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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김선숙 수기] 친구가 울고 있다 댓글:  조회:271  추천:0  2021-11-24
나는 늘 한편의 글이 완성되면 친구 순희에 게 수정 아니면 제목을 부탁하군 한다. 오늘 도 예외없이 글이 완성되자 순희에게 수정를 부탁했다. 돌아온 대답은 심드렁했다.순희는 늘 내 글을 한글자라도 빠드릴세라 꼼꼼히 보고 서평 쓰 듯이 여차여차하다고  지적해주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결론 한마디 뿐이다. "괜찮은 것 같아. 투고해도 되겠어."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위쳇으로  방호복 차림의 사진한장 날아왔다.  '어~? 이거 뭐 지? ' 짧은 순간에 뇌를 스치는 수만가지의 추측과 불길한 예감에 떨리는 손으로 폰다이얼 을 눌렀다. 나는 다짜고짜로  "무슨 상황이야? 방호복은 왜?" 위드코로나 단계로 들어간후 요양시설들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고 확진자수가 가 파르게 증가되고 있어 불안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나는 민감해졌다. 나의 친구들은 모 두 간병일을 하고 있다. 요즘 같은  비상시 기에 우리는 아침에 서로 너희는 괜찮냐하는 문안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아침에도 안녕하다고 했는데...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일주일전 병원에 코로나19 확진자 2명이 나왔고 이틀만에 확진 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병원은 코호트 격리 가 되였다. 코호트격리의 병원 분위기는 우리의 상상 그 의상으로 긴장하고 불안하다. 삭막함에 가까울 정도로 공포를 느낀다. 각 자 방호복과 마스크로 무장하고 그 시각 부 터 격리대상자가 되어 담당병실에서 나와서도 안된다. 병원은 초비상사태에 들어갔다. 속 깊은 순희는 두려움에 떨고 있으면서도 친구들이 걱정할가 일주일이나 아무렇 지도 않은양 문안만 주고 받으면서 버텨왔 었다.  나는 뭐라 위로해야 할지 할말을 못찾는데 괜찮다고 견딜만하다고 순희가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첫 확진자 나오고 열흘만에 간병인 30명중 20명이 감염되었고 순희가 맡은 병실에도 2명의 어른신이 감염되었다. 확진자가 전담병원으로 제때에 이송되 지 못하기에 확잔자와 미감염환자가 같은 공간에서 5일이나 함께 했다.어르신들이 치매를 다소 앓고 있기에 확진자나 미감염 자나 마스크를 씌워드리면 벗어버리고 종 일 썻다 벗었다를 수없이 반복한다. 식사와 배변배뇨 위생관리 및 체위변경등 모든 케 어에 밀접한 신체접촉을 하는 간병인에게 도 확진자가 속출할 수 밖에 없다. 슬프게 도 간병인은 감염되여도 제 위치에서 계속 환자를 돌봐야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코 로나 전담병원 간병인력의 부족으로 확진 자가  전원하면 간병인도 함께 전원해야 하 는 사실이다 . 확진자가 전담병원으로의 이송이 신속히 이뤄지지 못하고 코호트격리만 하니 미감 염자도 점차 코로나에 걸리게 되고 확진자 를 돌보는 간병인까지 감염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순희가 돌보던 6명의 어르신중 선 후로 5명이 감염되였다. 아무리 개인방역을 철저하게 할지라도 응암병실도 아니고 일발병실에서 확진자와 24시간 함께 하고 있으니 사실 감염에 무방비상태로 있다고 봐야한다. 병원 내부에서 확진자가 갈수록 확산되고 말그대로 아비규환  상태다. 확진 자와 미감염자를 한데  가두는  격리가 되 였다. 확진자와 24시간 노출되는 현장  간병인은 제대로된 보호장치도 휴식 공간도 없이 괜찮을 거라고 견디라고만 하는 상황, 병동은 전면폐쇄 됐고 확진자  증가하니 격리도 못 하고 간병인은 각자 자기위치를 지키고 일 을 해야 한다. 하여  확진된  간병인이 미확진 환자를, 미감염간병인이 확진환자를 돌봐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확진자와 분리된 휴식공간을 달라는 간병인의 항의에 복도에 의자 몇개를 붙혀놓고  쉴수 있게 해주었다. 사실 요구하지 않아도 해결해야 할 사항인데도 항의 후 조치하는 걸 보니 도대체 방역지침과 간병인에 대한 인권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순희는 아무도 간병인을 보호해 주지 않는 다는 생각에 설음이 북받쳐 나하고 통화하 면서 울먹인다. 야무지고 웬간해서는 감정 에  휘말리지 않는 대범한 친구인데 이때는 외롭고 슬프고 불안과 공포의 감정이 교차 되면서 서러웠다. 친구의 울먹임에 나는 눈물을 주체할수 없었다. 방호복 입고 복도의 의자에 쪼그리고 누워있는 모습은 내 마음을 사정없이 때린다. 가슴이 시려 더는 견딜수 없다.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불안할까? 매사에 그토록 긍정적인 친구인데 순간순간에 몰려오는 공포와 두려움에 가슴이 뛰고 혈압이 올라 약 먹고 안정을 취해야 했다.뭐든 해야겠다. 친구와 그 동료들을 구축해야겠다. 경북 청도 대남정신병원의 비극이 지금 여기 요양 병원에서 재현되고 있다. 세상에 알려야 한다. 순희는 어쩔수 없이 확진자와 미감염환자를 같은 공간에서 수 일을 간병하였다. 확진자를 분리시켜 달라는 항의끝에 6일만에  확진자를 이송해 갔는데 또 한명이 감염되였다. 확진자를 분리해달라고 간호과에 요구해도 기다리라는 답변 뿐이다. 간호과장 을 찾아 항의 했다. "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확진환자를 분리 해 주세요." 까칠하고 매정한 간호과장의 쌀쌀맞게 톡 쏘는 말 "싫으면 나가세요." 너무 화가 났다. 친구는 화를 참지 못하고  말씀 드렸다 . "이건 아니 잖아요. 이런 방역이 말이 되 냐구요" 지극히 정당한 요구인데, 확진자와  24시 간 접촉하고 지친 간병인에게, 안전도 보 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간병인 에게 하면 안 되는 말이다 .얼마나 황당한 지 더 말하지 않아도 짐작 하실 거라 생각한다. 순희는 뒤통수에 냉수 퍼풋고 가슴에 비수가 꽂힌듯한  아픔을 느꼈다. 이에 분노 했다. 확진자까지 간병하면서 버티고 버텼는데 돌아온 답은 "가세요" 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눈 물로 지켜온 방역수칙이 이 병원에서는 처참히 무너져 간다. 아무튼 간호과장과 그렇게 싸우고 잠도 오 지 않아서  뜬눈으로 밤을 새고 병원을 이탈하기로 하였다. 지속적으로 확진자가 발 생하는 상황에서 코호트격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불확실하고 병원측의 신속한 대응도 없는 상황이기에 코로나의 현장을 떠나기로 하였다. 아침 일찍 구역보건소 소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을 나가고 싶다 했다 .수 년을 희로애락을 함께한 어르신들 과 동료들을 뒤로하고 보건소에서 지정한 방역택시를 타고 사비로 마련한 격리 월세 방으로 옮겼다. 순희는 울었다. 2년6개월 보살펴오던 어르신들을 코로나 의 화염속에 남겨두고 혼자만 탈출하기가 미안하고 마음 아파서 서럽게 울었다. 어르신들을 끝까지 보호해 드리겠다는 보호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에 회한 의 눈물을 흘렸다.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을 떠나는 책임감의 무게를 뼈아프게  자책하면서  눈물로 폐쇄된 병원을 나섰다. 병원을 나와서 격리 3일 째 되는 아침이 밝아온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착잡하다. 온통 격리된 병원 걱정 뿐이다. 눈감으면 전담병원으로 이송되면서 치료받고 올때까지 꼭 기다려 달라시던 금궤 할머니, 정신이 가물가물하면서도 애처롭게 바라보시던 시장할머니, 왜 가느냐고 손 잡고 놓지 않으시던 옥이할머니, 어르신들 생각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찡~함이 가슴 에 울린다. 치료센터에서 돌아오시면 어머니 꼭 돌봐 달라던 보호자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가슴을 아프게 허빈다. 유일하게 감염되지 않은 영옥할머니 보호자는 간병사가 열심히 돌 봐준 덕분에 지금까지 무사했는데 그만두시면 우리 어머니 어떻게 하냐고 발을 동동 거린다. 보호자의 애달픔이 전화기 너머에 서 귀를 때린다. 순희는 밝아오는 아침을 맞으면서 우리 어 르신들이 코로나를 이겨내고 건강하게 귀 원  하시기를 두손 모아 빌고 또 빌어 본다. 먹먹해진 가슴을 안고 울다가는 기도하고 기도하다 가는 눈물 범벅이 되군 한다. 내 친구 순희는 눈물로 세상에 호소한다. 2021년 11월 22일  동북아신문
172    거미줄 (외 7수)□ 김경희 댓글:  조회:284  추천:0  2021-11-12
거미줄 (외 7수) □ 김경희 낭창낭창 바람이 불어도 끊기지 않는 선의 미학   한뜸한뜸 무늬 잡은 엄마 사랑 꽃방석   허공중에 걸리여 그리움 자아낸다.   아빠향   바람에 하느작이는 귀룽나무 흰 잎사귀   바람타고 날아드는 실큼한 향기   어쩌면 희끗희끗 머리칼이 땀내 싣고 날리는가   마음 덥혀 안겨오는 아빠향.   그대 봄이 온다   그대 다가오는 소리에 풀잎은 푸른 물 머금고 여린 맘 활짝 열어 나막신 끌고 마중 나선다   의젓이 다가서는 그대 모습에 민들레는 노란  옷 받쳐입고 수집음에 젖어 이쁜 미소를 짓는다   그대 봄을 맞는다.   징검다리   물수제비 날리여 징검다리 놓는다 각일각 야위여가는 서산해를 지켜보며   유독 님만이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주홍시가 익어가는 사랑다리를 놓는다.   숲 사랑   눈을 감고 귀를 열면 들려요 귀를 막고 눈을 열면 보여요 마음 안에 들어와 앉은 숲처럼 설레이는 사랑 울대마저 꼴깍이게 하는 그대 사랑이 이 한몸 다 녹여가요 사랑해요 가을 숲 그대   꽃에 담아보는 마음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생긴 빈 자리 하나   그 빈 자리에 구절초를 따다 심었다 주옥 같은 꽃 빈 마음 꽉 채워달라고   소금같이 귀한 사랑이였음을 왜 이제야 알게 되는 걸가   사무치는 사랑을 구절초에 담아본다. 별에서 온 사랑   창문 밖 빠끔히 지켜보는 작은 별 하나   작은 마음에 작은 별 하나 심는다   어느새 안기여주는 은은한 향기 한올   톡톡 뛰는 심장이 느끼고 살풋 웃는다   별의 사랑이여.   락화류수   피고 있는 꽃은 설음을 모른다 봄기운에 젖어 열창 할 뿐이다 부서지는 아픔을 겪을 때라야 는개 속을 헤매고 있었음을 느낀다 목청 떨어 웨치고 싶어도 이젠 동동 떠가는 상처부스러기들 뿐   아픔이 강물 덮고 흐른다. 연변일보 
171    [수필]죽음의 여운 댓글:  조회:232  추천:0  2021-11-09
죽음의 여운 천숙    며칠 전에 내가 십여 년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한국 할머니가 향연 84세로 영면하시였다. 그렇게 마음 고우시고 현명하시던 할머니, 첫 한국생활에서 외로움과 서러움을 가득 안은 나를 이해해주시고 위로주시던 할머니, 손자,손녀들앞으로 달마다 대학 학자금 저축을 해주시던 할머니셨다. 며느리도 딸처럼 이해해주시고  80세에도 봉사하러 다니시며 그렇게 즐거워하시고 행복해하시였다. 나는 그 할머니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어가리라 마음 속으로 다졌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에게도 한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친딸이 부모형제들과 거래를 끊고 산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 밖에 안되었을 때였다. 나에게 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예날 고속버스기사였는데 열심히 사셔서 자식 셋을 모두 명문대에 보내셨다고 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재산문제로 딸과 모순이 생기면서 딸이 친정과 인연을 끊었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하면서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페암으로 앓으시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명의로 되었던 집을 할머니명의로 이전해주시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딸은 아들에게만 재산을 넘겨주려고 그런다고 노발대발하면서 친정에 있는 자기 사진을 다 가지고 가면서 이제는 친정과 인연을 끊고 살겠다고 했다고 하였다. 그 후로부터  딸은 전화도 안받고 손군들도 외할머니의 전화를 못 받게 하였다. 할머니는 아들들을 더 생각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친어머니가 아들을 낳지 못해서 아버지가 새 부인을 맞이하여 아들을 낳아 엄마가 괴로워하던 일이 자꾸 떠오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릴 때부터 남존여비사상이 생겼다고 하였다. 본인이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으니 너무도 대견스럽고 행복했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딸도 배아파 난 자식인데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는가면서 섭섭해하셨다.    할머니의 여동생을 통해서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라고 하였다. 딸의 요구가 무엇인데요?라고 내가 물었더니 십 억이 넘는 집을 팔아서 작은 집으로 할머니가 이사를 가고 나머지는 자식들에게 분배해주고, 자식들이 달마다 할머니에게 생활비를 주면 되지 않는가고 했단다. 들어 보니 사위는 대기업에서 높은 직함을 가지고 있어 월급도 상당히 높았다. 할머니는 자식들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할아버지의 피땀으로 산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고는 방을 세 놓아 자식들의 도움이 없이 생활하셨다. 알뜰살림으로 모은 돈은 손군들에게 대학 학자금 저축을 해놓으시군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퇴근하고 서울대병원장례식장으로 달려 갔다. 다행히 11월부터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거리두기 단계가 많이 풀리여서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이 적지 않았다. 두 아들며느리, 할머니의 여동생, 여동생네 자식들 모두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는데 한번도 본 적 없는 할머니의 따님만은 조문객들에게 인사도 별로 안 나눈채 한쪽 구석에 앉아서 소리없이 울기만 하였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참회의 눈물일까? 애통의 눈물일까? 아니면 친정엄마에 대한 원망의 눈물일까?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공통된 특징은 누구에게나 흘려야 할 눈물이 있다. 눈물은 슬픔과 아픔, 감격과 기쁨과, 분노와 사랑 등 감정을 응축시켜 흐르게 하는 신비이다. 우리는 눈물을 통해 아픔과 슬픔을 씻어내고, 눈물을 통해 감격을 더 풍성하게 터쳐 낸다.그러므로 우리가 흘리는 작은 눈물방울 하나에도 무수히 많은 의미들이 담겨져 있다. 그 눈물의 진정한 의미는 당사자 본인밖에 모르는 것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벌써 변호사를 통해 미리 유언장을 작성해놓았던 것이다. 세 자식 아들 딸 차별없이 유산을 똑같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었다.    논어에서는 효를 단순한 효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효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경우도 아주 드무나 오히려 논어의 주제는 仁이나 군자같은 존재라고 보고 있다. 공자는 효제가 인의 근본이고, 모든 도덕과 행실이 효제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하였다. 효는 부모에 대한 윤리이고 仁은 흔히 人과 二의 합자로서 두 사람의 관계를 뜻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할 수 있는 원리가 곧 인(仁)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맺는 것은 최초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되고 이어서 형제간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모든 인간관계의 시발인 부모와 형제간의 관계는 모든 윤리의 시발이고, 또한 인(仁)의 기초가 된다. 조선의 교육사 회고록의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소수림왕 2년 (기원전 372년) 때 공자의 사상이 전해졌고, 철학교육으로, 그 핵심은 인효 仁孝가 중심이 된 교육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인효사상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큰 수난을 겪게 된다.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 교육정책이 우리 효사상의 원뿌리와 정맥을 자르더니 서구사상의 강한 파도가 밀려들어와 효사상과 노인공경사상을 흐려놓았다. 이로 인해 사회는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다.  가족끼리 희생이나 양보를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는 지나간듯 하고,  청소년 인성문제도 아주 심각하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단적으로 말해서 자녀양육의 원뿌리를 망각하고 조선민족의 전통사상의 정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국정과제와 교육정책의 방향은 "효문화와 인성"에 역점을 두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보게 된다.   할머니는 긴 여운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 과연,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부모로 자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행복은 무엇일까? 돈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천숙 수필가/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동북아신문
170    95개 계단(궁금이) 댓글:  조회:239  추천:0  2021-11-04
  글 궁금이 · 방송 리국호                 “지하철을 타면 45분이 걸리는 출근이 운전하니 1시간20분이 걸렸네요.”       “기름 쓰고 걷기 운동도 못하고 시간도 랑비했네요.”       “편하자고 배운 운전인데 이게 뭔가요?”       “교외에 놀러갈 때나 운전하고 평일에는 대중교통이 편해요.”       “애 학원 갈 때나 주말에만 운전해야겠어요.”       후배가 운전을 금방 배워 출근하면서 받은 감수를 토로하면서 주고받은 대화다. 대중교통을 리용하자니 붐비는 게 싫고 운전하자니 길이 막히는 게 출근족들의 공통의 고민이다.       나도 어지간히 심심했는지 어느날 지하철을 타면서 역에서 계단을 몇개 오르는지를 세여봤다. 두개 역에서 갈아타는 과정에 작동중인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올라가는 것까지 합치면 95개 계단이다. 원래 에스컬레이터는 손으로 잡고 그 자리에 서서 타는 게 안전 상식이지만 아침 출근이 급한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 듯이 그 우에서도 걷는다. 그걸 배려하여 먼저 탄 사람들은 오른쪽에 일렬로 서서 피해준다. 안전이나 에스컬레이터의 마모에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현실은 그렇다.       한국에서 “전국노래자랑”으로 널리 알려진 송해 선생님의 건강비결에 대해 물었더니 대중교통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역까지 걸어가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지하철을 리용하는 게 출근하는 김에 운동도 겸하는 좋은 수단이라고 했다.        인류에게 있어서는 기여다니다가 직립보행으로 진화한 것만으로도 천지개벽 각골난망의 고마운 일인데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걷고 나니 또 다른 편리함이 고파진다. 사회발전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이고 당연한 추구이다. 천키로가 넘게 떨어진 고향에 가는데 비행기를 제쳐두고 공유자전거를 타고 가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걸어가라는 것보다는 자전거가 또 훨씬 낫다. 모든 게 상대적이다.        “서쪽 끝에서 출근할 때는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사무실 근처에 이사오고 보니 그때는 어떻게 다녔나 싶더라.”       사무실 선배가 멀리서 출근했을 때의 감수와 사무실 근처로 이사온 뒤로 느끼는 바를 비교해서 해준 말이다. 편리한 조건이 엄연히 주어졌는데 그걸 마다하고 굳이 어려운 선택을 할 리유는 없으니 당연한 말이다. 그럼에도 출근이 가까우면 두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첫째, 그래도 잠은 모자란다.       둘째, 분을 단위로 세면서 계산하다가 지각한다.       “코앞에서 더 늦는구만”       매번 모임 때 보면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온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풀잎에 손을 벤다고 걸어서도 충분히 제시간에 도착한다고 장담한 거리에서 늦어진다. 가깝다는 건 길이 안 막힌다는 의미일 뿐이지 다른 불확실한 요소는 두루 다 갖추고 있다. 이를테면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유난히 늦다든가 사무실 문을 잠그려는데 운 나쁘게 상사가 부른다든가 중간까지 왔는데 휴대폰을 두고 왔다든가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오랜만이라며 물고 놓지 않는다든가 집에서 나오고 보니 어쩐지 가스불을 끈 것 같지 않아 불안하든가 등 예상외의 상황은 쉽게 생긴다. 이제 차가 막혀서 늦어졌다는 정도는 당사자가 입에 올리기도 미안하거니와 듣는 사람도 납득이 가지 않는 구실로 되였다. 한청사안에 있는 회의실에도 늦게 와서는 걸상을 와락와락 움직이는 소리를 내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데 차와 자전거와 행인이 교차하는 도로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지각은 마음과 성의의 문제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어유?”       한국 충청도에서 유명한 말이라고 한다. 소수레를 몰아도 지각은 하지 않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는데 벤츠로 분초를 재여가면서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앞에서 길을 막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로 보면 된다.       천안문광장에 국기게양식을 보러가는 사람들은 절대 늦지 않는다. 해 뜨는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불원천리 수도까지 놀러와서 아침에 겨우 눈을 집어뜯으면서 천안문까지 달려갔는데 국기는 이미 구중천에 올라가 있으면 그이상 더 큰 랑패가 없다. 그래서 1시간을 먼저 도착할지언정 1분을 늦지 않는다.        95개 계단은 계단마다 간격이 일정하다. 오늘 몇분 걸렸으면 래일에도 몇분 걸리고 그렇게 일년을 시종일관 정해진 시간으로 틀림이 없다. 아무리 아득히 높은 목적지도 한발짝 내디디면 한계단만큼 가까워진다. 그렇게 95 계단을 올라오고 나면 100번째 계단이 바로 눈앞에서 기다린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배려하는 것도 일종 기초적인 례의다. 중국조선어방송넷 
169    김선희(윤형)의 시 가을앓이(외 6수) 및 평론 두편 댓글:  조회:206  추천:0  2021-10-29
  ►가을앓이     윤형  (김선희)   더이상 청운의 빛을 더듬지마라 몸살을 앓는 꽃들의 빛깔만으로는  생의 진수를 가늠할수없기에 달빛의 밋밋한 숨결을 받아들여야지 바람에 흩어지는 숲의 아우성처럼 뿌리 내리지못한 잎새들의 비명이 무너지고나면 옹이를 품은 천년송목*에도 피빛 저녁노을이 물살져오더라 그 차분하면서도 벅찬 윤슬앞에 나는 늘 가슴 텅 빈 죄인이 된다 육신에 스며드는 푸른 어둠이다가 만개한 빛자락의 여백이다가 가을은 천상의 향기를 남겨놓은채 저문 들녘의 침묵속으로 휘영휘영 나를 끌고 가는구나   달이 기우는것을 탓하지마라   * 송목 = 松木明子     ►채워도 채워지지않는것    세상의 한끝이다 허상들만 가득찬 도시의 언저리에 피빛을 태우다 남은 노을이 진다 붐비는 인파속에서도 날개안으로만 그림자를 드리우는 도시의 자세를 스케치해본다 이방인에게 쉽게 허락하지않는 하늘과 땅속 어딘가라도 파헤치면 길이 열릴것같은 막연한 기대들에 부풀어오르다보면 꿈을 향한 구멍들은 열릴수있을가 색이 바랜 달이 뜰때쯤 작은 부끄러움마저 여미고 희미한 뜬구름이라도 잡아보고싶지만 내 여린 손을 뻗을 여백은 어디에도없다   채워도 채워지지않는 가슴 빈자리     ► 락화의 흔적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지축을 울리며 뼈들이 부서지는 소리 마지막 울음마저 토해버린 음지와 양지의 피를 쏟는 군무 한바탕 소나기 지나고나면 날개잃은 새들처럼 꽃이 추락한다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을 가슴 깊이에까지 끌어모아 품은것 이상으로 생을 갈무리하는 꽃들의 순수앞에 무슨 말이 위로가 될가 락하하는 순간 탈바꿈하며 한톨의 씨앗이되어 탄생을 알리는 죽어서도 죽지 않는 생의 원혼이여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시린 가슴으로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뭉클해지는 엄마의 살내음이 뿌리 깊은 숨결로 꽃을 피우고있었네 울다 지는 부상화(扶桑花)꽃잎처럼 굽이굽이 차오르는 여러겹의 빛깔사이 그대의 능선을 딛고  그대의 강을 넘어  억겹으로 요동치는 생의 빛살이 내게로 전해지고있었네 새삶을 위해서만 가랑비는 내렸네 싸리문 너머로 멈추듯 흐르던  부드러운 샘이  바위끝 심장을 뚫고있었네 빛 고운  엄마의 치마자락이 천상의 날개를 펼치고있었네     ►돌의 아리아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영겁의 시간 몸 속 응어리는 슬픈 구멍으로 뚫리고 가장 먼곳으로부터 달려와 반겨주던  피빛 노을은 온기를 잃어가고있습니다 더 이상 낮아질수없는 육신은 담벼락 기여드는 잎새처럼 한잎 두잎 석화들이 모여 작은 위로를 주지만 그것 또한 옛노래처럼 흘러갈듯 아파도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슬퍼도 가랑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바람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 고개를 쑤욱 쳐들고싶지만 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 인과율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채 만추 끝자락에 촛대바위로  멈춰섰습니다   찌든 내 껍질은 어둠의 뿌리에 헝클어지고 꽃이 시들어가는 초화언덕에  오늘도 가난한 뻐구기는 울다갑니다     ►석류   유리창 너머로  석류가 아프게 매달려있다 몇오리 바람이 찾아와 무어라 귀엣말 전해주듯 찌르륵 찌르륵 어디선가  풀벌레소리 땅을 울리고있다 떨어지면  금새 눈물날것만 같아   유리창 밖 ! 우주를 손바닥에 내려놓은 잎새 하나 햇살이 감겨들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황칠나무     태줄 묻어  몸의 조각들을 어둠속에 깔아놓았습니다 얽혀있는 매듭들을  노오란 수액으로  한올씩 풀어내며 버려야할 세상 찌꺼기들을 걸러냈습니다    천혜의 숨결이 닿는곳에 여울치는 물살에 씻기다 주상절리의 넉두리에 귀를 잃다 세상의 빛에 뿌리를 내린다지요   나무잎 흔들릴때 천년의 달은 어둠을 더듬어 지상에서 가장 령롱한 열매를 맺습니다   꽃은 꽃으로만 피지않고 나무는 바람에게 길을 묻지않습니다. 김선희 프로필   연변작가협회 회원.연변시인협회 회원 시 《비》중국조선족명시집에 수록. 제2차 세계아동문학대회 참석. 시집 《석빙화》출간 아래 김선희 시에 대한 두편의 평론을 게재한다.   ▣ 비평 / 우상렬 생명, 혈연, 현대성 찍고―     윤형(김선희)의 근작시를 몇수 읊어보았다. 생명노래가 가장 진하게 울려퍼진다. 〈락화의 흔적〉, 〈홍시〉, 〈원일초〉, 〈바람의 언덕에서〉가 이에 해당한다.   〈락화의 흔적〉을 좀 보자. 여기서 〈락화의 흔적〉은 무엇이든가? 그것은 “한톨의 씨앗이 되여 / 탄생을 알리는 / 죽어서도 죽지 않는 생의 원혼이”다. 그것은 죽으면서 삶을 잉태하는 죽음과 삶의 변증법이다. 그런데 이런 변증법은 처절한 ‘음지와 양지의 피를 쏟는 군무’를 통해 나타난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갈무리하는 ‘꽃들의 순수’한 생명의 승화에 다름 아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딛고 탄생한다. 죽음과 삶의 변증법이 되겠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생명탄생의 보편적인 리치다. 이 시는 바로 이런 생명탄생을 노래하고 있다.    〈홍시〉를 좀 보자. 여기서 ‘홍시’는 생명의 상징. 그것은 ‘초불 같은 심장’을 가진 뜨거운 존재. 그리고 생명의 ‘새빨간 생각을 주고 받’는 존재.