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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재미나는 고비뜯기 댓글:  조회:240  추천:0  2022-03-26
재미나는 고비뜯기 □ 주덕진 살랑살랑 마술쟁이 부채 같은 봄바람이 한번 불자 굳잠 자던 겨울나무 기지개 켜며 깨여나고 두번 불자 적막하고 쓸쓸하던 강산에 신록이 피여나 봄기운이 완연하다. 물소리 졸졸졸, 우거진 버들방천에서는 꾀꼴새 새봄 노래에 성수 나고 양지바른 언덕 개활지엔 새뽀얗게 털을 뒤집어쓴 탐스러운 쇠고비가 누군가에게 어서 오라 손저어 부른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쇠고비 황금채집철이 닥쳐온 것이다. 춘경파종 다그쳐 끝내고 고비채집에 떨쳐나선 마적달촌 마을은 이른새벽부터 들끓기 시작한다. ‘란시에 앉은뱅이 없다.’고 그야말로 온 마을이 떨쳐나선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쇠고비값이 또 올라 1킬로그람당 24원, 웬간하면 한 사람이 하루에 40~50원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나와 안해도 뒤질세라 자전거를 타고 복새판에 끼여들었다. 산길에 들어서니 얼핏 보아도 200여대는 실히 될 듯싶은 자전거대오가 길을  메우며 흐르는 것이 장관이라 사람들 시선을 즐겁게 한다. 실로 이 몇년 사이 농민들의 생활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생산적극성 자극으로 농사는 농사 대로 짓고 개인 부업도 쏠쏠하니 말이다. 시대가 좋고 정책이  좋으니 천지개벽의 위력, 놀라운 변화가 이 산간마을에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시간 좋이 달려서야 작은 넘마우골 어구에 이른 우리 부부는 앞치마를 두르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신록이 짙어가는 관목숲에 들어서니 싱그러운 풀내음이 코를 간지른다. 산 중턱에 이르니 가둑나무가 드문드문 서있는 개활지가 나타났다. “아니, 저 고비 좀 봐요!” 어느새 고비를 발견한 안해가 소리쳤다. 그리 넓지 않은 개활지에 애어린 고비가 듬성듬성 돋아있어 꺾기가 한창이였다. “당신은 왜 그리 굼뜨세요?” 쇤 부분을 가늠하며 꺾는 내 솜씨가 서툴어보였던지 지켜보던 안해가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 대로 리유가 있다. 쇤 부분이 길면 산에서 짐이 되고 가공할 때도 자르느라 손길이 더 가야 하니까. “먼저 꺾고 봐야지 그렇다고 주무르고만 있겠나요?” 안해는 핀잔하며 잽싸게 손을 놀렸다. 곁눈질로 안해가 꺾은 것을 보니 보자기에 무드기 쌓여있었다. 나처럼 꺾어선 정말 하루에 얼마 꺾을 것 같지 못했다. 제딴엔 손을 부지런히 놀리느라 애썼지만 숙련되지 않은 손놀림은 굼뜨기만 했다. 해살이 쭉 펴지자 산속은 바람 한점 없는 것이 시루 속처럼 찌는 듯 무더웠다. 그러나 시원한 그늘만 찾을 수 없는 상황인 우리는 땀투성이 되고 목에서 겨불내 났지만 산등성이를 넘고 골짜기를 누비며 고비를 찾아 이악스레 꺾었다. 우리 부부가 절반 짐을 채우고 보니 정오가 되였다. 우리는 점심 먹으러 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내려갔다. 내가 시원한 물에 세수를 하고 자리를 정하고 앉으니 안해가 어느새 정갈하게 씻은 취잎을 앞에 놓는다. “이건 어느새 뜯었소?” 나는 반색하며 물었다. “당신이 즐기기에 보이는 대로 뜯었어요.” “허, 덕분에 햇취쌈을 먹게 됐구만!” 안해의 배려에 나는 알싸하고 얼벌한 햇취쌈으로 점심을 만부하 충전할 수 있었다. “당신은 수고비를 마구 꺾었구만요.” 식사를 끝내고 나의 나물짐을 뒤적여보던 안해가 얼굴에 그늘을 지으며 말했다. “수고비를 꺾으면 어떻다오?”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다년간의 쇠고비 캐기 경험을 갖고 있는 안해가 고비에선 나보다 선생이였기 때문이다. “수고비는 적은데, 많이 꺾어버리면 고비의 번식에 영향이 있대요.” 안해는 아는 대로 말해주었다. “그러면 보호해야 되겠구만.” 수고비는 머리가 크고 실팍했다. 안해가 넘겨주는 수고비를 받아쥐고 살펴보노라니 나는 산을 아끼는 산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이 한가슴 뜨겁게 안겨왔다. 허리쉼을 하고 나서 방향을 바꾸어 동쪽으로 이동하니 넓다란 개활지가 나타났다. 문득 안해가 소리쳤다. “아이, 이 돈을!” 돈이라는 소리에 내가 반신반의하며 달려갔다. “돈? 돈이 어느 게요?” 내가 천진한 애처럼 물었다. “보세요. 여기 한벌 깔린 것이 돈이 아니고 무엇이예요?” 안해가 손을 들어 빙 둘러 가리켜보이며 말했다. “어?! 그래, 그렇지!” 안해의 손길을 따라 바라보던 내가 그제야 영문을 알고 “허허” 하고 웃자 안해도 “호호” 하고 따라 웃었다. 우리의 웃음소리에 산도 메아리쳐 화답했다. 넓다란 개활지에 털에 휩싸여 아기손 같은, 고개를 다소곳하게 숙인 고비가 융단처럼 한벌 쭉- 깔렸는데 노다지판이 따로 없었다. 고비가 탐스러우니 일손도 성수가 났다. 안해와 나는 승벽내기라도 하듯 부지런히 고비를 꺾었다. “여보세요, 여기 고슴도치가 있어요!” 나물을 캐다말고 안해가 불시로 소리쳐 부른다. “고슴도치라니?” 고슴도치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인 나는 안해한테로 달려갔다. 안해가 가리키는 손길을 따라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둬발작 앞에 온몸에 가시를 뒤집어쓴 고슴도치가 엎디여있었다. 내가 나무막대기를 찾아들고 고슴도치를 툭 치자 충격을 받은 고슴도치는 용수철처럼 벌떡 튕기며 공처럼 동그랗게 되였다. 좀 지나니 고슴도치가 또 몸을 느슨히 폈다. 내가 이번에 또 나무가지로 툭 건드리자 그놈은 에쿠나 하며 몸을 제꺽 움츠렸다. “호호호…” “하하하…” 고슴도치의 거동을 지켜보던 안해와 나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이 놈은 자기보호가 다른 동물들처럼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츠리는 것이라오. 그러면 아무리 사나운 범도 범접을 못하지.” 내가 어느 책에서 본, 고슴도치의 약하면서도 강한 자기보호술에 대해 알려줬다. “내가 보기에 이놈이 배 부른 걸 보면 암컷 같단 말이요. 새끼 딸린 에미일 수 있지. 지금쯤 새끼들이 에미를 얼마나 애타게 찾겠소. 남편이 되는 수컷도 얼마나 고독해하겠소? 우리 인젠 이 고슴도치를 놓아주고 자리를 뜨기오.” “고슴도치야 잘 있어, 우리 래년에 다시 만나자 빠이!” 우리 부부는 서로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해가 기우는지라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따라 내려가며 소고비를 찾았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옹기종기 울라초가 자리를 틀고 앉은 초지에서 굵직한 소고비밭을 만나 짐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오후 4시쯤 짐을 정돈한 우리 부부는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 무거워라!” 묵직한 고비짐에 눌리운 안해가 힘겨운 나머지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미안하오, 많이 뜯은 사람을 많이 지게 해서.” 자신의 무심함을 자책하며 나는 안해의 짐을 제꺽 바꿔메였다. “말리우면 10근이 나올가요?” 안해는 까만 눈을 슴벅이며 묻는다. “아마 그렇게 나겠지.” 나는 집에서 가공하던 때의 생각을 떠올리며 어림짐작으로 대답했다. “아이, 그러면 120원이나 되네요.” 속구구를 해보다가 애들처럼 환성을 지르는 안해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피여오른다. 항상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안해는 쇠고비를 팔아 돈을 쥐면 먼저 아이들 학비를 치르고 다음은 창작학습반에 다닐 때 입을 남편의 옷을 지을 생각에 마음이 벌써 흐뭇해지는 듯싶다.   산을 내려 자전거에 짐을 바꿔싣고 바람처럼 씽씽 달리는 우리 부부의 하루 피곤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마음은 흐뭇하기만 했다. 연변일보
92    댓글:  조회:233  추천:0  2022-03-22
산 □ 리향옥 시험장에 들어갔다. 긴장감에 머리가 터질 듯 아파나고 텅 빈 공백상태이다. 아무리 머리를 쥐여뜯어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머리속은 하얗게 비여갔다. 필을 든 손은 가늘게 떨려 시험지에 뭘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안달아난 심정은 뒤죽박죽이 되여버려 식은 땀이 쫙 흘렀다. 가위에 눌린 듯 숨이 막혀 화들짝 놀라 깨고 보니 희붐히 밝아오는 새벽이였다. 산재지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종종 시험을 보는 꿈을 꾸었다. 항상 답을 몰라 시험을 망치는 장면이였다. 새로운 일을 접하고 진척이 잘되지 않아 무한한 고민에 빠질 무렵 똑같은 꿈이 질리게 등장하군 했다. 눈을 뜨고 다행히 꿈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쪽잠이 들었다 다시 깨여나는 바람에 엄청 늦었다. 흐리멍텅한 상태로 부랴부랴 출근길에 올랐다. 멀리서 전철이 역에 들어오는 게 어렴풋이 보여 계단을 밟으며 힘껏 뛰였다. 이번 전철을 타지 못하면 지각할 것이 뻔했다. 숨이 턱까지 올라와 헐떡거리며 주체할 수 없이 세차게 뛰는 심장을 어루만졌다. 회사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화장실도 뛰여가야 할 정도로 바쁠 때면 8시에 시작한 업무가 오후 5시 퇴근 시간까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가 다반사이다. 일이 몰리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무작정 잔업을 이어야 하는 상황에 건강과 의지는 과로로 인해 야금야금 갉아먹혔고 몸살이 났다. 아픈 부위에 차거운 파스를 부치고 아물거리는 눈에 눈약을 떨구고 또다시 일에 매달려야 했다. 잔업으로 늦어진 차디찬 밤길은 한산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불안에 찬 상태로 미지의 분야의 지식을 흡수했다. 시스템이 리론과 맞물려 소화를 할 수 있는지 꼼꼼히 데스트 했다. 난도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높았지만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문제점을 정리해 담당과 상의하며 하나하나 풀어갔다. 성격이 괴벽하기로 유명한 본사 책임자와 몇달 동안 부딛치며 크고 작은 상처자국을 남겼다. 가시밭에서 정답이 없는 업무를 파악하며 새 길을 개척해나갔다. 불혹의 나이에 온정을 바라던 나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그사이에 가슴 밑바닥까지 빡빡 긁혀 볼품이 없는 자존심은 깊은 한숨만으로 역부족이였다. 익숙한 불빛이 멀지 않은 곳에서 얼핏 눈에 띄였다. 늦은 밤 고객 한명 없는 옷가게는 고독하게 영업했다. 나는 불빛에 홀리기라도 한듯 문을 떼고 들어섰다. 삼일째 련거퍼 눈이 내려 단화를 신은 발은 얼어들어 따뜻한 신발을 구매하고 싶었던 것도 한몫 했다. 가게 주인은 내 발에 맞는 사이즈의 까만 구두를 내밀었다. 구두는 따뜻했지만 볼이 좁아서 금세 발이 아파났다. 옷을 위주로 파는지라 신발은 별로 없었다. 가게 주인은 인츰 두 사이즈나 큰 신을 내밀며 신어보라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볼이 넓다 하더라도 두 사이즈는 너무 한 듯싶었으나 가게 주인의 친절에 못이기는 척 신어봤지만 역시 어울리지 않았다. 이어 가게 주인이 추천해준 옷 몇 벌도 입어봤다. 그냥 한벌 정도 사려고 했는데 가게주인은 외투에 바지, 속옷, 양말 등 추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티셔츠 두벌이 마음에 쏙 들어왔지만 그중 하나만 고르고 싶어 잠간 고민에 잠겼다. 가게 주인은 두벌 다 사라고 입이 다슬 때까지 얘기했다. 주춤하다가 한벌만 사가지고 실망에 잠긴 가게 주인을 뒤로 하고 나왔다. 차거운 공기가 페부로 깊숙히 들어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가게의 팽팽한 공기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너무 독촉하는 바람에 드바삐 뛰여나오고 말았다. 금년 겨울, 가게의 옛 주인은 아이를 출산하면서 가게를 접었고 직원으로 일하던 그녀가 인수인계 받았다. 그녀와 꽤 오래동안 알고 지냈고 원래는 매번 들릴 때마다 편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나누며 구매할 수 있어 즐거웠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게 주인이 되자 매출이라는 ‘산’ 앞에서 한벌이라도 더 팔려고 억지를 부리니 부담만 커갔다. 오래동안 면목을 알고 지냈는지라 거절하는데 힘만 들어갔고 원래는 편한 분위기가 무르익는 환경이였는데 지금은 팽팽한 공기로 숨막혔다. 십년 전, 그때도 겨울이였다. 몸과 마음이 얼어터져 진흙탕으로 얼룩진 길에서 갈팡질팡할 때였다. 본사에서 새 업무를 한달 만에 인수인계 받았다. 종류와 량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욱더 많았지만 배울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여러가지 업무를 단기간에 진척하는지라 나는 각 업무마다 일부분씩 배웠다. 담당은 한가지 업무를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배울 때 나는 매일마다 시간별로 각 업무를 습득하고 뒤죽박죽이 된 상태에서 귀국을 하였다. 엄청난 량과 인원부족으로 한동안 혼란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매일 밤 늦게 집에 도착했고 나는 스트레스 해소로 정신없이 간식을 흡입했다. 위는 불온정한 정서와 음식습관으로 혹사를 당하고 말았고 반년 만에 위장염에 걸려 병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찬란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보이지 않는 현실과의 괴리감에 나는 슬럼프에 빠져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였다. 반년 후, 인원을 보강하고 경험도 조금씩 쌓아가기 시작하며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죽을둥 살둥 모르고 일에 전념했고 미지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며 나의 색갈이 다분한 길을 개척했다. 첫시작이 절반이라 하지만 새로운 길에서 항상 시행착오를 범하게 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젊음의 충동에 힘껏 불타오르지만 순조롭게 진행될 리가 없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긍정을 받고 싶은 마음과 뭔가 이루기 위해 조급한 심정은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 같았다. 슬럼프에 빠질수록 랭정하게 분석하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과로로 인한 정신상태는 늘 흐릿했다. 그번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업무를 인수인계를 받을 때면 내가 원하는 그런 과정으로 조금씩 순리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랭정을 찾고 멀리 내다보며 방향을 잡아 팀원들의 힘을 합쳐 앞으로 나아갔다. 십여년 동안 그 바닥에서 점점 온정을 찾았지만 작년부터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여 본의 아니게 또다시 팽이처럼 뱅뱅 돌아치게 되였다. 진행할 방법을 저절로 찾아서 팀을 이끌어야 했고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아 무한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조금만 더 견지하면 나아질 거라는 희미한 희망 속에서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시간은 물처럼 조용히 흘러갔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일년 동안 테스트 기간을 걸쳐 드디어 출시를 하게 되였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준비했지만 아츠랗게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릴 정도로 분망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산 넘어 산인가 했더니 그래도 평지에 도착한 듯했다. 요즘은 칼퇴근을 할 수 있어 몸도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나는 퇴근길에 또 그 가게에 들렸다. 가게 주인은 책상에 다이어리를 펴고 뭔가 열심히 적고 있었고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어주었다. 신상이 많이 들어왔는데 저절로 찾아보라고 하였다. 나는 한바퀴 빙 돌면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봤다. 우리는 그냥 평소에 얘기하던 대로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나는 코트와 바지를 구매했다. 가게 주인은 양말을 선물로 챙겨주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였다. 그러고 보니 가게 주인이 새로 인수인계를 받았을 때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고객이 거의 없을 때였다. 그 시기에 때마침 내가 가게에 들렸고 가게 주인의 모든 정력은 매출에만 집중되였다. 나 역시 옷보다 위로가 필요했고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수요와 제공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리해의 불일치로 우리는 서로 불편했다. 서로 마음의 여유가 없이 편한 관계는 힘들다. 보아하니 요즘 가게 주인은 매출이라는 ‘산’을 넘은 것 같았다. 인생길에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큰 산이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매번마다 크고 작은 산을 넘고 나면 성취감으로 마음 가득 차지 않았던가?   눈길에서 힘겹게 걷더라도 귀맛 좋은 그 발자국소리를 회억하노라면 아마도 앞으로 용감히 전진할 수 있을듯싶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그날 밤의 이야기와 발밑에서 들리던 뽀드득뽀드득 소리는 마음 깊은 곳에 저장되여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들릴 것이다. 어둠이 드리워진 하얀 세계에서 나는 한보한보 어렵게 앞으로 나아갔었다.어쩌면 우리는 태여나서부터 자기만의 색갈이 다분한 발자국을 야무지게 찍으며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연변일보
