍하게 바르게 삐뚤게 자욱을 만들어가니 인생이 허무하고나   보이지도 않는 자욱 미련으로 고개 돌리고 그림자도 없는 자욱 꿈속에 더듬어갈 때 그 자욱 속에 주어담은 짭고 맵고 시고 달콤한 낡은 삶의 자투리   땀에 절어 눈물에 젖어 피물에 얼룩으로 새 삶을 반죽한다 비평-생활은 시가 되여 흐르고 시에는 생명이 깃들이고-한영남(《도라지》2020년 5기)     ▣ 비평 / 한영남 생활은 시가 되여 흐르고 시에는 생명이 깃들이고 ―김영능시인의 근작시를 모티브로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를 한마디 하자. 시는 생활가운데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다시 예술적 승화를 시켜서야 비로소 시로 완성된다고 한다. 요즘 많이 퇴색해버린 운률까지 넣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하겠다.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를 하는 리유가 있다. 왜냐하면 낡은 터에서 이밥 먹는 소리라고 픽픽 웃는 분들도 결국 며칠 버티지 못하고 그 이밥을 다시 찾게 되는 까닭이다. 시는 생활을 떠날 수 없다. 생활에 대해 눈을 감고 오로지 상상만으로 시를 쓴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그의 머리속에 반영된 것은 생활 자체이고 그것이 상상력의 작용하에 아무리 희한하게 변형된다 하더라도 결국 생활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활을 반영한다고 해서 생활을 그대로 사진 찍듯이 옮겨온다면 그 역시 시로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예술적 승화가 되지 못한 까닭이다. 예술적 승화가 되지 못한 글은 마치 날개가 없는 봉황과 흡사하다. 봉황이 날지 못한다고 상상해보라. 거기에 무슨 뭇새들의 왕이라는 이름이 걸맞을 것인가. 한마디로 시는 생활에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예술적 승화를 시켜주어야 시라는 타이틀을 달아줄 만하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조선족 중견시인 김영능선생의 근작시 8수를 모티브로 생활에서 어떻게 시가 채집되고 어떻게 예술적 승화가 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자가용〉이라는 시는 그야말로 생활에 밀착한 시이다. “내가 너를 머슴으로 부려먹는지 / 네가 나를 몸종으로 부려먹는지”라는 아기자기한 표현으로 말문을 연 시는 시종 자가용을 ‘너’라는 이인칭으로 지칭하면서 자가용과 주인의 관계를 풀어나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듯 보살펴도 쩍하면 벌점, 벌금이 차례지니 그야말로 대체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복인지 모를 일이다. 이 시점에서 시인은 평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만들어진 세상’이라고 일갈한다. 시비가 전도되고 선이 손해 보고 악이 오히려 호통치는 일부 사회부조리에 시원한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시는 가장 일반적인 생활의 한 모퉁이에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아기자기하게 풀어나가다가 반전으로 예술적 매력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생활의 묘미가 시의 묘미로 거듭나는 대목이라 해야겠다. 〈시라지〉 역시 순수 소박한 우리 삶의 이야기이다. 우리 민족이 그토록 즐겨먹는 시래기를 두고 자못 유머러스하게 ‘랭장고 고급호텔에 모셔’간다고 엉너리를 부린다. 그러나 “새끼줄에 목 졸리여 / 엄동설한 칼바람 속”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는 그토록 즐겨먹는 시래기를 너무 홀대한 것은 아닌지. 독자들의 반성을 견인해내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피가 마르고 / 뼈가 삭아서 / 눈물마저 거덜이 났”다고 끌어올림으로써 우리 민족의 애환과 매치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기승전결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시라고 해야겠다. 〈록차〉를 마셔보자. 시는 우선 록차의 속성으로부터 출발해 본론으로의 접근을 꾀한다. 단 이 시에서 시인은 록차의 각도에서 시를 전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록차가 뜨거운 물속에서 우려지는 과정이 극명하게 안겨오면서도 록차의 심경이 되여 저으기 안쓰럽게 여겨진다. 4련에서 “그리움은 슬픔이였어요 / 정은 아픔이였어요 / 사랑은 죽음이였어요”라고 직접적 주정토로를 함으로써 록차의 깨달음으로부터 인생의 철리를 길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백미는 “그래도 후회없이 / 중략 / 향기를 주고 싶어요”라는 그 간절한 소망에 있다. 록차는 사랑을 위해 뜨거움 속에도 용감히 뛰여들었고, 짜릿한 몸부림도 치고, 온몸이 녹아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행위가 결국 사랑이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래도 향기 한점 주었다는데서 안도하는 여기에 시인의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풀이고 싶다〉를 보자. 요란하고 화사하고 떠받들리는 고운 꽃보다 눈총질, 발길질에 아픈 풀이고 싶은 리유는 무엇일가. 그것은 한결같이 푸르다는 풀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세상의 란타를 당해도 오로지 푸름을 떠이고 사는 풀로 행복하다는 그것이야말로 시인의 시세계관를 대변하는 것이리라. 자연을 쓰되 인간의 삶과 매치시키고 거기에 생명의 숨결이 흐르게 하는 여기에 김영능시인의 범상치 않은 시적 재주가 돋보이는 것이리라. 〈수증기〉는 기체, 액체, 고체로서의 물의 세가지 상태를 둘러싸고 시가 전개되고 있다. 유머와 위트가 없는 문학은 진정한 문학이 아니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 시에서도 김영능시인의 능청스런 어투가 위불없이 드러나 시에 맛소스를 쳐주고 있다. 물의 세가지 상태를 ‘사촌’이니 ‘팔촌’이니 ‘본가집’이니 지칭해서는 친근감과 더불어 독자들의 입귀에 흐뭇한 미소가 걸리게 만든다. 그런데 생활의 론리가 사개 맞게 들어맞는 것을 독자들은 놀랍게 발견해야 한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 작아지고 가벼워져야만 / 올라갈 수 있”다는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세상사람들한테 던져주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니였을가. 