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허위와 거짓존재는 존재할 여지가 없다. “주변을 강타하던 무수한 소문들은 / 스멀스멀 그림자로 멀어져간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가지마다 감도는 / 생의 물결이여 / 빛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으라”에서 생명의 고양은 최고도에 달한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불행하고 아픈 존재들을 보듬고 감싸안는다. “물오르는 참꽃들의 애환과 / 비슬산 울다간 동박새의 꿈과 / 숲으로 돌아가고픈 / 령토들의 아픈 심사까지도 / 뜨겁게 감싸 안아준”다고 하지 않던가. 아름다운 기원을 한다. “서서히 타오르는 땡볕의 품으로 / 새빨간 날개를 활짝 펼치라”하지 않던가. ‘새빨간 날개’, 그것은 생명의 날개여라! 〈홍시〉는 생명의 찬가, 생명에 대한 아름다운 기원을 노래하고 있다.    〈원일초〉를 좀 보자. 여기서 생명은 ‘아기 꾀꼬리들’로 상징된다. 한 겨울 “아기 꾀꼬리들 뽀시시 / 날개짓을 시도한다”. 그런데 “푸르름은 아득하고 / 다른 세포들을 흔들어 깨우기에는 / 아직 밤이 길다”. 그리고 “부리를 쪼아 새 계절을 불러오고 싶지만 / 길을 열어간다는 것이 / 천년고목에 꽃을 피우듯 / 숨 가쁜 일”인 것이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다. “시나브로 날개짓에 익숙해질 때 쯤 / 하늘을 쪼개볼려”는 포부를 갖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원일초―설련화처럼 눈속에서 아름답게 피여나는 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보다시피 이 시는 생명의 끈질긴 힘, 생명의 역경 및 희망, 포부를 노래하고 있다.    〈바람의 언덕에서〉를 좀 보자. 여기서 바람의 언덕은 어떤 곳인가? 그 곳은 ‘꽃을 피우는 곳’. 이 시는 령토, 바다, 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령토는 ‘가을 들녘을 살찌우’고 바다는 ‘전설 같은 매듭을 풀어내’며 섬은 ‘작은 몸짓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령토는 물산, 바다는 정신, 섬은 천, 지, 인 합일의 문화를 지향하면서 인간 삶의 기본 지표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결국 ‘꽃을 피우는 곳’으로 수렴되고 있다. 보다시피 이 시는 생명이 펼쳐지는 인생, 인간 삶의 기본 지표를 노래하고 있다.    혈연, 피는 무엇보다 진한 것이다. 인간은 혈연의 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이 혈연 가운데서도 부모자식 간의 정이 가장 끈끈하다. 따라서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되기도 한다. 김선희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노래한 시를 좀 보자.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을 좀 보자. 여기서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누가 보이지? 엄마가 보인다. 그런데 엄마는 가슴을 시리게 한다. 그 살내음이 뭉클해지게도 한다. 엄마는 ‘새삶을 위해서만 가랑비’가 되여 내렸고 ‘부드러운 샘’이 되여 ‘바위 끝 심장을 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엄마는 ‘뿌리 깊은 숨결’로 생명의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이 시는 끈질긴 생명의 희생과 헌신으로 생명을 보듬고 키우며 인생을 마감하는 엄마를 노래하고 있다.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이 어머니의 노래였다면 〈겨울에 피는 꽃잎처럼〉은 아버지의 노래이다. ‘겨울에 피는 꽃잎’은 누구지? 아버지! 아버지는 바로 ‘겨울에 피는 꽃잎처럼’ 사셨다. 그럼 ‘겨울에 피는 꽃잎’은 무엇이지? 그것은 희망이고 행복이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바람에도 빛을 잃지 않”았고, “허허로운 벌판에서도 씨앗을 키워오셨”으며 “엄동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쳐주시”였고 “세상의 빛을 당겨주셨”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등대고 생명이고 스승이고 희망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아버지는 “내 비여있는 길에 / 영생의 빛을 열어주고 계신”다.   현대성, 우리 인류가 고대를 넘어 추구해온 삶의 지표. 현재는 포스트모던시대라 현대성도 어지간히 실현된 듯하다. 그런데 삐긋 문제가 생긴 듯하다. 애초에 문제성을 내포한 현대성임에라! 적어도 과학성과 도덕성의 괴리가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 범위에서 현대성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문학도 례외가 아니다. 이른바 모더니즘문학은 전형적인 한 보기가 되겠다. 김선희의 시도 이런 반성을 보여주고 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을 좀 보자. 여기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가. 그것은 ‘가슴 빈자리’. 그럼 왜 가슴이 비지? ‘내 여린 손을 뻗을 여백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여린 손’만큼 가냘프다. 그리고 ‘이방인’이다. 철저히 소외되고 주변화된 이방인이다. 그는 ‘세상의 한끝’에 서 있지 않은가. 그리고 ‘허상들만 가득 찬 도시의 언저리’에 말이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도’ 그를 품어줄 곳은 아무 곳도 없다. 한 쪼각의 하늘과 땅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 하여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어딘가라도 파헤치면 / 길이 열릴 것 같은 막연한 기대들에 부풀어오르’기 때문이다. ‘꿈을 향한 구멍들’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색이 바랜 달이 뜰 때 쯤’ ‘희미한 뜬구름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의 기대는 간절한 만큼 처절하다. 둥근 달이라도 모르겠는데 ‘색이 바랜 달’, 흰 구름 두둥실도 모르겠는데 ‘희미한 뜬 구름’이 아닌가. 그것은 애초에 허무맹랑한 기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래기라도 잡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이 시는 도시에 융합될 수 없는 한 이방인을 통해 현대 도시생활의 소외(異化)를 고발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 사이에 응당 있어야 될 소통과 온정, 융합이 증발된 사막화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현 단계 현대성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세계 보편적으로 보다 더 거론되고 있는 모더니즘문학의 기본주제와 통하고 있다.       현대성의 문제는 도덕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무지막지한 ‘과학성’에 의한 자연의 황페화로도 나타난다. 생태평형파괴,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생태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이는 문제로 되였다. 세계의 지성들이 여기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 문학에서는 세계적인 범위에서 생태주의문학이 산생되였다. 김선희도 이 생태주의문학에 동참하고 있다.   〈네모나방〉을 좀 보자.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현재 세계는 하나로 얼기설기 련결되여있다. 세계 한쪽 끝의 미세한 움직임이더라도 그것이 파노라마처럼 번져가며 결국 다른 한쪽 끝의 큰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효과일 때는 더 없이 반가운 것이겠지만 도노미현상을 일으키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때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는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첫 시작 “천애지각 땅끝마을에서 / 너는 반갑지 않은 기별처럼 왔구나”는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전반 시에 관통된 이상한 ‘네모나방’의 상징이미지가 이것을 밑받침해주고 있다. ‘만신창’이 되여 ‘천지간을 켜켜이 들추’는 네모나방, ‘시나브로 모닥불이 서서히 피여오르’면 쉬여야 정상이건만 ‘어둠의 발자국’의 재촉 때문에 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네모나방은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가여운 미물’인 것이다. 여기에 시적 자아는 ‘너만의 계절을 담은 / 안식처에로 날아가 주’기를 기원한다. 이것은 모든 존재가 자기의 ‘안식처’로 돌아가 이 세상이 정상적인 질서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기원에 다름 아니다. 보다시피 이 시는 미물인 네모나방을 다룬 것 같지만 실은 생태평형 및 세계질서라는 거창한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현 단계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생태주의라는 세계적 담론에 가닿고 있다.    윤형의 근작시 몇수를 생명, 혈연, 현대성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모두 만만치 않은 담론들이다. 영원성을 띠는 담론이기도 하다. 그녀의 근작시의 1차적 의미는 여기서 찾게 된다. 그녀의 시는 긍정적이고 밝아서 좋다. 요새 말로 하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그녀에게 있어서 생명은 시련은 있어도 굴복은 없다. 그것은 죽음조차 딛고 일어나는 끈질김을 갖고 있거늘! 그녀에게 있어서 혈연은 생명의 깊은 뿌리를 알려주고 생명의 영원한 등대가 된다. 그녀에게 있어서 현대성은 문제가 있으되 우리가 그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반성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윤형의 근작시 가운데 〈락화의 흔적〉, 〈홍시〉, 〈원일초〉, 〈바람의 언덕에서〉 같은 생명 관련 시는 현대 상징시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지 및 이미저리를 통하여 전반 시의 상징적인 경지를 잘 엮어내고 있다. 세부적으로 볼 때 〈바람의 언덕에서〉의 ‘꽃’, ‘령토’, ‘바다’, ‘섬’이미지의 상징적 의미 및 ‘비여있는 바람’, ‘시린 령토’, ‘허기진 생각’과 같은 역설적 표현이 돋보인다.   그리고 혈연, 현대성 관련 시는 사실주의적으로 흐르되 상징적 이미지 및 이미저리로 잘 엮어져 시의 의미적 내연의 함축성을 확보하고 감칠맛을 돋구며 현대시의 격을 잘 갖추고 있다.   그녀의 근작시에는 일부 문제점도 노정하고 있다. 례컨대 〈홍시〉나 〈바람의 언덕에서〉의 일부 이미지 및 이미저리는 좀 자연스럽지 못하고 생경하며 난삽하다. 그리고 〈원일초〉의 이미지 및 이미저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론리적으로 좀 긴밀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근작시는 그녀의 끊임없는 시탐구에서의 새로운 한페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녀의 시탐구는 멈추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시의 녀신과 함께 달리고 있거늘!  《도라지》2019년 6호 br /> ▣ 원숙의 우아함과 지는 미학 --김선희의 꽃과 바람과 빛과 그리고 시--         박  은  희(일본)       “돌의 아리아(외7수)”는 김선희시인이 대한민국방문길에 들고 돌아온 선물인듯 하다. 물론 독자들을 위한 귀한 선물이기도 하겠지만, ‘나를 찾아헤매는 려정’(“바람의 언덕”)이였으니 시인 자신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기도 한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꽃’과 ‘바람’, 그리고 ‘빛’을 모티프로 서로 내적 련관성이 있는 8수의 시를 하나의 정체적인 작품, ‘나를 찾기’ 려정(旅情)시라고도 볼 수 있다.        회화성(繪畵性)과 서정성이 강한 뚜렷한 특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려정(旅程)에서 만나는 절경은 시인의 시정(詩情)을 불러일으키고 시인은 감정적색채가 짙은 언어와 적절한 수사법으로 산수풍경을 리얼하게 재현시키면서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 격정을 토로한다. 김선희시인의 작품에서 주관과 개관은 서로 분리되거나 대립된 존재인 것이 아니라 객관속에서 주관을 찾고 주관으로 개관을 확인하는, 서로 밀접히 련결된 존재이다.       아니무스의 심상—초대바위   첫 시 “돌의 아리아”는 외7수의 내용을 통괄(統括)하고 있다. 19행의 제1련과 5행의 제2련으로 구성되였지만 제1련과 제2련은 물리적인 대칭을 이루고 있다. 제1련의 노을속에 서있는 낮은 초대바위와, 그와 좀 떨어진 곳에 있을, 제2련의 초화언덕의 시들어 가는 꽃, 그리고 뻐꾸기는 모두 시인 자신이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하고 시인은 누군가에게 호소하는듯한 높은 격조와, ‘슬픈 구멍’, ‘피빛 노을’등 간잡적표현이나 ‘아파도’, ‘슬퍼도’등 직접적표현으로 된 짙은 감정적색채를 띤 언어로 풍경을 그리고 력사를 읊고 있다. 그리고 ‘바람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고개를 쑤욱 쳐들고 싶지만/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인과률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 채/만추 끝자락에 초대바위로/멈춰섰습니다’하고 의인화하여 초대바위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본다. 소설가든지 수필가든지 시인이든지를 막론하고, 그들이 의식적인 표현을 했든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표현을 했든지간에 독자는 그 표현에서 표현자의 심층심리를 엿볼 수 있다.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에서 돌이나 바위, 철같이 단단하고 강한 것이나 탑이나 기둥같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흔히 남성의 기호나 상징으로, 꽃처럼 여리고 아름다운 것은 녀성의 기호나 상징으로 표현되여 왔다. 심층심리학에서도 각기 남성성과 녀성성으로 풀이하고 있다. ‘초대바위’와 ‘꽃’을 구성상 대칭적으로 배치한 것이 김선희시인의 의식적인 것이였는지 무의식적인 것이였는지를 막론하고 여기서 심층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초대바위’는 시인의 아니무스(animus)의 심상(心像)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녀성의 내계(內界)에 존재하는 남성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성상이란 꼭 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공이나 신분, 권력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들어가고 있는 ‘꽃’은 즉 인생의 꽃시절을 끝마치고 있는 녀성상이다. 녀성상은 남성상과는 상대적인 것을 의미한다.       50후나 60후의 녀성이라면 남존녀비사상을 가진 부모의 밑에서 자랐거나 혹은 중남경녀의 부조리한 취급을 당한적이 있을 것이다. 녀자로 태여났기에 이루지 못했던 일, 얻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되기도 했다. 하여 ‘몸속 웅어리는/슬픈 구멍으로 뚫’렸다. 그러나 시인은 ‘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인과률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 채’ 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항거할 수 없는 운명임을 받아들인다.        다시 정리해 말하면 시인인 ‘나’(‘가난한 뻐꾸기’)가, 녀자로서의 인생의 꽃시절을 보내고 있는 ‘나’(시들어가는 꽃)가, 지금 이 시각 이 곳에서 지난 반생을 인생의 세파속에서 씻기고 구멍 뚫리여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육신’이 된 ‘나’(초대바람)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리고(울고) 있다.   원숙의 우아함과 지는 미학       “돌의 아리아”에서 시인은 ‘피빛 노을은 온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꽃이 시들어가는 초화언덕에’하고 해가 서서히 져가거나 이미 진 뒤의 붉은 노을과, 져가는 꽃을 읊었다. 자연의 모든 사물은 지기시작하기 직전에 가장 원만하고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기에 지는 순간이 장렬하고 강렬하다. 이 순간이 지나면 두번 다시 볼 수 없기에 져가는 모습이 귀중하고 아름답운 것이며, 이를 지켜보는 마음이 애석하고 슬프고 아픈 것이다. 이것이 원숙의 우아함이고 지는 미학이다.        첫 시에 이어 시인은 두번째 시 “석류”에서 원숙한나머지 미풍이 불기만 해도, 아니면 풀벌레 울음소리가 나기만 해도 당장 떨어질 것만 같은 석류를 그리고 있다. 시 “석류”의 제1련은 유리창안이고 제2련은 유리창밖이다. 이 유리창은 시적주인공의 감정 즉 주관이다. 유리창너머로 석류의 원숙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떨어지게 될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시적주인공의 마음은 아프다. 이런 감정속에 자신을 가두어 두면 ‘눈물 날 것만 같’다. 하여 마음의 유리창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거기에는 우주가 있고 해살이 있다. 시적주인공은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       시인은 세번째 시 “황칠나무”에서 ‘원숙’과 ‘짐’(또는 死)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남을 보여준다. 마지막 련의 ‘꽃은 꽃으로만 피지 않고/나무는 바람에 길을 묻지 않습니다’는 명언이다. 꽃시절이 끝났다고 하여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정하는 것이지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부(富)의 상징인 황칠나무는 껍질에 상처를 주면 노란색 진액을 흘러낸다고 하는데 그 노란 수액은 도료로 쓰이고 뿌리, 가지, 껍질, 잎,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니 꽃이 진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고 열매가 떨어진다고 비통해할 일이 아니다. 황칠나무가 사시절 귀중하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어느 시절이 또한 귀중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천혜의 숨결이 닿는 곳에’ 뿌리를 내리는 성스러운 나무를 의인화하여 노래하고 있다.       다음, ‘나무는 바람3에 길을 묻지 않습니다’를 이어 시인은 시 “바람의 언덕”을 쓴다. 사실 ‘바람’은 첫시의 ‘바람1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고개를 쑤욱 쳐들고 싶지만’(“돌의 아리아”)에서 ‘몇 오리 바람2이 찾아와/무어라 귀속말 전해주듯’(“석류”)로 이어져 내려왔다. 김선희시인의 작품을 읽음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로 된다. 상술한바와 같이 ‘바람3’은 ‘외부적 영향’을 의미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바람1’은 사회적이나 가정적, 또는 정치적으로 인한 인생세파 혹은 타자 등, 즉 ‘외부적 압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람2’는 자연으로서의 바람, 또는 ‘외부적 압력’이다. “바람의 언덕”의 ‘바람4’은 위의 모든 의미를 포함함과 동시에 ‘내부적 갈등’의 의미가 첨부된다. 제1련의 ‘바람은 다가오는 봄을 막지 못하지/밑창마저 뜯긴 해살이/마른 풀잎을 꺾는 걸 본 적 있는가’는 위에서 렬거한 의미로 읽을수 있다. 제2련의 ‘뒤틀려버린 뿌리까지 가는 동안/심장판막 넘나들다/안팎으로 찢어지고 부서지고’는 ‘외적인 압력(또는 영향)’이 ‘내부적 갈등’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런 갈등에 의하여 생겨난 수많은 ‘나’들이 초봄에 파란 새잎이 돋기전인 겨울에 피는 산수유꽃으로 피고 있다.       무언가 얻으려는 확답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시인은 잠시 “산다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산다는 건/꽃을 벙을게 하려고/흩어진 수액의 줄기를 모으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 ‘꽃’은 성공이나 명예를 상징하는 것일가? 제3련의 ‘신열을 앓다/생의 몇바퀴 돌고서야/운무를 헤집고 만개하는 꽃불의 넉두리’를 읽고나면 비로서 ‘운무’(無知, 迷)의 상대적 의미로서의 ‘앎(知, 悟)’을 의미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끝으로시인은 ‘어떤 경우에도/길 밖의 길 앞에 헤매지 마라’고 호소한다. 길은 한자로 ‘道’로 쓴다. 특정된 어느 한 종교의 리치라기보다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로 해석하고 따라서 ‘꽃’은 불교에서 쓰이는 련꽃의 상징적 의미를 따온 시적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앎’에 대한 각성은 “바람의 언덕”의 ‘빈 가슴으로 울던 억새 앞에/무심코 쳐다 본 하늘/그 중후의 빛갈을 느끼게 된 건/불혹의 지나서 한참 후였지’에서 ‘불혹’의 상대적 의미로 쓰인 하늘의 ‘빛갈’에서부터 전개되여 왔다. 아직은 그저 ‘느끼게 된’ 단계이다. 사실 전 시편에 관통되여 있는 이 ‘빛’이 또한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이다. “겨울 해변에서”의 해변은 그야말로 빛의 세계이다. ‘여울 치다 얼어붙은 저 물빛’, ‘극과 극으로 만난 령혼의 빛’, ‘물을 강타하는/저 역겹의 해살’, ‘세상에서 가장 맑은 물빛’. 이 ‘빛’들이 즉 ‘앎’이다. 이 ‘앎’으로 하여 모든 슬픔을 물아낼 수 있고, 모든 풍문들의 매듭을 풀 수 있고, 모든 것을 넉넉히 받아들이고 포옹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토록 찾아헤맸던 ‘나’는 어디로 가고 ‘앎’이 남았는가? ‘나’는 어디에도 없고 또 어디에나 있다. 다만 ‘없다’ 혹은 ‘있다’고 깨닫는 ‘앎’에 의하여 존재한다.        시 “겨을 철쭉”은 첫시 “돌의 아리아”에 대응되는 작품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헌화가”에는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동행하던 절세미인 수로부인이 벼랑끝에 피여난 꽃에 반하였는데 누구도 꺽어다 줄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에 지나가던 한 로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꺾어와 노래를 부르며 바쳤다는 에피소드가 적혀있다. 그 꽃이 철쭉이고 그로부터 철쭉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락조의 후광속에 한겨울의 맹추위에 몸부림치는 철쭉은 피빛 노을속에 세찬 바람에 구멍 뚫린 초대바위와 영상(映像)적으로 조응되고 또한 아니무스의 심상에 대응되는 시적형상이다. ‘다시 누군가에게 돌아갈 때는/꽃으로 남지 않으리!’, 어디까지나 시인 개인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이 또한 명언이다. 한 녀성으로서 꽃시절에 대한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이 인생의 한 계절을 떠나보내고 홀가분히 다음 한 계절을 맞이하려는 결단이다.        시인 김선희의 ‘나를 찾아헤매는 려정’은 인생의 환절기에 아픔과 슬픔에 ‘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앎’으로 ‘나’를 확인하는 려정이였다. 이와 같은 인생과 삶에 대한 자세가 바로 인간 김선희의 ‘원숙의 우아함’이고 ‘지는 미학’이다.   그리고 시(詩)    “돌의 아리아”에서 시작하여 “겨울 철쭉”으로 끝나도 구조상 내용상 완벽한데 시인은 위 7수의 서정시와는 전혀 다른 서사시 “오늘의 담시”를 추가한다. 담시(譚詩)는 물론 서사시에 속하겠지만 유럽의 발라드의 영향을 받아 정착된 전통적 서사시와는 달리 더욱 자유롭고 짧은 것이 특징이다. “오늘의 담시”는 텍스트(정확히는 위의 서정시)밖의 시인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우선 텍스트밖의 시인의 일상언어는 ‘내 핸드폰 안 챙겼슴다!’와 같이 연변방언이다. 서정시의 엄밀한 계산에 의하여 선택된 시어와는 다르다. 다음, 생사를 구분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담시의 시적화자 ‘내’는 무의식지간에 시를 쓰기 위한 재료나 초고가 들어있을 일기노트와 필기장들, 그리고 노트북보다는 먼저 려권과 돈지갑을 들고 도망친다. ‘나’를 찾는 려정에서 헤매이고 있는 서정시의 시적주인공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담시의 사실과 서정시의 진실과의 차이이다. 거듭 되풀이되는 대사는 마자막끝에  ‘—과연 뭐다 그리 중한지?!’로 매듭되면서 사고의 여지와 여운을 남긴다.    김선희시인이 담시를 부가하여 담시의 사실과 서정시의 진실과의 차이를 보여주려고 한 것은 서정시의 구조와 내용에 대한 보다 깊은 리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였는가 생각된다. “돌의 아리아”를 비롯한 7수의 서정시의 구조는 초령역적인 심적(心的)구조이다. 자연령역과 인류령역의 사이, 의식령역과 무의식령역 사이, 내적령역과 외적령역의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마음의 구조이다. 대문에 상징성이 강하다. 한 사물에 부여된 상징적 의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의미로 중첩된 것이다. 될수록 여러가지 가능한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여 읽으면 시적세계가 보다 넓어지게 된다.    김선희시인의 ‘나를 찾기’ 려정시를 읽고나면 의사(擬似)체험을 했다기보다는 시적주인공의 마음과 마음을 겹쳐서 실제에 가까운 체험을 한듯한 느낌이 든다. ‘나’가 이 순간 무슨 감정인지 인츰 깨닫는 ‘앎’에 의하여 ‘나’를 잃지 않는 것은 삶의 지혜이다   연변문학 2020년 9월호
168    어떻게 참을 것인가 댓글:  조회:248  추천:0  2021-10-27