91    윈터링 댓글:  조회:215  추천:0  2022-03-22
윈터링 □ 허연주 계단에서 들려오는 숨가쁜 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키가 작달막한 남자가 곧장 603호로 가더니 그녀의 집 문을 거칠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쿵… 쿵 ” 낡은 아빠트 6층에서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신경이 곧장 예민해졌다. 오랜만에 찾아 온 한파가 무릎 안쪽을 파고드는 동안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일가? 소음이 사라지고 남자가 붙이고 간 종이가 매서운 겨울바람에 펄럭이였다. 법정에 출두하지 않으면 집이 곧 경매로 넘어간다는 내용이였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열흘 전 즈음이였다. 경력도 단절된 그녀가 디자인 심사를 통과하고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자체가 아이러니했다. 문이 열리고 놀란 그녀가 우리 말로 “현석아”라고 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답을 피했다. 인사팀과 함께한 자리였기에 어설픈 인사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싫어서였다. 어린시절 기억으로 점철된 그녀에게 사회적 평가의 자대를 들이 댈 수 밖에 없는 자리였다. “혼인 란이 비여 있네요?” “리혼… 했습니다.” 겨울을 보내기엔 추워 보이는 신발이 여유롭지 않은 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작품은 훌륭하지만 재혼과 출산의 우려가 있다는 인사팀의 보고에 나는 입사 통지를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급하게 면접실을 나가는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 주었지만 그녀는 련락을 하지 않았다. 나라도 련락을 하기 싫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하고 싶은 말보다 해야 되는 말이 중요한, 중년이 되여버린 우리를 생각하던 그날 아침은 다 낡은 넥타이를 고르면서 참을 수없이 지독한 우울함이 찾아왔다. 오래 된 친구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고립된 계절의 혹독한 추위를 피하 듯 촘촘히 붙어있는 아빠트 입구로 들어서는 찰나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구급차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구급대원들이 스쳐 지나갔다. “리혼하고 혼자 산다는 그 처자 맞소?” “참하게 생겼더니 자살이라니!” 귀가의 소음들이 먼지처럼 하얗게 되여 사라졌다. 나는 더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6층을 향해 정신없이 뛰여 올라갔다. 그렇게 빨리 뛰여본 것은 생전 처음이였다. 제발 아니기를 바랬다. 둥그렇게 모인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나서야 새롭게 붙어있는 딱지가 보였다. 전기 료금을 물지 않을 경우 전기를 중단한다는 통지서였다. 내몰려진 현실의 끝에 위태롭게 서있던 그녀를 잡아주지 못하고 차거운 방바닥에서 삶을 마감하게 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냥 돌아가서는 안되는 것이였다. 부당한 리유로 입사가 보류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친구의 불행에 등을 돌리던 자신에 대한 원망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여 가슴을 란도질 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곤두박질 치듯 떨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퀭한 표정으로 란간에 걸쳐있는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너…” 습도 높은 한 겨울의 도심 속에서 환청처럼 들려오는 그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거기 아냐.” 그녀가 603호 앞에 쭈그리고 있던 나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추운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603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턴넬과 같은 긴 겨울을 나기까지 얼마나 심각할지 모르지만 잠시라도 따뜻하게 발 붙일 곳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전기료금 고지서를 떼여 지갑에 넣어두었다. 응급차가 떠난 길에 하얀 눈이 떨어졌다. 춥고 결핍된 계절의 끝에서 그녀에게 물었다. “살릴 수 있겠지?” “그럼.” 단호한 모습으로 눈 속을 한참이나 걸어가던 그녀가 웨쳤다. “매화다!” 얼어 붙을 것같은 한 겨울의 추위를 자양분 삼아 피여난 매화에게 시선을 뺏긴 그녀를 보다 흰 눈이 겹겹이 쌓인 나무가지를 툭 하고 건드렸다. 떨어지는 흰 눈 사이로 그녀의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입사 축하해.” 연변일보
90    공 (空) 댓글:  조회:379  추천:0  2022-03-11
공 (空) □ 주련화 “95호로 가득 채워주세요.” 차창을 내린 후 나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내뱉었다. 시원한 밤 바람이 머리 우로 흘러내린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주유소 직원이 다가오더니 익숙한 동작으로 주유총을 뽑아들었다. 눈길이 차체를 꼼꼼하게 훑고 다시 나한테 머문다. 가까이에서 본 그의 눈은 뻘겋게 충혈되여있었다. 웬지 밤샘을 하면서 핸드폰게임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감한 무사가 되여 큰 칼을 휘두르면서 밤새 괴물을 무찌르고 또 무찔렀을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황급하게 눈길을 거두어들였다. 피씩 입가로 웃음이 새여나왔다. 기름통이 절반쯤 찼을 무렵, 그의 눈길이 집요하리만치 또다시 나의 얼굴을 훑는다. 도심을 훨씬 벗어난 외곽, 이런 곳에서 고급 외제차를 본 적은 몇번 없을 테지. 그의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이 너무 궁금하다. 젊은 성공인사? 재벌2세? 또 아니면? 입귀가 슬며시 올라간다. 물론 나는 그가 좀전에 사채업자의 빚재촉 전화를 받았다는 걸 알길이 없다. 사채업자가 3일이라는 기한을 줬다는 건 더더욱 모른다. 10분 후, 나는 곧 뮤즈바 앞에 나타날 것이다. 이 도시에서 제일가는 미녀와 갑부들이 모인다는 그곳. 돈이 입장권이고 곧 신분증인 바로 그곳에서 최고의 미녀랑 와인 한잔 기울이고 댄스를 출 것이다. 사람들은 새 페이스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어디서 왔느냐고 묻지는 않을 것이다. 자고로 영웅은 출처를 묻지 않는다고 했다. 돈다발을 가슴 속으로 찔러주면 미녀는 마시멜로처럼 내 품안으로 녹아들겠지. “오늘 밤 함께 있고 싶어요.”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매는 상당히 고혹적이다. 가난한 게 죄냐고 히스테리적으로 울부짖던 스무살의 내가 보인다. 가난은 죄가 맞다고 또박또박 내뱉던 미희의 얼굴도 보인다. 미희는 나의 첫사랑이였고 마지막 사랑이였다. 물론 내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미희가 자기 아버지보다 세살 이상인 남자랑 같이 산다고 말해준건 한때 미희가 좋다고 따라다녔던 정수였다. 그 말을 하면서 정수는 손가락 세개를 들어보였다. 미친놈임에 틀림없었다. 사정없이 주먹을 날리고 나오면서 나는 미희의 불행을 빌었다. “땡큐, 이건 팁이에요.” 주유소 직원한테 100원짜리 한장을 찔러준 뒤 엑셀을 힘껏 밟았다. 독일의 최고 장인들이 만들었다는 엔진이 기분 좋은 중저음을 내뱉는다. 후시경으로 주유소 직원이 허둥지둥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의 대화내용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궁금할 리가 없다. 기껏해야 친구한테 비싼 외제차를 봤다고 자랑을 하거나 고급차량에 주유나 하는 자기 인생을 한탄하거나 둘중 하나일 것이다. 10초가 되지 않아 직원은 이내 작은 점이 되여 사라졌다. 그 시각, 직원은 핸드폰을 든 채로 차가 사라지는 방향을 향해 한참을 서있었다. “110이죠? 여기 고속도로 옆 주유소입니다. 뉴스에서 봤는데 외제차를 훔치고 도망간 사람을 제보하면 10만원 상금 준다고 하셨죠? 제가 이제 방금 그 사람을 봤습니다… 네? 정신이상 증세가 보이고 공격성도 지니고 있다고요? 아니요, 공격은 당하지 않았습니다… 네, 자주색 스포츠카에 회색 양복을 입었더군요. 네. 뉴스에서 나오는 그 사람이 맞습니다. 왼쪽 얼굴에 기미가 있었어요. 네? 이미 다른 사람이 제보했다구요?”   직원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머리 우에는 핸드폰 사용금지라고 쓴 빨간 패쪽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연변일보 
89    의뢰인 댓글:  조회:282  추천:0  2022-02-18
의뢰인 □현청화   생명공학이 고도로 발달한 2522년. S시 생명과학연구소에서는 한 특별한 의뢰인을 맞이했다. “그 일이 발생한 후 단 한순간도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어요.” 눈앞의 녀인은 곧 쓰러질 듯 가녀린 모습을 한 채 눈물로 호소했다. “다 제 탓이였어요. 제가 한눈만 팔지 않았더라면… 하루, 아니 단 한시간만 다시 제 딸을 볼 수 있게만 해주세요. 그 대가로 내 목숨을 송두리 채 내놓는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뉴스에서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그게 원칙을 어기는 일이라는 건 알아요. 그래도 세상 일에는 원칙보다는 례외라는 것도 있는 법이잖아요.” 권소장은 임비서에게 눈짓을 했다. 임비서는 얼굴을 막고 오열하는 녀인에게 커피를 타주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그는 담배 한가치를 꺼내들었다. 연기도 나지 않고 니꼬찐 함량이 제로인 전자식 담배지만, 그 맛은 완연하게 오리지널 담배 맛을 닮아있었다. 산업화가 발전할수록 물질문명이 특이점에 가까워졌고 과거 감성에 대한 사람들의 의존과 추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례를 들면 백년 전에 사라졌던 커피가 다시 테이블에 등장했고 200년 전에 사라졌던 전자담배가 다시 사람들의 손에 들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옛것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다만 물건에만 제한된 게 아니였다. “엄마를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사랑하는 그녀와 작별인사도 못했어요.”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그동안 무수한 의뢰인들이 찾아왔지만 그의 간단한 한마디에 망설이다가 돌아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회한은 회한 대로 남겨야 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였다. “그렇다면 뉴스에 발표한 의미는 뭐죠?” 임비서도 궁금했는지 그에게 물었다. “범죄 수사를 돕기 위한 발표야. 수사 협조기관으로서 의무를 한 거지. 세간에서는 흔히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들 하는데 이제 그 규례를 깨고 죽은 사람에게 말을 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려야 범죄가 줄어들 게 아니야.” 의학이 발전하고 시약이 업그레이드 되자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암 바이러스 같은 건 사라졌고 대신 범죄와 심리질병이 창궐했다. 최첨단 과학기술은 교통사고나 자연재해 같은 것만 예고해서 사고를 대처할 수 있을 뿐, 지금 눈앞에 있는 녀인의 딸처럼 우울증 판정을 받고 고층 건물에서 뛰여내려 유명을 달리한 사실은 개변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묻고 싶었어요.” 녀인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임비서가 커피 한잔을 더 가지고 들어왔고 그녀가 비운 커피잔을 내갔다. “성적이 내려가서 조금 꾸지람한 게 다예요. 아무리 과학적으로 모든 지식을 시스템에 입력하는 세월이긴 하지만 뇌를 전혀 쓰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어찌 그런 모진 선택을…”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습니다.” 권소장은 드디여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찾아온 의뢰인들은 다 어머님처럼 자기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였어요. 고인이 된 분을 굳이 소환하게 되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뉴스에서 보시다 싶이 우리는 고인을 소환하는 데 불변의 법칙 즉 생명공학의 륜리원칙을 따라야 하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녀인이 다시 눈물을 쏟으면서 소리쳤다. “그 애는 내가 자길 싫어하는 줄 안단 말이예요! 그게 아니라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거예요. 그 애가 상상한 그 이상으로!” 그는 담배 한모금을 깊숙히 빨았다. 비록 연기가 나지 않았지만 그 고유의 혼탁한 맛은 그의 판단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생명공학이 어떻게 발전을 하든 생명의 륜리와 사망의 존엄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이 시대의 과학자들에게도 하나의 과제로 남은 신성불가침의 령역이 될 것이다. 한편 임비서는 의뢰실 밖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경찰서죠? 녀고생 추락사고 용의자 제보입니다. 커피잔에 남은 조직세포의 DNA가 녀고생 손톱에 끼인 살갗의 DNA와 동일하다는 분석결과가 나왔습니다. 네? 다른 증거요?” 임비서는 의뢰실 쪽을 한번 쳐다본 후 덤덤히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을 소환하는 게 가능한지 떠보는 사람은 있었어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걸 감수하고 고인의 하루 시간과 맞바꾸는 의뢰인은…단언컨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연변일보  