〈등산〉도 소박한 서두가 깊은 인생철리를 견인해내는 시이다. 1, 2, 3련에서는 등산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련히 겪게 되는 사정이야기를 들려주기에 골똘하다. 그러나 4련에 이르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정상에 올라서서 / 앞을 살펴보니 / 더 높은 봉우리 / 소소리 건너편에 솟아있”는 것이다. 이 산에 오르면 저 산이 높아보인다는 말도 있고 산 우에 산이 있다는 말도 있다. 옳고 옳고 옳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그만둔 것이 아니라 지금껏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시적 발견을 해내고 있다. “올라온 가파름보다 / 내려갈 골짜기 더 깊”다는 이것이야말로 김영능시인만이 해낼 수 있는 시적 발견이요 이 시적 발견이야말로 이 시를 더욱 시중의 시로 거듭나게 해주는 화룡점정이라 해야겠다. 〈솜구름〉을 바라보기로 하자. 시인은 하늘에 떠있는 솜구름 하나를 보고 지나온 세월을 반추해보고 있다. 그의 눈망울로 수십 성상 세월이 아프리카 반마처럼 줄달음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이제 “바람이 쓸어갔나 / 비물이 씻어갔나 / 세월이 잡아갔나” 보이지도 않고 솜구름만이 마른 눈물을 휘뿌리고 있다. 고래희의 시인은 솜구름 한송이를 보고도 인생을 반추해보고 삶의 부족점들을 반성해보고 있는가 보다. 시 〈자욱〉 역시 비금한 맥락의 시로 분류된다. 시 전문을 옮겨보자.   지나온 발자욱 지워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무겁게 밟아놓아도 티끌 먼지 속에 파묻히고 뒤따라온 자욱에 묻혀버리는 운명인데   누구나 열심히 깊게 얄팍하게 바르게 삐뚤게 자욱을 만들어가니 인생은 허무하고나   보이지도 않는 자욱 미련으로 고개 돌리고 그림자도 없는 자욱 꿈속에 더듬어갈 때 그 자욱 속에 주어담은 짜고 맵고 시고 달콤한 낡은 삶의 자투리   땀에 절어 눈물에 젖어 피물에 얼룩으로 새 삶을 반죽한다   ― 시 〈자욱〉 전문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시인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고도 많다. 그러나 시인은 인생의 무상함을 감지하고 어차피 묻혀버릴 인생이지만 누구나 나름대로 열심히 깊고 옅고 바르고 비뚠 자욱들을 만들어오는 바 그것이야말로 우리네 삶의 짜고 맵고 시고 달콤한 이야기라고 중얼거린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단념하고 모든 것을 체념해야 하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시인은 땀과 눈물과 피물로 ‘새 삶을 반죽한다’고 소리높이 호매롭게 웨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폭풍 속에서 가련하게 움츠리는 갈매기, 가가르, 펭긴 등 새들을 비웃으며 오연하게 창공을 그 날개짓으로 찢어대던 저 고리끼의 해연의 노래와 얼마나 닮아있는 것인가. 건강하고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삶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리라. 이상 김영능시인의 근작시 8수를 모티브로 생활이 어떻게 시로 환원되고 생명력을 획득하는지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지만 최근에 들어 김영능시인은 달관의 경지에서 인생을 관조하면서 지나온 삶의 궤적을 반추해보이고 인생의 철리를 길어올리는 시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것은 시가 생활을 떠날 수 없고 예술적 승화 없이는 시의 완성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익히 아는 한 중견시인의 량심 있는 시적 주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능시인은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한 것이다.
2    김선희(윤형)의 시 가을앓이(외 6수) 및 평론 두편 댓글:  조회:206  추천:0  2021-10-29
  ►가을앓이     윤형  (김선희)   더이상 청운의 빛을 더듬지마라 몸살을 앓는 꽃들의 빛깔만으로는  생의 진수를 가늠할수없기에 달빛의 밋밋한 숨결을 받아들여야지 바람에 흩어지는 숲의 아우성처럼 뿌리 내리지못한 잎새들의 비명이 무너지고나면 옹이를 품은 천년송목*에도 피빛 저녁노을이 물살져오더라 그 차분하면서도 벅찬 윤슬앞에 나는 늘 가슴 텅 빈 죄인이 된다 육신에 스며드는 푸른 어둠이다가 만개한 빛자락의 여백이다가 가을은 천상의 향기를 남겨놓은채 저문 들녘의 침묵속으로 휘영휘영 나를 끌고 가는구나   달이 기우는것을 탓하지마라   * 송목 = 松木明子     ►채워도 채워지지않는것    세상의 한끝이다 허상들만 가득찬 도시의 언저리에 피빛을 태우다 남은 노을이 진다 붐비는 인파속에서도 날개안으로만 그림자를 드리우는 도시의 자세를 스케치해본다 이방인에게 쉽게 허락하지않는 하늘과 땅속 어딘가라도 파헤치면 길이 열릴것같은 막연한 기대들에 부풀어오르다보면 꿈을 향한 구멍들은 열릴수있을가 색이 바랜 달이 뜰때쯤 작은 부끄러움마저 여미고 희미한 뜬구름이라도 잡아보고싶지만 내 여린 손을 뻗을 여백은 어디에도없다   채워도 채워지지않는 가슴 빈자리     ► 락화의 흔적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지축을 울리며 뼈들이 부서지는 소리 마지막 울음마저 토해버린 음지와 양지의 피를 쏟는 군무 한바탕 소나기 지나고나면 날개잃은 새들처럼 꽃이 추락한다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을 가슴 깊이에까지 끌어모아 품은것 이상으로 생을 갈무리하는 꽃들의 순수앞에 무슨 말이 위로가 될가 락하하는 순간 탈바꿈하며 한톨의 씨앗이되어 탄생을 알리는 죽어서도 죽지 않는 생의 원혼이여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시린 가슴으로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뭉클해지는 엄마의 살내음이 뿌리 깊은 숨결로 꽃을 피우고있었네 울다 지는 부상화(扶桑花)꽃잎처럼 굽이굽이 차오르는 여러겹의 빛깔사이 그대의 능선을 딛고  그대의 강을 넘어  억겹으로 요동치는 생의 빛살이 내게로 전해지고있었네 새삶을 위해서만 가랑비는 내렸네 싸리문 너머로 멈추듯 흐르던  부드러운 샘이  바위끝 심장을 뚫고있었네 빛 고운  엄마의 치마자락이 천상의 날개를 펼치고있었네     ►돌의 아리아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영겁의 시간 몸 속 응어리는 슬픈 구멍으로 뚫리고 가장 먼곳으로부터 달려와 반겨주던  피빛 노을은 온기를 잃어가고있습니다 더 이상 낮아질수없는 육신은 담벼락 기여드는 잎새처럼 한잎 두잎 석화들이 모여 작은 위로를 주지만 그것 또한 옛노래처럼 흘러갈듯 아파도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슬퍼도 가랑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바람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 고개를 쑤욱 쳐들고싶지만 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 인과율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채 만추 끝자락에 촛대바위로  멈춰섰습니다   찌든 내 껍질은 어둠의 뿌리에 헝클어지고 꽃이 시들어가는 초화언덕에  오늘도 가난한 뻐구기는 울다갑니다     ►석류   유리창 너머로  석류가 아프게 매달려있다 몇오리 바람이 찾아와 무어라 귀엣말 전해주듯 찌르륵 찌르륵 어디선가  풀벌레소리 땅을 울리고있다 떨어지면  금새 눈물날것만 같아   유리창 밖 ! 