글 궁금이 · 방송 전금화           “제일 효과적인 건강 관리는 절제다.”     오늘 배운 말이다. 건강 관리를 위한 절제에서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문제중의 하나가 음식이다. 다이어트에 고전하는 분들에게 있어서 제일 피부에 와닿은 부분이기도 하다. 먹고 싶은 건 먹으면서 살을 빼야 된다고들 하지만 정작 다이어트 실전에서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적게 먹으면 인체는 주인이 식사에 린색하다고 판단하여 지방 소모를 아끼면서 오히려 살이 더 빠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게 맞는 주장인지를 떠나서 나는 개인적으로 신체의 자체 조절과 적응 능력을 크게 믿는 편이다.      살아가면서 참을 게 너무나도 많다. 주말에 공원에 다녀오다가 어느 소학교 대문 앞을 지나는데 경비가 팔을 뻗어 기다리라고 막는다. 대문 밖은 학교 소관이 아닐 건데 무슨 권리로 이러나 봤더니 학교 안에서 차 한대가 나온다. 직접 운전하는 걸 보나 차종으로 보나 학교 중층 령도 정도는 되나 본데 경비로서는 잘 보여야 하는 간절함이 있는 것 같다. 대문 앞은 횡단보도라 행인이 우선임에도 교통경찰도 아닌 학교의 경비가 행인을 서라 마라하는 게 언짢았지만 그냥 기다려줬다. 그렇게 몇초 참으면 차가 지나가고 나도 제 갈 길을 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왠지 생각할 수록 맘에 안 들어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무슨 대단한 인물이 행차하길래 교통관리까지 들어가나? 당신이 무슨 경찰이라도 돼?”     이 나이 되도록 한잔하자는 요청에 대한 거절이 아직도 어렵다. 몸이 힘들 때에는 이미 선약이 있다고 거절해도 아무 문제없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한다고 누가 추궁하지 않음에도 제쪽에서 찔려서 구실을 대지 못한다. 그렇게 련며칠을 달리고 나면 원기가 상하는지 밤에 꿈도 많고 나중에는 기분도 우울하다. 누굴 원망할 일도 아니고 제 좋아서 쫓아갔으니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그 와중에 나와 같은 빈도로 달리는 후배들을 보면서 제수씨들이 참 무던하다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그래서 확인했더니 가정에서의 소임은 다하고 나오는데 뭐가 문제냐고 당당하다. 나도 만만찮은데 후배들은 더 떳떳하다. 나의 취약한 절제력에 대해 다소 자아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지난 23일부로 위챗을 시작한지 45개월이 됐다. 그사이 고비도 참 많았다. 심지어 이제 그만한다고 선언하는 위챗을 2000자까지 썼다가 결국 발표하지 않고 다른 위챗으로 바꿨던 적도 있다. 그동안 많은 격려의 응원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이 소박한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여주었다.     “견지가 승리지요.”     너무나도 흔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특정 환경에서는 유난히 믿고 싶어지면서 큰 힘으로 된다. 실제적으로 큰 도움을 가져다주지 못하더라도 마음상으로 듣고 싶어지는 말이 따로 있고 특정 시점에서 각별히 위안이 되는 따뜻함이라는 게 있다. 이런 무형의 힘은 그 어떤 물리적인 자극보다도 효과적으로 용기와 인내력을 산생시킨다.     입안에 못을 품은지 이제 두달을 넘어섰다. 난 석달로 기억했는데 반년은 참아야 한단다. 처음에 입술을 벌리기만 하면 아팠던 때를 생각하면 이 상태로 어떻게 몇달을 더 견지해야 하나 아득했지만 상처는 시간이 해결한다는 말의 깊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제 입안에서 같은 식구가 되여 서로 감수하고 양보하면서 화목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 아직 오지도 않은 걱정을 미리 하지 말라는 말도 재확인했다. 당시 살을 긁는 고통의 상태로 반년을 쭉 참아야 한다는 걱정설계도를 미리 그려놓았더라면 며칠후에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한번 통증으로 반년을 바꾼다고 생각하고 깔끔하게 이를 뽑아버리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하루이틀 참고나니 쨍 하고 해뜰날이 왔다.     참을성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매일 도로에서 달리고 있는 택시기사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별의별 운전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다 만나면서도 일년 365일 참고 산다는 게 참 존경스럽다. 이분들은 아마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도리를 저마다 깊이 터득하고 사는 것 같다. 도로에서 화를 내고 다른 차와 똑같으냐 해봤자 결국은 자기만 손해라는 도리를 하루하루의 실천에서 깨달은 분들이다.      참는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고 누구나 다 완벽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견디고 나면 안도의 숨을 쉬면서 그때 참기를 얼마나 잘했냐를 돌아보게 된다. 그렇다고 다음번에 오게 될 예측 못할 상황에서도 여전히 참아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너무 참고 살아도 병이 온다는 말도 있다.      어렵지만 또한 실천에 옮겨야만 하는 게 감정조절이다. 중국조선어방송넷 
167    '무아지경' 외 2수 댓글:  조회:233  추천:0  2021-10-25
김경애 시인의 '향토문학대상' 시 작품, '무아지경' 외 2수 무아지경 작년에 쏘아올린 세월을 잡으려고  포물선만 그으며 따라왔다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달력은 이슬에 젖고 한숨에 마른다 벌거벗은 나무의 머리채 휘어잡고 빨간 소원 하나 매달려있다 첫눈이 펑펑 소리 없이 울면 시리다 못해 그대로 얼어버리겠지 두 팔 벌려 하늘을 안아본다 바람이 금세 잠이 든다 가진 듯 안 가진 듯 우는 듯 웃는 듯   조사钓师 그림 같은 저수지에 미끼 없는 낚시를 드리우고 낮보다 아름다운 밤을 토닥토닥 다듬이질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변덕이 낚시의 찐 묘미인데 대물을 낚아 보려다 세월을 더러 낚이는 도시어부 찌가 찡긋 윙크를 보내니 달님이 면사포 살포시 벗고 민낯으로 쌩글쌩글 웃는다 당길까 말까 밀당의 고수들 이슬에 젖은 뜰채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늙은 부시리가 혀를 홀랑 내밀고 꼬리 빠지도록 가물거린다 찌와 그림자는 바람 따라 춤추고 수면은 잠시 멀미를 한다   여유작작   새벽이슬 맞으며 나갔다가 길어진 그림자 밟고 들어와 한 달에 스물여덟 번쯤 설익은 잠 청하는 것이 대리 꿈의 시작이었던가 주방장 김 씨는 식당 주방에서 노가다판 이 씨는 공사장에서 청소 아재 박 씨는 길거리에서 가사도우미 최 씨 이모는 주인집에서 집 아닌 집에서 남의 꿈을 꾸고 있다 납부기한 지난 공과금 영수증과 지갑에 끼워 놓은 프로필 사진은 바람과 함께 날려 버리고 대림역 9번 출구 꼬치집에서 양다리 걸치고 막걸리타령이나 뽑아보자 「심사평」   김경애시인은 중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우리나라에 왔다. 녹녹치 않은 한국 생활이 그녀를 시의 세계로 이끌었나 보다. 한국에 와서 한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한국인들도 시 한편을 쓰는데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 나라에서 수십 년 동안 지내온 시인이 한편의 시를 길어 올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 제4회 애심여성 컵 은상을 수상하고 한국국보문학 시 ․수필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을 보면 시적 믿음이 간다. 보내온 시 중에서 무아지경, 여유작작, 조사钓师 등 3편을 읽으면서 사유의 폭과 깊이에 놀랐다. ‘무아지경’1연 ‘작년에 쏘아올린 세월을 잡으려고/ 포물선만 그으며 따라왔다’로 시작하는 시는 어조가 활달하고 내공도 상당하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적 공간은 독자의 마음을 잡아끌며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다. 여러 시적 요소가 잘 버무려졌다. ‘여유작작’은 시인이 시를 쓰는 동안 잠시 생활의 여유를 가졌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여유는 휴식이 아니라 재충전의 기회다. ‘조사钓师’마지막 연 ‘찌와 그림자는 바람 따라 춤추고 / 수면은 잠시 멀미를 한다‘는 삶의 한 단편을 시적으로 잘 풀어냈다. 결국 시를 비롯한 모든 글들은 독자에게 위무와 위안을 줄 때 싱싱한 시라고 한다. 시인의 시들은 우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무릇 쓰고 써 강한 시인이 되기를 주문한다.   심사위원 : 가이아클럽 이사장 / 박광영 한국문학신문 대표 / 임수홍 울산광역일보 대표 / 유정재 글정리 : 정성수   ---   「당선 소감」 풍격을 살리는 시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1년 제15회 향촌문학 특별대상 수상자 / 김경애   제15회 향촌문학 특별대상에 당선되었다는 향촌문학의 정성수 회장님의 전화를 받고 나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등단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인에게 향촌문학 특별대상은 정말로 특별하게 과분한 상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끄적여 놓고 보여주니 다들 괜찮다고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시도했던 것이 시작(詩作)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직 앳된 나의 시상들이 사랑과 관심의 손길에 이끌려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나올 것이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느닷없이 떠오르는 영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하는 습관이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늘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나의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에게 감사하며 수상의 영광을 함께 한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나의 시를 발견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정성수 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쓰라는 격려로 생각하고 이번 수상을 계기로 자신만의 풍격을 살리는 개성 있는 시인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김경애 약력 : 재한동포문인협회 공동회장, 한국문예·한국시사랑문학회 부회장, 한국국보문인협회 사무국장, 중국 애심여성 민족공익발전기금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중국 제4회 애심여성컵 은상, 한국국보문학 시/수필부문 신인문학상. 동포문학 시 대상 등 수상.  동북아신문
166    [소설] 실종 댓글:  조회:259  추천:0  2021-10-21
실종   문설근   1   차암~ 속도 넓지. 지금 허리치료 다닐 상황이냐. 허리 아픈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냐? 여편네가 정신머리 나갔지…… 구시렁거리는 남편을 두고 정희 엄마는 소 닭 보듯 하면서 문을 쾅- 닫고 나간다. 그래, 힘이 남아돌 때 바가지 긁어라. 와락와락 긁어봤자 지 입 아프지 내 입 아프냐?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내보내면 되는 것을…… 조물주도 참 요상하지. 귀찮고 짜증스럽고 불쾌한 종자들을 접하는 감각기관을 두 개씩 만들어 주었거든. 마주하고 싶지 않는 상판대기는 두 눈으로 봐야 하고 날파리 처럼 앵앵거리는 소리는 두 귀로 들어야 하거든. 게다가 그슬린 듯한 누린내까지 두 콧구멍으로 맡아야 하니. 참, 사람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한다니까.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살면 좀 좋으랴. 내 허리 아프지 지 허리 아프냐? 이날 이때까지 허리디스크로 고생해도 언제 같이 병원 가준 적 있어? 말로만 떼이려 들지. 덜 빠진 인간이라 입에 담기조차 싫다니까.      남편은 귀청을 뚫을 듯한 굉음에 바르르 떠는 현관문을 허구푸게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정희 엄마가 이상했다. 정희 엄마가 수상한 행동을 보인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요즘 따라 훨씬 불쾌했다. 폐경이 오기에는 아직 한참 이른 나이인데 사사건건 자신과 충돌하고 예민해져 있었다. 우울증이라 하기에도 그 증상이 제법 날카로왔다. 말없이 우울해지기는커녕 지금까지 마음속에 꽁꽁 담아두었던 불만들을 모조리 갚아주기라도 하듯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말 한 마디만 건네면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속사포를 맞아야 했다. 그만 유의하지 않아 양말을 침대 밑바닥에 벗어둔다거나 치약을 앞부분부터 짠다거나 혹은 식사 후 반찬그릇들을 치우지 않는다거나 하면 부글부글 끓는 눈총을 받아야 했다. 서로의 사소한 습관들에 익숙해져서 트러블로 남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남편은 무던한 편이었다. 여느 때보다도 힘들어 할 정희 엄마를 위해 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는 수걱수걱 집안일을 도왔다. 가끔이 아니라 늘 도왔다. 남편은 밀린 설거지를 했고 세탁기를 돌렸으며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은 집안청소도 했다. 집안청소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우면 새벽 두시가 넘어가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정희 엄마의 몫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정희 엄마는 두 손 탈탈 털고 만사에 무관심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불쾌한 기색 한 번 비추지 않았다. 몸은 힘들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정희 엄마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다. 그동안 가게일로 정희 엄마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쩌면 그것은 핑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몸을 혹사시켜야 마음이 편해지는 건 어찌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신기한 일은 이 뿐이 아니었다. 가끔 남편은 정력이 딸려 잘 일어서지도 않는 물건을 슬며시 살펴보다가 정희 엄마 방에 들어가서 옆자리에 누우면 정희 엄마는 화닥닥 놀라 일어나면서 당신 미쳤어? 하고는 버럭 화냈다. 하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시도했다는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남편으로서는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느닷없이 욕정이 이는 일도 상식적인 남편의 범주를 벗어난 일이었고, 무엇보다 정희 엄마의 마음을 알 길 없었다. 그렇다고 정희 엄마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정희 엄마 못지않게 남편도 힘들긴 매한가지였다.    두 사람은 극복 중이었다. 극복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은 힘겹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더욱이 정희 엄마는 히스테리적이었다. 한 번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건의를 했다가 묵사발을 받았다. 그때 남편은 병든 닭 마냥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마 그 후였던 것 같다. 남편도 구시렁거리면서 곧잘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곤 했다. 속마음이 뭉그러 터진 건 정희 엄마 못지않은데 정희 엄마만 화내고 짜증냈다. 그래서 속으로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나도 죽도록 괴롭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이야기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남편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정말 악착같이 견디고 있는데 어느 날부턴가 정희 엄마는 정신과 치료 대신 허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이 상황에서 한가롭게 허리 치료하러 다닌다는 것은 분명히 미친 짓임에 틀림없었다. 정희 엄마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행동들을 하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정희 엄마에 앞서 자신이 먼저 무너질 것 같아 남편도 슬며시 불만들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불만토로는 언제나 일방통행이었고 오히려 거대한 메아리가 되어 남편에게 더욱 큰 상처로 돌아오곤 했다.     돌이켜보면 정희 엄마가 언제 이런 적이 있었던가? 정희 엄마는 언제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가정주부였다. 정말 착실한 가정주부이자 딸애의 엄마였다. 홀로 가게를 지키는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누구보다 승벽심이 강해 정희의 공부를 매몰차게 틀어쥐었다. 학부형 모임에서는 언제나 선두자 자리를 차지했고 학원가의 모든 정보를 말끔하게 꿰뚫을 정도로 자식에 대한 학구열이 대단한 여자였다. 딸애는 정희 엄마의 지나친 관여에 가끔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은 성적을 받아오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남편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돈을 잘 벌었고, 정희 엄마는 남편에 대한 내조와 자식에 대한 의무를 다했으며 딸애는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공부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정희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하여 죽도록 공부했다. 그야말로 누가 봐도 완벽한 가정이었다.   이제 가게에 나가봐야 할 시간이다. 정희 엄마가 나간 자리가 썰렁하기 그지없다. 한파가 지속되는 한 겨울철의 공기를 마신 것처럼 가슴이 싸늘해졌다. 갑자기 씁쓸했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아글타글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일은 해야 했고 돈은 벌어야 했다.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 못내 한탄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희 엄마에게 미안한 일을 한 적은 없었다. 물론 정희에게도 아빠로서 최선을 다해왔다.    남편은 차에 시동을 걸면서도 정희 엄마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아파트단지를 벗어나자 넓은 도로에는 온통 차량들이었다. 종종걸음으로 갈 길을 재촉하는 행인들이 차창 너머로 보였지만 그것보다는 새치기로 끼어들기 하는 얍삽한 차주가 남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무엇이 그다지도 총망한지 사고위험까지 감내하면서 과감하게 끼어들었다. 바쁜 것으로 치면 남편만큼 바쁜 사람도 드물 것인데 말이다. 무엇보다 남편은 요즘 매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날이 치솟는 물가도 벅찬데 재료구입마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사들인 재료를 모두 소화시켜내지 못하는 추세였다. 연속 6주째 하락세를 보이는 매출에 기분이 다운되었다. 한때 전염병 여파로 요식업계가 된서리를 맞기도 했지만 현대인들의 소비욕구는 억누른다 해서 통제되는 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남편의 가게에는 단골손님을 시작으로 다시 손님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정직과 최상의 맛,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를 경영이념으로 삼으면서 오랜 시간동안 가게를 운영해온 결과였다. 불경기에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었다. 지금은 가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시기였다. 9월이면 대학에 들어갈 정희에게 부끄럽지 않는 아빠로 남을 것 같아서 남편은 뿌듯했다. 남편은 정희가 정희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만 붙어준다면 함께 유럽으로 여행가자고 약속했다. 남편은 그것을 위해 아득바득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가게상황은 길가에서 흩날리는 가을낙엽만큼 쓸쓸했고 예민해진 정희 엄마만큼 우울했다.            2       입소문을 탄 정형외과병원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중의요법으로 인공마사지, 물리치료, 침구 등 치료방식을 취하는데 치료를 받고 나면 온 몸이 거뿐해지면서 계속하여 치료를 받고 싶어졌다. 정희 엄마는 이 좋은 걸 왜 진작 하지 않았나 후회가 될 정도였다. 되돌아보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인생은 없었던 듯싶었다. 삶에서 이악스레 지키고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사실 실없이 부서지는 모래성과 같았던 것임을…… 그까짓 게 뭐라고 그토록 자신을 혹사했는지, 부질없다고 느껴질 뿐이었다.    중약처방으로 받는 전기물리치료가 끝나자 주치의가 인공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했다.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긴 주치의는 젊은데다가 은근히 유머러스해 마사지를 받는 동안은 꽤나 즐거웠다. 처음 며칠 동안 굳어진 몸을 풀 때는 너무 아파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렀지만 이제 몸이 좀 풀리고 나니 주치의의 손길이 닿을 때면 이상야릇한 쾌감이 전해지면서 전에 없던 흥분이 솟구쳐 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닿는 손길에는 남자로서의 악력이 느껴지지만 그것마저도 황홀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주 잠깐씩, 아주 짧게 전달되는 미묘한 느낌이지만 결코 싫지 않는 감각들이었다. 치료 도중, 언제나 ‘사모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주치의의 이야기는 여러 부류 환자에 대한 얘기들로부터 막장드라마의 이야기, 그러다 자연스레 주변지인들의 생활의 이모저모로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 정희 엄마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다. 남자치고는 말이 유달리 많은 주치의는 그 언변도 뛰어나서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개그맨하면 딱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예능인으로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였다. 아니면 이런 인연으로 만날 일은 결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젊은 주치의는 대개 ‘귀부인’들은 자주 마사지를 받으면서 몸을 관리하기에 몸이 뭉쳐서 목디스크나 허리디스크가 올 경우가 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부님’은 도를 닦느라 돈은 별로 안 버는갑지에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사부님? 정희 엄마가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묻자 주치의는 배시시 웃으면서 사모님 반대말이 사부님이시니 당연히 남의 편인 남편님을 말하죠 하고 받아쳤다. 주치의는 정희 엄마네 경제상황이 썩 좋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제 멋대로 유추하고는 에둘러 표현했지만 정희 엄마는 대뜸 남편은 죽고 없어요 하고 말해버렸다. 농담을 곧잘 하던 주치의도 정희 엄마의 격앙된 말에 머쓱한지 인츰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 많은 돈을 쓰잘때기 없는 곳에 소비한 것이 몹시도 아까워졌다. 그 돈으로 주치의가 말하는 ‘귀부인’ 놀음이나 하면서 살았으면 좀 좋았을 것을…… 유치원부터 시작된 학원놀이는 정희가 엄마한테 바락바락 대들 때까지 이어졌으니 손꼽아 셀 수조차 없었다. 미술학원, 무용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 수학학원, 영어학원, 작문학원, 또다시 수학, 영어학원, 물리, 화학, 생물 심지어 정치, 역사, 지리까지 학교에서 배정된 학과는 모조리 학원에 보내 선행학습을 시켰으니 그 학원비용만 해도 마사지는 수백 번, 수천 번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급기야는 몇 배나 되는 비용까지 마다치 않고 개인교사를 모셨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깝기 그지없는 돈들이었다. 명품 백을 사도 한 궤짝은 가득 찼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급 다운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걸 두고 돈벌이밖에 모르는 남편이 늘 말하던 매몰비용이라고 하는 건가? 어쨌거나 지금부터라도 그녀 자신만을 위한 인생을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나 다짐과 함께 뜻 모를 눈물이 가득 배어서 스르륵 흘러내렸다. 눈물샘이 말라 더 이상의 눈물은 흘러내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 번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은 걷잡을 수 없었다. 마사지를 하던 주치의는 몹시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딩동~ 위챗음이 울렸다. 같은 학부형이자 친구인 지호 엄마였다.     -봤어. 나 봤어.   -무얼 봤다고?   -정희 말이야. 정희를 봤다고!   마사지를 받던 정희 엄마가 벌컥 일어났다. 그러더니 바로 지호 엄마에게 전화를 날렸다. 주치의는 정희 엄마의 돌발행동에 아직 침구치료가 남았어요 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정희 엄마는 탈의실에 가 옷을 갈아입는 것마저도 잊은 채, 신발을 신는 것마저 잊은 채 밖으로 나갔다. 추워지는 가을이라 바닥이 무척이나 차가왔지만 그런 것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 택시를 잡으려 하나 잡히지 않았다.   “Z커피숍 알지? 거기서 알바하고 있더래. 우리 시누이가 확인한 건데 그래서 나도 만사 제쳐놓고 그 커피숍 가봤지. 화장 진하게 했지만 분명 정희였어.”   지호 엄마는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애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냐? 그 일이 있은 후 공부도 하지 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그뿐이겠니. 잠도 자지 않더니 결국 재수했지 뭐니. 다들 자식새끼 대학 바래준다고 난리인데 나는 이게 뭐니? 하면서 뒷말을 늘여놓았지만 정희 엄마는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꺼버렸다. 빈 택시가 왔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는 기괴한 모습을 한 정희 엄마를 언뜻 바라보더니 어디로 모실까요 하고 물었다. 정희 엄마는 Z커피숍이라고 말했다.   달리는 택시에서는 라디오방송이 흘러나왔다. 유명 앵커와 청소년전문가의 대담형식의 방송이었다.   -방금 사례 잘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부 90후, 00후의 안하무인식의 ‘이기성’부터 짚어보시죠.   -특정사례로, 다시 말해서 하나의 특수성으로 한 세대의 공동체를 보편화시키는 건 타당치 않지만 아쉽게도 90후, 00후 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공감능력이라든지, 타인과의 연대능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좋게 말하면 개성 있는 자유분방함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타인과의 관계를 무시한 이기주의가 되는 거겠죠. 요즘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월광족’으로 본 쟁점을 짚는다면 돈을 버는 대로 모조리 소비하는 건 물론 국가경제적으로는 내수경제활성화에 도움 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놓고 볼 때, 이와 같은 소비는 생활형 소비라기보다는 문화형 소비에 가까움으로 자기욕구를 만족시킨 후 남는 문제는 고스란히 부채로 되는 거죠. 안타깝지만 그 부채는 부모가 떠안게 되겠죠. 킹거루족보다는 낫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부모에게 의탁하는 건 별반 차이가 없죠. 젊은 층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생활비가 다 떨어져도 누군가가 계속해서 공양해준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겁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거죠.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부모들한테 있습니다. 한 자녀든, 두 자녀든 우리 동양에서는 자기 자식을 지나치게 감싸고도는 측면이 있죠. ‘왕자병’, ‘공주병’은 다 과도한 사랑이 남긴 후유증이에요. 부모들뿐만 아니라 친가 측, 외가 측의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합세해 오로지 그 한 자녀한테만 충성하니 그 자녀들은 커서도 세상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이기적으로 되는 겁니다. 그들은 이미 어려서부터 그렇게 습관 되어 왔기에 자기 삶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려 들지 않게 되죠.   “요즘 애들 싸가지가 없긴 하죠.”   라디오를 듣던 택시기사는 인사이드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정희 엄마를 보면서 물었다. 정희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문화의 변화도 짚어봐야 합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 바뀌면서 사람들 간의 감정관계에 기초한 유대감은 차츰 사라지고 있어요. 