88    새해, 립춘에 즈음하여 댓글:  조회:246  추천:0  2022-02-11
새해, 립춘에 즈음하여 □ 김춘식 올해는 음력설을 맞기 바쁘게 나흘 만에 립춘도 맞게 된다. 립춘은 봄을 알리는 절기다. 하지만 립춘은 여전히 겨울추위가 머물러있어서 아직도 봄이라 말하기는 이른 절기다. 아직도 눈이 내리고 춥다. 내가 살던 고향은 물론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한국에서도 립춘에 봄을 말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립춘추위 김장독 깬다.”는 속담은 이 무렵의 추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보리 연자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은 립춘이 지나도 추위는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립춘 무렵에 추위가 반드시 있다는 뜻으로 “립춘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속담이 생겼다고 하니 옛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말이다. “립춘 거꾸로 붙였나.”라는 속담도 있는데 정반대로 간 것을 말하는바 역시 립춘 뒤 날씨가 립춘 같지 않고 몹시 추운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봄은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소리없이 오고 있다. 저 덤불 속에도 봄은 오고 있을 것이고, 저 나무뿌리들도 열심히 물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령하의 동절기를 보내지만 흐르는 세월에 립춘의 절기가 이만큼 가까이 다가와있는 것이다. 비록 조물주의 창조질서에 의해 계절이 바뀌고 절기가 돌아가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 여러 형태로 많은 것들을 만들어내며 살아간다. 때로는 어디서나 복 받기를 원하여 알지 못하는 신(神)에게 복을 빌기도 한다. 이젠 오래전 하나의 옛 풍습이 되였지만 립춘이 되기 전에 중국사람이나 한국사람들은 이름하야 립춘축(立春祝) 혹은 립춘방(立春榜), 립춘서(立春书), 춘방(春榜), 춘련(春联)이라고 하는 것을 써서 대문이나 벽, 문짝에 부적같이 멋들어지게 써붙이군 한다. 한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축문은 “립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阳多庆)”이다. ‘립춘을 맞아 크게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하고 나라에는 많은 경사가 있기를 축원 함’을 나타낸 글귀다. ‘건양대길’에서 ‘건양’은 고종 즉위 33년부터 다음해 7월까지 쓰인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연호(1896-1897)다. ‘건양대경’은 그 당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다는 뜻의 국태민안(国泰民安)을 비손하는 뜻에서 집집이 써서 붙였다고 한다. 관리나 고관들의 큰 대문에는 “국태민안, 가급인족(国泰民安 家给人足)”이라는 춘련이 많다고 한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하며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많이 애용되는 것이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扫地黄金出 开门万福来)”인데,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다복과 장수, 풍년과 평안을 비는 마음이 그만큼 컸다. 그리고 “당상부모는 천년수요, 슬하자손은 만대영이라(堂上父母千年寿,膝下子孙万代荣)”는 춘련도 많이 쓰이는데 ‘웃어른과 부모님은 천년 수명을 누리시고, 슬하의 자손들은 만대에 영화를 누리게 하소서’라는 뜻을 의미한다 이런 축문은 눈만 뜨면 항상 볼 수 있는 곳에 붙어있으니 우리 조상들은 일년 내내 이런 시와 기도 속에 살았다 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하니 형식도 변하는가, 지금은 립춘방을 문이나 기둥에 붙이는 집이 드물고 대신 컴퓨터나 모바일로 덕담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간단한 문구에 각종 그림과 사진을 곁들인 이미지 파일도 등장했다. PC 버전과 모바일 버전을 따로 만들어 전송하는 젊은이도 많다. 모바일 메신저 배경화면이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이것으로 바꾸는 열성파까지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이왕의 천편일률적인 옛날 문구보다 자신의 개성을 살린 내용을 담은 멋진 시 한 구절을 빌어 마음을 전하는 이들도 있다. 거기에는 “얼음장 밑에서도 / 고기는 헤염을 치고 / 눈보라 속에서도 /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문병란 ),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 털에 /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이장희 ) 등 좋은 시구가 많다. 특히 중국에서 위챗으로 보내온 립춘방을 보면 내용이나 모양이나 형식이 그야말로 천태만상이요, 이루 그 종류를 다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아빠트시대에 살고 있어 대문에 붙여진 “立春大吉(립춘대길)”의 붓글씨도 구경한 지 오래됐다. ‘大吉’이라 바라는 게 다 다르겠지만 사람들마다의 ‘념원’이란 게 담긴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요. 건강, 장수, 가족화목, 결혼, 취업, 합격 등등일 것이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것으로 또 ‘재물’이라는 것이 아닐가?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건 좋은 일이고 그걸 원치 않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해마다 그러하듯 올해도 어김없이 립춘첩을 모바일로 많이 전할 것이다. 어서 빨리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가고 세월이 태평하고 만민이 편안하며 만복이 구름처럼 흥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차곡차곡 담아 열성을 다할 것이다. 립춘이란 말은 황제가 동쪽으로 나가 봄을 맞이하고 그 기운을 일으켜 제사를 지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立’에는 ‘곧’, ‘즉시’라는 뜻도 있어 이제 곧 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립하(立夏), 립추(立秋), 립동(立冬)도 같은 원리다. 그러니 ‘봄기운이 막 일어선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봄이 일어서니 / 내 마음도 / 기쁘게 일어서야지 / 나는 어서 / 희망이 되여야지 // 누군가에게 다가가 / 봄이 되려면 / 내가 먼저 / 봄이 되여야지.” 한국 이해인 수녀의 이 시도 ‘일어서는 봄’을 노래한 것이다. 립춘은 봄의 예고다. 겨울의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땅속에서는 새 생명이 움트고 있으니 봄의 기운이 서서히 온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의 상징은 생명, 소생, 솟구치는 힘이다. 식물은 잎과 꽃을 내며 동물은 생명을 잉태한다. 멀지 않아 오게 될 봄날을 기다리는 것도 새로운 희망의 기운과 다시 시작하는 설레임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가슴 설레였던 순간처럼 봄은 우리에게 설레임을 품게 해준다. 아직 추위가 남아있고 눈이 내리지만 립춘이라 하여 대길을 말하고 새봄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지를 움직이는 신비한 자연의 순리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그 기운을 받아 봄을 꿈꾸며 소망하는 희망의 웨침이다. 누군가 말했다. ‘찬바람을 맞고 서있는 라목(裸木)은 추위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기다린다는 의미는 무턱대고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빈틈없는 준비와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기나긴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새봄을 준비하며 다시 살아나는 것이 자연이고 세상이다. 자연을 닮은 사람도 역시 그렇다. 세상의 끝인 것 같아 아파하다가도 새로운 시작에 설레며 힘차게 움직이는 것이 우리들 사람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을 닮아있어서 희망을 노래할 때 희망을 꿈꾸게 된다. 전하는 데 의하면 옛 선비들은 동지 때부터 구구소한도(九九消寒图), 곧 매화 아홉송이를 아홉줄 모두 81송이를 그려나가는데 이게 모두 마치면 드디여 기다렸던 봄이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한다. “봄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은 봄의 성장이고 가을은 봄의 성숙이요, 겨울은 봄의 수장이다.” 이는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의 봄의 찬가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옛사람들은 립춘 15일간을 3후(侯)로 나누어 초후(初侯)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중후(中侯)에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후(末侯)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립춘이 지나면 우수, 경칩이 잇달아 오는 것이 천체의 순리라 해마다 그 절기는 다시 반복되는 법이요, 따라서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전에 농촌에서 민영교원으로 있을 때 책임포전을 10여년 다뤘는데 해마다 립춘이 지나기 바쁘게 나도 농민들과 함께 새해 농사 준비를 서둘렀다. 휴일마다 논밭에 거름을 낸다, 화학비료를 사들인다, 알곡종자를 구입하러 다닌다, 새해 농사 계획을 짠다 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무심하기를 어제와 똑같은 날이건만 필경은 새해라 새해 농사 준비에 더없이 참답고 경건해진다. 새해 농사를 두고 봄마다 희망과 신심에 차있었다. 종래로 가을에 수확이 없을가 걱정하지 않았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게으른 땅이 없다.”는 속담도 있듯이 자기만 세심하고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풍작을 담보할 수 있었다. 수확의 토대는 심혈, 땀, 지혜, 분투로 이루어졌다. 수확은 근면하고 힘을 제 곳에 쓰는 사람한테 속한다. 땅은 거짓이 없고 정직하다. 무엇을 심으면 무엇을 어김없이 낳게 하고 땀 흘려 로동하고 가꾸어 공들인 만큼 크고 작은 열매를 갖가지로 맺는다. 내가 얼마만한 힘을 들이고 땀동이를 쏟고 심혈을 몰부으면 어느 만큼 보상해준다. 준 것 만큼 받을 줄 아는 땅은 거짓 없이 정직하다. “네가 나의 땅거죽을 얼리면 나는 너의 배가죽을 얼린다.”는 속담도 있다싶이 진실한 노력, 진실한 사랑을 투입해야 진정한 수확을 안겨준다. 립춘이 새 시작을 다그치는 것은 하늘아래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해서다. 새해가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희망의 씨앗이라면 립춘은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씨앗을 뿌리도록 알려주는 파종기이다. 일년지계는 봄에 있다는 말도 있는바 립춘은 곧 봄의 시작이요, 그러니 자연히 우리에게는 농사의 시작이요 사업의 시작이며 배움의 시작이요 사랑의 시작을 의미한다. 새해, 우리는 코로나19로 이미 잃은 것을 애써 되찾아 가꾸어야 한다. 배움을 잃은 학생은 다시 학교를 찾고 사업을 잃은 사람은 다시 일터를 찾고 꿈을 잃은 사람은 다시 희망을 찾아야 한다. 그런즉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는 일분일초를 아껴야 한다. 일분일초는 곧 사라지고 없어지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 속에 그 어떤 노력한 흔적들을 남길 것이다.   이제 곧 새봄을 맞아 얼었던 땅이 풀리고 새싹이 뚫고 올라올 것이요, 버들개지에 금빛물이 오르고 개나리에 망울이 부풀 것이며 귀를 기울이면 온통 소곤대는 소리 뿐일 것을 생각하니 아~ 벌써 마음으로부터 한결 따스하게 느껴진다. 연변일보
87    수의□ 백진숙 댓글:  조회:302  추천:0  2022-01-28
수의 □ 백진숙 수의는 상을 당하여 렴습할 때에 고인에게 정성껏 입혀드리는 옷을 말한다. 다시말하면 한 사람이 이승에서 입는 마지막 옷이기도 하다. 하기에 누구나 부모에게 최선을 다해 수의를 잘 해드리려고 한다. 이는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의 한결같은 마음이고 또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도리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세상 뜨신 지 몇해 안되여 당신의 생일날에 집에 간 자식들에게 엄마는 자신의 수의들이랑 싹 다 갖춰놓았으니 우리들더러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엄마의 소행이 안스러울 정도로 미안하면서도 섭섭한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금방 칠십고개를 넘은 지 몇해 안되는데 왜 벌써부터 수의를 갖추는 걸가? 그리고 또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놓고서도 뭐가 마음이 안 놓여서 손수 수의를 마련한단 말인가? 좀 뜸을 들이다가 엄마는 이렇게 한술 더 뜨는 것이였다. “수의는 진숙이 네가 전에 사다준 한복으로 입고 갈란다. 그거 새것 대루이다. 내 그걸 한번인가 두번밖에 못 입어봤니라.” 그러면서 수의가 들어있다는 보따리를 조심히 풀어헤치는 거였다. 거기에는 하얀 일색의 속벌들외 저승에 이름을 적어 호구를 붙힌다는 붉은 천인 사자부(写字布)와 한복 세벌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지금은 상시가게도 거의다 한족들이 꾸리는데 그들이 말하는 사자부란 우리 말로 명정(铭旌)을 말한다. 지금의 우리 세대들도 이 단어를 아는 사람들이 별반 없을 것이다. 부모들이 세상을 뜬다 해도 상시가게에 전화를 걸기만 하면 그들이 상구들을 가지고 와서 대신 다해주니까 그런 이름들을 일일이 다 기억해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세벌중 두벌은 엄마의 회갑 때와 또 막내 남동생이 결혼할 때 입던 한복이고 나머지 한벌은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5~6년 전인 지난 90년대초에 내가 해드린 한복이였다. 그 한복을 엄마는 지금 수의로 입고 가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내가 해입으려고 했다가 엄마에게도 그럴듯한 한복이 없는 것 같아서 해드렸던 옷, 그때 엄마는 얼마나 기뻐하셨던가! 내가 입는 것보다 더 기뻤었다. 그런데 그  후 엄마가 이 한복을 입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이 된 며느리를 돌봐야지 또 넉달 난 손자를 키워야지, 거기다 병석에 누워 일어도 못 나는 아버지의 뒤시중을 드느라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이 집안에서 맴돌아치며 일만 하다나니 그때 로인들이 누리는 독보조생활을 하루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도 가엾은 엄마의 인생이였다. 엄마가 90세가 넘자 나는 우리 집에 모셔왔다. 