우주를 손바닥에 내려놓은 잎새 하나 햇살이 감겨들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황칠나무     태줄 묻어  몸의 조각들을 어둠속에 깔아놓았습니다 얽혀있는 매듭들을  노오란 수액으로  한올씩 풀어내며 버려야할 세상 찌꺼기들을 걸러냈습니다    천혜의 숨결이 닿는곳에 여울치는 물살에 씻기다 주상절리의 넉두리에 귀를 잃다 세상의 빛에 뿌리를 내린다지요   나무잎 흔들릴때 천년의 달은 어둠을 더듬어 지상에서 가장 령롱한 열매를 맺습니다   꽃은 꽃으로만 피지않고 나무는 바람에게 길을 묻지않습니다. 김선희 프로필   연변작가협회 회원.연변시인협회 회원 시 《비》중국조선족명시집에 수록. 제2차 세계아동문학대회 참석. 시집 《석빙화》출간 아래 김선희 시에 대한 두편의 평론을 게재한다.   ▣ 비평 / 우상렬 생명, 혈연, 현대성 찍고―     윤형(김선희)의 근작시를 몇수 읊어보았다. 생명노래가 가장 진하게 울려퍼진다. 〈락화의 흔적〉, 〈홍시〉, 〈원일초〉, 〈바람의 언덕에서〉가 이에 해당한다.   〈락화의 흔적〉을 좀 보자. 여기서 〈락화의 흔적〉은 무엇이든가? 그것은 “한톨의 씨앗이 되여 / 탄생을 알리는 / 죽어서도 죽지 않는 생의 원혼이”다. 그것은 죽으면서 삶을 잉태하는 죽음과 삶의 변증법이다. 그런데 이런 변증법은 처절한 ‘음지와 양지의 피를 쏟는 군무’를 통해 나타난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갈무리하는 ‘꽃들의 순수’한 생명의 승화에 다름 아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딛고 탄생한다. 죽음과 삶의 변증법이 되겠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생명탄생의 보편적인 리치다. 이 시는 바로 이런 생명탄생을 노래하고 있다.    〈홍시〉를 좀 보자. 여기서 ‘홍시’는 생명의 상징. 그것은 ‘초불 같은 심장’을 가진 뜨거운 존재. 그리고 생명의 ‘새빨간 생각을 주고 받’는 존재.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허위와 거짓존재는 존재할 여지가 없다. “주변을 강타하던 무수한 소문들은 / 스멀스멀 그림자로 멀어져간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가지마다 감도는 / 생의 물결이여 / 빛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으라”에서 생명의 고양은 최고도에 달한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불행하고 아픈 존재들을 보듬고 감싸안는다. “물오르는 참꽃들의 애환과 / 비슬산 울다간 동박새의 꿈과 / 숲으로 돌아가고픈 / 령토들의 아픈 심사까지도 / 뜨겁게 감싸 안아준”다고 하지 않던가. 아름다운 기원을 한다. “서서히 타오르는 땡볕의 품으로 / 새빨간 날개를 활짝 펼치라”하지 않던가. ‘새빨간 날개’, 그것은 생명의 날개여라! 〈홍시〉는 생명의 찬가, 생명에 대한 아름다운 기원을 노래하고 있다.    〈원일초〉를 좀 보자. 여기서 생명은 ‘아기 꾀꼬리들’로 상징된다. 한 겨울 “아기 꾀꼬리들 뽀시시 / 날개짓을 시도한다”. 그런데 “푸르름은 아득하고 / 다른 세포들을 흔들어 깨우기에는 / 아직 밤이 길다”. 그리고 “부리를 쪼아 새 계절을 불러오고 싶지만 / 길을 열어간다는 것이 / 천년고목에 꽃을 피우듯 / 숨 가쁜 일”인 것이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다. “시나브로 날개짓에 익숙해질 때 쯤 / 하늘을 쪼개볼려”는 포부를 갖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원일초―설련화처럼 눈속에서 아름답게 피여나는 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보다시피 이 시는 생명의 끈질긴 힘, 생명의 역경 및 희망, 포부를 노래하고 있다.    〈바람의 언덕에서〉를 좀 보자. 여기서 바람의 언덕은 어떤 곳인가? 그 곳은 ‘꽃을 피우는 곳’. 이 시는 령토, 바다, 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령토는 ‘가을 들녘을 살찌우’고 바다는 ‘전설 같은 매듭을 풀어내’며 섬은 ‘작은 몸짓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령토는 물산, 바다는 정신, 섬은 천, 지, 인 합일의 문화를 지향하면서 인간 삶의 기본 지표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결국 ‘꽃을 피우는 곳’으로 수렴되고 있다. 보다시피 이 시는 생명이 펼쳐지는 인생, 인간 삶의 기본 지표를 노래하고 있다.    혈연, 피는 무엇보다 진한 것이다. 인간은 혈연의 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이 혈연 가운데서도 부모자식 간의 정이 가장 끈끈하다. 따라서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되기도 한다. 김선희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노래한 시를 좀 보자.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을 좀 보자. 여기서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누가 보이지? 엄마가 보인다. 그런데 엄마는 가슴을 시리게 한다. 그 살내음이 뭉클해지게도 한다. 엄마는 ‘새삶을 위해서만 가랑비’가 되여 내렸고 ‘부드러운 샘’이 되여 ‘바위 끝 심장을 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엄마는 ‘뿌리 깊은 숨결’로 생명의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이 시는 끈질긴 생명의 희생과 헌신으로 생명을 보듬고 키우며 인생을 마감하는 엄마를 노래하고 있다.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이 어머니의 노래였다면 〈겨울에 피는 꽃잎처럼〉은 아버지의 노래이다. ‘겨울에 피는 꽃잎’은 누구지? 