서로 몸으로 부딪치고 직접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던 관계가 핸드폰이라는 전자기기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무얼 의미할까요? 디지털 전자기기에 의한 교류여도 진지하고 성실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겠지만 핸드폰이라는 물건으로 장벽을 친 이상 그 관계는 더 이상 직접적일 수가 없게 됩니다. 직접적이지 않는 관계는 가식이거나 혹은 왜곡해서 관계를 표출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그 진위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구조적으로 관계의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들 간의 진실한 유대관계가 점점 희석되어간다는 의미가 되겠죠.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점점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문화 환경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 되겠죠. 지금의 젊은 세대는 변화해가는 교착점에 서서 기술변화가 가져다주는 문화충격을 발 빠르게 흡수하고 있습니다. 수직적으로는 부모님들의 지나친 사랑의 보호를 받고, 수평적으로는 일인중심주의로 유도하는 디지털문화의 편의성을 향수 받고 있죠. 인간 대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관계에 대해 배울 기회를 잃고 있다는 겁니다. 인간의 연대관계가 공간적으로 이탈되어 있으니 당연한 결과겠죠. 물론 이 역시 하나의 사회적, 문화적 추세의 경향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과부하 된 ‘이기성’은 기존의 관계망으로 형성되었던 사회성에 변화를 가져다주게 될 것이고 이외에도 근로정신은 외면되어 사회적 부담으로 남게 되겠죠.    -가정에서 펼쳐지는 인간본능의 내림사랑, 그리고 격변해가는 사회에서 문화의 반전 등 요소들이……   “손님 도착했습니다.”   어느덧 택시는 Z커피숍에 도착했다. 정희 엄마는 요금을 지불하는 것마저 잊은 채 급하게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기사는 뒤따라 내리면서 정희 엄마를 따라잡으려 했지만 정차자리가 마뜩치 않아서 쫓을 수 없었다. 택시기사는 “씨팔년. 재수 옹 붙었어.” 하고는 거친 가래침을 내뱉었다.            3       남편에게 공안국에서 연락이 온 것은 비슷한 시간대였다. 남편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부랴부랴 공안국으로 향했다. 한때 제 집 안방 드나들 듯 다녔던 곳이었지만 지금의 발걸음은 어쩐지 새롭다. 정희로 짐작되는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1년을 조금 넘겼다. 그러니까 정희가 고중 3학년으로 올라가던 그 시점이었다. 1년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많은 것들이 그대로였다. 정희 엄마는 새로 태어난 듯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고 집안은 유령이 떠돌듯 늘 싸늘했다. 차가운 냉기가 가슴을 조여 와 언제나 불안했고 청천벽력으로 불어 닥친 사실은 여전히 믿겨지지 않았다. 1년이면 습관 될 법도 한데 결코 습관 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생활패턴은 엉망이 되어 노호하여 요동치는 바다파도와 같아 종잡을 수조차 없었다. 만약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유럽여행을 마치고 정희를 대학에 바래준 후 다시 열심히 가게 일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으면서도 결과는 그대로였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들을 취해보았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연락이 완전히 끊긴 상황에서 하룻밤을 지나고 이틀 밤을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정희 엄마를 병원에 데려간 후 백방으로 연락을 취하여 소식을 물었다. 담임선생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함께 인근 도서관으로 향했을 거라고 말했고, 친구는 도서관에서 나온 후 자신은 아빠가 와서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위챗 모멘트에 사진을 올려 “딸애를 찾습니다.”라는 문구를 올렸고, 유명 광고계정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해당사실을 알렸다. 친구는 자기 일 마냥 발 벗고 나서서 남편의 사실을 널리 전파하는 반면,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틱톡 운영자에게도 의뢰했다. 정희 엄마네 사연은 바로 전 도시로 퍼졌고 시일이 지남에 따라 여기저기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하지만 번번이 아니었다. 매번 엇나가는 제보와 함께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두려움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에 따라 현상금 액수도 점점 커갔지만 현상금으로 준비한 돈은 계속하여 제 주인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최악의 상황인 납치라도 당했으면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남편의 애달픈 마음을 비껴갔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해코지한 적 없었고 딱히 누군가의 원한을 산 적도 없었다. 이유가 된다면 그때쯤 가게장사가 정점을 찍고 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인질로 붙잡고 돈을 요구하는 전화라도 온다면 그토록 피 말리지는 않았을 거다. 적어도 희망은 있었으니 말이다.   신고접수를 받은 경찰은 전문수사팀을 조직했다. 이미 인터넷 플랫폼을 통하여 해당사건은 사회여론으로 널리 알려졌기에 하루 빨리 해결해야 했다.    경찰은 우선 실종당일을 기점으로 가동할 수 있는 모든 CCTV를 추적했다. 학교와 도서관 인근의 CCTV를 원점으로 반경 5km이내의 모든 CCTV를 판독했다. 가장 아쉬운 건 친구와 헤어졌다는 도서관 대문 앞에 직접적인 CCTV가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실종 당시 지점이 CCTV의 사각지대가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사라졌는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기에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차량탑승인지? 아니면 누군가와의 동행인지? 홀로 사라진 건지? 초동수사만 잘 된다면 행적을 추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경찰들은 반경 5km이내의 CCTV를 집중 판독함으로 체형이 비슷하거나 얼굴이 비슷해 보이는 모든 사람들의 궤적을 따라가 보았다.    이외에도 신분증을 통한 행적을 추적해보았다. 만약 단순한 가출이라면 이동할 때, 특히 고속열차나 버스에 탑승하게 되면 신분증을 사용해야 하기에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고 더욱이 숙박시설을 이용할 때도 반드시 신분증을 써야 함으로 가능한 위치를 추적해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딱히 그렇다 할 궤적은 나오지 않았다. 행적이 묘연하여 납치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면서 정희 엄마네 경제상황을 잘 알고 있거나 정희 엄마네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학교에도 수없이 찾아가 공부하는 애들을 들들 볶아대면서 정희에게 이상한 점이나 수상한 사람이 정희를 접근하지 않았냐고 탐문조사를 해보았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어쩌면 아무도 정희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중 한 학생이 주동적으로 경찰들의 탐문조사에 협조하였다는 점이다. 그 학생이 지호였다. 지호는 정희가 평소 음악을 즐겨 들었다고 말했다. 음악을 듣는 정희는 속으로 중얼거리듯 흥얼거렸지만 정희가 얼마나 그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호는 음악을 듣는 정희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호를 불러내 꼼꼼하게 물었다. 무슨 앱을 통해서 노래를 듣냐? 누구의 노래를 즐겨 듣냐? 무슨 노래를 어떤 시간에 주로 듣냐? 왜서 노래를 듣냐? 등 주로 정희의 취향을 유도한 질문을 함으로 정희의 심리와 정서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호는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정희는 굉장히 강한 척, 도도한 척 보였지만 실은 외로움과 슬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번잡하고도 복잡한 갈등과 번뇌를 갖고 있었다. 지호는 정희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면서 흐느꼈다. 친구가 많은 것 같았지만 실속을 나눌 친구는 없었고, 더욱이 반급 위챗그룹에서 정희는 늘 소외당했다. 일부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어서 정희의 뒷담화를 하는 걸 여러 번이나 목격했고, 심지어 몰래카메라로 찍은 정희의 영상을 개인톡으로 내보내는 학생도 있었다. 사라진 마지막 날 함께 도서관으로 향한 것은 야간학습이 끝나고 분위기 좋은 도서관으로 향하는 중 우연히 일부 반급 학생들과 함께였을 뿐이고, 아빠가 데리러 와서 먼저 집으로 갔다던 학생도 우연히 그 시간에 그 자리에 같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호는 경찰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사실은 정희를 짝사랑했다 고백하였다. 어려서부터 학구열이 대단한 엄마들의 영향으로 함께 많은 학원을 다녔지만 정희는 차가운 성격이어서 좀처럼 곁을 주지 않았고, 늘 혼자 고민하고 혼자 떠안고 혼자 속 썩였으며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1, 2등을 다투었지만 정작 본인은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동안 정희를 마음속에 품음으로써 지켜본 한 남학생의 탄백이었다.    경찰들은 지호의 진술을 토대로 정희의 위챗과 틱톡 아이디를 추적했다. 이미 오프라인 된지 오래 되어서 시체로 남은 좀비아이디였지만 그 흔적은 남아있었다. 정희는 틱톡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어느 이름 없는 아마추어 가수의 노래를 자주 들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까닭은 정희가 그 가수의 방에 들어가 좋아요를 많이 눌렀고, 가끔은 댓글도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정희의 흔적이었다.   이제 방향은 결정되었다. 경찰들은 즉각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불리는 가수의 신원을 파악해 연행한 후 그를 집중적으로 조사하였지만 결국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자유로운 영혼’에게서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하자 사건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제발 돈을 요구하는 납치범에게서라도 연락이 와주길 바랐지만 그것마저도 사치였다. 그래도 경찰 측에서는 포기하지 않고 수시로 신분증행적을 추적하는 한편, 납치범, 유괴범 전과자들을 차례차례 전수조사 해나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행방불명 2년이면 실종처리 되고 4년이면 사망선고를 하지만 대개 1년 가까이 행방불명이면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시신을 확인해볼 거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절망과 함께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 지났다.    공안국에 도착한 남편을 안내한 것은 중년의 몸집이 웅장한 경찰이었다. 실종신고를 했을 때에도, 정희 엄마와 함께 공안국을 자주 드나들 때에도 늘 보아오던 얼굴이었다. 경찰은 남편을 민사과 유치장으로 안내했다.   “저기 저 보이죠? 정희를 굉장히 닮았는데…… 본인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치장 속에는 앳된 얼굴이지만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울었는지 얼굴이 범벅 되어 있었다. 여자를 보던 남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리 1년이 넘게 지나도, 아무리 화장을 진하게 해도 자기 딸을 알아보지 못할 아빠는 없었다. 자기 아빠를 알아보지 못할 딸은 없었다. 모든 희망을 품고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남편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K노래방에서 불법매음정황이 포착되어 체포한 매음녀 중 하나인데 오직 저 여자만이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피의자들은 조사에 적극 응해주었지만 제법 완고하더라고요. 같이 체포된 피의자들을 심문해보았지만 실명은 끝까지 알아낼 수가 없었어요. 워낙 가명으로 그 업계에 들어가는 여성들이 많아서 말이죠. 현재 해당 사건은 입건되어 조사에 임한 피의자들은 모두 검찰 측에 송치되었지만 오직 저 여자만은 신분증을 제출하지 않아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펴보니 김정희 양 같기도 해서 연락드렸어요.”   “아직 살아는 있겠죠?”   남편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물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경찰은 남편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벌써 1년입니다.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연락이 왔겠지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시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4       된 감기에 걸린 정희 엄마는 방에 앓아누웠다. 이불을 푹 덮은 상태에서 연이어 기침을 하고 오돌오돌 떨고 있었으면서도 약을 먹겠다거나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집안에는 정희 엄마의 발자국 자리가 가득했다. 방바닥에는 어디 가서 긁혔는지 피자국과 모래 같은 것들이 눈 내린 후의 강아지 발자국마냥 난잡하게 찍혀 있었다. 무엇을 하려고 그랬던지 옷궤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입을 만한 옷은 모두 여행가방에 담아두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그러나 받을 염을 하지 않았다. 핸드폰은 집요한 듯 계속하여 울렸다. 시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정희 엄마는 번데기 속에서 유충이 탈피하듯 손만 빼꼼 내밀고 핸드폰을 잡았다. 지호 엄마였다. 받을까말까 하다가 안 받으면 끝없이 울렸기에 전화를 받았다.    “미안해.”   “정말 똑같았다니까. 우리 아들이 정희 때문에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는데…… 나도 속상하다고.”   “나도 얼마나 애썼는데…… 새끼 잃고 맘 편히 사는 부모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나도 계속해서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어. 그러지 말고 우리 점집 가자. 정말 용한 점집인데, 그 점쟁이라면 정희의 행방을 알지도 몰라.”   “점집?”    정희 엄마가 반응한다.    “그래, 점집!” 정희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남편 몰래 점집에 가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다시 한 번 실낱같은 동아줄이라도 잡아보고 싶어서였다.   “지금 나와. 해가 넘어가는 시점에 점발을 가장 잘 받는대. 음성양쇠라던가 뭐라던가? 아무튼 해와 달이 교차하는 그 시간이면 아주 쪽 집게 같다는 거지. 신들림 들어도 그런 신들림이 없다는 거야. 워낙 은밀하다보니 나도 지금 막 소문을 듣게 되었어. 너무 용해서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아는 지인을 통해 뒷돈을 좀 썼지. 지금 준비하고 가면 비슷할 거야. 애들 교육 때문에 우리 자주 만나던 곳 있지. 거기로 나와.”   정희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열이 나서 몹시 추웠지만 여행가방에 쟁겨 놓았던 두터운 겨울외투를 꺼내들고 입었다. 방에는 온갖 발자국 자리로 낭자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문밖으로 나가기 전에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니 변기에는 물을 내리지 않아 둥둥 떠다니는 샛노란 오물이 그대로 있었다. 역한 냄새도 났지만 정희 엄마는 개의치 않고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았다. 잠깐 변기의 물을 내릴까도 생각했지만 볼 일을 보고 그대로 나왔다.    날씨는 오전보다 더 추웠다. 된 감기기운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추웠다. 정희 엄마는 택시를 타고 지호 엄마가 말하는 그 곳으로 향했다. 연달아 이어진 학원공부 때문에 점심밥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던 아이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유독 아침잠 많은 아이였지만 정희 엄마는 아침 5시 30분만 되면 어김없이 깨웠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울며 겨자 먹기로 깨어난 정희에게 세수부터 강요하고 바깥에 나가서 매일 줄넘기를 시켰다. 그것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상관없이 진행되는 필수코스였다. 정희가 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실시한 하루일과 중 하나였으니 해수로 따지면 벌써 10년은 넘었다. 그럼에도 아침밥은 유달리 싫어했다. 세수하고 아침운동도 했지만 아침밥만큼은 직접 떠먹일 정도였다. 먹기 싫은 밥 억지로 먹이고 교복 입히고 머리 묶어주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학교 끝나면 학원선생님들이 연달아 줄 서서 기다렸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9시쯤 되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시간가량은 독서해야 완전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방학이 되면 점심밥 먹을 겨를도 없이 줄잡아 채워진 스케줄 때문에 빵과 우유로 떼운 적도 많았다. 왜 하필 학원상담으로 자주 들리던 곳에서 보자고 한 것인지 괜히 지호 엄마가 괘씸해졌다.    지호 엄마와 함께 으슥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빨간 “복”자를 거꾸로 붙인 집이 보였다. 지호 엄마가 노크했다. 노크하자 잠그지 않은 문이 저절로 열렸다. 집안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으슬으슬했다. 빠알간 전등에 비춘 벽지는 알아볼 수 없는 각종 신의 그림자들로 도배되었고 특히 현관문 정면 앞에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신 조각상은 각별히 위엄이 있어보였다. 그 앞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노파가 알록달록한 저고리 같은 옷을 입고 뒤돌아 앉아있었다. 주문을 외우는지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지호 엄마가 재차 노크하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지호 엄마는 정희 엄마의 손을 꼬옥 잡았다. 주문을 외우던 노파가 돌아앉더니 정희 엄마를 노려보면서 다짜고짜 소리 질렀다.   “이런 이런 미친년, 누가 함부로 들어오랬어? 어.”   자리에 앉기 전부터 쌍욕을 날렸다. 첫 대면에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불길해, 불길해…… 온 몸에 살기가 가득해. 그러니까 새끼 잃고도 지금까지 밥 처먹고 뻔뻔스럽게 살고 있지. 웬만큼 기가 센 게 아니야.”   정희 엄마는 온 몸이 전율했다. 놀란 나머지 콜록콜록 연이어 기침도 했다. 또 다시 몸이 뜨거워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는데 무당은 쪽 집게마냥 정희 엄마가 찾아온 이유를 알아냈다. 왠지 지금까지 보아왔던 다른 무당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지호 엄마는 정희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무당 앞에 앉았다.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어디 보자. 땅으로 꺼졌나? 아니면 하늘로 솟았나? 쯧쯧쯧…… 남편 짓이구만 남편 짓! 애가 아주 한이 맺혔어. 한이.”   무당은 맞은 켠에 앉은 정희 엄마를 노려보면서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남편이라니요?”   “그래, 남편. 둘이 아주 신났어. 신바람 나서 이 세상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어.”   “그럴 리가요? 그럴 리는 없어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기에 정희 엄마는 큰 소리로 무당의 말에 반박했다.   “미친 년, 얻다 대고 말대꾸야, 말대꾸. 재수 없게시리.”   “아주 신이 났어. 신이. 이 세상에서 못다 이룬 가슴에 맺힌 한을 지금 풀고 있는 게야.”   “쯧쯧쯧…… 남자치고는 소갈머리가 쥐 부랄만 해가지고는. 그동안 질투가 나서 어찌 살았을꼬. 부러워서 어찌 참았을꼬. 그래서 악귀가 되어 다시 나타난 것이여? 불쌍한 것, 불쌍한 것……”   무당은 홀로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워낙 빨리 말하는데다가 발음까지 정확하지 않아 정희 엄마는 무당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남편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남편은 그럴 리가 없어요.”   “뻔뻔한 것 같으니라구. 누가 지금 남편이래? 전 남편이야, 전 남편. 지금 전 남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새까맣게 잊고 있으니까 저승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찾아온 게지.”   “그럼, 그럼?……”   전 남편이라는 말에 정희 엄마는 온 몸에 닭살 돋듯 소름이 끼쳤다. 이미 저 세상에 간지도 십 수 년은 더 되는 사람이었다. 임신진단을 받았을 즈음해서 떠나간 사람이었으니 잊고 산지도 오래된 사람이었다.    “그…… 그럼, 설…… 설마, 우리 정희, 죽…… 죽었다는 말씀인가요?”   말하는 정희 엄마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돌아올 게야, 돌아와. 반드시 돌아올 게야. 아직 기운이 느껴져. 그렇지만 그 기운을 확고하게 살리려면 남편으로부터 떼어내야 해. 전 남편 한을 풀어주란 말이지.”   “요즘 같이 살고 있는 남편과는 자주 싸웠지? 암, 싸웠고말고지. 반드시 자주 싸웠을 게야.”    “네, 맞아요. 괜스레 꼴도 보기 싫었어요.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너무 싫었구요. 이 모든 것이 꼭 마치 남편 때문인 것만 같았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들이 들어요.”   “그게 전부 다 남편 작간이야. 그래, 자네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 보면서 쭈욱 질투했던 거지.”   “그럼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정희 엄마가 다급하게 물었다.   “보자, 보자.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어찌하면 전 남편 떼어낼 수 있을꼬?”   “뭐라도 좋으니 제발…… 제발……”   “부적을 써야 해. 암, 부적을 써야 하고말고. 부적을 써줄 테니 그걸 가져다가 남편 자는 베개 속에 넣어둬. 그럼 저 세상에 간 남편이 한을 풀고 정희를 놓아줄 게야.”   “그럼 우리 정희는 지금 살아있단 말씀이신가요?”   “미친년, 재수 없게시리…… 그 입방정이 문제야, 문제.”   무당은 다시 한 번 쌍욕을 날리더니 서랍에서 부적을 꺼냈다.    “남편 몰래 베개 속에 집어넣어둬. 초승달 뜨는 밤 10시에 넣어야 해. 그러면 비실비실 앓게 될 거야. 그때면 전 남편도 마음 풀고 정희를 놓아줄 거야. 그러니 꼭 은밀해야만 해.” “네네, 알겠습니다.”   정희 엄마는 큰 은인이라도 만난 듯 연이어 큰 절을 올렸다.           5       감기는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 그러나 그 감기는 남편에게로 이전되었다. 평소 튼튼하기 그지없던 남편은 된 감기로 앓아누웠다. 몸을 너무 혹사시킨 까닭도 있겠지만 정희 엄마 때문이기도 했다. 정희 엄마는 모든 잘못이 남편 때문에 발생한 것인 양 남편에 대한 행동이 도를 넘고 있었다. 남편은 흙모래와 핏자국으로 얼룩졌던 방바닥을 말없이 닦았고, 오물로 냄새나는 변기를 청결했으며 난장판이 된 옷장을 수걱수걱 정돈했다. 그럼에도 정희 엄마는 바짝 날카로워져서 사사건건 남편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러자 정희 엄마의 모든 것을 받아주던 남편도 차츰차츰 지쳐갔다. 육체적인 노동과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겹친 악재가 이어지면서 남편은 결국 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된 감기에 걸렸지만 정희 엄마는 남편더러 약을 먹어라든지, 함께 병원에 가보자든지 하는 말을 일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감기는 당연한 일이라도 되는 양 남편이 콜록콜록 기침을 짓고 목감기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주구장창 콧물을 흘리고 있는 등 모습들을 깨고소하게 바라봤다.    시작은 남편의 만사오케이였었던 것 같다. 딸 바보인 남편은 정희의 모든 요구와 조건들을 수락해주는 편이었고, 남편의 일방적인 사랑이 정희를 제멋대로 만든 거라고 했다. 정희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이 모든 게 당신 때문이라고……    그때 남편은 경황이 없었기에, 정희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자신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거라고, 그래야만 정희 엄마도 숨을 쉴 수 있을 거라고, 한때의 치기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어느덧 습관으로 되었고, 일상으로 되어 있었다. 점점 남편도 지쳐갔고 인내의 한계가 임계점에 달해갔다.    남편은 무심한 정희 엄마에게 화가 났다. 너무 힘들어서 가게 일을 경리에게 맡기고 인근진료소에서 링거를 맞고 돌아왔더니 정희 엄마는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누구를 만나기라도 하려는 듯 그 여느 때보다도 더 열심이었다.    무던하여 종래로 화를 낼 줄 모르던 남편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열이 뻗쳤다. 모든 게 엉망이 되었는데 정희 엄마는 신이 나서 분칠을 했다.    “얘기해.”   “무슨 얘기?”   “정말 나한테 할 얘기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대답하는 정희 엄마는 태도가 너무 온화하였다. 담담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남편은 더욱 화가 났다.   “좀좀좀, 이제 그만 받아드리자구. 산 사람은 살아야 잖아.”   “무얼?”   “뻔뻔해, 정말 뻔뻔스러워. 당신만 괴로워? 나도 괴롭다고. 괴로워서 미치겠다고. 그러니 이젠 그만하고 나도 좀 바라봐달라고. 피가 말라가는 느낌이야. 알어?”   “왜 또 징징거려? 똥 마련 강아지처럼.”   고작 한다는 말이 그거였다. 아니, 역시나 한다는 말이 그거였다. 거리낌 없이 퍼붓는 남편에 대한 무시와 냉대였다. 남편은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화장품들을 우르르 쏟아 던졌다. 방바닥에는 값비싼 화장품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졌다. 대화가 하나의 궤적으로 이어지지 않자 홧김에 취한 행동이었다. 정희 엄마는 씩씩거리는 남편을 한참동안 쳐다보더니 외투를 걸쳐 입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부르르 떨렸다. 