운신을 잘 못하는 엄마는 늘 뜨뜻한 전기매트에 누워만 계셨는데 찔찔 끓는 한여름에도 양털셔츠에다 솜조끼를 입고 두꺼운 양말도 두컬레씩 신고 거기에다 또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있어도 늘 발이 시리다고 하였다. 발마사지를 해드리고 온몸을 안마해 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찢어지는듯 아팠다. 앞날이 멀지 않은 엄마한테 최선을 다하리라 속으로 다짐하군 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음식솜씨에다 한국에서 사온 료리책을 한장한장 번져가며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느라 늘 애썼다. 날마다 생일을 쇠는 기분이라던 엄마의 말씀이 지금도 아프게 귀전을 때린다. 그러다가도 심심하면 엄마는 가지고 온 옷보따리들을 풀어헤치며 이것도 네가 사준 거다 저것도 네가 사준 거다. 봐라 네가 사준 게 얼마니 그러며 옷가지들을 한가지씩 꺼내놓군 했다. 기억력이 좋은 엄마는 당신의 옷 한가지도 누가 어느 딸이 사준 걸 다 기억하고 계셨다. 이때라 생각하고 엄마한테 한마디 했다. “지금은 잘살아서 엄마한테 이런 한복을 열벌도 더 사드릴 수 있어요. 엄마가 몰라서 그렇지 지금 고운 한복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낡은 이 한복을 입고 가서 나중에 이 딸을 울리지 말구 우리 새 한복으로 한벌 잘 갖추자요 네?” “마감으로 입고 갈 옷인데 내가 입고 싶은 걸로 입고 가야지. 절대 다른 걸로 안 입을란다.” 늘 당신의 견해를 내세우는 법이 없이 자식들의 의견을 잘 따라주던 마음 약한 엄마였는데 왜 수의문제에선 이렇게 고집만 세우는지. 아마 그 한복을 마음껏 입어보지 못한 유감과 자식들한테 부담을 안 주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리라. 허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엄마가 미처 준비 못한 이불과 요 그리고 버선들을 사서 수의 옷꾸러미 속에 넣으면서 어떻게든 엄마를 구슬려 한복 한벌을 잘 장만하려 하였으나 엄마는 다시 거절하셨다. 그 후에도 시간이 될 때마다 입이 닳도록 수십번 말했으나 끝내 설복하지 못한 채 엄마는 95세 나는 그해에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수의문제에서 나에게 커다란 숙제를 남긴 채로. 상시옷점에 전화를 해서 한복을 포함한 상구들을 다 가지고 오라 했다. 조선족상가라 해서 찾았는데 온 사람을 보니 한족남자였다. 엄마를 붙들고 통곡하던 나는 수의문제에서 엄마가 하신 얘기와 내 생각을 말하면서 제일 좋은 한복 한벌을 사겠다고 했다. 그런데 옷을 팔기 위해서라도 사라고 할 그 사람이 엄마 편을 들어서 말할 줄이야! 그렇게 그 한복을 입고 가겠다는데 기어이 다른 옷을 사입히면 설사 그 옷이 새것이고 신식이래도 안 좋다는 것, 로인의 말 대로 원래 한복을 입혀 편히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엄마를 편안하게 림종시키느라 난 집에서 운명시켰는데 그 한족남자는 “아무리 부모라 해도 지금 집에서 운명시키는 자식이 어데 있느냐? 살아서 잘 모시면 됐다. 그게 더없는 효도이다.”라고 나를 극구 칭찬하면서 한복 대신 엄마한테 돈을 많이 보내라고 하는 것이였다. 그러면 엄마가 하늘나라에서도 마음대로 돈도 쓰고 한복도 사입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며 한장이 100억짜리인 두꺼운 돈뭉치를 꺼내놓는 것이였다. 엄마 절로 사입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저승의 이 많은 액수의 돈을 보는 순간 마음이 좀 열렸다. 문득 체육기재랑 잔뜩 사가지고 와서 자꾸 운동하라던 큰딸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딸애의 효심은 지극했지만 이 운동은 허리병이 심한 나한테 맞지 않았던 것이다. 집 한쪽 구석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또 옷장 속에 입기 싫어 그냥 자리지킴이나 하는 나의 새옷들도 바라보면서 무턱대고 엄마의 의사를 거역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시종여일하게 그 한복을 입고 가시겠다고 했을가? 엄마의 이 요구를 무시한다면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해났다. 이렇게 마음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나는 종당에는 엄마의 의사를 따르기로 했다. 수의문제에서 갈팡질팡하던 내가 정말로 오랜만에 힘들게 내린 결정이였다. 이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95세 나는 그해 봄에 엄마는 당신이 원하시던 대로 그 하늘색 한복을 입고 영영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엄마가 떠나던 날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던 푸른 5월이였다. 진달래 향기에 쌓여 떠나간 엄마의 령구… 마지막길이여서일가 진달래꽃은 오히려 나의 서러움을 더해주었다. 지금도 5월이면 유난스레 엄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병을 앓는 나, 이젠 그만 잊고 살자해도 엄마가 더욱 생각나는 이 마음을 어이하랴! 수의는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마지막 례와 효의 표시이다. 이런 의미에서 말할 때 수의는 더없이 거룩한 옷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엄마의 요구가 하도 강렬했기에 제일 좋은 새 수의로 해드리려는 생각과는 달리 이렇게밖에 해드리지 못한 나. 그때 최상의 선택은 또 이 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원 없이 엄마의 요구 대로 해드리는 것은 자식으로서 마지막으로 하는 최대의 효도이며 또한 지상에서 영원으로 떠나는 엄마에 대한 최대의 례의라고 생각된다. 허나 마음 한구석에는 지금도 새 수의를 해드리지 못한 죄스럽고 애석한 마음이 앙금으로 남아 나를 괴롭히군 한다. 아무쪼록 엄마가 이 수의와 영생을 함께 하며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와 천륜지락을 누리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본다. 엄마는 영원한 아픔이고 그리움이다. 언제나 내 마음을 울리는 엄마의 수의여! 연변일보 
86    노래 밟으며 꿈을 찾아서(외1수) 댓글:  조회:250  추천:0  2022-01-05
노래 밟으며 꿈을 찾아서(외1수) 리화   오솔길에 뒤덮인 세월의 이끼 점점 멀어져가며 실연기로 변해가는 시간 하늘가 달님을 여겨보면 맑은 술 마신 듯 적막함 사라지네   가야금을 뜯는 이 없어도 절로 박자 밟으며 속삭임 듣는 나 선들바람 속에서 갈대숲 펼쳐질제 따스함 느끼며 마음마저 부드러워지는 나   이제 꽃 한 철 피면 이제 연분을 만나면 뒤돌아보지 않으리, 어깨 스치지 않으리라     #촌초심(寸草心)   웅크린 세월이  쪽잠 들었소 발걸음 늦춘적 없이 팽팽히 돌아가던  분주함은 그림자도 없는 고독이 대신하였소 불꽃은 변함없이 현란히 타오르오 엄마의 근면이 불빛 속에서 그리움으로 치솟아 오른다오 이슬 묻은 손으로 고달픈 삶 감칠맛 나게 졸여내던 어머니의 손맛찾다 꿈결에서 깨여보니 세상은 괄호밖의 사람이라 조롱하오 덧없이 흐르는 시간 속으로 과거의 삶이 사라졌어도 소박하고 예스러운 신토불이 성덕을 이어 잔풀에 봄볕과도 같은   촌초심은 여전하다오밟으며 꿈을 찾아서(외1수) 리화   오솔길에 뒤덮인 세월의 이끼 점점 멀어져가며 실연기로 변해가는 시간 하늘가 달님을 여겨보면 맑은 술 마신 듯 적막함 사라지네   가야금을 뜯는 이 없어도 절로 박자 밟으며 속삭임 듣는 나 선들바람 속에서 갈대숲 펼쳐질제 따스함 느끼며 마음마저 부드러워지는 나   이제 꽃 한 철 피면 이제 연분을 만나면 뒤돌아보지 않으리, 어깨 스치지 않으리라     #촌초심(寸草心)   웅크린 세월이  쪽잠 들었소 발걸음 늦춘적 없이 팽팽히 돌아가던  분주함은 그림자도 없는 고독이 대신하였소 불꽃은 변함없이 현란히 타오르오 엄마의 근면이 불빛 속에서 그리움으로 치솟아 오른다오 이슬 묻은 손으로 고달픈 삶 감칠맛 나게 졸여내던 어머니의 손맛찾다 꿈결에서 깨여보니 세상은 괄호밖의 사람이라 조롱하오 덧없이 흐르는 시간 속으로 과거의 삶이 사라졌어도 소박하고 예스러운 신토불이 성덕을 이어 잔풀에 봄볕과도 같은 촌초심은 여전하다오. 연변일보 
85    가 을 (외 4수)□ 리종화 댓글:  조회:937  추천:0  2021-12-10
슬며시 록색커튼 젖히고 다가와서 추분의 문턱 넘어 금가루 뿌려대네 아직도 천년 전이나 다를 바가 없어라.     이 슬   해빛에 반짝반짝 동그란 진주런가 진주빛 사랑같이 티없이 맑고맑네 하리오, 진주빛 사랑 꿈을 꾸며 살리라.     청송   층암 우 우뚝 솟은 청송을 바라보니 한겨울 독야청청 숭엄을 자랑하네 장할손, 영웅호걸은 란세에만 빛나리.     숲의 재난   초목은 천년 세월 지구의 허파거늘 지금껏 내려오며 인과로 피페하니 한심타, 인간들이여 화생부덕 하도다.     호 박   잘나면 지아비요 못나면 지어미라 얼굴은 못났어도 속만은 일품이요 나서라, 성인병 예방 나 따를 자 누군고. 연변일보
84    움직일 수 없는 재산□ 리향옥 댓글:  조회:262  추천:0  2021-11-26
움직일 수 없는 재산 □ 리향옥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고 나서 6층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큰 고역인지 알았다. 20대에 집을 장만할 때 나는 내가 언제까지고 젊어있을 줄로 착각했다. 3층까지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우의 매 한단계는 의지와의 겨룸이였고 집문을 떼고 들어서면 한참 동안 씩씩거린다. 운동삼아 층계를 오른다고 자아위안을 하지만 그 리유도 점점 빛바래져 간다. 애 하나만 있을 때도 그마나 괜찮았다. 3년 전 둘째가 태여나서부터 지인들은 좋은 학교주변의 집을 사지 않는가고 자주 물었다. 좋은 학교주변의 집 한채만 구매하면 애 둘이나 향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조언을 종종 들었다. 둘째를 봐주러 온 친정부모가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웠다. 16킬로나 되는 외손주를 업고 올라오다보면 다리도 후둘거리고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힘들어 했다. 엘리베이터로 된 아빠트보다 계단이 있는 양옥에 길들여진 나는 3층으로 이사가고 싶은 충동이 굴뚝같이 일어났다. 그 시절 우리의 손에 있는 재산은 별로 없었다. 2003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동안 악착스레 모은 돈이 고작 3만원, 선불금으로도 턱없이 부족했다. 외독자인 남편은 나중에 부모와 함께 살기 바랬고 우리는 아이가 태여날 것에 대비해 적어도 방이 세칸짜리 집이 필요했다. 새로 개발된 집터는 먼지가 부옇게 끼여있고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길 옆에는 시내물이 졸졸 흘렀고 멀지 않은 곳에 푸른 산이 우뚝 솟아 있어 도시가 맞는지 의심이 갈 지경이였다. 제일 큰 문제는 위치였다. 나는 대련 시내에서, 남편은 개발구에서 일하는지라 여기다 집을 사게 되면 나의 출근 시간이 두시간 넘게 걸릴 것이 불보듯 뻔했다. 시내물을 동반한 아빠트는 몇년 후에 동화 속의 성보처럼 멋지게 지어졌지만 우리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남편 친구가 대련시 천수(泉水) 구역에 집을 샀으니 같이 가보자고 요청했다. 문앞에 당도해서야 친구는 부주의로 열쇠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알았다. 무안해진 친구는 우리를 부동산 판매 사무실에 안내했다. 대문 가까이에 자리잡은 사무실은 아담하게 꾸며졌고 벽에는 판매중인 아빠트 가격과 판매여부가 빨갛게 표기되여있었다. 기완성 주택으로 96평방메터되는 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꼭대기층이 였고 거실 두칸에 방 세칸이 딸린 집이였다. 가격은 2005년도 시가로 한평방에 2800원이라 개발구에서 본 집보다 쌌다. 개발구의 집은 몇년이 지나야 열쇠를 받을 수 있었는데 한평방메터에 3000원 이상이였다. 마음속으로 흐뭇하게 계산을 하며 집을 보러 가는 뻐스에 앉았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고 커다란 객실이 포근하게 안겨왔다. 남편과 함께 널직한 베란다에 서있으니 부드러운 해살이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파아란 하늘, 두둥실 떠돌아다니는 구름, 솔솔 부는 가을 바람, 나는 묘한 행복감에 도취되였다. 우리의 사랑에 이 집만 있으면 비가 오던 바람이 불던 단란한 가정을 이룰 것 같았다. 직원은 층고가 2메터 아래 면적은 모두 무료로 얹어준다고 했다. 96평방메터라지만 실제 사용면적은 130평방메터정도였다. 무료로 준다니 기쁘기만 했다. 이제 천정이 높은 부분은 계단과 다락방을 만들면 창고로 쓸 수 있어 면적이 더 불어난다고 했다. 나와 남편이 출근하는 회사 중간쯤에 있어 둘다 한시간 정도씩 걸리니 안성맞춤한 거리였다. 한눈에 반해버린 우리는 이틀 만에 급히 선불금 6만원에 기타 비용 2만원을 준비했다. 적금을 깨고 부족한 3만원을 시고모에게서 빌렸다. 대출 수속이 끝나면 공적금에서 한꺼번에 꺼낸 돈으로 갚기로 약속했다. 시어머니는 수속비를 마련해주었다. 졸업한 지 2년밖에 안되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던 우리는 겁도 없이 2005년 가을에 20만 대출을 받아 집을 사게 되였다. 새집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무난하게 지냈다. 행복한 순간도 있었고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세월은 무정하게 잘도 흘러갔다. 40대에 들어서며 체력이 눈에 띄게 부족했고 이제 나이가 더 들면 어떻게 오르내릴지 상상만 해도 아득했다. 3년 전 방수와 보온을 포함한 인테리어를 다시 깔끔히 하여 그나마 살만 했지만 사선으로 된 천정 벽에 머리를 부딪칠 때마다 집을 바꾸고 싶은 욕심이 부풀어올랐다. 가끔 남편과 양꼬치를 굽고 술을 마시며 우리는 그 시절에 3층으로 된 집을 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가 하는 아쉬운 소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젊었고 수중에 돈이 없었다. 부모한테 손을 내밀지 않고 둘이서 해결을 보려고 하니 우리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였다. 그냥 집이 있으면 된다는 만족감은 살다보니 부양해야 할 가족이 불어나면서 점점 색바래져갔다. 친한 동료가 지난 주말에 양옥 한채를 샀는데 구조를 보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3층에 네모반듯한 집이였다. 나는 집을 바꾸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남편은 고민 끝에 같이 집을 보러 다니자고 했다. 일요일에 대련 성해광장에서 열린 부동산 전시회에 갔다. 여러 개발상의 이름으로 된 커다란 전시회는 부동산 영업원으로 꽉 차있었다. 중개소 직원은 새집 선전단을 뿌리고 설명을 열정적으로 진행했다. 그중, 주택구조가 마음에 들어 우리는 직원을 따라 집을 보러 갔다. 대련체육쎈터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부동산 판매 사무실까지 거리는 꽤 멀었고 운전해서 한시간가량 걸렸다. 길가에는 부동산의 이름이 크게 걸려져있었고 금방 개발이 시작된 곳이라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사무실은 호화롭게 꾸며졌고 애들 놀이터도 다양하게 만들어져있었다. 아이들은 그네를 타고 퐁퐁 뛰기를 놀고 미끄럼대에서 내려오며 신나게 놀았다. 아빠트는 짓고 있는 중이라 샘플양식으로 된 방을 둘러보았다. 방 세개에 객실 두개로 된 98평메터짜리 아담한 집이였다. 화려하기 보다는 깔끔하게 만든 인테리어로 한눈에 들어왔다. 애 둘 키우며 네식구가 살기는 맞춤한 면적이였다. 금방 팔기 시작한지라 좋은 층수의 양옥을 고를 수 있었고 2년 후면 열쇠를 준다고 했다. 다만 위치가 너무 멀었다. 몇년 후에 지하철이 나온다 해도 새로 지은 구역이라 학교가 언제 생길지 미결이였다. 큰애가 금년 가을 중학교에 입학하는지라 지금의 집을 팔  수도 없었다. 마음에 꼭 들지만 아이들의 공부를 생각하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개소 직원은 1층에 자리잡은 양옥을 소개해주었다. 103평방메터에 평방메터당 2만 1500원인데 40평방메터 되는 정원을 무료로 얹어준다고 했다. 네모반듯한 구조에 커다란 정원으로 된 새집은 금년 여름에 들  수 있다고 한다. 남편은 마음에 들어했지만 해변도시의 1층은 많이 습했다. 집값은 200만원을 훌쩍 넘었고 30년 대출로 사면 나중에 리자가 본금과 거의 맞먹었다. 30년이면 70대가 될 것인데 우리는 과연 몇년 더 일할 수가 있을가? 