아버지! 아버지는 바로 ‘겨울에 피는 꽃잎처럼’ 사셨다. 그럼 ‘겨울에 피는 꽃잎’은 무엇이지? 그것은 희망이고 행복이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바람에도 빛을 잃지 않”았고, “허허로운 벌판에서도 씨앗을 키워오셨”으며 “엄동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쳐주시”였고 “세상의 빛을 당겨주셨”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등대고 생명이고 스승이고 희망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아버지는 “내 비여있는 길에 / 영생의 빛을 열어주고 계신”다.   현대성, 우리 인류가 고대를 넘어 추구해온 삶의 지표. 현재는 포스트모던시대라 현대성도 어지간히 실현된 듯하다. 그런데 삐긋 문제가 생긴 듯하다. 애초에 문제성을 내포한 현대성임에라! 적어도 과학성과 도덕성의 괴리가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 범위에서 현대성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문학도 례외가 아니다. 이른바 모더니즘문학은 전형적인 한 보기가 되겠다. 김선희의 시도 이런 반성을 보여주고 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을 좀 보자. 여기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가. 그것은 ‘가슴 빈자리’. 그럼 왜 가슴이 비지? ‘내 여린 손을 뻗을 여백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여린 손’만큼 가냘프다. 그리고 ‘이방인’이다. 철저히 소외되고 주변화된 이방인이다. 그는 ‘세상의 한끝’에 서 있지 않은가. 그리고 ‘허상들만 가득 찬 도시의 언저리’에 말이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도’ 그를 품어줄 곳은 아무 곳도 없다. 한 쪼각의 하늘과 땅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 하여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어딘가라도 파헤치면 / 길이 열릴 것 같은 막연한 기대들에 부풀어오르’기 때문이다. ‘꿈을 향한 구멍들’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색이 바랜 달이 뜰 때 쯤’ ‘희미한 뜬구름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의 기대는 간절한 만큼 처절하다. 둥근 달이라도 모르겠는데 ‘색이 바랜 달’, 흰 구름 두둥실도 모르겠는데 ‘희미한 뜬 구름’이 아닌가. 그것은 애초에 허무맹랑한 기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래기라도 잡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이 시는 도시에 융합될 수 없는 한 이방인을 통해 현대 도시생활의 소외(異化)를 고발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 사이에 응당 있어야 될 소통과 온정, 융합이 증발된 사막화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현 단계 현대성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세계 보편적으로 보다 더 거론되고 있는 모더니즘문학의 기본주제와 통하고 있다.       현대성의 문제는 도덕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무지막지한 ‘과학성’에 의한 자연의 황페화로도 나타난다. 생태평형파괴,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생태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이는 문제로 되였다. 세계의 지성들이 여기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 문학에서는 세계적인 범위에서 생태주의문학이 산생되였다. 김선희도 이 생태주의문학에 동참하고 있다.   〈네모나방〉을 좀 보자.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현재 세계는 하나로 얼기설기 련결되여있다. 세계 한쪽 끝의 미세한 움직임이더라도 그것이 파노라마처럼 번져가며 결국 다른 한쪽 끝의 큰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효과일 때는 더 없이 반가운 것이겠지만 도노미현상을 일으키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때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는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첫 시작 “천애지각 땅끝마을에서 / 너는 반갑지 않은 기별처럼 왔구나”는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전반 시에 관통된 이상한 ‘네모나방’의 상징이미지가 이것을 밑받침해주고 있다. ‘만신창’이 되여 ‘천지간을 켜켜이 들추’는 네모나방, ‘시나브로 모닥불이 서서히 피여오르’면 쉬여야 정상이건만 ‘어둠의 발자국’의 재촉 때문에 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네모나방은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가여운 미물’인 것이다. 여기에 시적 자아는 ‘너만의 계절을 담은 / 안식처에로 날아가 주’기를 기원한다. 이것은 모든 존재가 자기의 ‘안식처’로 돌아가 이 세상이 정상적인 질서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기원에 다름 아니다. 보다시피 이 시는 미물인 네모나방을 다룬 것 같지만 실은 생태평형 및 세계질서라는 거창한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현 단계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생태주의라는 세계적 담론에 가닿고 있다.    윤형의 근작시 몇수를 생명, 혈연, 현대성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모두 만만치 않은 담론들이다. 영원성을 띠는 담론이기도 하다. 그녀의 근작시의 1차적 의미는 여기서 찾게 된다. 그녀의 시는 긍정적이고 밝아서 좋다. 요새 말로 하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그녀에게 있어서 생명은 시련은 있어도 굴복은 없다. 그것은 죽음조차 딛고 일어나는 끈질김을 갖고 있거늘! 그녀에게 있어서 혈연은 생명의 깊은 뿌리를 알려주고 생명의 영원한 등대가 된다. 