남편은 부르르 떠는 현관문을 점토록 쳐다보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집안에서는 결코 피우지 않던 담배였다. 더욱이 된 감기로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담배에 불을 붙였다.    콜록콜록 연신 기침이 나왔다. 건 가래가 섞여 나와서 휴지에 가래침을 뱉어내고 소파 옆에 비치해두었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켜두었던 티비에서 다큐 영화가 방송되고 있었다. 남편은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열 추위로 이불이라도 덮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눈길은 티비 쪽으로 향했다. 티비에서는 정희 또래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비에서 방송되는 그들의 행동들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된다는 무언의 정당성마저도 부여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정희도 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티비에서 방송되는 영화는 비행청소년의 실화를 다큐 식으로 제작한 독립영화였다.    영화에서 손님으로 가장한 기자가 앳된 소녀를 따라 여느 개인주택으로 향했다. 가짜손님으로 둔갑한 기자와 소녀는 여느 온라인 채팅 앱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즉흥적으로 가격을 흥정하고 모 개인주택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거래는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만남도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기자는 쭈뼛쭈뼛 하면서 소녀의 뒤를 따랐고, 소녀는 늘 있는 일인 듯 자연스러웠다. 3층에 도착하자 주택문은 열리고 기자는 소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따라 여러 명의 소년들이 따라 들어가고, 또 그들의 뒤를 은밀히 미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경찰이었다.     주택 안에서는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하는 기자를 신고하겠다고 나선 것은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 소년들이었다. 소년들은 기자에게 합의금을 내놓으면 좋게 돌려보내주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몰매를 맞거나 경찰에 신고할 것이니 어서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소년들이 좋은 먹잇감을 만났다고 잘 요리하고 있을 때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경찰들은 이미 해당 사건을 파악하고 있었고 일망타진할 계책으로 그물을 펼쳐놓았다. 그 그물에 일당들은 꼼짝없이 걸려들게 되었다. 기자는 해당 사건의 내막을 깊이 있게 포착하기 위하여 경찰들에게 공조를 요청했고 스스로 미끼가 되어 깊숙이 개입했다.    일당은 당장에서 체포되었고, 영화는 그들을 조사하는 것으로 정식 시작되었다. 경찰들의 사건조사는 기자에 의해 낱낱이 촬영되었고 기자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조사받고 있는 청소년들을 취재했다. 이 업계에 뛰어든 원인, 범행을 저지르는 동기, 피해자와 피해금액 파악, 잔챙이(청소년)들 외에 그들과 공모하는 범행자와 이 업계를 총괄하는 뒷배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 등으로 경찰들은 체포된 청소년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카메라에 담긴 청소년들의 이유와 동기는 각양각색이었다.    한 소년은 17살이었고 늙은 할머니가 짜증나서 가출했노라고 밝혔다.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은 생각도 나지 않으며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늙어가면서 용돈이 줄어들게 되자 용돈이나 좀 벌어볼 요량으로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일은 평소 아는 형이 주선해주었다고 했다.   다른 한 소년은 19살이었는데 게임머니를 충당하기 위하여 게임 파트너의 소개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소년은 17살 소년의 ‘아는 형’이었다. 게임은 공부가 지겨워 잠깐 휴식으로만 놀기로 했는데 부모님이 너무 간섭해서 반발심에 더 놀게 되었고 그것이 중독이 된 이유라고 말했다.   이외에 19살 소년은 연예인 뺨 칠 정도로 잘 생겼다.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돈이 부족하여 아저씨를 만나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에 머슴 같은 이 여자아이가 동의하였다고 말했다. 여자아이는 수단이 좋아 아저씨로부터 많은 용돈을 챙겨 받았고 그 돈은 고스란히 자기한테로 넘어오니 그 재미가 쏠쏠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기자와 함께 밀약을 잡은 소녀는 18살이었다. 소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학교에서 ‘온라인 왕따’를 당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오로지 공부, 공부밖에 모르는 엄마 때문에 숨이 막혔다고…… 그래서 자유를 찾고 싶었다고, 집단따돌림으로 소외당하는 것도 싫었고, 누군가의 소유물로서 그 사람의 의지대로 사는 것이 지긋지긋했다고, 한 번 사는 인생 자기 뜻대로 살고 싶었고 그래서 가출을 했었노라고 밝혔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고 탄백했다. 말하는 소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였다.    영화는 잡힌 일당들에 대한 취재에 이어 더 큰 무리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을 펼쳐나갔다. 영화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남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남편은 그것이 정희 엄마인지? 정희인지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송화강》2021년 3기 휴먼문학
165    제3회 재한조선족시화전 온라인편(1) 댓글:  조회:179  추천:0  2021-10-18
주최 : 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후원: 재외동포재단, 동북아신문  
164    [여행기] 코로나시기 제주도 여행하기 댓글:  조회:188  추천:0  2021-10-13
코로나시기 제주도 여행하기  장문영 한국생활을 한지도 어언 15년째, 그동안 사는 게 뭐가 그리 바빴는지 그 흔한 제주여행 한번 못 갔었다. 코로나 때문에 방콕만 한 것도 너무 답답하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남편의 그동안 갈증도 풀어줄 겸 마침 홈쇼핑에 싸고 좋은 패키지여행상품이 나와서 7월4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생에 첫 제주여행을 다녀왔다.   장마 속에 떠난 여행 날자는 썩 전에 정해 놓은 것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전날부터 때 이른 여름장마가 시작돼서 3일 저녁부터 온밤 비바람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그래도 날이 밝으니 비바람은 좀 멈췄고 여행사에서도 별다른 통지가 없으니 강행하여 청주공항으로 떠났다. 오후 3시에 제주에 도착하니 다행히 날씨는 좀 흐렸지만 생각보다 선선해서 여행하기 딱 좋았다. 제주공항은 의외로 아담하고 우리 고향의 작은 공항처럼 스텝 카(계단 차)로 내려와 버스로 공항대기실로 이동하는 시스템이었다. 가이드언니를 만나 버스에 타니 어제 밤 태풍 급 바람이 불어 첫 번째 일정인 한담 해안 산책로는 낙석으로 길이 막혀 취소되고 바로 두 번째 일정인 수목원 테마파크로 갔다. 거기에는 아이스뮤지엄,3D착시아트,5D영사관,VR등 여행객들에 맞춤 상품인 듯한 실내 테마파크였는데 사진 예쁘게 나올 포토 존을 많이 꾸며 놓아 사진을 실컷 찍었다. 지하1층에 얼음조각 몇 개랑 얼음 미끄럼틀 두 줄 만들어 놓고 아이스 뮤지엄이라고 하는데 세계적인 빙 등의 고장에서 온 우리에게는 완전 소꿉장난 같았다. 제일 기대했던 일정이 수목원 테마파크 일대의 야시장 돌기였는데 야시장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가장 싸고 다양하게 본지의 미식들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정작 가보고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도에서 관광활성화 차원에서 청년실업자 지원용으로 푸드 트럭으로 한 개 거리를 조성해 야시장 같은 효과를 내려 하였는데 코로나로 관광객이 뚝 끊기다 보니 하나 둘 철수를 하고 푸드 트럭 대여섯 개 남았는데, 그것도 영업은 두어 개뿐. 상황이 이해는 되지만 TV에서 본 대만 같은 야시장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바오젠 거리와 일회용품근절한 호텔  저녁식사로 전복 뚝배기를 먹고 우리가 묵을 에어시티호텔로 향했다. 가이드분이 여기는 관광한류와 숙박, 쇼핑, 문화의 중심이라고 소개하면서 제주시중심인 호텔주위로 중국 회사 이름을 딴 차이나 거리-바오젠 거리가 있으니 호텔에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볼 것을 추천해 주셨다. 푸실푸실 비가 내리는 밤거리에는 사람들 한두 명 보이고 길가의 곱창집이나 돼지고기 가게에만 한두 테이블의 손님이 있을 뿐, 기념품가게나 카페에는 직원들만 지키고 있었다. 한 때는 엄청난 중국관광객들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는 이곳–바오젠 거리는 중국 회사들에서 1년에 한번 최우수사원들에게 주는 보상휴가로 제주도가 인기 있어 무려 일년에 30만 명이 최우수사원들이 다녀가자 제주시에서 더 많은 중국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이 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비 오는 거리를 한참 걷다가 어떤 중국식품점이 보이길래 반가워서 들어서는데 "환잉꽝린(欢迎光临)"하고 오랜만에 들어보는 중국어로 인사를 한다. 서울이나 경기도 인근 중국식품점은 오히려 중국어로 인사를 잘 안 한다. 많이 한국화 되어 있다는 증거다. 꿩 대신 닭이라고 그나마 중국 향수를 일으킬 만한 물건들이 잔뜩 진열된 중국식품점에서 할빈훙창이랑 산초닭발이랑 챠챠해바라기, 청도맥주 등을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와 한잔하면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밤을 만끽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누구도 얘기하지 않아서인지 내가 몰랐었던 것인지 제주도호텔에는 칫솔, 치약, 면도기 이런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는 단다. 농수산물재배와 여행업에 의존하는 제주도에서는 연간15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배출하는 쓰레기들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다행히 호텔로비에 작은 편의점이 있어서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요트와 더마 파크 이튿날 아침이 되니 엊저녁부터 불어친 바람 때문에 비구름은 싹 몰려가고 일정대로 샹그릴라 요트투어를 떠나게 되었다. 일정에는 바다낚시도 있었는데 파도가 세서 취소했다. 평소 버스 타고 서울 한번 가려고 해도 멀미 때문에 고생하는 내가 감히 이 큰 파도에 배? 그것도 흔들림이 유난히 심한 요트를 탈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전날부터 멀미 약 준비하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실제로 3분의 2 시점에서 좀 울렁였지만 참을 만 했다. 그 후 일정인 더마 파크는 제주도 여행의 인기코스중의 하나인데 많은 분들이 다녀간 후기를 읽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재미있었다.10~20대 몽골 소년소녀들이 말 위에서 고난도 기예를 펼치고 광개토대왕의 이야기를 스토리로 엮어 뮤지컬공연을 해서 아주 흥미진진했다. 오랜만에 현장공연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끼게 됐다. 앳되고 풋풋한 젊은이들이 먼 이국 타향에 와서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웬지 안스럽기도 하였지만 칭기즈칸의 후예답게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들이 너무 멋지고 대견했다   천년의 숲과 승마체험 3일째에는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 승마체험과 비자림이 제일 인상 깊었다. 탐라 승마장이란 작은 간판이 있는 주차장에 내리자 사람들이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는 지인의 집에 갈 때마다 빨간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말을 타고 찍은 사진을 본 게 생각났다. 그 전형적인 제주도여행 기념사진들은 여기서 찍은 것들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마스크를 쓰라고 강조하는데 여기서는 말이 놀랄까봐 마스크를 옷깃 속에 숨기란다. 망설이다가 이것도 언제 또 해보겠나 싶어서 용기내서 타봤는데 처음에는 엄청 긴장되더니 조금 지나니 점점 재밌고 신났다. 하루 종일 손님들 태우고 같은 코스를 돌고 도는 말들이 좀 안쓰럽기도 했지만 자기이름을 부르니 알아듣는 것도 신기했다. 다음은 천년의 숲–비자림으로 향했다. 세계 최대 비자나무 자생 군락지이며 834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우리의 선조들과 함께 온갖 풍상을 이겨낸 최고령 비자나무이자 국내의 다른 비자나무와 제주도 내의 모든 나무 중 최고령 목인 새천년 비자나무, 지역의 무사 안녕과 희망과 번영은 물론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과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새천년 비자나무를 에돌아 나오는 이번 코스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다. 숲 속에서 밟고 다니는 탐방로는 송이(Scoria)로 되어 있었다. 송이는 제주도 화산 활동 시 화산 쇄설물로 알칼리성의 천연 세라믹이며 제주를 대표할 수 있는 지하 천연자원이다. 송이는 천연상태에서 원적외선 방사율이92% 탈취율이89% 수분흡수율10% 항균선이99% PH7-2로 알칼리성의 천연 세라믹으로 인체의 신진대사 촉진과 산화방지기능을 지녔으며 유해한 곰팡이증식을 없애주어 새집증후군을 없애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수분을 알맞게 조절하여 화분용 토양으로도 많이 쓰인다. 이렇게 좋은 것들을 밟고 숲 속의 맑고 청량한 공기를 한껏 마시니  금방이라도 몸속의 나쁜 것들이 깨끗이 없어지는 듯했다. 비자나무는3~5미터의 아름드리 키 큰 나무 임에도 나무 가지들이 곧은 것이 없이 다 꾸불꾸불 얼기설기 엉켜 숲 공간이 아주 크고 환상적이었다. 숲 속을 걷노라니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 나오는 숲 속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몽환적이고 멋진데 카메라로 아무리 찍어도 실제 그 느낌을 담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정부에서는 숲을 보호하기 위하여 원래는 1일 관람 인원 제한 1800명이였는데 우리가 가기 이틀 전에 제한이 풀려서 오후에도 갈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면 아침부터 선착순으로 1800명이 금방 차버리기에 오전방문은 필수라고 한다. 주변에는 맨발로 흙을 밟아보는 분, 두 팔을 벌리고 온몸으로 숲이 주는 정기를 다 받으려는 듯 천천히 숨쉬고 음미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다. 우리는 피톤치드를 맘껏 마시며 걷다가 숲 가운데 제일 최고령인 새천년 비자나무 있는데 까지 가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돌아 나왔다. 숲 여행에서 힐링을 하고 바다 가 해녀들의 해산물 직판 식당 “동복해녀잠수촌”으로 갔다. 해녀 분들이 문어, 소라, 한치, 자리돔회 등을 썰어 놓는 대로 갖다 먹고 계산하는 시스템이어서 우리는 여행사에서 미리 주문한 전복죽에 문어회 한 접시를 더 갖다 먹었다. 평소 잘 안 먹던 문어라서 우리는 몰랐는데 다른 테이블의 아줌마들이 집에서 데치면 절대 이런 맛 못 낸다면서 감탄하시면서 드셨다. 식사 마치고 바람 부는 해변가에서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제주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여행을 마치며 이번 여행에 특히 고마웠던 것은 바로 떠나기 하루전부터 장마가 시작됐다고 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잘 참아줘서 가족들과 친구들이 장마철이라서 힘들겠다고 하는 문안전화가 무색할 정도였다. 또 하나는 우리를 인도했던 가이드언니, 제주도 토박이로 43세인데 22살부터 가이드일을 하셨다고 하니 경험도 풍부하고 제주도의 지리, 풍토, 언어, 전설, 주요 관광지, 특산품 등 해박한 지식으로 오가는 길 버스안에서 많은 풍토문화들과 제주도관련정보들을 알려줘서 고마웠다. 오래동안 해온 일이고 힘들고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이번 코로나로 인해 너무 많이 쉬어서 너무너무 손님들이 그리웠다고 하면서 일이 없어서 알바로 밀감 따러 다녀보니 자신의 천직이 가이드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분을 보니 웬 지 나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해서 씁쓸했다. 코로나 시기에 이런 고충을 겪는 분들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제주도 사람들은 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옛날부터 사람을 낳으면 서울에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곳곳에서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말들도 많이 보였고 말의 온몸에 버릴 것이 없다고 하면서 칼슘과 구리가 풍부해 골다공증에 좋다는 말뼈 환과 신경통, 관절염에 특효라는 마골환, 한때 엄청나게 인기있었던 마유등 제품들과 말고기전문식당이며 말가죽벨트,말가죽핸드백 등 말 관련 다양한 제품들도 있었다. 누군가 여행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남이 살던 곳으로 가서 돈 쓰고 구경하다가 다시 자기가 살던 곳으로 와서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결심하게 하는 것이란 글을 본적이 있다. 여행중에 엉덩이 의자를 달고 고추 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할머니를 보면서 오늘이 나에게는 평생에 처음인 신나는 제주도여행이지만 저분들은 이것이 평범한 일상 일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7월6일까지 700명이던 확진 자수가 7월7일 집에 온 이튿날부터 1200명을 넘더니 연이어 4일째 1200~1300명 대라 수도권에는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 시행결정이 내려졌다. 제주를 포함해서 주요관광지에 조금씩 시작되던 여행객들의 움직임이 또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그 틈바구니사이에 마침 다녀온 제주기행을 쓰면서 또다시 외출을 자제하고 외부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이때 여행이나 휴가를 못 떠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대리만족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끝으로 금방 배운 제주도 사투리로 인사 한 마디 남긴다.  ”여행사 냉 바리(시집간 여자)폭삭 속았 수다(수고하셨습니다)” 출처 : 동북아신문(http://www.dbanews.com)
163    [수필]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다 댓글:  조회:223  추천:0  2021-10-11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다 천숙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사람은 물론이고 많은 동물과 식물들도 물이 풍부한 것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때론 물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파괴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물을 다스리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세상은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물속에서 용이 꿈틀거리는 것일까? 강물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남송(1127~1179)시대의 궁중화가였던 마원(馬遠)이 그린 ‘황하역류’는 8백 여 년 전의 쓰나미 현장을 보고 있는 듯 생생하다.  황하는 세계 4대 문명 황하문명의 젖줄이었고 중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부터 홍수피해가 심했다. 황하의 홍수로 인해 3년에 한번은 둑이 터지고 그 토사가 쌓여 강 상류로 물이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는데 이 때문에 파충류가 극성하여 사람들은 지상에 살지 못하고 나무 위나 동굴에 집을 짓고 살았다. 화가가 살던 남송시대까지 강가에 산 사람들이 홍수피해를 많이 입었다. 이 그림은 자연을 어떻게 다스렸는지에 대한 역사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 신화에는 ‘곤鯤’과 ‘우禹’가 물을 어떻게 다스렸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들의 치수(治水)방법은 전혀 달랐다. ‘곤’이 선택한 치수방법은 흙으로 둑을 쌓는 것이었다. 아무리 둑을 높게 쌓아도 폭우가 한번 쏟아지고 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무너지면 쌓고 무너지면 또 쌓는 일을 9년이나 되풀이 했지만 결국 치수사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죽임을 당한다. 馬遠 [황하역류] 비단에 연한 색. 26.8×41.6cm 송나라. 북경 고궁박물관 소장 그다음 해결사로 등장한 사람은 곤의 시신에서 튀어나온 용이 변해 사람이 되었다는 전설의 사나이 ‘우’이다. ‘우’는 치수사업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답게 오로지 치수에 매달렸다. 흙을 나르고 도랑을 파느라 손발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정강이는 털이 날 새가 없어 반질반질했다. 오죽하면 13년 동안 한 번도 집에 들르지 않을 정도였을까. 결국 ‘우’는 갖은 고생 끝에 치수에 성공하여 왕위에 오른다. 똑같은 물을 다스리면서도 ‘곤’은 실패하고 ‘우’는 성공했다. 이유는 자연에 대한 이해이다. ‘곤’은 무조건 흙으로 물을 막으려고 만 했지만 ‘우’는 달랐다. 그는 억지로 물길을 막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물길을 타서 흘러가게 했다. 물길을 분산시켜 힘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현명한 ‘우’는 사람이 함부로 자연에 대항하여 맞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흐르는 물과 같다. 억지로 강요하면 황하가 역류하듯이 역반응을 보일 수 있다. 마음도 길을 내야 한다. 그 길은 감동을 주고 설득을 시켜 공감을 이끌어 내는 길이다. 그 물길 중의 하나가 역지사지이다. 그리고 진실이란 물길을 내야 만 이 마음이 강둑을 넘지 않고 흘러갈 수 있다. 천숙 약력 : 중국 벌리현 교사 출신. 집안 심양 등지에서 사업체 운영, 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수필, 시 수십 편 발표. 동포문학 수필부문 최우수상 등 수상. 동북아신문
162    채국범의 중편소설 '노크' , 외 김경훈의 소설평 댓글:  조회:398  추천:0  2021-10-09
김경훈 소설평 : 아픔으로 커가는자의 쓸쓸함의 두 경우 본지는 ‘한중작가 문학특집’으로 채국범의 중편소설 '노크', '섬 속의 섬' 과, 그에 대한 평을 싣는다. 채국범은 최근에 들어 꽤 많은 중편단 소설들을 발표하였다. 조선족 소설문단의 주목을 끌면서 조선족 문단의, 젊은 세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 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발표한 두 편의 중편소설을 읽노라면 우리는 기존세대 조선족 소설가들과 다른 소설풍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일단 소설의 서사나 묘사 등 소설기법이 자연스럽고 디테일해서 재미있는 만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일본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사의 방식과 비슷하다. 또, 비교적 엄밀한 구성에 주제를 파고 드는 깊이가 보인다. 김경훈 평론가는 그의 ‘노크’를 평할 때 “(그의 소설은) 젊은이들의 삶 속에서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와 이어진 소외화 그에 따른 여러가지 고민들을 다루고 있어서 그동안 외면하고 무관심하기 일수였던 그들의 내밀한 아픔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이해를 가지도록 만들어 한번 정도는 곰곰히 그 가치를 따지도록 촉구하기도 했다”고 했고,, 리태복 평론가는 그의 중편소설 ‘섬속의 섬’을 평할 때 “작품의 전체적 구조가 탄탄하며 사건 서술의 구도에서 저자의 능란한 솜씨가 돋보인다. 또한 사건의 디테일과 거시적 사회변화의 접목이 자연스럽고 언어감각도 뛰여나다. 무엇보다도 스토리의 전개에서 사실성과 개연성을 잘 융합시켰기에 리얼리티와 취미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차원에서 저자의 높은 기량이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고 말했다. 채국범의 소설가가 더욱 탄탄한 소설들을 내놓기를 바라면서, 이번에 실린 소설들은 중국조선족 문법대로 두고 게재하였음을 밝히는 바이다. -편집자-   채국범 프로필: 연변대학 일어학부 졸업. 연변작가협회 회원. 2002년《연변문학》 9기에 처녀작 시 를 발표. 2007년 시 로 제27회《연변문학》윤동주문학상 신인상 수상. 2016년 중국로신문학원 제26기 소수민족문학창작반 수료. 2018년 제8차 전국청년작가창작회의 대표. 2018년 중편소설 로 제37회 《연변문학》문학상 수상. 그외 소설 , , , , , 등 발표. 현재 연변작가협회에서 근무.   중편소설                                          노크      1 나는 다시 그녀의 집 문 앞에 서있었다. 상황은 언제나 그랬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머리속에 되살아나면 마지막에 가선 항상 그 아파트가 떠올랐고 이어서 101호라고 표시된 문과 그 앞에 서있는 나 자신의 옆모습이 보였다. 몇번인가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번마다 망설이며 다시 내리웠다. 또 한번 천천히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녀에 대한 기억의 엔딩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 엔딩은 나의 눈앞을 무한반복이 되여 끊임없이 지나간다. 나는 끝끝내 노크를 하지 않았다.   똑똑똑 이사짐을 넣은 좋이박스를 뜯다가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오늘밤은 열시부터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오전내로 집정리를 끝내고 이내 자야 했기에 나는 때 아닌 노크가 썩 반갑지 않았다. “누구세요?” 문을 열고 보니 상대 쪽 얼굴보다 시선에 먼저 들어온 건 눈썹 우까지 꼭 눌러쓴 회색 롱비니모자였다. “안녕하세요?  오하라 사크라꼬(大原樱子)예요.” “네, 안녕하세요. 사이(蔡의 일본어발음)라고 불러요.” “사이? 외국 분이세요?” “네, 중국에서 왔어요.” 그녀는 집안을 힐끔 곁눈질해보더니 손가락으로 안경테를 춰올리며 호기심이 동한듯 물었다. “금방 이사왔어요? 저는 101호에 살아요.” “미안해요. 제가 먼저 인사드려야 하는데...” “괜찮아요. 아, 이거 마셔요.” 그녀는 록차가 들어있는 페트병을 쑥 내밀었다. 예상치 못한 나는 엉겹결에 받아쥐고는 어리둥절해 서있었다. “요 앞 자판기에서 뽑은 거예요. 시원해요.” “아, 네, 고마워요.” “오늘 날씨 참 덥죠? 벌써 30도가 넘는데요.” “그러게요. 정말 찌는 것 같아요.” 덥지 않으세요? 나는 하마트면 물어볼 번했다. 그녀의 비니모자가 참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사 온 내가 먼저 이웃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례의인데 상황은 바뀌였다. 