년로한 부모를 모시고 애 둘을 키워야 하는 우리가 과연 부담할 수가 있을가?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못해져가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그만한 능력이 있을지 자문해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중년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새집을 돌아보니 위치와 가격 그리고 학교가 큰 문제였다. 세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시내중심의 새집은 가격대가 300만 내지 400만원 가까이 했으니 아예 생각을 접어야 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헤매다가 우리는 랭정을 찾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집에 관한 얘기를 부지런히 나누었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가 고민해보았다. 새집이 욕심나지만 실제 요구와 빗나갔다. 출퇴근 시간, 학교 그리고 가격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지금 살고 있는 구역이 우리에게는 적합한  것이였다. 어중간한 곳에 다다른 우리는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중개소 직원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로 새집을 판매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녀는 주로 새집 판매를 하는지라 나의 생각을 얘기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리해는 가지만 우리의 생활을 송두리 채 뽑아버리려는 설득력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스트레스가 쌓이다  못해 나는 그녀의 전화 받기를 거부했다. 우리는 집 부근에서 판매중인 집을 둘러보았다. 20년 가까이 지난 집은 낡고 풍채를 잃었지만 그나마 학교와 가깝고 생활하기에는 편리했다. 네모반듯하고 방 세개 딸리고 중간층 양옥을 사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였다. 면적이 큰 집은 사기도 힘들고 팔기도 힘든 것 같다. 20대에는 별 고민도 없이 그냥 살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중년의 새집 바꾸기는 고려할 요소가 너무 많아 주춤하게 된다. 십여년간 부동산 단가는 2000원대로부터 2만원을 훌쩍 넘었고 월급보다 부동산의 가격인상이 훨씬 더 빨랐다. 그때는 돈이 없었고 이제 좀 살만하니 부동산 가격과 대출 리자가 어깨를 지지리도 무겁게 눌렀다. 물가 대비, 월급 대비 그리고 기형적으로 치솟은 도시의 집값은 우리를 점점 작아지게 한다.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바꾸어 한가족의 편한 생활을 바라지만 부동산을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체험하게 되였다. 딸애는 지금 사는 집도 괜찮은데 왜 바꾸려 하는가고 물었다. 학교와 5분 거리이고 옥탑방에서 남동생과 고양이와 함께 노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딸애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집이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했다. 한가족이 같은 공간에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집이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사랑으로 똘똘 뭉치는 게 아닌가 싶다. 새집을 바꾸려는 나의 소원은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아마도 한참 동안 에둘러 먼길을 돌아가야 할 것 같다. “2021년 5월, 대련 천수구역에서 국유건설용 토지 상용권을 공시하고 양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 건설중인 지하철 5호선 천수역을 중심으로 아파트를 새로 건설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뉴스를 전해 들은 순간 가슴이 떨렸다. 천수구역이라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운전해서 10분쯤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남편과 나의 출퇴근도 편하고 애들 공부에도 영향이 없는 위치였다. 실망에 갈등을 거듭하던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또다시 새집에 대한 희망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 가시밭일지도 모르는 미래를 바라보며 나는 크게 숨을 쉬여보았다. 연변일보 
83    거미줄 (외 7수)□ 김경희 댓글:  조회:284  추천:0  2021-11-12
거미줄 (외 7수) □ 김경희 낭창낭창 바람이 불어도 끊기지 않는 선의 미학   한뜸한뜸 무늬 잡은 엄마 사랑 꽃방석   허공중에 걸리여 그리움 자아낸다.   아빠향   바람에 하느작이는 귀룽나무 흰 잎사귀   바람타고 날아드는 실큼한 향기   어쩌면 희끗희끗 머리칼이 땀내 싣고 날리는가   마음 덥혀 안겨오는 아빠향.   그대 봄이 온다   그대 다가오는 소리에 풀잎은 푸른 물 머금고 여린 맘 활짝 열어 나막신 끌고 마중 나선다   의젓이 다가서는 그대 모습에 민들레는 노란  옷 받쳐입고 수집음에 젖어 이쁜 미소를 짓는다   그대 봄을 맞는다.   징검다리   물수제비 날리여 징검다리 놓는다 각일각 야위여가는 서산해를 지켜보며   유독 님만이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주홍시가 익어가는 사랑다리를 놓는다.   숲 사랑   눈을 감고 귀를 열면 들려요 귀를 막고 눈을 열면 보여요 마음 안에 들어와 앉은 숲처럼 설레이는 사랑 울대마저 꼴깍이게 하는 그대 사랑이 이 한몸 다 녹여가요 사랑해요 가을 숲 그대   꽃에 담아보는 마음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생긴 빈 자리 하나   그 빈 자리에 구절초를 따다 심었다 주옥 같은 꽃 빈 마음 꽉 채워달라고   소금같이 귀한 사랑이였음을 왜 이제야 알게 되는 걸가   사무치는 사랑을 구절초에 담아본다. 별에서 온 사랑   창문 밖 빠끔히 지켜보는 작은 별 하나   작은 마음에 작은 별 하나 심는다   어느새 안기여주는 은은한 향기 한올   톡톡 뛰는 심장이 느끼고 살풋 웃는다   별의 사랑이여.   락화류수   피고 있는 꽃은 설음을 모른다 봄기운에 젖어 열창 할 뿐이다 부서지는 아픔을 겪을 때라야 는개 속을 헤매고 있었음을 느낀다 목청 떨어 웨치고 싶어도 이젠 동동 떠가는 상처부스러기들 뿐   아픔이 강물 덮고 흐른다. 연변일보 
82    엄마의 소소한 행복 댓글:  조회:348  추천:0  2021-09-29
엄마의 소소한 행복 □강매화 3.8절이라 동갑내기 친구들이랑 레스토랑에 모여 파티를 벌렸다. 화려한 옷차림에 꽃단장까지 하고 서로서로 찰칵찰칵 사진도 찍으며 시끌벅적 명절분위기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딩동! 딩동! 위챗소리에 문자확인을 하니 엄마가 사진을 보내왔다. “매화야, 네가 보내준 선물 잘 받았어. 엄마 이쁘지? 고마워 내 딸! 이제 로인독보조에 나가면 모두들 부러워할 거야. 엄만 이제 다시 애가 되나 봐. 다 늙어빠진 로친네가 새옷 입으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있을가…” “그리고 또 우리 딸 덕분에 평생 엄두도 못낸 고급화장품도 쓰니까 이렇게 젊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짱이야!” 엄마는 내가 부녀절을 맞으며 사드린 새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과 함께 이런 문자를 날려왔다. 얼굴에 얼기설기 건너간 주름살로 웃음을 만들어보내는 엄마다. 허리도 이젠 튜브를 두른 것처럼 둥글둥글해서 내가 사보낼 때 예상했던 효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엄마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레스토랑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며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을 때 엄마는 우리 모임의 밥 한끼 값도 안되는 명품도 아닌 그냥 새옷을 입고 저렇게 기뻐하신다. 한국에 10여년 체류하면서 싸구려 스킨로션만 사서 발랐지 언제 아이크림에 비비쿠션까지 있는 세트화장품을 엄두조차 내셨을가. 문득 지난번 일이 떠오르며 나를 더욱 쥐구멍을 찾게 만든다. 지낸해 이라는 글이 수상하게 되였는데 편집일군이 전국애심녀성포럼 위챗계정에 글을 올려준다며 엄마하고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휴대폰 사진을 올리훑고 내리훑고 열심히 뒤졌는데 폰의 용량 절반을 차지하는 만장도 넘는 사진에서 엄마사진이 겨우 서너장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만분의 몇! 몇만분의 일! 내가 여유작작 멋진 경치들을 누비며 찰칵거리고 맛집들에서 진수성찬의 풍미에 함씬 취해 번쩍거릴 때 엄마는 무엇을 하고 계셨을가? 달랑 몇장의 엄마사진! 년중 음력설휴가 때에나 겨우 고향에 갈지말지 한데 그것도 고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밖을 도느라고 언제 다정하게 엄마와 얘기라도 나누어봤던가. 사진 찍을 시간조차 거의 없는 설휴가를 보내지 않았던가. 애 때문에 출근 때문에 일년에 겨우 한번밖에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들인데 명색이 부모님들과 설을 쇤다고 동네방네 소문만 내고는 결국 동창모임이나 진배없었던 나의 설명절.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앉아 겨우 아침식사나 같이하고는 이내 친척들 집에 다니며 설인사를 하고 친구들과 회포를 나눈답시고 시간을 다 보내버리군 했었다. 마흔이 넘도록 나는 엄마 앞에서 항상 철없는 딸이였다. 그런 딸도 귀엽다고 딸바보 엄마는 내가 돌아올 때면 무엇이든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지 못해 안달이시다. 자식한테서 받은 원피스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시는 엄마, 그렇게 쉽게 만족해하는 엄마의 너무나도 평범한 행복을 나는 왜 얼마든지 넘쳐나게 해드릴 수 있었는데 유독 엄마한테만 그렇게 린색했을가. 결혼해서 아들이 생기고 나서 항상 아들이 1순위였다. 맛집을 알게 되면 다음엔 아들을 데리고 와야지 하는 생각 뿐이였고 멋진 패션을 보면 아들한테 사줘야지 하는 생각만 들었지 부모님한테 해드릴 생각은 왜 그렇게도 하지 못했을가.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무슨 숙제라도 하듯 조그만 선물이나 용돈을 보내는 것으로 효도를 다한 것처럼 여겼던 나 자신은 얼마나 한심한 딸이였는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나는 부모님한테 그토록 사랑에 린색했지만 엄마는 여전히 주고 주고 또 주어도 성에 차지 않으신 모양이다. 요즘엔 대련에도 고향맛 반찬가게들도 많건만 엄마는 지금도 계절따라 나물이며 남새들로 밑반찬을 만들어 보내주신다. 고향의 강물처럼 변함없는 사랑을 장장 40년도 넘게 멈추지 않고 보내주신다. 선배들한테서 제일 많이 듣는 말중의 하나가 바로 부모님 계실 때 잘해드리라는 진심 어린 충고였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그렇게 바빠 그토록 작은 선물에도 한없이 기뻐하시는 엄마한테 여직 그런 사소한 행복조차 변변히 해드리지 못했을가. 며칠 후이면 ‘어머니의 날’이다. 이번에는 기어이 근사한 선물을 사드려 부모님께 효도 좀 해드리려고 나는 행복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에 체류하시는 동안 단 한번도 못해드렸던 이벤트 같은 것도 좀 자주 해드려야겠다.   울 엄마 주름으로 만들어내시는 그 함박웃음을 더 자주 보고 싶다. 연변일보 
81    양파 (외 9수) 댓글:  조회:448  추천:0  2021-09-17
►양파 (외 9수) □ 최옥란   행성처럼 태여났다   그 속에는 바람도 있고 옥돌도 있고 산도 달도 있다   금빛 겹옷 걸친 채 세상에 나와 뭇사람들 시선을 끈다   산다는 것은 년륜을 늘이며 채우고 비우고 채바퀴 돌듯 도는 것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아롱지는 눈물까지 사랑으로 반겨 준다면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구름 따라 훨훨 날아가리다 흰나비처럼… ►해바라기  아침해살 전갈받고 문을 열자 기다리던 님 빛의 금침으로 내 가슴을 찔렀습니다   나는 님의 품에 안겨 일구월심 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님은 올방자 튼 성자인 양 텅 빈 내 마음을 꽃술로 채워주고 여린 심장을 발 디딜 틈 없는 흑진주로 촘촘히 감싸주었습니다   마주하면 눈물날 것만 같아 고개숙여 무척 행복했다고 고백할 때 있겠지요.   ►산나리꽃   이름 없는 산야에 태어나 쪽빗머리 빚어올린 산지기 녀인   나름으로 살아가고 싶었던가 아침엔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저녁엔 나리꽃 향불처럼 피워놓고 먼 들녘을 바라보는 산지기 녀인   호랑나비 날아들고 풀벌레도 귀전에 속삭이는데 흰옷 입은 사람은 보이지 않네   길이 막혀 못 오시나 발이 무거워 못 오시나 노을빛 감겨드는 내 가슴 시리네   나무잎 수런거리는 소리에도 두 귀 쫑긋 세우는 산지기 녀인.   ►빈 돛배 한 척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강나루에 바람소리로 풀어내고 있는 하프소리 홀로 놓인 돛배를 보노라면 마치 섬섬옥수 가락 튕기는 녀인의 하프 독주를 보는 듯하다   흰옷 고름 볼을 매만지듯 마흔 일곱 줄, 현을 뜯고 풀어내면 울리는 공명음   부름인 듯 손짓인 듯 행인들 발걸음 소리 강을 가르고 날아가는 물새들도 물장구 치며 꽃물결 이루던 강나루   바람아, 파도를 일으켜세우듯 나를 밀어내어다오 기다려온 시간 만큼 내가 건너야 할 곳은 강건너 저쪽 피안이다.   ►무쇠솥을 보며   생떼 같은 불 지펴 단가마 열기로 보리고개 배 주린 아이 달래고   흰 밥알들 오똑하니 아버지 숭늉물에 배놀이 했지   “시집 가 잘하라” 하시며 나무껍질 같은 손으로 밥물 맞춤 가르쳐주시던 엄마   까맣게 그을린 숯검정 얼굴 만지면 엄마의 함초롬한 눈빛 아른거린다   이제 엄마의 꿈은 젊음이 빠져나간 퀭한 눈   문득 깨닿는다 정신줄 잡고 불타던 엄마의 한생, 갉아먹으며 살아온 검은 무쇠솥.         ►파꽃   늙어서 피는 꽃 흰 수건 쓴듯 수수해도 꽃은 꽃인가 보네   꽃대를 붓대 삼아 일필휘지로 하늘에 전갈을 쓰면 벌, 나비 찾아들어 두 손 모으며 인사하네   외다리로 버티며 공중에 세방살이 방 한칸  지나가던 바람도 멈춰서서 기웃거리네   마음 비우며 올곧게 살아가는 의미 이제 알 것만 같네.     ►고추꽃   숲속 다락에 흰나비 닮은 새 한마리 앉아 귀 쫑긋 세우고 세상사 이야기 듣더니   탱탱 부풀어오른 퍼어런 욕망 낱낱이 얼굴 달아오르고   그네 타던 가지 마침내 힘겨운듯 무거운 짐 내려 놓는다   흰 구름이 일깨워 주었을가 금싸락주머니 열어 비우며 살라 한다.     ►살구꽃   공중다락에 앉아 섬섬옥수 거문고 뜯는 단발머리아가씨 발개진 얼굴이다   꽃가마에 오른듯 가리마머리 매만지며 홍안을 살짝 하늘 거울에 비춰보는 새색시 황홀한 몸짓이다   밤이 오면, 초롱초롱한 아기별들 깨금발로 발돋음하는 그들만의 사랑방이다.     ►양귀비꽃   천년의 정을 읊고 있는가 만년의 한을 품고 있는가 허공 속에 나붓기는 진홍의 화인(火印)이여   내 가슴에 그대 숨걸 흐르고 내 눈에 그대 눈물 고였습니다   가녀린 목 빼들고 떠가는 흰구름 손짓하며 불꽃되여 타오릅니다   돌아선 그대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 한몸 불태워 가시는 길 등불 환히 밝히옵니다.     ►달맞이꽃   노을 지는 언덕 우로 저녁 숲들이 술렁입니다 그대 오시는 발걸음 소리인듯   풀덤불에 초록 치마자락 물들이며 사뿐사뿐 걸어나와 길목에 섰습니다   낮이면 수줍은듯 꽃잎 접고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밤이면 나비 닮은 금빛 비녀 꽃은 채 노랑 꽃방석 펼쳐놓고 하염없이 산마루 고개 바라봅니다   부르면 백마 타고 올 것만 같은 그대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그대의 얼굴 눈망울에 그려봅니다.     최옥란    안도현 출생. 연변대학 예술학원 졸업. 연길시문화관 당지부서기 겸 부관장, 연길시소년아동도서관 관장 력임.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 시조, 수필 등 80여수(편) 발표.