그녀에게 있어서 현대성은 문제가 있으되 우리가 그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반성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윤형의 근작시 가운데 〈락화의 흔적〉, 〈홍시〉, 〈원일초〉, 〈바람의 언덕에서〉 같은 생명 관련 시는 현대 상징시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지 및 이미저리를 통하여 전반 시의 상징적인 경지를 잘 엮어내고 있다. 세부적으로 볼 때 〈바람의 언덕에서〉의 ‘꽃’, ‘령토’, ‘바다’, ‘섬’이미지의 상징적 의미 및 ‘비여있는 바람’, ‘시린 령토’, ‘허기진 생각’과 같은 역설적 표현이 돋보인다.   그리고 혈연, 현대성 관련 시는 사실주의적으로 흐르되 상징적 이미지 및 이미저리로 잘 엮어져 시의 의미적 내연의 함축성을 확보하고 감칠맛을 돋구며 현대시의 격을 잘 갖추고 있다.   그녀의 근작시에는 일부 문제점도 노정하고 있다. 례컨대 〈홍시〉나 〈바람의 언덕에서〉의 일부 이미지 및 이미저리는 좀 자연스럽지 못하고 생경하며 난삽하다. 그리고 〈원일초〉의 이미지 및 이미저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론리적으로 좀 긴밀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근작시는 그녀의 끊임없는 시탐구에서의 새로운 한페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녀의 시탐구는 멈추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시의 녀신과 함께 달리고 있거늘!  《도라지》2019년 6호 br /> ▣ 원숙의 우아함과 지는 미학 --김선희의 꽃과 바람과 빛과 그리고 시--         박  은  희(일본)       “돌의 아리아(외7수)”는 김선희시인이 대한민국방문길에 들고 돌아온 선물인듯 하다. 물론 독자들을 위한 귀한 선물이기도 하겠지만, ‘나를 찾아헤매는 려정’(“바람의 언덕”)이였으니 시인 자신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기도 한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꽃’과 ‘바람’, 그리고 ‘빛’을 모티프로 서로 내적 련관성이 있는 8수의 시를 하나의 정체적인 작품, ‘나를 찾기’ 려정(旅情)시라고도 볼 수 있다.        회화성(繪畵性)과 서정성이 강한 뚜렷한 특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려정(旅程)에서 만나는 절경은 시인의 시정(詩情)을 불러일으키고 시인은 감정적색채가 짙은 언어와 적절한 수사법으로 산수풍경을 리얼하게 재현시키면서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 격정을 토로한다. 김선희시인의 작품에서 주관과 개관은 서로 분리되거나 대립된 존재인 것이 아니라 객관속에서 주관을 찾고 주관으로 개관을 확인하는, 서로 밀접히 련결된 존재이다.       아니무스의 심상—초대바위   첫 시 “돌의 아리아”는 외7수의 내용을 통괄(統括)하고 있다. 19행의 제1련과 5행의 제2련으로 구성되였지만 제1련과 제2련은 물리적인 대칭을 이루고 있다. 제1련의 노을속에 서있는 낮은 초대바위와, 그와 좀 떨어진 곳에 있을, 제2련의 초화언덕의 시들어 가는 꽃, 그리고 뻐꾸기는 모두 시인 자신이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하고 시인은 누군가에게 호소하는듯한 높은 격조와, ‘슬픈 구멍’, ‘피빛 노을’등 간잡적표현이나 ‘아파도’, ‘슬퍼도’등 직접적표현으로 된 짙은 감정적색채를 띤 언어로 풍경을 그리고 력사를 읊고 있다. 그리고 ‘바람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고개를 쑤욱 쳐들고 싶지만/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인과률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 채/만추 끝자락에 초대바위로/멈춰섰습니다’하고 의인화하여 초대바위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본다. 소설가든지 수필가든지 시인이든지를 막론하고, 그들이 의식적인 표현을 했든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표현을 했든지간에 독자는 그 표현에서 표현자의 심층심리를 엿볼 수 있다.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에서 돌이나 바위, 철같이 단단하고 강한 것이나 탑이나 기둥같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흔히 남성의 기호나 상징으로, 꽃처럼 여리고 아름다운 것은 녀성의 기호나 상징으로 표현되여 왔다. 심층심리학에서도 각기 남성성과 녀성성으로 풀이하고 있다. ‘초대바위’와 ‘꽃’을 구성상 대칭적으로 배치한 것이 김선희시인의 의식적인 것이였는지 무의식적인 것이였는지를 막론하고 여기서 심층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초대바위’는 시인의 아니무스(animus)의 심상(心像)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녀성의 내계(內界)에 존재하는 남성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성상이란 꼭 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공이나 신분, 권력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들어가고 있는 ‘꽃’은 즉 인생의 꽃시절을 끝마치고 있는 녀성상이다. 녀성상은 남성상과는 상대적인 것을 의미한다.       50후나 60후의 녀성이라면 남존녀비사상을 가진 부모의 밑에서 자랐거나 혹은 중남경녀의 부조리한 취급을 당한적이 있을 것이다. 녀자로 태여났기에 이루지 못했던 일, 얻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되기도 했다. 하여 ‘몸속 웅어리는/슬픈 구멍으로 뚫’렸다. 그러나 시인은 ‘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인과률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 채’ 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항거할 수 없는 운명임을 받아들인다.        다시 정리해 말하면 시인인 ‘나’(‘가난한 뻐꾸기’)가, 녀자로서의 인생의 꽃시절을 보내고 있는 ‘나’(시들어가는 꽃)가, 지금 이 시각 이 곳에서 지난 반생을 인생의 세파속에서 씻기고 구멍 뚫리여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육신’이 된 ‘나’(초대바람)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리고(울고) 있다.   원숙의 우아함과 지는 미학       “돌의 아리아”에서 시인은 ‘피빛 노을은 온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꽃이 시들어가는 초화언덕에’하고 해가 서서히 져가거나 이미 진 뒤의 붉은 노을과, 져가는 꽃을 읊었다. 