나는 페트병을 손에 쥔 채 속으로 사크라꼬가 그냥 인사하러 온건지, 반가워서 그러는 건지, 호기심 때문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보다 지금도 내 기억에 남는 건 서투른 인사가 아닌 뜻밖의 부탁이였다. “저기, 부탁 하나 있는데요.” “네? 뭔데요?” “이 부근에 길고양이들이 욱실거려요. 그중 한쪽 눈이 까만 얼룩이가 우리 아파트에 자주 와요. 뭐 큰일은 아니구요, 시간날 때 여기 접시에 먹이를 좀 줄 수 없을가요?” 그녀는 저가락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문밖에 놓여있는 세탁기 옆을 가리켰다. 나는 머리를 들어 문 옆마다 놓여진 세탁기를 한번 훑고는 그녀한테 눈길을 돌렸다. 새로 든 세집은 신쥬크구(新宿区, 도쿄23구역중 하나)의 다카다노바바(高田马场)역에서 서쪽으로 걸어 십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일본4대명문대학의 하나인 와세다대학교 (早稻田大学)도 이 근처에 있어 부근에 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인지 방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한편이였다. 기숙사형으로 지은 아파트는 2층으로 되였고 각층에 방이 세개씩 있었다. 사크라꼬는 101호, 나는 103호였다. 방마다 한대씩 배치된 세탁기는 현관문을 열고나면 곧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자리가 왜 하필 우리 집 문 앞인지 리해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나의 의혹을 눈치 챘는지 인츰 설명을 덧붙였다. “전에 이 집에 사셨던 분이 고양이를 챙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먹이를 찾으러 올 때마다 이 집 앞에서 울어요. 그분이 간후로 제가 챙기고 있는데 가끔 먹이를 주는 것을 까먹군 해요. 길고양이들이 참 불쌍해요. 그렇죠?” 일본사람들은 거지에게 돈을 주지 않을지언정 고양이에게는 먹이를 준다고 한다. 회사의 정사원이 아니더라도 아르바이트로 얼마든지 생계를 유지하고 열심히 일하면 심지어 수입도 일반회사원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하기에 그들은 거지는 게을러서 궁핍하지만 동물들은 인간의 보살핌이 없으면 굶주리게 된다고 여기는 습관이 있다. 그녀는 고양이밥주기에 동참해달라는듯 간절한 눈길로 바라보았고 나는 자신에게 별로 관심 없는 일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거절에 약한 성격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알겠어요. 시간날 때 저도 줄게요.” “고마워요.”      사크라꼬를 만난 건 6년전 여름이였다. 그해 봄에 일본에서는 기상관측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다. 모멘트 9.0으로 추정되는 이 지진은 미야기현(宫城县, 중국의 성에 해당되는 행정급별) 동쪽에 떨어져있는 부근해역에서 발생하였는데 사실상 도쿄에서도 강한 진동이 관측되였다. 지진발생 한달전, 나는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려고 신쥬크의 한 편의점에서 야간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밤 열시부터 이튿날 아침 여덟시까지 일해야 했기에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부엉이처럼 일어나 일만 했다. 내가 살던 세집은 12층이였고 지진은 침대에 누운 지 얼마 안되여 일어났다. 집이 통채로 흔들리며 주방과 욕실에 올려놓은 물건들이 한순간에 바닥에 떨어져 요란을 피우던 소음들이 아직도 내 귀전에 또렷하다. 그 일이 있은후 나는 여기저기 방을 알아보던중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오게 되였다. 오래동안 나는 가끔 아무 영문도없이 그녀의 모습이 갑작스레 눈앞에 떠오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자신한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을가? 우리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가? 인간관계의 토대는 어디에 있는가?   수많은 질문들은 나로 하여금 당시 자신의 행동의 근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그만큼 그녀와의 만남은 나의 머리속에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회색 롱비니모자를 꾹 눌러쓰고 고양이를 부탁하던 첫 만남이였다.   2 이사를 온후에도 나는 줄곧 밤에만 일하러 다녔다. 편의점 일은 쉬운 듯 했으나 세심하고 꼼꼼히 체크할 조목들이 엄청 많았다. 특히 야간작업은 상품수가 상당히 많아 더 번거로웠다. 점원 두명이서 몇백가지 상품들을 종류별로 나누어 하나하나 개수를 체크하고 정리, 정돈, 진렬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그 와중에 식품폐기물을 찾아내 컴퓨터에 등록하여 재료를 작성하고 신문이나 잡지, 택배업무, 레지점검, 각종 청소, 그리고 아침이면 전체 상품에 관한 재고관리와 발주까지 하고 나면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이상한 손님들을 만나 생각지 못한 트러블이나 클레임이 생기면 잔업하기가 일쑤였다. 잔업비는 지불받기에 손해 보는 건 없지만 밤을 새가며 열시간 일한 뒤 또 잔업을 하자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편의점에서 일한 지 반년 쯤 됐을 무렵에 바로 그런 일이 한번 생겼다. 8월의 도쿄날씨는 말 그대로 찜통이였다. 청량음료와 맥주는 일년중 최고매출액을 기록하였고 사람들은 고된 하루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두 캔씩 사는 걸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손님들중에는 맥주를 사는 척하면서 점원 몰래 슬쩍 훔쳐 달아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위 좀도둑이라고 보면 되는데 일본말로는 “만비키”라고 불렀다. 그 사람은 20대의 남자손님이였다. 그는 맥주코너 앞에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다른 손님들이 카운터에서 돈계산을 하는 틈을 타서 맥주 두 캔을 스포츠가방에 몰래 집어넣었다. 서너명의 손님들이 카운터에 줄을 서있었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는 또 손을 뻗었다. 서너 캔을 더 훔친후 담이 커졌는지 돌아서서 안주거리까지 쓱 채갔다.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과 눈길은 카운터 쪽에 고정한 채 한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단지 손만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는 사무실의 모니터로 낱낱이 감시하고 있었다. 모니터 옆에는 그 남자가 전에 한번 왔을 때의 모습을 프린트해놓은 종이가 붙어져있었고 여백에는 점장이 “주의인물”이라고 써놓은 글자도 함께 적혀있었다. 그는 아마 상습범인 것 같았다. 작업을 마친 그는 들고있던 가방을 천천히 메더니 별로 살 물건이 없다는듯이 고개를 저었다. 카운터 앞을 지나 능청스레 다른 한 점원인 야마모토(山本)에게 인사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나는 유니폼을 벗고 슬그머니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대여섯발짝을 걸은후 재빨리 달려가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손님, 가방 안을 한번 봅시다!” “뭐야? 내가 도둑질했다는 거야?!” 흠칫 놀라는 그의 표정과 흔들리는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가방을 품속에 끌어안으며 나의 제안을 거부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멱살을 잡아 다짜고짜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가 사무실에 가두어놓았다. 가방 안에서 캔맥주 다섯개, 아몬도 두봉지, 오징어, 포테토칩 등등이 나왔다. 전화 받고 달려 온 경찰도 도리머리 흔들더니 코웃음을 쳤다. “크, 한잔 톡톡히 하려고 작정했군. 이 안주를 고른거봐.” “도둑질한 거 아니예요. 돈 내려고 했단 말이예요.” 그 남자는 부끄러운 내색도 없이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내뱉었다. 전혀 반성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신쥬크경찰서로 끌고 갔다. 뜻밖에 나도 함께 가야했다. 도둑을 붙잡아 신고한 사람이 나였기에 같이 가서 조사에 협조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어쩔수 없이 야마모토한테 가게를 맡기고 경찰차에 합승했다. “조사 금방 끝나죠?” 가게납품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한 목소리로 경찰에게 물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처럼 빨리 돌아가지 않았다. 그 남자는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승인하지 않았다. 돈을 계산할 생각이 있었지만 한순간 깜빡했다고 억지를 부렸다. 경찰들도 편하게 업무를 끝내기 위해 자기절로 죄를 승인하라고 유도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다른 독방에 들어가 여러가지 질문에 대답하며 당시 상황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였고 경찰은 내말을 문자로 작성하여 컴퓨터에 입력하였다. 벌써 한시간이 지났다. 결국 형사가 직접 나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십분도 안돼 그는 순순히 자기 범행을 승인했다. 마지막으로 경찰이 나에게 한마디 물었다. “합의 보시겠습니까? 기소하시겠습니까?” “태도를 보니 안되겠어요, 기소하겠습니다.” 내가 가게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 두시가 넘은 뒤였다. 경찰서에 족히 두시간은 있은 것 같았다. 그사이 상품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야마모토는 손님이 올 때마다 카운터에서 돈을 계산할라니 혼자서 품목을 체크할라니 해일처럼 밀려드는 일거리에 팽이처럼 돌아치고 있었다. 나는 야마모토한테 경찰서에서 있을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나서 들어가 좀 쉬라고 하였다. “쓸데없는 일에 왜 끼여들어?” “왜라니?” “거 봐, 경찰 부르니까 얼마나 시끄러운가. 주말이라 손님도 많은데... 아침에 또 잔업하게 생겼잖아.” “그래서 못 본 척하라고? 그놈 한두번도 아닌데...” “물건만 되찾으면 됐지. 시끄럽게, 에이 정말!” 야마모토는 퉁명스레 둬마디 하고는 사무실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자기 리익에 손해 보는 일이 없기에 그냥 강건너 불 구경하듯 대충 넘어가도 된다는 태도에 나는 그닥 놀라지 않았다. 야마모토랑 처음 야근을 했던 그날의 대화가 생각났던 것이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막 나가려는 나를 그가 불러세웠다 “왜 그리 급해? 아직 오분 남았잖아.” “먼저 나가 준비하면 좋잖아?” “먼저 나간다고 누가 고마워하지않아. 자기 시간만 지키고 자기 일만 하면 돼. 알았지?” 그 뒤로 나는 야마모토와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하기엔 메마르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고 멀리하기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필요한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는 항상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수온을 유지했다.   3 나는 그 가게에서 일하면서 모두 두명의 도둑을 붙잡았다. 다른 한 사람이 훔친 물건 값은 겨우 200엔 밖에 안되였다. 그건 아사히표 캔맥주 하나 값에 불과하였다. 전에 그 남자가 훔친 4000엔어치의 물건값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어이없었다. 나는 하도 한심해서 이 정도 훔치고 붙잡힐 거면 차라리 사는 게 낫겠다고 푸념했다. 아직도 그 사람의 모습을 눈앞에 보는 것 같다. 사무실에 끌리워가서도 어떤 후과가 초래될지 전혀 관심이 없다는듯 담담하던 그 얼굴을 말이다. “이젠 마스크를 좀 벗죠?!” “화분증이 심해서...” 화분증(꽃가루가 점막을 자극함으로써 일어나는 알레르기. 결막염, 비염, 천식 따위의 증상이 나타난다.)은 일본사람들의 국민병이기도 하다. 네명중에 한명이 이 병으로 시달리고 있을 만큼  4, 5월이 되면 환자들이 부쩍 늘어난다. 그런데 지금은 여름도 거의다 지나가는 계절이 아닌가! 나는 화가나서 손을 뻗쳐 마스크를 확 벗겼다. 곧 당황했다. 그 사람은 바로 사크라꼬였던 것이다. 그제야 빼앗은 물건을 다시한번 확인해보니200엔 밖에 안되는 고양이 먹이감이였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도 얼굴색 한번 바뀌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목석마냥 서있었다. 순간 망설여졌다. 경찰서에 전화해야 할 타이밍에 나와 그녀 사이에는 찜통같이 견디기 힘든 침묵이 흘렀다. 야마모토는 마침 휴식시간이여서 밥 먹으러 가고 가게에 없었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올리다보며 야마모토가 돌아올 시간을 체크했다. 그가 돌아오면 또 뭐라 투정질 할 게 뻔하였다. 모름지기 저번에 도적사건 때문에 잠이 꼴똑 찬 두눈을 집어 뜯으며 아침까지 세시간이나 잔업하던 일이 눈 앞에 떠올랐다. 나는 어느새 이 일이 나에게 미치는 불리한 상황들을 찾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아마 그 어떤 핑게를 찾고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경찰서에 보내지 않고 그냥 돌려보낼, 자신을 설득할수 있는 그럴듯한 핑게를 찾고 있었다. 차라리 그녀가 보내달라고 애원하길 바랐다. 나 절로 보내주기엔 그런 자신이 납득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그녀가 바보처럼 여겨졌고 오히려 더 화가 났다. 시간은 일분일초 흘렀다. 갑자기 모니터에 야마모토의 얼굴이 언뜰거리더니 익숙한 몸집이 눈에 띄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부랴부랴 그녀를 사무실에서 끌고 나왔다. 야마모토는 스마트폰을 훑어보다가 카운터로 향하는 우리와 시선이 마주쳤다.다행이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그냥 사무실로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상품을 등록하고 값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애써 서로의 눈길을 피했고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다가 그만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급히 주어 500엔짜리 동전을 카운터에 올려놓고는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채 총망히 그 자리를 떴다. 그 일로 우리는 당황한 이웃이 되었다. 어색한 건 물론 이제 우연히라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그녀는 어떤 심정일가? 나처럼 놀랐을가? 부끄러웠을가? 고마워하든 미워하든 나는 우리 사이에서 오래동안 그 “당황”이란 두 글자를 빼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이 나에게도 없었던 건 아니다. 학교 다닐 적에 싫어하는 과목을 시험 볼 때마 머리가 복잡해나군 하였다. 그때 어느 과목을 시험보고 있었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에 대충대충 공부를 했던 나는 손바닥보다 더 작은 종이에 깨알 만한 글자를 빼곡이 적은 답안지를 작성해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운 좋게 답안지에 있는 문제가 나올 때마다 속으로 환성을 질렀다. 그 기쁨은 아주 묘한거였다. 긴장과 흥분과 자극이 한데 어우러져 짜릿함이 전신에 감돌았다. 시험장에는 감독선생님과 밖에서 돌아다니는 순시원선생님이 계셨다. 순시원선생님은 학교의 령도자들이였기에 그들이 시험장에 들어올 때마다 감독선생님들도 긴장해하군 했다. 그런 가운데 나의 부정행위가 그만 감독선생님한테 들키고 말았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모닥불을 뒤집어쓴 듯했다. 손에는 땀이 바질바질 났고 쥐고 있는 연필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뜻밖에 감독선생님은 깨알같은 글자가 가득 적힌 답안지를 재빠르게 자기 손 안에 움켜쥐고는 모르는척 돌아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듯이 서너발작 떨어져있는 순시원선생님과 별로 요긴치 않은 얘기들을 나누며 그들의 주의력을 흐트려놓았다. 그후로 나는 아무리 싫은 과목이라 해도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특히 그 감독선생님의 과목에는 더 많은 정력을 몰부었다. 하지만 매번 그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면 나의 눈길은 더 이상 앞을 응시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미리 예습을 해둠으로써 언젠가 나에게 어떠한 질문을 던져도 완벽하게 대답할 수 있게끔 자신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선생님은 한번도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는 후회스러웠다. 더욱 고통스러운 건 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 선생님과의 불편한 관계였다. 졸업할 때까지 우리는 한번도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시험장의 부정행위에 관련해서도. 우리는 사생관계에 무슨 색감을 더 섞었을가?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여러가지로 분석해보군 한다. 자기의 학생이 순시원선생님한테 들키는 것을 원치 않아서, 내가 불쌍하여 측은지심 때문이라고 추측을 하는 한편 반대로 나의 부정행위로 자신의 감독직책이 제대로 리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발각될가 봐 책임회피를 하려고 막아준거라고 나는 나의 수치심을 잠재우려 하였다. 하지만 내가 그 사실에 혼자만의 리유를 붙여놓는다는 자체가 벌써 수치심이 깨여나있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어떠할가? 수업중에 항상 준비하고 있는 자신에게 질문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녀도 내가 그 어떤 방식으로 다가감으로써 당황한 이웃에서 그 “당황”이란 두글자를 빼려고 하는 걸가? 그렇다고 그것이 지워질 수 있는걸가? 나는 아직도 시험장사건이 머리속에 생생한데...   4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밀고 갔다. 가게도 집도 모두 신쥬크구역에 있었다. 골목길에 들어서서 집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질수록 그녀와 마주치지 말기를 바랬다. 내가 살고 있는 103호는 아파트 안쪽에 위치해 있기에 반드시 그녀의 집앞을 지나야만 했다. 작고 아담한 유럽풍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전거를 세우는 곳이다. 열쇠를 다 잠글 때까지 될수록 소리를 작게 내느라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는 방음처리가 잘되지 않았다. 벽을 사이에 두고 들리는 티비소리, 주방에서 반찬을 볶는 소리, 욕실에서 샤와하는 소리들은 옆집사람의 생활을 고스란히 전해주었고 때로는 소음으로 때로는 리듬감 넘치는 음악소리로 이 아파트에 나 아닌 다른 사람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중에 샤와소리를 나는 지금 듣고 있다. 그건 102호에 사는 사람의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누구나 모두 자기만의 생활패턴이 있기 마련이기에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 순간 어색한 건 분명했다. 제 집이 아닌 사크라꼬의 집에서 들리는 옆집 샤와소리는 엊저녁 나와 그녀사이에 흐르던 찜통같은 침묵처럼 견디기 힘들었다. 자전거키를 잠그고 돌아서는 나를 기다렸다는듯이 그녀는 문밖에 기대여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귀를 덮은 회색 롱비니모자는 그대로였는데 모양이 불룩한 걸로 보아 머리가 긴것 같았다. 갸름한 얼굴을 가진 그녀는 작은 코에 해리포터 안경이 걸려있었고 두눈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똘망똘망하였다. 할 얘기가 있다는 말에 피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끼며 할수없이 안내하는 대로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옆집엔 와세다에 다니는 학생이 살고 있어요.” 나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집안을 빙 둘러보았다. 현관문 량쪽에 각각 주방과 욕실, 화장실이 붙어있다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기숙사형 아파트의 집안구조는 모두 똑같다. 나를 놀래운건 27평메터 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방에 창문을 마주해 꽤 넓어 보이는 책상이 놓여있고 그 량쪽에 각기 빨간색 바탕에 노란 쿠션을 맞춘 소파와 나무침대가 갖추어져 있다는 점이였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놀라운 건 지금 나와 그녀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소파에 앉아 방안에 가득 쌓여있는 만화책에 눈길을 던지며 넌지시 물었다. “만화 좋아해요?” “일본사람이라면 다 좋아하죠.” 듣고 보니 물어본 내가 바보 같았다. 그녀랑 눈길이 마주치기 어색하여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책상 우에 놓여있는 두툼한 종이들을 발견했다. 그 우에 그려진 수많은 그림들을 보는 순간 나는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 번 했다. 그녀는 만화를 즐겨보는 독자가 아니라 만화가였던 것이다. 문득 초중, 고중을 다니는 동안 만화에 푹 빠져 살던 학교시절이 떠올랐다. 예측불허의 상상과 뛰여난 실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토리와 그림에 매료돼 같이 나도 만화를 그려보겠노라며 똑같은 얼굴을 열두번씩 그렸던 열정들, 비록 나중에 자신의 능력부족을 한탄하며 포기는 했었지만 만화는 내가 일본을 리해하는 계기가 되였고 류학을 오게 된 여러가지 리유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솔찍히 그녀가 만화가란 사실에 나는 모름지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네? 뭐라고요?” “아, 아니예요.” 사크라꼬는 멋적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뭔가 말한 것 같았는데 나의 정신은 죄다 만화에 쏠려있었다. “만화 그리세요?” “네, 저의 직업이예요.” 호기심이 부쩍 동안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만화가의 초고를 직접 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녀의 만화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포인트로 하는 원피스(海贼王, 인기만화)나 탄탄한 이야기줄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나르토(火影忍者, 인기만화)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현실에 아주 가까웠다. 만화의 종류를 구분할 줄은 잘 모르지만 나름 대로 그런 풍격을 사실주의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난 이런 풍격의 만화가 인기가 있을지 궁금했다. “이거, 언제 완성돼요?” “글쎄요. 아마 반년정도? 출판사에서 내줄지 걱정이예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야웅-     갑자기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 그녀가 말했던 얼룩이인 것 같았다. 그녀는 먹이감을 들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한쪽 눈이 참대곰처럼 까만 얼룩이가 나의 집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녀는 먹이감을 접시에 쏟아주고는 가릉거리며 먹고 있는 얼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그녀의 얄팍한 등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일어나 내 쪽으로 돌아서던 그녀와 나는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그녀의 손에는 고양이 먹이감이 쥐여져있었고 두사람의 머리속에는 아마도 똑같은 일을 회상하는듯 싶었다. “으흠.” 난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도 이내 머리 숙여 잔걸음으로 총총히 내 옆을 지나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냠냠 걸탐스럽게 먹어대는 얼룩이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결국 할 얘기가 있다던 그녀는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가? 비밀로 해달라고? 고맙다고? 그 후 이 일은 나와 그녀사이의 묵인 된 비밀이 돼버렸고 또 만화로 인해 우리는 공동한 취미도 생겼다. 비밀로 동질감을 느끼고 만화로 뉴대가 생겼다는 것이 이상해났다. 나는 이런 이상한 관계가 호의적인지, 배타적인지 항상 두리뭉실하게 느껴졌다.     시험장에서 부정행위를 하다가 발각된후 감독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이와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어색해할가 봐 일부러 외면했을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선생님의 마음속에 나는 주의해야 할 인물이라는 락인이 찍혔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바르지 못한 행위만 부정한 걸가 아니면 그런 행위를 한 나란 사람자체를 부정한 걸가? 마찬가지로 그 당시 나는 그녀의 행위를 그리고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가?     5 사크라꼬를 다시 만난 건 그해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중턱에 들어선 어느 휴식일이였다. 매일 야간작업을 하는 나와 집에 박혀 만화만 그리는 그녀의 생활패턴은 정반대여서 한달이 더 지나도록 얼굴 한번 마주치기 어려웠다. 어쩌다 돌아오는 휴식일도 생물종이 뒤죽박죽이 되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아 나는 해질녘에 츄하이(소주에 약간의 탄산과 과일즙을 썩은 술)사러 마트로 갔다. 안주까지 골라가지고 카운터 앞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돈지갑을 집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점원의 눈빛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 이거 정말 미안해요, 먼저 여기 놔둬요. 인츰 갔다 올 게요.”     “함께 계산해요.” 목소리따라 뒤를 돌아다보니 그녀가 바구니를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나한테 웃어보였다. 나는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그냥 꾹 참았다.     “미안해요, 폐를 끼쳐서.”     “괜찮아요, 갔다오기 시끄럽잖아요.”     “고마워요.”     “뭘요, 그나저나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벌써 가을이네요.”     점원이 상품을 등록하는 사이 우리는 날씨를 핑게로 상투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계산이 끝나 마트에서 나온 나는 그녀의 비닐주머니를 들어주면서 돈은 집에 가서 주겠다고 하였다.     “츄하이 좋아해요?”     “잠이 안 와서요.”     “벌써 자려구요? 여섯시인데?”     “하루종일 자고 싶어요.”     “많이 피곤한가보네요.”     “네.”     “녀자친구는 돌아갔어요? 아까 마트에 올 때 봤거든요.”     “네, 갔어요.”     우리는 다리를 건너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강변을 따라 걸으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아파트 옆에는 서너메터 너비의 길을 사이 두고 이름 모를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강을 따라 조금 걸으면 아파트로 들어가는 철문이 보였고 그 앞에는 높다란 벚꽃나무 한그루와 다리쉼을 할 수 있는 벤치도 있었다. 벤치 우에서 우리는 얼룩이를 발견했다. 그녀는 쪼르르 달려가서 얼룩이 앞에 쪼크리고 앉아 물었다.     “여기서 뭘 해?” 