80    뒤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허명훈 댓글:  조회:293  추천:0  2021-09-17
뒤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 허명훈 사람은 서로의 앞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라고, 그래서 앞모습을 가꾸기 위해 매일 또는 하루에 시도 때도 없이 거울 앞에 서게 되고 또 자그마한 거울을 가지고 다니면서 화장을 하고 옷매무시를 깔끔하게 단장하며 자기 앞모습을 가꾸는 데 온갖 정성과 신경을 들이고 있다. 특히 경쟁이 치렬한 현대사회는 때로는 외모가 당락을 결정짓기도 한다. 이를테면 회사 면접을 보거나 소개팅, 맞선 자리에서도 그 사람의 실력이나 사람됨됨이나 마음을 잘 읽으려 하지 않고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가 많은 사람들이 앞모습을 더 잘 꾸미기 위해 부모가 준 자연의 얼굴을 마다하고 성형수술을 하는 현상이 사회적으로 성행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어려서 자립을 못할 때 부모가 머리를 빗겨주고 세수시키며 옷을 입혀주면서 겉모습을 가꿔주지만 우리가 커서 자립을 할 때면 자기 모습을 원래보다 더 아름답게 가꾸려고 미용실이나 성형외과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어디 까지나 제한되여있고 날마다 자기 모습을 가꾸는 데는 그래도 본인이 주관이다. 물론 자기 모습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꾸고 옷도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고 다니는 것은 자신이 자기 얼굴을 책임지고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자 타인에 대한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거리에서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고 옷을 깔끔하게 단정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저도 모르게 한번 더 쳐다보게 되고 더불어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가꾸며 살고 싶고 저렇게 정갈하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얼굴 표정이 밝고 미소까지 찰찰 흐르는 화기로운 얼굴을 보게 되면 보는 사람의 눈도 마음도 즐거워지게 된다. 이와 반대로 얼굴을 가꾸지 않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게으른 사람, 또는 추한 사람, 또는 추한 로인이라고 인정받게 되고 거기에다 얼굴 표정까지 어둡고 험악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즐거웠던 기분도 마음도 잡치게 된다. 사람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선호하고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고 바람직한 자세이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앞모습을 아름답게 가꾸는데는 관심과 열정을 쏟지만 뒤모습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듯싶다. 앞모습이 한 사람의 간판이라면 뒤모습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고 인격이고 수양일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쩌면 서로의 앞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것 같지만 누군가의 뒤모습과 누군가의 앞모습은 마치 설걷이를 해 놓은 그릇처럼 포개지기도 한다. 내가 머물던 자리에 누군가가 다시 찾아오고,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다시 내가 서게 되는 것, 그래서 앞모습이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뒤모습이 아름다움 사람이 더 좋다. 만물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새벽에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뒤모습 너머로 거리의 깨끗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해마다 남모르게 가난한 이들을 돕는 따뜻한 손길에는 화려한 앞모습이 아니라 이름도 얼굴도 없는 뒤모습만 있다. 티 하나 묻지 않은 화사하고 눈부심과 그윽한 꽃과 향기를 내는 것은 진흙 속에 묵묵히 일하는 뿌리이다. 이와 반대로 앞모습이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뒤모습이 흉하고 추한 사람들이 많다. 공공장소에서 안하무인격으로 큰소리를 치거나, 문명한 말 듣기 좋은 말도 많지만 굳이 거칠고 상스러운 말을 하거나 지어는 험담과 악담으로 해결을 보려하는 사람들. 아무데서 담배를 피우거나, 저만치 재떨이가 보이지만 꽁초를 아무데나 마구 버리는 사람들. 음식쓰레기와 생활용쓰레기의 지정된 장소가 있지만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버리는 사람들. 사기, 협박과 공갈, 절도로 선량한 사람을 해치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람들… 며칠 전 집과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하러 갔다가 목격한 사실이다. 몸에 딱 붙는 청바지에 분홍 반팔티를 입고 키도 훤칠하게 쭉 빠지고 얼굴도 화사해서 한송이 꽃이라고 할지 아니면 미스코리아라고 할지 하여튼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 정도로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하얀 털의 깜찍한 반려견을 품에 안고 나왔는데 반려견이 그만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길에다 변을 보았다. 공원 곳곳에는 반려견은 반드시 목줄을 해야 하고 변을 보았을 경우 주인이 변을 치워야 한다는 문구를 적은 패말이 세워져있었지만 그 예쁜 아가씨는 변을 치울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는 듯 자기 산책만 즐기고 있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변을 치우라고 말을 하자 그 예쁘던 아가씨 얼굴이 금새 험악한 얼굴로 변하면서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며 오히려 제 쪽에서 목에 피대를 세우고 앙칼진 목소리를 뽑는 것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잠간이나마 그 아가씨의 예쁜 외모에 눈길을 준 것이 후회되였다. 아브라함 링컨은 “나이 마흔을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고 했다. 그 뜻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기의 뒤모습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도 포함된 말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의 앞모습이 오늘을 알리는 게시판이라면 사람의 뒤모습은 현재의 삶을 달아보는 저울이요, 오늘의 마음과 량심, 인격과 수양, 도덕을 재는 자일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앞모습을 아름답게 가꾸어도 뒤모습이 인간으로서의 인격과 도덕적 수양을 갖추지 못했다면 게으른 농부가 가을에 쭉정이 농사를 짓 듯 쭉정이 인생이고 사회와 뭇사람들로부터의 비난과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앞모습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세상의 모든 거울에 자신을 비쳐보면서 뒤모습도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열심히 가꾸고 다듬고 배우고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고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가 하는 마음과 생각을 가져본다. 연변일보 
79    싸리나무 부업 댓글:  조회:273  추천:0  2021-09-10
싸리나무 부업 □ 주덕진 아침 일찍 일어나 소에게 짚과 여물을 푸짐히 준 나는 쫓기는 사람처럼 부랴부랴 소에 수레를 지워 싸리나무 하러 산으로 떠났다. 하긴 노루꼬리만 한 겨울해는 서두르지 않으면 통 붙잡기 바쁘니 말이다. 기온이 령하 30도를 웃도는 아침 날씨는 꽤나 매짰다. 모자 가장자리엔 금방 새하얗게 서리가 끼고 사람이나 소의 코에선 흰 김이 코끼리 상아처럼 길게 뿜겨나온다. 오늘따라 투명한 유리처럼 유난히 맑은 하늘에선 성에꽃이 별처럼 반짝반짝 춤추는데 길가나 산야에 성에를 뒤집어쓴 나무들이 하얗게 소복단장하고 있어 마치 동화세계에 들어선 듯 무지 황홀한 기분이다. 이런 세계, 이런 기분 만끽할 수 있는 자체가 곧 행운이고 행복이다. 문득 “빠드득”, “빠드득” 하고 발로 눈을 밟던 소리가 멎었다. 소가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회초리를 들어 “쨩!” 하고 소궁둥이에 한매 안겼다. 그러자 충격을 받은 소가 다시 걸음에 박차를 가하고 수레도 덩달아 언땅에 바퀴를 부딪치며 덜커덕 타령에 신난다. 미련한 소 같지만 힘쓰기 싫어 쓰는 약은 수다. 나는 오늘 사흘째 싸리나무 부업하러 간다. 타작을 끝내자 일부 사람들은 마치 타작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끼리끼리 자리를 틀고 모여앉아 화토장, 마작패를 만지작거리는 데 열을 올리면서 싸리나무 부업 같은데는 아예 관심이 없다. 1년 농사를 마쳤으니 이젠 탕개를 풀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휴식의 한때를 즐겨보자는 심리도 있겠지만 묵정밭이 황페화되면서 싸리나무도 퇴화되여 적어지는 데다 싸리나무는 옷과 신을 턱없이 소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거의 해마다 싸리나무 부업을 하고 있는데 싸리나무는 도끼, 톱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무난히 할 수 있는 불땜이 좋은 나무이기도 하거니와 나로써는 또 그럴만한 리유가 따로 있다. 1시간 남짓이 덜커덕 타령을 부르던 소수레는 마침내 마을에서 7, 8리 상거한 사흘갈이 늪(이 지방의 명소로 깊이는 명주 한 꾸레미 들어가고 둘레는 사흘갈이 밭 만큼 넓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동남쪽 묵정밭에 이르러 멈춰섰다. 이곳이 오늘 내가 찾는 목적지이다. 펑퍼짐한 곳에 수레를 벗겨서 세운 후 소는 근처 나무에 비끌어매두고 벼짚 몇단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싸리나무와 치를 전투무기-수레밑판에 꽂았던 날이 시퍼렇게 선 낫을 찾아들었다. 지금 내가 딛고 선 둬짐 푼히 될 이 땅은 70여년 전 그러니깐 우리네 조상—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들이 쪽박 차고 두만강 건너 조선으로부터 이주해와 개간한, 개척의 첫 괭이를 박은 곳이다. 이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되여 싸리나무와 관목이 듬성듬성 자란 묵정밭을 둘러보노라니 눈앞엔 어느덧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괭이를 휘두르며 나무뿌리 뽑고 돌뿌리에 채이여 피 흘리며 한치한치 땅을 개간하던 정경이 저 세월 넘어 환영처럼 떠오른다. 그런데 그 후 피땀 흘려 일군 산비탈 개간지가 차츰 주인의 외면, 버림을 받으면서 력사의 뒤켠으로 밀려나 곡식 대신 관목이 들어서고 싸리나무가 자라 묵밭이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싸리나무는 보통 한번 해내면 5, 6년 자라야 다시 낫을 댈 수 있다. 싸리나무는 기름을 친 것처럼 불이 잘 당겨 불쏘시개로 충당되고 음식을 급히 끓일 때 때기 좋다. 내가 살고 있는 촌은 향소재지 마을이다. 나는 해마다 겨울철이면 집집이 찾아다니며 싸리나무계약을 맺고 싸리나무를 해다 파는데 그 수입이 가관은 아니여도 손을 싸매고 놀기보다 낫다. 특히 내가 싸리나무 부업을 하는 것은 생활에 보탬하려는 것도 있지만 더우기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을 핑게로 게으르다고 하는 세속사람들의 부정관념에 던지는 도전장이기도 하다. 습관적으로 손바닥에 침을 탁 뱉고 낫자루를 단단히 잡은 나는 무더기로 선 나무에 낫을 걸었다. “드드득…” 잘 드는 낫이다 보니 힘을 좀 주어 끄당기자 단번에 두, 세대가 베여진다. 그렇다고 다 잘 베지는 건 아니다. 어떤 때에는, 특히 늙고 깡마른 싸리나무를 만나면 낫으로 도끼질한다. 그럴 때면 빠직빠직 진땀이 돋는다. 부지런히 낫질하고 보니 여기저기, 무덕무덕 싸리나무가 놓여진다. 그만큼 기운도 쓴지라 등허리가 시큰해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돋는다. 땀도 들일겸, 낫도 갈겸 나는 눕혀놓은 싸리나무 우에 걸터앉았다. 그러고 배낭에서 숫돌을 꺼냈다. 숫돌로 낫을 가는 데는 5분여 정도 걸렸다. 나는 엄지손톱을 세워 낫날에 갔다 대봤다. 이것은 낫이 잘 갈아졌는지를 점검하는 절차다. 낫날에 손톱이 척척 붙는다. 날이 잘 섯음을 의미한다. 낫날을 시험해보다가 나는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오래전 그러니까 학교에서 갓 돌아온 내가 햇내기 사원증을 따고 방금 일을 시작해서 낫을 갈던 때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한번은 처음으로 나무하러 가서 낫을 간다는 것이 그만 낫과 숫돌의 접촉도를 잘 장악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갈다 보니 낫날이 주정뱅이처럼 이리 눕고 저리 번져지고 하여 무지 애를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숙련된 지금은 아무리 무딘 낫도 5분이면 날을 선득선득하게 세울 수 있다. 땀이 들자 나는 다시 낫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정오가 되자 조르기라도 하는 듯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허참, 그놈의 배가 시걱은 용케도 안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터벅터벅 걸어 수레께로 간 나는 벼단을 끌어당겨 깐 후 안해가 싸준 꾸레미를 헤치고 누룽지를 꺼내 씹기 시작했다. 게 눈 감추듯 잠간 사이에 주먹 만한 크기의 누룽지로 허기진 배를 달랜 나는 쉴 념 않고 이번엔 넓은잎딱총나무 줄기 베러 나섰다. 넓은잎딱총나무 줄기는 틀기 쉬운 데다 견딜성이 있어 맬감엔 제격이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오전에 한쉼, 점심참에 한대 하며 담배쉼을 거르지 않지만 나는 그런 쉼이 없다. 넓은잎딱총나무 줄기를 베여온 나는 발로 벋디디고 끙끙거리며 탈기 시작했다. 나무를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단을 묶는 작업도 쉬운 일 아니다. 여기에도 요령이 있다. 나무들을 잘 다듬어 반듯이 놓고 묶어야 단이 단단하고 미끈하게 묶어진다. 한동안의 신고 끝에 널려있던 나무들이 한단, 두단 시장진출 허가받은 상품으로 탄생했다. 나무단들을 수레 근처에 메여다놓고 이마의 땀을 훔치며 헤여보는 나의 얼굴엔 어느덧 흐뭇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한단에 2원씩 하는 나무 열다섯단이니 오늘 수입은 30원이군.’ 나는 또 생각을 굴려본다. ‘첫날 수입이 28원, 이튿날 32원, 오늘 30원이니 도합 90원이다. 새해 신문 주문금을 차곡차곡 모아야지.’ 새해 신문주문 기한이 당금이여서 무척 걱정이였는데 수입을 헤아려보니 내 마음이 금세 든든해지고 개운해진다. 신문이란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나는 신문에 남다른 애착이 있다. “여보, 떠놓은 밥이 다 식어요.” “미안, 요것만 마저 보고…” 이것은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나와 안해의 대화다. 나는 신문을 볼라치면 식사를 제쳐놓고 보는데 마치 ‘신문에서 밥이 나오는 듯’하다. 나와 신문의 교분을 말하자면 25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나는 초중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더는 나의 뒤바라지를 해줄 가정형편이 아닌지라 농촌에 돌아와 이루지 못한 진학꿈으로 매일을 실망, 고통에 모대겼다. 그때 신문과 책이 나의 아픈 가슴을 어루쓸어주고 따뜻이 손을 잡아주었다. 특히 어느 신문에서 본,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한 남성이 불행을 딛고 자전거수리를 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준, 진한 감동을 주는 사적은 실로 나에게 충격이였다. 거기에 힘입어 한때 집구석에서 고민, 방황하던 나는 마침내 정신을 번쩍 차리고 현실을 정시하게 되여 들끓는 생산 제1선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신문은 이처럼 미로에 빠져 방황하거나 좌절한 삶의 용기를 잃은 사람들한테 삶의 용기와 신심을 북돋아주고 길을 가리켜주는 가이드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이때로부터 나와 신문은 찰떡궁합처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끈끈한 관계의 친구로 되였고 경제적 여건으로 비록 신문을 주문해보진 못해도 여러 경로를 통해 적극 열독하였다. 