자연의 모든 사물은 지기시작하기 직전에 가장 원만하고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기에 지는 순간이 장렬하고 강렬하다. 이 순간이 지나면 두번 다시 볼 수 없기에 져가는 모습이 귀중하고 아름답운 것이며, 이를 지켜보는 마음이 애석하고 슬프고 아픈 것이다. 이것이 원숙의 우아함이고 지는 미학이다.        첫 시에 이어 시인은 두번째 시 “석류”에서 원숙한나머지 미풍이 불기만 해도, 아니면 풀벌레 울음소리가 나기만 해도 당장 떨어질 것만 같은 석류를 그리고 있다. 시 “석류”의 제1련은 유리창안이고 제2련은 유리창밖이다. 이 유리창은 시적주인공의 감정 즉 주관이다. 유리창너머로 석류의 원숙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떨어지게 될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시적주인공의 마음은 아프다. 이런 감정속에 자신을 가두어 두면 ‘눈물 날 것만 같’다. 하여 마음의 유리창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거기에는 우주가 있고 해살이 있다. 시적주인공은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       시인은 세번째 시 “황칠나무”에서 ‘원숙’과 ‘짐’(또는 死)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남을 보여준다. 마지막 련의 ‘꽃은 꽃으로만 피지 않고/나무는 바람에 길을 묻지 않습니다’는 명언이다. 꽃시절이 끝났다고 하여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정하는 것이지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부(富)의 상징인 황칠나무는 껍질에 상처를 주면 노란색 진액을 흘러낸다고 하는데 그 노란 수액은 도료로 쓰이고 뿌리, 가지, 껍질, 잎,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니 꽃이 진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고 열매가 떨어진다고 비통해할 일이 아니다. 황칠나무가 사시절 귀중하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어느 시절이 또한 귀중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천혜의 숨결이 닿는 곳에’ 뿌리를 내리는 성스러운 나무를 의인화하여 노래하고 있다.       다음, ‘나무는 바람3에 길을 묻지 않습니다’를 이어 시인은 시 “바람의 언덕”을 쓴다. 사실 ‘바람’은 첫시의 ‘바람1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고개를 쑤욱 쳐들고 싶지만’(“돌의 아리아”)에서 ‘몇 오리 바람2이 찾아와/무어라 귀속말 전해주듯’(“석류”)로 이어져 내려왔다. 김선희시인의 작품을 읽음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로 된다. 상술한바와 같이 ‘바람3’은 ‘외부적 영향’을 의미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바람1’은 사회적이나 가정적, 또는 정치적으로 인한 인생세파 혹은 타자 등, 즉 ‘외부적 압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람2’는 자연으로서의 바람, 또는 ‘외부적 압력’이다. “바람의 언덕”의 ‘바람4’은 위의 모든 의미를 포함함과 동시에 ‘내부적 갈등’의 의미가 첨부된다. 제1련의 ‘바람은 다가오는 봄을 막지 못하지/밑창마저 뜯긴 해살이/마른 풀잎을 꺾는 걸 본 적 있는가’는 위에서 렬거한 의미로 읽을수 있다. 제2련의 ‘뒤틀려버린 뿌리까지 가는 동안/심장판막 넘나들다/안팎으로 찢어지고 부서지고’는 ‘외적인 압력(또는 영향)’이 ‘내부적 갈등’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런 갈등에 의하여 생겨난 수많은 ‘나’들이 초봄에 파란 새잎이 돋기전인 겨울에 피는 산수유꽃으로 피고 있다.       무언가 얻으려는 확답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시인은 잠시 “산다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산다는 건/꽃을 벙을게 하려고/흩어진 수액의 줄기를 모으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 ‘꽃’은 성공이나 명예를 상징하는 것일가? 제3련의 ‘신열을 앓다/생의 몇바퀴 돌고서야/운무를 헤집고 만개하는 꽃불의 넉두리’를 읽고나면 비로서 ‘운무’(無知, 迷)의 상대적 의미로서의 ‘앎(知, 悟)’을 의미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끝으로시인은 ‘어떤 경우에도/길 밖의 길 앞에 헤매지 마라’고 호소한다. 길은 한자로 ‘道’로 쓴다. 특정된 어느 한 종교의 리치라기보다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로 해석하고 따라서 ‘꽃’은 불교에서 쓰이는 련꽃의 상징적 의미를 따온 시적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앎’에 대한 각성은 “바람의 언덕”의 ‘빈 가슴으로 울던 억새 앞에/무심코 쳐다 본 하늘/그 중후의 빛갈을 느끼게 된 건/불혹의 지나서 한참 후였지’에서 ‘불혹’의 상대적 의미로 쓰인 하늘의 ‘빛갈’에서부터 전개되여 왔다. 아직은 그저 ‘느끼게 된’ 단계이다. 사실 전 시편에 관통되여 있는 이 ‘빛’이 또한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이다. “겨울 해변에서”의 해변은 그야말로 빛의 세계이다. ‘여울 치다 얼어붙은 저 물빛’, ‘극과 극으로 만난 령혼의 빛’, ‘물을 강타하는/저 역겹의 해살’, ‘세상에서 가장 맑은 물빛’. 이 ‘빛’들이 즉 ‘앎’이다. 이 ‘앎’으로 하여 모든 슬픔을 물아낼 수 있고, 모든 풍문들의 매듭을 풀 수 있고, 모든 것을 넉넉히 받아들이고 포옹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토록 찾아헤맸던 ‘나’는 어디로 가고 ‘앎’이 남았는가? ‘나’는 어디에도 없고 또 어디에나 있다. 다만 ‘없다’ 혹은 ‘있다’고 깨닫는 ‘앎’에 의하여 존재한다.        시 “겨을 철쭉”은 첫시 “돌의 아리아”에 대응되는 작품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헌화가”에는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동행하던 절세미인 수로부인이 벼랑끝에 피여난 꽃에 반하였는데 누구도 꺽어다 줄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에 지나가던 한 로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꺾어와 노래를 부르며 바쳤다는 에피소드가 적혀있다. 