야웅- 얼룩이는 웅크린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먹이를 자주 챙겨줘서인지 그녀에 대해 별다른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쪼크린 그녀와 웅크린 얼룩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줄기 가을바람이 불어와 귓볼을 간지럽히더니 얼룩이 몸 우에 꽃잎 하나가 하늘하늘 춤을 추며 떨어졌다. 그녀는 꽃잎이 떨어진 포물선을 따라 머리 우를 쳐다보더니 어린소녀마냥 환성을 질렀다.     “저 봐요, 사크라예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 팔을 높이 치켜들며 손가락으로 나무 가지를 가리켰다. 나도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새끼손가락 만한 가지 끝에 한두송이밖에 안되는 벚꽃이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사크라? 어떻게 가을에 피지?”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때론 가을에도 핀다고!”     그녀는 벚꽃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노을빛에 노랗게 물든 벚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녀, 그 아래 벤치에 앉은 나와 얼룩이, 조잘조잘 흐르며 멈출 줄 모르던 강... 그건 기억 속의 그녀와 만날 때마다 꼭 떠오르는 풍경이기도 했다.     그녀도 벤치에 앉았다. 얼룩이의 보드러운 털을 어루만지며 스쳐지나듯 말을 건넸다.     “아까 녀자친구랑 다퉜죠?” “네, 조금요.” “좀 있다 찾아가봐요.” “래일 가려구요.” “오늘 가요. 래일이면 늦어요.” “왜요?”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아요.” “...” “그런데 다툰 것 같지 않았어요. 뒤에서 봤거든요. 어깨를 꼭 붙이고 걷는 모습을요. 다정해 보였어요.”     “그래요?”     “네, 사랑하니까 그런 거죠.”     그녀는 사랑을 굳게 믿는 천진란만한 소녀처럼 목소리에 힘까지 주었다. 금방 삽심대에 들어선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보이는 사크라꼬의 눈빛이 천진란만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남자친구 있어요?”     “아뇨, 없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많이 좋아해요?” “네, 나를 버릴 만큼.”     “네? 음, 혹시...”     나는 잠간 뜸을 들였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유부남이세요?” “...”     그건 나 자신도 모를 직감이였다. 정곡을 찌른 것 같았다. 무슨 생각에 그런 질문을 했는지 스스로도 리해가 안되였다. 그녀는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한참 뭔가 생각하더니 “네.”하고 짧게 대답했다. 후에 이 질문의 본질을 생각해보았지만 결코 호기심이 빚은 무례인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그건 꼬리를 잡은자의 오만이였다. 유부남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앞에서, 그것도 그다지 친하지도 않는 이웃 앞에서 인정한다는 것이 예상 밖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그렇게 당당했을가? 아니면 어차피 나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가? 혼자 마음속으로 사랑하기에 답답해서였을가?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없기에 단지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을 안했을 뿐인가?     “음... 참 어렵네요.”     “찾아갈가요?”     나는 머리를 뒤로 젖혀 다시 가을벚꽃을 바라보았다.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였다. 다음번에 또 피여날지, 그리고 그것이 언제일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계절따라 봄에 피는 것이 섭리라면 계절을 거슬러 가을에 피는 건 어떤 의미가 숨겨져있을가? “찾아갈가요?”라고 말하던 그녀의 사랑은 마치 계절을 빗나간 가을벚꽃처럼 느껴졌다.     어디를 찾아간단 말인가? 나는 사크라꼬가 굳게 믿고 있던 사랑이 그녀에게로 다가오는 걸 보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런 감정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지 않았다. 유부남을 선택했다는 리유 때문이 아니였다. 사랑은 선택권을 갖고 있다. 허나 선택한 결과에 따라 본인의 신분도, 립장도, 관계도, 같이 달라진다. 제3자의 신분은 그녀로 하여금 피동적인 립장에 처하게 하였고 그런 관계 속에서 원하던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그 위험성과 후과를 미리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바보가 아니였다.   유부남한테서 무엇을 원했을가? 그것이 자신을 버릴 만큼 가치가 있는 걸가? 혹시 아무 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을 수도 있다. 단순히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생각하고 지켜왔던 이른바 사랑이나 감정 같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고 나는 자신을 달랬다.     6 내가 그녀의 사랑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녀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런 편견은 비교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녀자친구 히토미와 사크라꼬를 대비해본 적이 있다. 우리 셋은 집 부근의 작은 공원에서 만났었다. 늦가을의 어느 날, 히토미랑 산책하러 나왔다가 벤치에 앉아 해볕쪼임을 하고 있는 그녀와 마주치게 되였다.붉은색과 하얀색 체크패턴에 앞뒤가 모두V넥라인의 롱남방을 입은 그녀는 깔깔거리며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야 서로 알아본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하라씨, 안녕하세요.” “사이씨, 안녕하세요. 산책 나왔나 봐요.” “네, 날씨 참 좋아요.” “그래요, 여기 앉으세요.” 그녀는 반 쯤 일어난 자세로 허리를 굽힌 채 벤치 끝으로 옮겨앉으며 우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비니모자는 쓰지 않았다. 긴 머리가 모두 한쪽으로 쏠려 어깨 앞에 미끌어져 내리며 V넥라인으로 그녀의 하얀 목덜미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스즈키 히토미(铃木 瞳)예요.” “안녕하세요, 오하라 사크라꼬예요.” “저는 사이씨의 녀자친구예요.” 히토미는 내가 소개하기도전에 자처해서 인사했다. “이웃이야,  101호에 살고 있어.” “아, 그렇구나.” 히토미는 그녀 옆에 앉아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애들이 신났네요. 어느 아이가 오하라씨 애예요?” “네?! 아, 전 아직 결혼 안했어요.” “아, 죄송해요. 제가 괜히...” “괜찮아요. 아이들을 좋아해서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요.” “남자애 좋아해요? 녀자애 좋아해요?” “둘다요. 스즈키씨는요?” “전 녀자애요. 사이쨩은요?”(‘쨩’은 ‘씨’와 같은 말로 친근, 친밀함을 나타낸다.) 히토미는 평소에도 잘하지 않던 질문을 던졌다. “음... 말 잘 듣는 놈?” 둘은 재미 있는 대답이라며 싱긋 웃어보였다. “두분 언제 결혼해요?” “래년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그렇죠? 사이쨩.” “응, 래년 이때 쯤.” “우리 결혼식에 꼭 참가해주세요.” “네, 때가 되면 알려주세요.” “고마워요. 사이쨩, 우리 이젠 밥 먹으러 가요.” 히토미는 나의 팔짱을 끼며 일어나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공원을 거의 벗어날 쯤 나직이 물었다. “저 녀자 뭐하는 사람이야?” “왜?” “남자라면 몰라도 저 나이에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없이...  다들 출근하는 시간에 공원에서 해볕이나 쪼이고. 이상하잖아?” “너도 놀고 있잖아.” “나 오늘 사이쨩 위해 휴가냈거든.” “만화가래.” “만화가? 어떻게 알어?” “얘기 나누다가 알았지.” “벌써 그런 사이야?” “넘겨짚지 말고.” “넘겨짚을 거 없어. 나랑 상대가 안돼.” 그 말에 나는 히토미를 다시한번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그녀는 보란듯이 왼쪽다리를 곧게 펴고 오른쪽다리를 한발 옆으로 기대워 세웠다. 그리고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올린후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 머리결과 함께 다시 두손을 내리워 허리를 짚고 서서 우아한 포즈를 취하며 윙크했다. 그녀는 예뻤다. 히토미는 지금까지 내가 첫눈에 반한 유일한 녀자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난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 한때는 모델회사의 스카우트까지 받은 그녀, 이제 겨우26살 나이에 젊고 예쁘고 밝고 열정적인 히토미는 아련하고 조용하고 내면적이고 그녀보다 열살도 더 이상인 사크라꼬에 비해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도 아까 공원에서 사크라꼬에게 경계심을 보이며 시키지도 않은 소개를 자처해서 녀자친구라고 어필하였다. 그것이 본능에서 나오는 경계심이라면 “저 나이에 결혼도 안하고 애도 없는 것이 이상하다. 나랑 상대가 안돼.”라고 말한 건 과도한 자신감일가, 아니면 그렇게 살아가는 사크라꼬의 인생에 대한 우월자로서 자기만의 가치판단일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다가가 히토미를 살짝 안아주며 어깨너머로 공원을 바라보았다. 사크라꼬도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7 도쿄는 겨울이라 해봤자 기온이 령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선지 고향의 눈이 많이 그리웠다. 일년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고향에 폭설이 내렸다. 아버지는 봄에 간암진단을 받고 겨울에 떠나셨다. 나는 봄의 소망이 생명이라면 겨울의 사념은 하얀색이라고 생각했다. 눈은 이듬해 1월이 되여서야 내렸다. 야간작업을 나가려고 전등을 끄고 문을 열던 나는 푸실푸실 흩날리는 하얀 눈에 그만 멈칫했다. 그리고 한두메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담장 우의 시커먼 물건에 또 한번 흠칫했다. (뭐, 뭐지?) 어둠에 묻혀 희미하게 보이는 가운데 두개의 새파란 유리알이 나를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순간 문고리를 잡은 채 제 자리에 못 박힌듯 굳어져 버렸다. 야웅- (이런 씨, 고내새끼!) 다시 전등을 켜보니 얼룩이였다. 그제서야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휴-”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얼룩이는 세탁기 우에 폴짝 뛰여내려 머리를 갸우뚱한 채 나를 쳐다보았다. 배가 홀쭉해진 걸 보아 요즘 많이 굶은 것 같았다. 그녀도 먹이를 주는 걸 까먹었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이사 온 지 거의 반년이 지났건만 한번도 먹이를 준 적이 없었다. 간혹 접시에 가득 놓여있는 먹이감을 볼 때마다 “또 사크라꼬가 줬구나.”하고 생각할 뿐이였다. 언젠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고양이가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외식하기에 집에는 마땅히 줄 음식도 없었다. 나는 거지에게 돈을 줘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 적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두손을 바지호주머니에 찔러넣고 얼룩이를 무심코 내려보다가 발끝으로 접시를 툭 찼다. “딸그락!”하는 소리와 함께 사기접시는 한켠으로 밀려나갔다. “나가세요!” “조용히해!” 갑자기 사크라꼬의 거친 목소가 들려오더니  50대의 한 남자가 그녀에게 등을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다신 오지마세요!” “잘 생각해봐.” “그럴 필요 없어요!” “너, 너 정말...  후회하게 될 거야!” 쾅! 남자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전에 문이 거세게 닫혔다. 중년남자는 뒤로 휙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화가 났는지 발로 아파트의 철문을 걷어차고는 씩씩거리며 멀리 가버렸다. 문 앞에서 목격했던 것들이 아침에 일이 끝나서도 신경이 쓰이였다. 무슨 일이 터진 건 분명한데 또 그렇다고 무턱대고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건 례의가 아니였다. 집으로 돌아와 철문 앞에서 사크라꼬가 자판기 옆에 쪼크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유난히 짙어진 다크서클이 엊저녁에 한잠도 못 잤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 마신 캔커피에 재를 털면서 그녀가 인사를 보냈다. “오하요?” (아침 인사, ‘안녕?’이라는 뜻) “오하요 고자이마스.” (아침 인사, ‘안녕하세요.’라는 뜻) “만화 완성됐어요. 한번 보실래요?” “정말요?” “네, 근데 아직은 초고예요.” “출판전에 제가 먼저 보는 거예요?” “그런 셈이죠. 문 앞에 갖다놨어요.” “고마워요, 잘 볼게요.” “그럼 전 이만.” 그녀는 초고를 완성하느라 엊저녁부터 밥 한끼도 못 먹었다며 마츠야(松屋, 요시노야, 스키야와 함께 일본의 소고기덮밥 3대 체인점의 하나)에 간다고 했다. 나는 감사의 뜻으로 계산은 내가 할테니 같이 가자고 하였다. 그녀가 괜찮다고 하였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왠지 그녀한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마트에서처럼.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초고를 한장한장 읽어보았다. 그녀의 만화소재는 그녀 자신이였다. 이야기는 소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였다. 어머니 손을 잡고 첫 등교하는 모습, 단짝친구 후지하라 리에(藤原里惠)와 함께 바다가에서 조개를 줏는 모습, 그림을 잘 그려 칭찬받는 모습 등 일상 속에서 평범하면서도 작은 행복들로 가득한 동년시절을 그렸다. 그 중에 인상적인 장면이 두곳 있었다.   그녀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며 묻는다. “엄마, 아빠는 어디 갔어요?” “바다로 나갔지. 고기 잡으러.” “언제 돌아와요?” “글쎄, 좀 더 기다리자꾸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어른이 되여서도.   다른 한장은 그녀가 소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할아버지랑 같이 산에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였다.   “할아버지, 왜 또 여기에 온 거예요?” “벚꽃 보러.” “지금 가을이예요.” “때론 가을에도 피는 거야.” “칫, 거짓말. 바다 보러 온 거잖아요.” 그녀는 할아버지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만화에는 그녀의 학창시절과 첫사랑이야기도 담겨져있었다.   그녀의 중학교시절도 고중시절도 별로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다. 누구나 모두 거쳐가는 사춘기시절의 방황과 한번 쯤은 해보았을 짝사랑이야기, 대학입시를 앞둔 고민과 미래에 대한 동경, 불안, 희망이 때로는 사념에 사로잡힌 하얀색으로, 때로는 행복이 피는 핑크색으로, 때로는 그리움이 묻은 푸른색으로 그녀의 소녀시절을 구성하였다.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여 마지막 학생시절을 보냈다. 그 과정에 만화써클에서 그녀의 선배이자 첫사랑인 나카무라 료(中村 亮)를 만났다. 료는 그녀랑 한고향이였다. 둘은 누가 누구에게 먼저 다가간 것이 아니라 만화에 대한 느낌과 생각들을 교류하는 과정에 아주 자연스레 감정이 싹텄다. 다정하게 손잡고 캠퍼스를 걷는 모습, 여름방학에 고향의 바닷가에서 단짝친구랑 셋이서 바베큐파티를 여는 모습, 떨리는 첫 키스를 하다가 그만 료의 혀를 물어놓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두 사람 사이는 별로 큰 모순 없이 순조로웠고 알콩달콩 하였다. 나는 한참 읽어보다가 결국 종이박스에 다시 집어넣고 말았다. 소재가 아무리 자신의 생활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허구를 통해 두 사람의 의견분기라든가 모순 같은 것들을 곁들이면 스토리가 한결 더 재미 있을 텐데 그녀의 만화는 예전에 한번 피뜩 봤던 대로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지루하고 따분했다. 주류(主流)가 아닌 그림풍격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신 그림은 아주 섬세하고 생동했다. 선 하나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쓰며 모든 정력을 쏟아부은 듯했고 재현된 만화는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이야기를 책 속에 락인해둔것처럼 보였다. 만화도 컴퓨터로 그리는 시대에 왜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할가? 한동안 나는 그녀의 만화를 들여다보지 않았고 그녀 또한 찾아가지 않았다. 만화에 관하여 동문서답을 할가 봐 선뜻 돌려주지도 못했다. 새해도 썩 지나 이듬해 3월의 어느 봄날, 새벽에 집 부근의 마츠야에서 우연히 그녀와 만났을 때도 나는 만화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덮밥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나누었던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녀가 건넨 롱담 반 진담 반의 말이 아직도 마음에 걸릴 뿐이다. “결혼준비는 잘돼가요?” “돈이 문제죠, 아르바이트를 두개 뛰고 있어요.” “많이 모았겠네요.” “얼마 안돼요.” “저한테 조금 빌려주세요.” “네?!”     그녀의 뜻밖의 말에 제자리에 뚝 멈춰서며 망설였다. 5년전, 친구한테 빌려준 돈도 결혼소식을 핑게로 이제야 겨우 다 받아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혹시 장난인가? 나는 이 세상에는 백프로의 순수한 롱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설령 본인이 모르더라도 무의식 속에 본능적으로 원하는 진지한 성분이 섞여있다고 믿어왔다. 이른 새벽길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몇발작 걷다가 뒤돌아보더니 손등을 이마에 갖다대며 밝아오는 새벽빛을 막았다. 그리고는 롱담이라며 깔깔 웃었다. 아침해살에 해맑게 웃던 그녀, 그 역시 사크라꼬에 대한 기억의 한조각이다.   그 뒤로 부동산업체 사람들이 그녀 집에 여러번 다녀갔다. 사크라꼬가 어디 갔는지 모르느냐고 묻는 말에 집에 며칠씩 없는 걸 봐서 려행갔을 수도 있다고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부동산업체사람은 세집값도 구좌에 입금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려행이 아니라 달아난 게 틀림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후로 그녀는 그 아파트에 살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가? 야반도주를 한 걸가? 고작 세집값 때문에? 그렇다고 자신을 신용불량자로까지 만들 필요가 있을가? 설마 그 유부남이랑 같이 떠난 건가? 정말 돈이 필요했을가? 나는 그 당시 매일과 같이 이런 질문들을 자신한테 했었다. 새벽의 만남과 마지막 대화는 뭔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처럼 나를 괴롭혔고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사라졌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철저히 보이지 않았다.     8 봄기운이 완연하게 대지를 감싸안았고 날씨도 많이 풀려 제법 따뜻해졌다. 나는 밖에 나와 옷과 바지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문뜩 사크라꼬네 집앞의 세탁기호스가 배수로에 꽂혀있는 게 보였다. (음? 언제 돌아왔지?) 줄곧 밤에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는 언제부터 호스가 배수구에 내려져있었던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서 세탁기 안을 들여다 보았다. 빨래는 끝났으나 세탁물은 그대로 있었다. (오긴 왔구나.) 갑자기 잔바람이 휙 불어오더니 어디선가 코를 콕 찌르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마살을 찌프렸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구역질이 났다. 배수구에서 나는 냄새인 것 같았다. 돌아서서 뽀얗게 먼지가 낀 빈 접시도 보았다. 그녀가 사라진후로 얼룩이한테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고양이가 뭐길래? 참!)   요즘따라 부쩍 늘어난 벚꽃뉴스는 3월이 거의다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티비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보도하였고 다음주면 도쿄에서도 꽃구경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히토미는 벌써부터 뜰떠서 미리 휴식일을 잡으라고 매일같이 문자를 보내왔다. “사이쨩, 장소는 어디로 할가?” “멀리 가지말자.” “그럼, 도심으로 하자” “응, 좋아.” 도쿄도심에는 벚꽃구경 할 만한 유명한 장소가 세곳이 있다. 많은 꽃을 다종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신쥬크교엔(新宿御苑), 미술관이나 박물관 동물원도 함께 있어 남녀로소가 모두 잘 찾는 우에노공원(上野公园), 강 량편 천메터에 걸쳐 벚꽃길이 쭉 뻗은 스미다공원(隅田公园), 저마다 특색이 분명하다. 우리는 제일 가까운 신쥬크교엔으로 정했다. 스미다공원은 여름에 가서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우에노는 사람이 많아 피하기로 하였다. 벚꽃잎이 한들한들 떨어지는 나무 아래서 가족이나 련인, 친구들과 함께 봄의 정취를 즐기는 건 아주 시적인 일인것 같다. 히토미는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술 한잔 부었다. 건배를 하고 나서 나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화사하게 피여난 벚꽃들을 바라보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참 이쁘다. 그치?” “응.” “그런데 넘 짧게 핀다.” “이쁘니까 그런거야.” 벚꽃의 생명주기는 겨우 일주일에 불과하다. 한번 핀후 여름무더위와 겨울추위를 견디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나서야 이듬해 봄에 또 다시 피여난다. 그 제한된 생명 속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벚꽃의 미는 창조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훼멸 속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벚꽃은 짧지만 기억 속에 오래 남아 그 생명을 또 다른 방식으로 연장한다. 우린 손잡고 한참 꽃길을 산책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쓰레기 회수일이 아니여서인지 아파트철문에 까마귀 한마리가 앉아있었다. 내가 앞장서서 손을 휙휙 저어 쫓아버리자 멀리 가기는커녕 자판기 바로 옆에 내려앉아 뾰족한 부리로 비닐주머니를 쪼아댔다. 무척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일본에 와서 인상에 남는 것중의 하나가 바로 고양이와 까마귀가 엄청 많다는 점이다. 도쿄는 완전히 고양이와 까마귀 천국이나 다름없다. 길옆에, 골목에, 담장 우에, 전기줄에, 쓰레기장에, 길고양이들이 너무 많아 정부에서는 붙잡아서 거세를 하여 번식능력을 없앤다. 그런 길고양들의 꼬리는 모두 절반 잘리워져있다. 일종의 표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까마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쫓으면 훨훨 날아가버리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비닐주머니를 부리로 찢어서 먹이를 찾다보니 때론 쓰레기를 모아놓는 곳이 아수라장이 되군한다. 심지어 어떤 까마귀는 사람을 공격한다고 뉴스에서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리해가 안 가는 건 다른 나라와 달리 까마귀를 길조(吉鸟)라고 여기는 일본사람들의 풍습이다. “왜 까마귀를 길조라고 생각해?” “반포지효는 옛날 얘기지.” (反哺之孝, 까마귀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효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란후에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 효성을 이르는 말) “그래?” “응, 지금은 아냐.” 우리는 썩 반갑잖은 손님을 만난듯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히토미는 세탁기 옆을 지나가다 손으로 코를 싸쥐였다. “아, 구려! 이거 무슨 냄새야?” “배수로가 막혔어.” “관리원 불렀어?” “오늘 전화할 거야.” 급급히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히토미는 이튿날 출장을 가야 하기에 저녁식사만 하고 이내 돌아갔다. 아쉬워하는 그녀를 달래여 여름 불꽃놀이철에 려행을 떠나자고 약속했다.     9 나는 다시 그녀의 집 문 앞에 서있었다. 상황은 언제나 그랬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머리속에 되살아나면 마지막에 가선 항상 그 아파트가 떠올랐고 이어서 101호라고 표시된 문과 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의 옆모습이 보였다. 몇번인가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번마다 망설이며 다시 내리웠다. 또 한번 천천히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녀에 대한 기억의 엔딩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 엔딩은 나의 눈앞을 무한반복이 되여 끊임없이 지나간다. 나는 끝끝내 노크를 하지 않았다.   똑똑똑 “안녕하세요. 다카하시(高桥)예요.”     다카하시는 와세다대학에 다니는 학생인데 바로 옆집 102호에 살고 있었다. 이사 온 지 거의 일년됐지만 워낙 생활패턴이 다른지라 그녀랑은 딱 두번 인사를 나누었다. “네, 잠깐만요.” 시계는 밤 아홉시 반을 가리켰고 마침 전날이 휴식일이여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늦은 밤에.” “괜찮아요.” “저기, 지금 시간 괜찮아요?” “네.” “요즘 오하라씨를 본 적이 있어요?” “아뇨, 없는데요. 왜요?” “집이 너무 조용해서요.” “아마 집에 없을걸요.” “그래요?” “네, 부동산업체에서도 찾아왔었어요. 이달초에.” “어디로 간거예요?” “글쎄요.” “이상하네, 분명 빨래를 돌리는 소리 들었거든요.” “진짜요? 근데 세탁물은 그대로던데.” “네, 저도 봤어요.” “왔다가 또 어딜 간 건 아닐가요?” “글쎄요. 사이씨는 오하라씨랑 가까워요?” “그렇게까진...  다카하시씨는요?” “저도 별로 얘기 못해봤어요. 그냥 인사나 나눌 정도예요. 사실 이 아파트에 제가 제일 먼저 입주했거든요. 오하라씨는 작년 4월에 이사왔고.” 작년 여름에 입주한 나는 사크라꼬가 먼저 알게 된 다카하시보다 나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것도 같은 일본사람이 아닌 외국인하고 말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사크라꼬와의 대화, 편의점에서의 우연한 만남, 그녀의 집을 방문한 사실, 벚꽃나무 아래에서, 마츠야에서, 한 박스 받은 만화도, 생각보다 우리 사이는 다카하시에 비해 련결점들이 꽤 많았다. “한번 노크해볼가요?” 다카하시가 물었다. 노크? 어떡하지? 나는 눈을 내리깔고 빈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웬지 이 상황이 싫었다. 제안 자체도 그 제안을 한 다카하시도 모두 싫어졌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수 없는 데다가 만에 하나 원치않은 상황들과 맞띄운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긴 더욱 싫었다. 그러면 또 경찰서에 가서 지루한 조사에 협조를 해야 한다. 야근은 어떡하고? 나는 선택공포증에 걸린 사람처럼 노크할지 말지를 두고 그것이 정확한지 않는지를 판단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렇다고 우리의 생활이나 인생이 객관식 문제처럼 꼭 들어맞는 표준답안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 결정을 피하려고 했다. 