지금은 신문구독이 별 문제로 되지 않지만 그때는 작은 산촌마을에서 신문을 빌려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뜻밖의 한가지 일로 하여 나는 신문을 빌어보던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주문해 보게 됐다. 그해 겨울, 어디서 신문을 얻어볼 수 있을가 생각을 굴리던 나는 향양로단에서 소조장직무를 맡고 있는 장동길네 집에 단위에서 주문해준 《연변일보》 등 신문들이 배달된다는 정보를 알고 찾아갔다. 아닌 게 아니라 거기에는 《연변일보》, 《길림일보(한문)》 등 신문 몇부가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신문무지를 본 나의 눈은 희한한 것을 보았을 때처럼 반짝 빛났다. 그중 《연변일보》를 골라 빌려온 나는 단숨에 둬번 읽었다. 나는 이튿날에도 그렇게 빌려다 보았다. 그런데 그 후 내가 신문을 돌려주러 갔더니 장동길의 얼굴표정이 왠지 무엇을 잘못 먹었을 때처럼 잔뜩 찌프러져있었다. “신문이 왜 이리 어지럽혀졌습니까?” “신문이 어지럽혀졌다구? 내딴에는 조심해보느라구 했는데…” 신문을 들여다봐도 별로 어지럽혀진 흔적이 보이지 않는지라 나는 송구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글 쓴다는 사람이 신문주문도 못하구 맨날 동네 돌아다니며 신문 비럭질이나 하면서…” 내가 신문을 빌려보는 것이 그렇게 눈에 거슬리고 아니꼬웠던지 이번에 장동길은 마음먹고 아픈 곳을 꼬집는다. “장동무, 꼭 그렇게만 말해야 되겠소, 빌려서라도 학습하면 좋은 일 아니겠소?” 장동길한테서 까닭 없는 모욕과 멸시를 당하자 전에 없는 분노를 느꼈지만 리지를 되찾은 나는 매를 드는 것보다 관용이 더 바람직 하다는 생각에 그만두고 말았다. 사실 전에 장동길은 내가 여러 신문에 경상적으로 소식 보도를 발표하는 것을 알고 상급에서 맡겨준 양로보수 임무를 완성 못하고서도 넘쳐 완성한 것으로 신문에 내여달라고 나보고 청을 든 적 있었다. 보도의 진실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는 나는 양로단일군들과 정황을 료해하는 과정에 장동길이 제공한 정보가 실제사실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 거절했던 일이 있다. 장동길한테서 무참을 당한 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신문을 자신의 힘으로 주문해서 떳떳이 보리라 작심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싸리나무 부업이다. “훌륭한 신문은 항상 독자들 앞에 성숙되고 다듬어진 자태로 나선다.” “한권의 책을 사귀는 것이 고상한 심령의 사람과 사귀는 것과 같다면 훌륭한 신문 역시 우리의 얼굴모습을 미용해주고 내심세계를 부각해주는 거울과 같다.” 이것은 일찍 선인들이 한, 신문과 책에 대한 고도로 되는 칭송이고 평가이다. 매체로서 신문, 특히 당의 기관지는 소식에 령통할 뿐만 아니라 다원문화도 품고 있어 품위 있고 박식한 선생이 되기도 한다. 신문과 함께 해온 20년 나는 신문을 요람으로 창작의 걸음마를 익혔고 창작기량을 련마하면서 충실히 성장해왔다. 1984년, 력사적인 전환점인 개혁개방의 물살을 타고 실시된 농촌 호도거리 정책의 우월성과 성과를 여실히 반영한 통신 는 《연변일보》에 발표되여 1등상을 수상하고 내가 쓴 가사 는 공연무대를 달구는 인기종목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조선족이 해내외 이르는 곳마다에서 울려퍼지는 애창가요로 거듭났다. 이 20년 사이 나는 한낱 신문원고 쓰기 열성자로부터 어엿한 특약통신원, 작가협회 일원으로 성장하면서 800여편의 통신보도를 신문, 방송에 내고 가사, 동화, 구연 등 150여편의 문예작품을 신문, 잡지에 발표하였다. 신문보도상 5차, ‘길림성과외문예창작적극분자’ 영예증서 등 주급, 성급 문예창작상 8차를 수상하면서 민족의 언어문자를 지키고 전승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었다. “야호, 오늘 성수 난다!” 싸리나무단을 두둑하게 수레에 박아실은 나는 아이들처럼 흥분되여 웨쳤다.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앞뒤산이 쩌렁쩌렁 메아리 쳐 울려퍼졌다. 석양빛을 밟으며 귀로에 오른 나의 심정은 흐뭇했다. 집가기 성급한 소도 마치 주인의 심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대가리를 내저으며 걸음에 박차를 가한다.   나는 지금 비록 문학이라는 꽃을 피우기엔 어려운 농촌에서 매일 체력을 파는 힘들고 고된 삶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산과 새와 교감하면서 생동한 시골풍정을 색채 있고 실감 있게 담아내는 농촌 1선의 통신원, 작가로서 나름대로의 추구가 있고 보람이 있어 뿌듯하다. 연변일보 
78    날아라, 민들레씨야 댓글:  조회:264  추천:0  2021-08-30
날아라, 민들레씨야 □ 문춘산 여름방학에 나는 꿈속에서도 그려보던 고향을 찾아갔다. 고향을 떠난 지 어제 같은데 어느덧 십년도 훌쩍 넘었다. 마을 안의 큰길에는 가로등이 설치되여있었고 집집마다 하얀 칠을 올린 철바자를 산뜻이 두르고 있었다. 터밭에 심은 감자꽃이 하아얀 웃음을  건네온다. 그제날의 고향이 아니였다. 나는 학교를 졸업한후 한동안 근무한 적이 있는 마을 뒤에 있는 소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은 꾹 닫겨져있었다. 대문 옆에 작은 문이 열려져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운동장을 꿰질러 교실 앞에 다가가 창너머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 넉줄로 놓인 책걸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시 몸을 돌려 운동장에 들어섰다가 문득 운동장의 잡초 속에 노란 꽃을 피운 민들레가 눈에 띄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여기저기에도 민들레가 자라고 있었다. 누구의 보살핌도 없지만 억척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파랗게 돋아올라 생명의 터전을 지켜선 민들레를 보는 순간 감개가 솟구쳤다. 내가 이 소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때 아이들은 봄이면 노오란 민들레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기도 했고 민들레씨가 바람을 타고 날리기 시작할 때면 그것을 잡겠다고 마구 뛰여다니기도 했다. 어느 날 업간휴식시간에 학급에서 키가 제일 작은 연이가 잉잉 울면서 교연실을 찾아왔다. 그 애의 헝클어진 곱슬머리 우에 하얀 깃털 같은 민들레씨가 가득 붙어있었다. 어느 장난꾸러기의 소행임이 틀림없었다. 누가 그랬는가고 물었더니 연이는 쿨쩍거리면서 준이가 그랬다고 대답했다. 나는 화가 치밀었다. 준이는 하루가 멀다하게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였다. 나는 다른 애를 시켜 준이를 불러오게 했다. 준이는 교연실에 들어서자 머리부터 푹 숙였다. 그때까지도 준이는 손에 민들레씨가 이미 다 날려 밋밋한 꽃대를 쥐고 있었다. 계집애처럼 얌전하게 생겼는데 곧잘 남을 괴롭힌다. 야단맞을가 두려워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나는 준이를 이윽히 지켜보다가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준이는 민들레씨가 왜 하얀 깃털 같은 날개를 달았는지 알고 있나요?” 나의 뜻밖의 물음에 준이는 눈이 올롱해서 나를 쳐다보며 머리를 저었다. “민들레엄마는 민들레씨가 멀리멀리 날아가 새 땅을 찾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라고 하얀 깃털 같은 날개를 달아준 거래요. 그런데 준이는 연이의 머리 우에 민들레씨를 뿌려놓았으니 그 씨들이 싹을 틔울 수 있을가요?” 내 말에 연이와 준이는 키드득 웃었다. “우리는 민들레엄마의 꿈을 소중히 여겨야 해요. 알겠어요?” “네!” 준이는 힘있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연이의 머리에 달라붙은 민들레씨를 하나하나 뜯어주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징징 울기를 좋아하던 연이는 어엿한 의과대학 학생이 되였고 장난꾸러기이던 준이는 외국으로 류학을 갔다. 연이와 준이처럼 외지에서 공부하고 사업하는 많은 애들이 지금도 자주 나와 련락을 한다. 그 애들도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올 념은 하지 않는다. 하긴 나도 그 애들이 모두 다시 고향에 돌아와 살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민들레씨는 하얀 날개가 돋쳤기에 민들레동네의 숱한 이야기들을 조그마한 가슴에 가득 안고 머나먼 곳으로 가서 민들레의 새 이야기를 심고 자래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방학으로 인하여 텅 빈 학교를 나서는 나는 아쉬움보다도 아름다운 기대가 더 컸다. 민들레씨야, 물기 어린 비옥한 흙을 찾아 저 멀리 훨훨 날아라. 자리잡은 곳에서 힘들고 어렵더라도 인내와 겸손으로 새로운 이웃들과 어울리면서 민들레동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많이 해다오. 연변일보
77    노페인, 노게인 댓글:  조회:250  추천:0  2021-08-27
노페인, 노게인 □ 미라클 “노페인, 노게인.”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가끔 이 말을 리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는 게 없고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나 자신을 볼 때면 그래도 가슴이 쓰라리기만 하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하느라 바삐 보내는 직장인을 볼 때면 나는 인생이란 단어에 대해 다시한번 회의감이 든다. 그리고 출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게 너무나 슬프다. 학창시절에는 부모의 돈을 펑펑 쓰면서 “어른이 된 후에는 꼭 돈을 많이 벌어 효도할게.”라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20대의 후반에 들어선 나 자신의 모습을 보니 예전에 부모 앞에서 한 다짐은 이미 거짓말이 되여버렸다. 래일모레면 서른, 어느새 나이를 이렇게 먹었을가. 분명 2년 전까지만 해도 난 24살이였는데. 분명 그때까지만 해도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하게 흘러 “언제면 졸업할가?” “제발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했는데. 사회에 나오면 전쟁터란 말을 들었을 때도 분명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때 되면 다할 수 있어.”라며 자신만만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되였을가. 노페인, 노게인.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런 것은 아니다. 돌아보면 나는 항상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어릴 적에는 성격이 내성적인 데다 말수까지 적다 보니 친구가 거의 없었다. 매번 동네 친구들이 뛰노는 모습을 볼 때면 무랍없이 친구들과 대화도 하고 장난도 치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도 그들의 그룹에 끼고 싶었지만 다가갈 용기가 없어서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었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무시했고 단 한명도 내 옆에 서주는 사람도, 내 편이 되여준 사람도 없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나의 학창시절은 불행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휴식시간만 고대 기다렸던 나, 공부하기 싫어서도 아니고 땡땡이 치고 싶어서도 아니였다. 휴식시간에는 복도에서 옆 반에 있는 베프(가장 친한 친구)랑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반에서 겪은 속상한 일들을 하나하나 털어놓으면서 나는 너에게서, 너는 나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리해가 안되는 바보 같은 짓이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서로의 위로가 간절히 필요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보며 “비슷한 것들이 같이 논다.”라며 놀리군 했다. 그때는 모를 문제가 있어도 도움을 청할 방도가 없었던 시절이였다. 선생님은 학생들끼리 서로 물어봐서 배우라 하고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누구도 나한테 가르쳐주려는 친구 없었다. 왜냐하면 ‘찌질이’와 말을 걸면 같은 찌질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아Q의 정신승리법으로 매일을 버티면서 어른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었다. 누가 봐도 취직도 척척 되고 성격도 싹싹한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세상 일은 항상 뜻대로만 흐르지 않았다. 내가 손꼽아 바라던 어른은 어디로 가고 별 볼일 없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비록 성격은 예전에 비해 많이 활발해졌어도 어디 가나 예쁨을 받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다. 취직을 하려고 면접을 보러 가면 “너무 퉁퉁해요”, “관상을 보니 저희 회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눈이 너무 선해서 사회와는 동떨어진 것 같네요”… 이렇게 이런저런 리유로 취직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가끔 회사에서는 인재를 모집하는지 아니면 연예인을 선발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석사 학벌에 다양한 실습경력 그리고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까지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갖은 리유로 여러번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이럴 때면 차라리 기술이라도 배우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사립학교 교원 면접을 갔었다. 매일 강의련습도 해보고 파워포인트 준비도 하면서 그리고 내 강의의 부족점을 미봉하면서 나름 열심히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결국 면접관이 나한테 하는 말은 “선생님과는 거리가 멀다.”였다.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말일 수 있지만 이미 여러번 탈락의 아픔을 겪은 나에게는 이 말이 마치 칼날과도 같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대체 뭐가 안 어울린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목소리요. 목소리에 힘이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누군가가 한 거친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이 지구를 떠돌다가 나무에게도 내물에게도 눈송이에게도 내려앉아 스며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자신과 다른 것은 포용하지 못하고 면접관은 왜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만 골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늘 노페인, 노게인이라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pain or no gain’이 되여버렸다. 즉 ‘고통은 있지만 얻는 것은 없다.’이다. 상처는 분명 아픈 것이지만 오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세상을 랭랭하게 살아간다면 인생의 주인자리를 ‘상처’라는 자에게 몽땅 내주는 것이란 도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매 한차례의 실패, 매 한번의 상처를 받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주저앉게 된다. 가끔은 정말 세상만사가 ‘노페인, 노게인’이면 얼마나 좋을가란 생각을 해본다. 도전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적어도 도전해보면 나에게도 취업문이 열릴 수 있다는 희망은 있을 테니까. 적어도 지금처럼 자신이 실패자란 생각은 들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나는 오늘도 별의별 생각을 한다. 공지영은 책에다 “고통만이 성장할 수 있게 해주죠. 하지만 고통은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걸 흘러가게 내버려두십시오. 가야 할 것은 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쓴 적이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겪은 모든 실패들이 어쩌면 나를 성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들을 썰물처럼 흘러가게 하면 나에게도 진정 나에게 어울린 취업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을지도. 나의 매 한차례 실패들은 모두 내가 성공으로 나아가는 자양분이 되리라 바라면서 오늘도 희망을 가져본다. 지금까지 온갖 설음과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이제는 기적만 남았을지도. 인생이란 올리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내리막길이였지만 나머지 몇십년의 생은 올리막길일 것이다. ‘노페인, 노게인’.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이 말을 되뇌여본다. 연변일보