그 꽃이 철쭉이고 그로부터 철쭉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락조의 후광속에 한겨울의 맹추위에 몸부림치는 철쭉은 피빛 노을속에 세찬 바람에 구멍 뚫린 초대바위와 영상(映像)적으로 조응되고 또한 아니무스의 심상에 대응되는 시적형상이다. ‘다시 누군가에게 돌아갈 때는/꽃으로 남지 않으리!’, 어디까지나 시인 개인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이 또한 명언이다. 한 녀성으로서 꽃시절에 대한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이 인생의 한 계절을 떠나보내고 홀가분히 다음 한 계절을 맞이하려는 결단이다.        시인 김선희의 ‘나를 찾아헤매는 려정’은 인생의 환절기에 아픔과 슬픔에 ‘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앎’으로 ‘나’를 확인하는 려정이였다. 이와 같은 인생과 삶에 대한 자세가 바로 인간 김선희의 ‘원숙의 우아함’이고 ‘지는 미학’이다.   그리고 시(詩)    “돌의 아리아”에서 시작하여 “겨울 철쭉”으로 끝나도 구조상 내용상 완벽한데 시인은 위 7수의 서정시와는 전혀 다른 서사시 “오늘의 담시”를 추가한다. 담시(譚詩)는 물론 서사시에 속하겠지만 유럽의 발라드의 영향을 받아 정착된 전통적 서사시와는 달리 더욱 자유롭고 짧은 것이 특징이다. “오늘의 담시”는 텍스트(정확히는 위의 서정시)밖의 시인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우선 텍스트밖의 시인의 일상언어는 ‘내 핸드폰 안 챙겼슴다!’와 같이 연변방언이다. 서정시의 엄밀한 계산에 의하여 선택된 시어와는 다르다. 다음, 생사를 구분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담시의 시적화자 ‘내’는 무의식지간에 시를 쓰기 위한 재료나 초고가 들어있을 일기노트와 필기장들, 그리고 노트북보다는 먼저 려권과 돈지갑을 들고 도망친다. ‘나’를 찾는 려정에서 헤매이고 있는 서정시의 시적주인공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담시의 사실과 서정시의 진실과의 차이이다. 거듭 되풀이되는 대사는 마자막끝에  ‘—과연 뭐다 그리 중한지?!’로 매듭되면서 사고의 여지와 여운을 남긴다.    김선희시인이 담시를 부가하여 담시의 사실과 서정시의 진실과의 차이를 보여주려고 한 것은 서정시의 구조와 내용에 대한 보다 깊은 리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였는가 생각된다. “돌의 아리아”를 비롯한 7수의 서정시의 구조는 초령역적인 심적(心的)구조이다. 자연령역과 인류령역의 사이, 의식령역과 무의식령역 사이, 내적령역과 외적령역의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마음의 구조이다. 대문에 상징성이 강하다. 한 사물에 부여된 상징적 의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의미로 중첩된 것이다. 될수록 여러가지 가능한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여 읽으면 시적세계가 보다 넓어지게 된다.    김선희시인의 ‘나를 찾기’ 려정시를 읽고나면 의사(擬似)체험을 했다기보다는 시적주인공의 마음과 마음을 겹쳐서 실제에 가까운 체험을 한듯한 느낌이 든다. ‘나’가 이 순간 무슨 감정인지 인츰 깨닫는 ‘앎’에 의하여 ‘나’를 잃지 않는 것은 삶의 지혜이다   연변문학 2020년 9월호
1    [시] 얼굴 (외 7수) ♦허옥진 댓글:  조회:207  추천:0  2021-05-24
►얼굴   허옥진   시작도 끝도 없이 생겨나는 즙의 맛으로 우리는 맛의 빙점에 와있다   착즙기의 즙은 흘러넘치고 나는 당신의 빈방의 열쇠를 갖고 있다   당신은 끝없이 흘러내리고 이젠 나는 각종 맛을 인내할 수 있는  강아지의 여유로운 혀로 당신을 맘대로 핥아낼 수가 있다.   방의 축음기는 돌아가고   이 슬리퍼는 참으로 오래된 것인데   나는 슬리퍼를 벗어내치고 물이 떨어지는 수도꼭지를 닫는다   아,  멈출 수가 없어요 전 겨울이 싫어요 절 멈추게 한 지혜는 저  창밖에서   탕후루糖葫芦 파는 늙은이의 호주머니에 있어요   나는 장농 안에서 그의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본다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어요 저의 빛의 부스레기들을 저 새들이 쪼아간 지 오래돼요 아, 병치된 언저리에 피여나는 해바라기, 해바라기 명도明度에 잘린 해바라기 속 해바라기   여전히 축음기는 돌아가고 나는 담배를 피워문다   절 태우지 말아주세요 저의 령혼을 흡입하면 당신은 나의 령혼 속에 살게 될 거예요   빈방에서 당신의 냄새로 가득한 빈 침대에서    나는 길게 누워 잠재울 수 없는  당신을 손가락으로 다독이며 당신의 카텐을 내리우고 다시 일어나서  랭수 한컵 들이켜고....   2019. 12. 4     ►해바라기   허옥진   나를 따르는 그림자가 있지 자주 이런 꿈을 꾸게 돼 이건 요람이야 외마디 부르짖고 한층 기여 오르고 아니 이 분지는 넘 고요하고  스스로 분출될 우려를 갖고 있기도 해   꽉 껴안은 이 팔은 넝쿨같기도 하고 그 창턱을 기억해? 스스로 기어 오르다  꽃이 피고 지었던 질긴 틈  말라간 사이로 이빨이 생겼던 게야 지칠 줄 모르고 까고까고 까고   이 분수는 분출을 멈추지 않아 텅 비였던 광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때  이건 피난이야 비비고 들어선 건 너의 앞니였지   미소한 전률은 송수신되지 못한 수집된 기록일 뿐이야   오래 동안 광장은 넓고 외다리로 길어져 목 떨구고  하루종일 침묵을 보이고 고드름이  길게 발 아래로 내려가  길고 긴 엿의 맛을 내지   책 속의 이야기는 우리한테 혼란을 가져와 가방 속에 한줌 넣고 가 까고 까고 까고 공연히 방향판 속에 헛돌게 해   난 이 화판우의 그림을 찢고  다시 그려야 해   까맣게 타들어간  어두운 한줄기 둥 뜬 표정   2020. 3. 17     ►신발   허옥진   신발을 바꿔 신고 사시斜视의 방향으로 가 보았습니다 어긋났던 발걸음들이 기러기가 되여 한일자로 날고 있었습니다 벌어졌던 입을 모으는 순간이였습니다   내 안으로 후두둑 새떼들이 지퍼처럼 날아들며 우짖고 있었습니다   저리도 긴 세기의 줄을 흔들 수 있었을가 허나 줄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고여서 흐르는 먼 길의 진물들은  온몸을 화끈화끈 지지고 있었습니다 뼈의 락인이 된 아집들은 단단한 거였습니다   골수에 닿아 전파된  배와 노의 옆에는 노란 여우의 노린내가 십킬로메터를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코와 신발이 맞닿는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신, 그래도 그런 롱담이 좋은 거였습니다 슬그머니 밑바닥부터 꽉 껴안는 그런 느낌이    반쪽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난 반쪽이 됐습니다 더 높아질 수 없다면 땅이 높아지길 바랬습니다   작은 것이 좋다는 건 페허가 된 육중한 몸뚱이에서 처음 느꼈습니다   키의 축소판이 된 발자욱은 평생을 따라왔습니다 발가락은 여섯개의 혐의를 버리고 신발 안에서 꽁꽁 고부린 채 옹송그린 발톱의 넓다란 기슭을 허비고 있었습니다   얘야 더 판다면 쥐굴이란다 그럼  대신 새줄을 내려주세요   수많은 발가락들의 피아노 소리가 신발 안에서 울려나왔습니다 발가락들 발레가 시작되는 오후였습니다   2020. 1. 24     ►빨래    허옥진   우리들의 교는 씻겨지는 것이지요 수많은 옷들이 쌓여지고 있어요 보디가드 같은  단추들을 벗어난 일상들은 헐렁해져 있습니다 버티던 관절들은 사라지고 경직된 울타리들을 벗어난  하염없이 연연한 그리움 같습니다   우리가 씻길 수 있는 것은 단추와 같은 당신과 단추구멍 같은 내가 서로를 놓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겨울의 잠은 깊습니다   때 먼지 속에 사라져간 아이가 있어요 꾀죄죄한 그 아이는 먼지처럼 작아졌지요 공기 속에 존재하고 있는 그 아이는  유령 같은 존재였습니다 익힌 발음 하나 구명의처럼 떠가고 있어요 비누물이 구름처럼 내 주위를 감싸죠.   오늘도 비눗물의 세례로 아침을 시작하지요 한알 두알 사탕처럼 모아둔 것들 녹고 있어요 발밑에도 흰 구름이 떠 있군요 우리는 거품처럼 사라지는 건가요   정오의 빛이  마술사의 금박 지팡이가 될 때까지 솟구치는 분수는 정수리 뒤에서 날개 가진 천사로 착각하게 만들죠   먹먹하게 그리움에 말리워 들어가면 또 한층 색 바래여 나와서는  우리는 건조증으로   가려움에 불타다가 또다시 씻겨지는 겁니다   말쑥한 세상에서 우리의 외로움은 때묻지않은 것이였습니다   2019. 10. 24     ►울타리   허옥진   륵골을 들어올려 우리는 가출하는 당신을  기러기, 해당화, 민들레, 맨드라미, 개똥벌레, 참나리로 한데 묶어 보았습니다   당신은 흔들리는 풍경입니다   흐르려는 당신을 우리는 고요히 품어줘야 합니다   응고된 고집은  반맹증의 의혹을 갖게 할 테지만 다시 겹쓰기를 한다 해도 우리는 고집할 것입니다   몇번 흔들렸지만 박힌 교훈으로 더 든든해진 우리는 어깨 결은 사이좋은 자매입니다   이음새에 피는 벚꽃은 당신의 필사본에 늘어나지 않는 저금통장에 당신이 구겨서 던진 에이포용지에 송이송이 무럭무럭 핍니다   늘 순간에 멈춰서서 버텨내는 지정학적 교훈은 거세당한 척박한 땅에서 기름진 꿈입니다   우리는 개연성 근원의 모서리에서 탄생한 것 같은 자아 환각에 빠졌나 봅니다   한번 쯤 당신을 껴안고 왈쯔라도 신나게 춘다면 와인과도 같은 이 밤은  우리의 등을 너무나 어둡게 지지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늘 한자리에 멈춰있는데 당신이든 나든 몰락의 순간에  서로를 버텨낼 수 있는 끈끈함입니다     ►모래   이 세상을 가장 깊이 알게 된 후로 우리 가슴 한켠에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모래바람이 한껏 불고 난 후로 움켜쥔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한줌의 모래 만큼이나 우리는 서로가 모래임을 쑥스럽게 생각했다 흙에 묻힌 얼굴을 씻고 볼 일이다 기대려 하던 바보스러움과 서로가 상대방에게 스며들 수 없는 존재란 걸 알게 된 후로 우리는 서걱이는 몸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갈증에 타는 목으로 사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였다 하나의 군체로 모임이 필요했을 뿐 더 이상 풀을 재래울 수 있는 흙인 척 꾸미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우리는 더는 씻을 필요 없는 얼굴이.되였다. 탁자에서 굴러내리는 콩알 만큼 불어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확인한 후로  불어서 터져죽을 사랑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누군가의 젖은 바지가랭이에 묻어가는 우리일진 모르지만  말라서 털리우면 우리는 또  완전한 개체임을  수시로 깨쳐야만 했다 불도를 얻으러갔던 약속이란 단어마저  지우기로 했다. 해변가의 모래성답게 없는 것을 굳이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자尺안에 들어갈 만큼 큰 존재가 아니므로, 모래일 뿐이므로 한없이 바다가 그리웠다.   해빛 속에 반짝이고  물속에 부드러워지는  우리는 우리 대로의 고요함을 깨치기 위한 것일 뿐 황사마저도 바다로 가기 위한 몸부림인 것을 알았다 바다를 잉태하기 위한 련어의 억센 거스르기임을 알았다  모래 만큼이나 개인주의자의 껄끄러움을 감수하는 것이 종내는 맑아지는 것임을 알았다     ►꿈에 대하여                                     그것은 불타버린 여름의 내장 주체못 할 가을비의 설사 동면의 깊은 곬으로 흘러 나오는 빛의 여울 푸르름으로 늘어 가는 흙의 사설 지평의 혼솔기를 마선질 하는 분침의 재봉틀 흑색의 칠판위에 하얗게 움트는 아지랑이들 비닐안의 끝없는 속삭임으로 눈 뜨는 부풀림 신용을 어긴 신용 불랑자의 낙언 벼락을 향해 솟구치는 피뢰침 백만광년의 집착으로 시공을 뚫는 별의 송곳 수거함에 분리되는 계절의 배설물들로 알찬 열매들 그것은 초원, 뭉게구름 노트북, 일기장..... 무수한 변신을 꿈꾸는 너와 나  그런 우리들.. .  한곳에 모여 함께 광장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하네 함께 노래하네 합창의 우렁참은 극단의 기둥을 타고 높은 지붕을 떠이고 불멸의 흐름을 예언하지 1234567 도레미파쏠라시 솜사탕처럼 늘어져야 지 풀무가 돌아가는 한 우리의  부피 뜯어간다 그래도 우리는 달디단 맛          2018. 7. 23 9시     ►진눈까비의 복허수에 대하여    너에게로 날아든다 새나 나비처럼 근대성 가까이  어둡게 너한테 침몰 되는 중 나는 나라고 말 할 수 없어 사라지기 위해 네가 나를 위한 생리대는  일년에 두번쯤은 족 해   복식의 방안으로  복허수复虚数의 실수는 나의 이중성을 떠나는 첫번째 계절이 되였다   자기 카드에 인출된 수량만큼 형태소形态素를 나타냈을 뿐 너의 류배지에서  채 해동되지 못한 표절된 허두가 나의 첫 음성으로  너에게로 반환되여 사라지는 중   설맹雪盲으로 지양 되지 못한 여백에 공명으로 슴슴해 진 언어의 혈액형들 더는 낭설로 너의 밑바닥까지 적시진 않아   잠언으로 환원되지 못한 계절의 쪼각들 환절의 어설픈 주성走性으로  너에 향한 회귀성은  겨울을 견딜 수 있는  푸르른 땅에 대한 그리움으로 될 수 있었다 [허옥진 략력]   화룡시 출생 연변작가협회 리사   수상경력: 제15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2017년 연변문학 문학상 수상 중국 조선족 청년작가 수필 우수상 두만강 여울소리 시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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