76    귀향길과 귀가길 댓글:  조회:210  추천:0  2021-08-20
귀향길과 귀가길 □ 김승원 ‘귀향길’과 ‘귀가길’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운 ‘길’이다. 그러나 이 ‘길’에서의 느낌에는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여러분과 생활 속에서 흔히 겪는 ‘귀향길’과 ‘귀가길’에서의 소감을 공유하려 한다. 지난 5월 9일 나는 상해에서 코로나 백신접종을  끝마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귀향길에 올랐다. 국제표준과는 아직 6개월 차이가 있는 준로인이지만 고향에 간다는 리유 만으로도 전날밤은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과거 집체호 생활 때나 대학시절에도, 그리고 직장에서 출장갔다 돌아올 때면 ‘귀가’라는 두글자 때문에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내가 퇴직 후의 언젠가부터 ‘귀가길’과 ‘귀향길’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 정년퇴직 후 나와 집사람은 많은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모르게 손녀의 ‘노예’로 ‘몰락’했다. 비록 ‘림시’라고 하였지만 어느덧 5년철이 다가온다. 첫 몇달은 애들과 함께 그럭저럭 지냈는데 도심생활에 흥취가 없는 데다가 여러모로 불편하여 아들집에서 약 45킬로메터 떨어진 해변가에 거처를 잡고 따로 생활을 하였다. 애들은 내가 고독해한다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주말마다 손녀를 데리고 와서 하루이틀 묵어가지 않으면 한달에 적어도 한번은(코로나 류행 전) 리조트에 가서 1박2일씩 힐링하고 돌아오군 했다. 아들며느리의 효심은 너무 고마우나 가끔 즐거움에 뒤따르는 서운함도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말이 지나면 나는 또다시 독수공방하는 신세가 되니깐! 하루 삼시에 설걷이, 집안정리와 정원 가꾸기, 40분 정도의 운동, 두시간의 독서시간과 서예, 텔레비죤 시청 등으로 하루 또 하루가 느닷없이 흘러간다. 너무 적적할 때면 캔맥주 한잔에 노래도 불러보지만 결국은 나 혼자만의 무미건조한 생활이다. 주변에는 소통할만한 상대가 거의 없다. 의료계통에서 41년간 내과의사로부터 과장,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평생동안 할 말을 다 해서인지 퇴직 후 어느 땐가부터는 말할 수 있는 ‘벙어리’가 되여버렸다. 그러나 귀향길에 올라서면 나앞에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고향에는 내가 사랑하는 조상들의 뼈와 넋이 묻혀있다. 고향에는 어느 때건 진심으로 반겨주는 친인들이 있다. 고향에는 존경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청춘의 꿈을 키우던 동창들이 있다. 고향에는 한직장에서 다년간 고락을 함께 나눈 동료들이 있다. 고향에는 아무 때건 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생사친구가 있다. 고향에는 장백산과 두만강이 있는가 하면 모아산과 해란강이 있다. 고향에는 시원하고 달콤한 샘물이 있는가 하면 음이온 함량이 높고 가슴을 확 틔여주는 청신한 공기가 있다. 고향에는 산해진미는 아니더라도 아직 어머니 손맛이 살아있는 여러가지 김치에 토장, 청국장이 있다. 고향은 사계절이 분명하다. 백화만발한 봄도 아름답지만 불같은 태양빛에 짙어가는 여름의 록음은 더 가관이다. 황금파도 출렁이고 단풍에 물든 가을이 그림같다면 백설로 단장한 겨울은 동화세계를 방불케 한다. 고향에는 자연재해가 별반 없거니와 무서운 온역도 거의 없다. 말 그대로 천하명당이다. 나는 고향의 산천계곡, 일초일목도 모두다 사랑한다. 나는 고향의 친인, 친구, 동창, 동사자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나는 언제나 손님을 친인처럼 환대하는 고향사람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그러니 내가 어찌 귀향길에 미련을 두지 않겠는가! 지금의 나는 ‘귀향길’이 사무치게 그립다. 연변일보 
75    하늘을 높이로 (외 2수) 댓글:  조회:215  추천:0  2021-08-20
하늘을 높이로 (외 2수) □ 김향옥 높이 쳐다 보지만 비온 뒤 어쩌다 한번 피여나는 무지개처럼 오색령롱 자태를 나타내지 않고 더 자유로이 떠돈다   머리 숙여 깔보지만 비온 뒤 어쩌다 한번 땅우에 몸을 펴는 지렁이처럼 비굴한  자태를 드러내지 않고 더 평범히 얼굴 내민다   모두 하늘을 높이로 더욱 분주히 오가고 있다.   네가 한번   네가 한번 눈감아주고 얼굴 감추니 목말라 갈라터지는 땅도 원기를 회복하고   네가 한번 이불 덮고 잠드니 옹크리고만 있던 우산도 손에 받들려 꽃을 피우네   길게 여위여만 가던 개울물도 다시 살이 찌고 크게 높게만 보여지던 빌딩도 딛고 갈 수 있네   한껏 열정만 피우지 말고 때론 휴식하는 것도 좋으려무나.   엽 서   네모난 마음가짐으로 남의 인생 풍부히 조각했다   몸을 내번지고 찢기우는 흔적 날리고 일생을 마무리 했다   펼치면서 어제를 밀어내고 드러내며 오늘을 보여주고 뒤에 밀며 래일을 숨겨두고   한장 한장의 계곡을 넘나드는 그 속에서 나는 커갔다   키로만이 아닌. 연변일보
74    장미의 얼굴 댓글:  조회:262  추천:0  2021-08-03
수필 “장미의 얼굴" 수상 소감     류재순 약력: 중국작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공무원문인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명예회장. 중단편소설집 북경민족출판사/서울'과학과 사상사' 출판 . '도라지' 해외조선족 문학상', '설원문학상'소설대상 등 수상 다수 아침에 일어났는데 햇볕이 유난이 밝게 침상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구름 많은 하늘 아래 칙칙한 미세먼지까지 덮치며 마음을 우울하게 했던 날들이 말끔히 가셔진 것 같습니다.   이날은 확실히 좋은 날이었습니다. 저의 수필이 대상에 당선되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지요.   해마다 5월이 오면 저는 담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길을 뻗는 아름다운 덩굴장미들의 모습에 온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의 향에 유혹되어 버리고 그의 아름다움에 발길을 옮길 수가 없습니다. 불타는 정열과 가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장미의 얼굴을 바라보며 저는 끝없는 대화를 해 봅니다.  그것은 나만의 오월의 향수이며 산책입니다.   이 과정이 바로 작가들이 흔히 말하는- 자신 속에 있는 제2의 존재와 그렇게 만드는 세상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러다나면 반짝이는 깨달음과 감동적인 정서의 흐름, 그에 맞춰지려는 언어들이 마구 튀어나와 퍼즐처럼 맞춰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써놓고 보면 항상 완성품은 아닙니다. 못난 흠집을 꼭 어딘가에 숨겨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평생 창작이라는 멍에를 지고 있는 작가는 그 완성품을 향한, 끈질긴 추구라는 것이 생기나 봅니다.   항상 격려해 주시는 서병진 회장님, 그리고 저의 수필을 주목해 주시고 대상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수 필]   장미의 얼굴 / 류재순       서울의 오월은 빠알간 장미들이 핑크핑크 한창 뽐을 내는 계절입니다. 공원거리나 골목길을 거느릴 때면 어디에나 영락없이 담 밖으로 한껏 목을 내밀고 기다렸다는 듯이 길손을 반겨주는 덩굴장미들의 유혹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방글방글 꽃잎을 피우며 빵긋빵긋 웃는 모습에 눈길이 사로잡히노라면 생각지 않던 감동과 사색이 몰려옵니다.   벚나무, 철쭉나무, 진달래…이른 봄을 알리는 봄꽃들이 한 자취 흔적을 남기고 사라질 무렵, 서울의 들녘에는 온통 흰 눈꽃과도 같은, 아니 소복소복 가득 담은 입쌀밥 그릇 같은 이팝나무 꽃들과 노란 좁쌀을 중간에 살짝 섞은 조기 밥그릇 같은 조팝나무 꽃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깊어가는 초여름의 짙은 녹음 속에서 하얀 별천지를 이루는 경관 중, 모닥모닥 피어나는 빨간 장미들의 요염하게 튀는 얼굴들이 선을 보일 때쯤 되면 봄날이라는 아름다운 한 폭 유화의 마지막 완성품이 됩니다. 마치 다 그려진 물고기에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 넣어 살아난 눈부신 생명체를 발견하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아마 장미는 오월의 여왕으로 불리는 가 봅니다.   겹겹이 피어나는 장미 꽃송이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 순간 그 송이 송이들은 하나의 이름 모를 얼굴로 떠오릅니다. 그 얼굴 속에서 나는 잔잔한 숨결을 느끼고 그 속에 묻혀있는 희로애락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슬을 머금은 아침 장미도 약동하는 생명의 구술 빛으로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슬픈 눈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숨겨놓고 있는 가시도 가끔은 톡 쏘는 사이다 같은 여인의 신선한 매력으로 보이고 가끔은 또 옛날 춘향이 같이 절개와 자존을 지키는 수호천사와도 같은 아름다움으로 보이며 어떤 때는 독을 품은 여자의 한으로 보이기도 한답니다.   내가 갓 한국에 왔던 한 20여 년 전 일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동포들의 합법체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여서 중국에서 남 부럽지 않은 공직으로 일하던 많은 친구 까지도 생전 해보지 않던, 3D 업종에서 숨어서 일할 때였습니다.   그해도 덩굴장미들은 봄을 맞아 어김없이 무더기로 피어나며 울바자 밖으로 빠끔빠끔 얼굴들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미꽃 얼굴을 보는 내 마음은 한없이 우울했습니다.   어쩐지 울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장미의 모습은 울안에 갇혀 숨어서 일하는 우리의 얼굴 같았고 생계를 위하여 한국 늙은이에게 시집온 고향 아줌마 고향 아가씨들 같다는 생각이 울컥하고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혹은 사랑하던 고향 머슴애를 버리고 한국 땅에 들어온 그녀들의 슬픈 영혼이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숨 막히는 담벼락 안이 싫어서, 그리운 고향 모습을 찾아 저렇게 매일매일 담 밖으로 한 많은 얼굴을 내밀고 뻗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얼굴을 다독여 주려 했습니다. 따끔하고 벌침에 쏘인 듯 손끝이 아팠습니다. 금방 빨간 피가 맺히더군요. 그때 나는 장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슬픈 얼굴엔 숨길 수 없는 매서움과 한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아, 내가 가시 장미의 아픈 상처를 건드렸구나!…”   나는 물 젖은 마음으로 장미들의 곁을 떠났습니다.   오늘 나는 또 넝쿨넝쿨 담 밖으로 뻗어 나오는 오월의 장미꽃 울바자 길을 산책하고 있습니다. 마침 5월 14일 로즈데이 날이군요. 로즈데이는 미국에서 꽃가게를 하던 청년이 자신의 연인에게 가계의 장미를 모두 바치며 사랑을 고백한 날이랍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들은 장미꽃을 선물하는 유래가 되었다는군요. 열렬한 사랑의 빨간 장미, 첫사랑의 주황 장미, 순결의 하얀 장미, 질투의 노란 장미…제 가끔의 사연과 의미가 있다네요.   그러고 보니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군요. 브로커에게 거액의 돈을 들여서 한국에 와서도 숨어서 일한다는 사연도, 돈 없는 동포 여자들이 혼인이라는 비극적인 절차를 밟아 한국 땅에 정착했다는 얘기도 이제는 모두 옛말이 되었습니다. 체류가 합법화된 고국의 땅에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동포 여성들의 별빛 같은 얘기들은 무시로 우리의 가슴을 흥분시킵니다. 그들은 자유로이 고향과 고국을 넘나들면서 금융계에서 상업계에서 학계에서 언론계에서 지어는 정계에서까지 능력과 활약을 돋보이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빌라를 사고 상가를 운영하며 축적된 부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며 대통령상까지 탄 여걸들도 있습니다. 특히 끊임없이 고국에 유학을 오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 분발하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새로운 전망을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제는 적잖은 고국의 젊은 남자들이 우리 멋진 동포 아가씨, 아줌마들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쉿, 이건 지금 장미들이 숨겨놓은 스팩입니다.   이런저런 사색에 묻혀 장미꽃이 휘늘어진 울바자 밖 길을 걷노라니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장미꽃 향이 물씬 가슴에 안겨 옵니다. 그 향은 저 멀리 서 있는 아카시아 나무와 라일락 꽃나무의 향과 어울려 정말 환상적입니다.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붉게 타고 있는 장미꽃 송이를 들여다봅니다. 요염하고 화려하고 콧대가 잔뜩 높아 보입니다. 그 속의 가시를 한번 건드려 볼까요? 아니요, 자존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아픔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그 싱그러운 향기의 유혹을 물리치긴 쉽지 않네요.   빨간 장미는 열정 욕망 기쁨 아름다움의 상징이랍니다. 나는 지금 그 열정 욕망 기쁨 아름다움을 그 얼굴에서 분명 보아냈습니다. 그것을 수호하기 위한 숨어있는 가시의 깊은 뜻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도 아직 저런 열정 욕망 기쁨 아름다움이 남아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으며 꿈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밤을 새우며   타자하며 사색에 사색을 멈추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실패를 거듭할 때가 많지요. 그러나 이튿날이면 그 욕망은 다시 살아납니다.   어느 날, 자그마한 성과를 이루었을 때 그 찰나의 기쁨과 환희는 나를 미치게 하며 그 누군가에게 왕창 사랑을 주고 싶어집니다. 물론 나에게도 빨간 장미의 열렬한 사랑도 있지만 노랑 장미와 같은 질투도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 하기도 하고 가슴앓이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창피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내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잖아요.   가끔은 이 노숙한 가슴에도 흰 장미와 같은 순수성과 천진성이 있답니다. 세상천지를 모르는 소녀같이 깔깔거리곤 하지요. 그래서 자신에게 아직도 미래를 가진 동심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이 모든 속성 사색 갈망들은 분명 내 얼굴에 다 쓰여 있을 겁니다. 장미의 얼굴만큼 아름답진 못해도 말입니다. 내 마음도 오래오래 핑크핑크 오월의 장미를 담고 싶습니다.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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