책임회피인가? 무슨 책임인가? 가족이나 련인, 친구와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책임이나 의무 같은 것들을 나와 사크라꼬사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사크라꼬의 생활에 참여할 리유를 찾지 못했다. “죄송해요.” 나는 거절했고 다카하시는 할 수 없다는 눈빛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도 쉽게 노크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우두커니 서서 한참 동안 사크라꼬의 집문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호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자전거키를 만지작거렸다. “설마요?”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설마요.” “저기, 전 야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요.” “네,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문을 닫고 그녀를 피해 사크라꼬 집앞을 지나 자전거를 세워두는 곳으로 갔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나의 등에 꽂혔다. 머리를 홱 돌렸다. 다카하시가 다시한번 사크라꼬의 집문을 두드리더니 “오하라씨!”하고 불렀다. 나는 목석처럼 굳어져 꼼짝하지 않았다. 그녀가 혼자서 문을 두드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도리 대로라면 사크라꼬와의 련결고리가 더 많고 대화도 더 잦게 나누고 사이도 더 가까운 내가 노크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왜서 그녀였을가? 금방 옆집이여서? 같은 일본사람이여서? 나는 뭔가 한방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험장사건 때처럼 저도 모르게 갑자기 긴장해나며 심장이 쿵쿵 뛰였다. 두손으로 자전거핸들을 꼭 잡은 채 숨죽이고 노크하는 그녀와 문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날 근무시간에 나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적게 찾아주어 배상청구가 들어왔는가 하면 페기날자를 잘못 체크하여 레지등록에 지장이 생겼고 상품 발주도 제시간에 맞추지 못했다. 이상하게 의욕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자꾸 짜증이 났다. 그런 불안은 야간작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서야 가뭇없이 사라졌다. 사크라꼬 집문이 열려져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죽었다. 밖에는 경찰차 두대와 구급차 한대가 와있었고 마스크를 낀 경찰들과 구급대원들이 그녀의 집을 들락거렸다. 엊저녁, 다카하시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아침까지 뒤척이다가 날이 밝는 대로 경찰서에 전화해서 신고를 하였고 득돌같이 달려온 경찰들이 몇번이나 이름을 부르고 노크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자 열쇠를 부수고 강제침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단다. 사크라꼬가 목을 맨 모습을. 경찰이 우리한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는 다카하시가 했다. “몇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상황을 보면 죽은 지 보름정도 된 것 같은데 그사이 이상한 점 같은 거 없었어요?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부검결과를 기다려봐야 해요.” (보름? 어떻게 보름씩이나?) 문뜩 배수구가 생각났다. 잇따라 그 냄새도 기억났다. 코를 찌르는듯한 역겨운,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구역질이 나는 난생처음 맡아본 그 냄새말이다. 그제야 그것이 배수구 냄새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 다음 아파트철문에 앉아있던 까마귀도 결국 죽은 사람의 썩은 냄새를 맡고 날아왔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대답하기 싫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벚꽃계절은 죄다 지나갔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영원히 살고 있다. 사크라꼬에 대한 기억도 그러하다. 마지막일 것 같지 않던 순간이 마지막이 되고 끝났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끝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 나와 다카하시는 벚꽃나무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분주히 움직이는 경찰들과 구급대원들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사크라꼬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고 그 어떤 숙연함을 느꼈다. 엊저녁, 나는 무슨 일을 저질렀던가? 사람이 잘못됐을 수도 있는 상황에 노크할지 말지를 토론했으며 지금과 같은 현실의 가능성을 예상하면서도 “설마?”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건 한 생명과 그 가치에 대한 선의(善意)적인 행동을 회피하고 도피한 거나 다름없었다. 만약 노크를 한 다카하시의 행동이 도덕적 의미를 가진 선(善)에서 출발한 거라면 같이 망설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노크를 거부한 나의 행동의 근원은 무엇일가? 심지어 지금 사크라꼬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왜 아직도 노크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걸가? 대체 왜? 왜서이지? 나란 사람이 지금까지 그 정도로 도의에 어긋나게 살아왔던가? 내 마음은 그토록 가난하고 궁핍했던가? 나는 이 문제의 답을 단순히 도덕적 차원에서 찾기 너무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 차원에서 벗어나 배후에 또 다른 무언가가 나의 그런 행동을 지배했음을 모호하게 감지했다. 그건 도대체 무엇일가?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10 만화를 끝까지 읽은 건 벚꽃계절이 지나가고 나서였다. 억지로 본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만화를 다 읽고 나서 그 러브스토리가 단순히 만화가로서의 작품이 아니라 인생과 첫사랑에 관한 기록이자 회억이며 한차례 의식(仪式)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밝고 명랑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선배인 료가2년 먼저 졸업하면서부터 색상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두 사람은 졸업후의 진로를 놓고 의견분기가 생기게 되였다. 료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고 반대로 그녀는 도쿄에 남을 것을 원했다. 서로 맞지 않는 생각과 주장 때문에 가끔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그때마다 짧으면 사나흘, 길면 보름씩 랭전상태였다. 동거를 시작한 련인들 치고는 보름은 좀 길어보였다. 료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갔다. 만화 속에는 멀어져가는 료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독백하는 장면도 있었다. 료, 등을 보이지마     돌아서서 내 이름을 불러줘 우린 끝난 거 아니야 잠시 떨어져있을 뿐이야 그녀는 어쩔 수 없는 현실과 화해를 한 거지 헤여진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일정한 기간을 두고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해보려고 료와 그리고 현실과 화해한거라고 하였다. 그녀는 도쿄에 계속 남아 만화가의 꿈을 키워갔다. 남들이 하는 취직활동도 죄다 생략한 채 매일같이 만화실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자신만의 만화에 깊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화풍(画风)은 투시, 원근, 색채, 명암이 률동적인 립시체와 해당 사물을 자세히 따라 그리는 소묘가 결합된 풍격이였다. 립시체는 “움직이는 듯한 자세로 굳어버린 것 같다”는 혹평을 듣기도 하기에 상업 쪽에선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지만 그림기술이 뛰여난 그녀는 오히려 그것을 기반으로 립시체와 소묘를 고집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처음에 “고집”이란 단어를 썼다가 나중에 “신념”으로 바꾸었다. 료와의 만남은 매 계절마다 한번 페이스로 만나다가 점차 회수가 줄어들어 반년에 한번, 나중에는 설을 쇨 때나 보군 하였다. 그래도 그녀는 어떡하나 견지해보려는 마음인 것 같았다. 그녀의 사랑은 의외로 깊었다. 료와 8년이란 마라톤사랑을 달려왔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먼거리련애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28살 되던 해에 료한테서 일방적인 리별통보와 함께 돌연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상대는 그녀의 단짝친구 후지하라 리에였다. 그녀는 료와 리에를 놓고 사랑과 우정을 저울질해보았다고 자백하였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축복을 빌어주기 싫었다고 한다. 또한 료의 일방적인 리별통보와 결혼에 대하여 끝까지 “배신”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고 그 리별원인에 관해서도 말을 몹시 아꼈다. 그건 료에 대한 보호이자 그들의 사랑에 대한 존중이였다. 그후 3년간 그녀는 미친 사람마냥 만화에 몰두하였다. 그동안 키워왔던 탄탄한 그림실력으로 점차 팀에서 따로 독립하여 자신의 만화실도 차렸다. 그 과정에 나이 어린 한 남자와 오랜 선배하고 각각 짧은 애인관계도 가져보았다. 후에 이 부분을 그녀는 몰두가 아닌 도피라고 정의를 내렸다. 료와 리에의 결혼에 대한 부인, 그런 현실을 대면하고 싶지 않아 자신을 다른 것에 몰아세우는 것으로 그것을 피하려 하였다. 인생의 굽인돌이는 료가 결혼해서 4년째 되던 해에 발생했다. 어느 날 밤, 료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둘이 동거하며 보냈던 그 집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출장으로 도쿄에 온 료는 술에 많이 취해있었다. 그녀는 료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료는 “보고싶었다”고 했고 그녀는 듣고만 있었다. 료에게는 사리가 밝으신 부모님과 귀여운 녀동생이 있었다. 그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료가 졸업한 지 얼만 안돼 부모님들이 차사고가 생겼는데 어머니는 병원으로 호송하는 도중에 죽고 아버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녀동생을 돌보면서 아버지를 간호했으나 사크라꼬에겐 잠시 비밀로 하고 빨리 취직하여 모든 것이 안정되면 그녀에게 말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도쿄에서의 취직경쟁은 너무나 치렬했다. 한시가 급했던 료는 차라리 고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판단하였다. 고향에서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집에는 녀동생이 있었고 또 병원에는 아버지가 누워계셨다. 회사와 가족의 압력은 그로 하여금 숨도 제대로 못 쉬게 하였고 무정한 세월은 어느덧 8년이나 훌쩍 흘렀다. 료와 리에의 결혼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다. 비록 결혼하여 딸이 인츰 태여났지만 리에는 줄곧 료의 마음속에 사크라꼬가 살고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날 저녁, 료와 사크라꼬의 대화를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료가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날 용서해줘.” “바라는 게 그거야?” “미안해, 바랄 자격도 없겠지.” “다른 거는 없어?” “...” “난 아직도 널 사랑하는데...” 그녀는 다가가 료를 품에 안았다. 그림 아래부분에는 이런 구절도 씌여져있었다. -- 우리는 오랜만에 섹스를 했다. -- 우리의 사랑은 한번도 끊긴 적이 없었다.   그후로 기나긴 기다림이 시작되였다. 료는 출장으로 도쿄에 올 때마다 그녀의 집에 머물렀다. 료와 리에는 별거중이였지만 리혼은 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7년동안 지속되였고 그 사이에 년로하신 사크라꼬의 할아버지와 병마에 시달리던 료의 아버지가 선후로 이 세상을 떠났다. 료의 딸애는 소학교 4학년이 되였고 녀동생도 시집을 갔다. 그리고 겨울이 다 지난 어느 봄날, 리에가 료를 찾아와서 딸애의 양육권을 자기가 가진다는 조건으로 리혼서류에 싸인을 했다. 료는 전화로 그 사실을 사크라꼬에게 전했다. 그 날은 목요일이였다. “리에가 싸인했어!” “진짜? 믿기지 않네.” “나도 그래.” “래일 올 수 있어?” “응, 주말을 함께 보내자.” “뭐 먹고싶어?” “카레.” 이것은 그들의 마지막 대화였다. 만화의 제일 마지막 페지에는 그 어떤 인물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튿날 둘이 서로 만났는지, 주말은 어떻게 보냈는지, 무슨 대화를 나누었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 심지어 둘의 사랑의 결말에 대해서도 그 어떤 문구도 남기지 않았다. 종이에는 오직 땅에 떨어진 벽시계가 덩그러니, 그것도 온 종이를 다 차지할 만큼 커다랗게 그려져있었다. 시침은 2시를 가리켰고 분침은46분을 가리켰으며 초침은 떨어진 벽돌에 짓눌리워 휘여진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밑에는 날자가 적혀있었다. -- 2011년3월11일, 오후 2시46분, 금요일. -- 그건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날자였다.   11 경찰이 사크라꼬의 죽음을 타살이 아닌 자살로 최종확정을 지은후 부동산업체와 청소업체, 인테리어업체 사람들이 선후하여 다녀갔다. 그녀의 물건들을 정리하여 없애기 시작했고 냄새를 제거하고 바닥도 다시 깔고 벽지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나는 그녀 집앞을 지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머리를 돌려 문을 바라보군 하였다. 일하러 나갈 때도, 마트에 갈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쓰레기를 던지러 갈 때도 빠짐없이 눈길을 돌렸다. 오래동안 나는 가끔 아무 영문도 없이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갑작스레 떠오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자신한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을가? 우리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가? 인간관계의 토대는 어디에 있는가?   원하던 답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다. 어느 파지(废纸)를 회수하는 날, 낡은 잡지들을 버리러 갔다가 청소업체 사람들이 페기한 책들 속에서 그녀의 다른 한 작품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건 지진이 일어난후의 생활을 그린 것이였다. 나는 보물을 얻은듯 그 초고들을 죄다 찾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숨 죽이고 조용히 읽어보았다. 아니, 귀를 기울여 그녀의 속심말을 들었다.      지진 당일, 나는 지하만화실에서 작업을 하다가 진동과 더불어 밖으로 뛰쳐나왔다. 인츰 료한테 전화를 하였다. 도쿄에 지진이 발생하여 위험하니까 오지 말라고 전하고 싶었지만 그는 부재중이였다. 급급히 보낸 문자도 줄곧 발송중으로 나타났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진원(震源)이 도쿄가 아니라 고향인 미야기현 나도리(名取)시 부근 해역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고향에는 9메터 높이의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3층 건물 높이, 말 그대로 집채같은 파도였다. 어머니도 료도 리에도 모두 그 쓰나미에 휩쓸려 바다로 갔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달이 지난 4월11일, 나는 고향에서 열린 추도회에 참가하였다. 행사내내 울지 않았다. 공포도 불안도 슬픔도 그리움도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이름모를 마비상태에 빠졌다. 유리아게 히요리야마(閖上日和山)에서 목격한 정경은 어릴 때 할아버지랑 함께 보았던 풍경하고 전혀 달랐다. 헤아릴 수 없는 집들은 형체도 없이 떠밀려갔고 나무널판자와 양철판, 각이 떨어져나간 가구, 흙이 가득 들어찬 랭장고와 세탁기들이 변형된 채 마구 흘어져있었다. 그건 마치 하늘에서 쓰레기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심지어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버스가 간신히 남겨진 한 건물2층에 곤두박혀있었다.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 건물기초인 차디 찬 콩트리트 뿐이였다. 추도회에서 돌아왔으나 지하수가 터지는 바람에 만화실에 물이 가득차있어 재개업을 단념했다. 료랑 오래동안 동거했던 집도 떠나 현재 아파트에 이사를 왔고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이상한 취미가 생겼다. 친구랑 함께 어쩌다 나가 놀 때면 디즈니랜드보다 디즈니씨를 더 선호하였다. 리유는 놀이시설중에 시속이 가장 빠른 “센터 오브 더 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허나 쥘 베른의 “지저세계려행” 테마를 감수한다기 보다 놀이시설의 속도에 관심이 더 컸다. 화산구를 뛰쳐나올 때의 풍경은 나에게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했지만 하이라이트에서 붙는 가속도와 직후 락하할 때의 순간적 흥분은 일상에 돌아와서도 자주 그리웠다. 그외에도 번지점프를 류달리 즐겼고 또 골든위크(五一节)에 후지산야생동물원으로 가다가 차가 막혀 열두시간 지체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도착해서 호랑이를 보았을 때는 얼룩이를 본 것처럼 반가워서 차문을 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그러나 그런 이상한 취미도 오래가지 못했다. 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마트나 편의점 같은 곳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이였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가만히 행동할 때의 긴장감과 짜릿함은 나더러 멈출 수 없는 성취감을 갖게 하였다. 그런 느낌들 가운데는 수치심도 있었다. 그건 우연하게 한 남자를 만나서부터였다. 나는 사이와의 만남을 인생의 마지막 인간관계라고 생각했다. 얼룩이를 부탁하기 위해 음료를 선물로 사들고 갔지만 그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였다. 주류(主流)매체에서 늘 부정적으로 다루는 중국뉴스 때문에 약간의 선입견은 갖고 있었지만 첫인상 치고는 괜찮은 이웃 같았다. 편의점에서 붙잡힌 건 유일한 실수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수치심을 느꼈다. 하지만 마비되였던 마음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어 환호를 지르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났다. 그건 이 모든 감정들은 내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차라리 절차 대로 경찰에 신고할 거지. 구류소에 한번 쯤 가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사이는 경찰을 부르지 않았고 그래서 의문이 생겼다. 그런 행동이 궁금하는 한편 이런 결과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아 참 혼란스러웠다.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용기를 내여 사이를 불렀다. 그런데 그의 주의력은 온통 만화에만 집중돼있어 고맙다는 내 말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만화를 보면서 올라가는 그의 입고리와 왼쪽 볼에 패인 보조개도 나는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만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나중에 완성되면 보여주고 의견도 들어봐야겠다. 언젠가 한번 돈지갑을 두고 온 사이를 속으로 바보라고 놀린 적이 있다. 사정이 딱해보여서 함께 계산해주었다. 또 그가 남자친구에게 대해 눈치없이 “유부남이죠?” 라고 묻는 말에 너무 직설적이여서 놀란 건 사실이지만 “네”라고 대답할 때는 반대로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당당하게 나의 사랑을 승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료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그한테 답답할 정도로 지극히 열중한 것 같다. 그 마음이 너무 커져버려 나중에는 가슴 속에 자신에게 남겨 줄 자리가 없었다. 19년동안 료를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할수록 자신을 더 많이, 더 깊게 버렸다. 그런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사랑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가?  나는 료를 사랑했을가 아니면 료를 사랑하는 그 느낌을 원한 걸가? 이제는 그를 백프로로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 지금에 나는 왜 이 사랑에 도리여 물음표를 다는 걸가? 사이에게는 모델급 수준의 녀자친구가 있다. 이십대 중반 쯤 돼보이는 그녀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 그녀가 공원에서 왜 나를 경계했는지 리해가 안되였다. 대화중에 결혼얘기가 나왔을 때 그녀의 미소에서 행복감을, 나를 보는 눈빛에서 우월감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 속에는 곧 마흔을 바라보는 한 녀자가 담겨져있었다. 히토미와 마주하는 동안 나는 마치 현실이란 거울을 마주한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자신감을 상실했다. 사이에게 정말로 고마운 것이 하나 있다. 계약을 맺은 출판사와 트러블이 생겨 사장이 집까지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나의 만화는 사실상 큰 인기를 모으지 못했고 잘 팔리지도 않았다. 사장이 시대주류가 아닌 화풍을 바꾸어보든지 원피스나 나르토의 풍격을 본따서 그려보라고 제안하였으나 나는 거절했다. 화가 난 사장은 출판사의 경제적 손해도 만만치 않다며 계약해제까지 들먹였다. 그는 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이어온 인연을 감안하여 합의를 보자고 한발 물러섰다. 대신 요구가 있었다. 자기와 애인이 돼달라는것—결국 사장이 집까지 찾아온 진정한 리유였다. 그때 마침 밖에서 딸그락거리는 접시소리가 났다. 아마 사이가 얼룩이한테 먹이를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담이 커져서 집에서 버티고 나가지 않는 사장을 향해 꽥 소리를 질렀다. 사이한테 고마운 것도 있지만 몹시 화난 적도 있었다. 수많은 밤을 새가며 고생스럽게 완성한 만화를 보라고 줬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볼 만한지, 어떠한지 의견이라도 준다면 다시 수정해볼 턴데 한달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반응이 없다는건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모욕과도 같았다. 어쩌면 그는 나의 만화를 인정해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도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고민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렇게 화가 나면서도 새벽에 마츠야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는 도리여 마음이 차분해졌다. 독자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따로 있는 만큼 그 정도는 리해하며 거기에 연연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롱담도 건네봤다. 사이한테서 정말로 돈 빌리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의 눈빛에서 순간적인 망설임을 보았다. 나는 웬지 씁쓸했다. 우린 무슨 관계일가? 그냥 이웃일가? 친구일가? 왜서 사이한테 여러가지 감정을 느낄가? 부끄러움도 고마움도 원망도 씁쓸함도... 그러고 보면 그는 나와 이웃이란 관계를 벗어나 이젠 친구정도로 된 것 같다. 그는 나의 비밀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한테 말해준 적이 거의 없다. 또다시 봄이 찾아왔다. 나는 고향이 그리웠다. 일단은 나도리시문화회관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열리는 동일본대지진1주년 합동제사에 참가했다. 행사가 끝나 일년 만에 유리아게 히요리야마를 다시 찾았다. 쓰나미가 남긴 손톱자국은 아직도 력력하였으나 시가지는 새롭게 복구되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도토리어린이도서실이 세워졌고 유리아게 사이카이시장은 한달 전에 오픈되였다. 모든 것이 다시 찾아온 봄마냥 생기가 띄고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나는 의외로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더없이 낯설기만 하였고 예전의 정취를 느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가 없는 고향은 나에게 아무런 삶의 의미도 부여하지 못했다. 나는 현실 속의 고향에도, 마음속의 고향도 돌아갈 수 없었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이 곳에서, 이 세상에서 소외된 듯했고 여기로 온 것을 후회하였다. 혼자만 남았다는 사실이 더 절실히, 뼈아프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나의 삶을 구성했던 부분들이 죄다 몸에서 빠져나간 채 빈 껍데기만 남았다. 그렇게 그리웠던 고향에서 나는 길을 잃었고 뿌리를 잃었고 심지어 나자신도 잃어버렸다.     도쿄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앞의 길이 지평선을 따라 멀리멀리 뻗어 하늘과 맞닿은 것을 보았다. 집 문 앞에 얼룩이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주인집을 떠나 길고양이신세가 된 얼룩이는 언제부턴가 이 아파트에 머물렀다. 나도 한동안 여기에서 살았다. 우린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얼룩아.”     야웅 “이젠 떠날 시간이야.” 나는 얼룩이한테 먹이를 듬뿍 주었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날에는 빨래도 하였다.     12 그녀의 의식(仪式)은 끝났다. 나는 책을 덮었다. 아홉번째였다. 열한번째로 다시 그 책을 펼쳤을 때는 이미 매우(梅雨)계절이 걷힌 다음이였다. 나에게 페트병을 쑥 내밀던 여름이 지나가고 “사크라예요!”하고 소리치던 가을이 돌아왔다. 그해 가을,  벚꽃은 피지 않았다. 거의 반년 동안 비워두었던 사크라꼬 집에 새 이웃이 이사 왔다. 20대의 남자였는데 복싱선수였다. 대머리인 그의 팔에는 해골과 복싱글러브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다카하시는 사크라꼬의 일도 그렇고 새로 온 이웃도 마음에 들지 않아 찜찜하다며 집터를 흉보더니 얼마후 이사를 가버렸다. 프로데뷔전을 끝낸 그 남자는 이틀째 세탁물을 꺼내지 않았다.     (이겼나? 졌나? 혹시 상했나?) 나는 다시 그녀의 집 문 앞에 서있었다. 상황은 언제나 그랬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머리속에 되살아나면 마지막에 가선 항상 그 아파트가 떠올랐고 이어서 101호라고 표시된 문과 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의 옆모습이 보였다. 몇번인가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번마다 망설이며 다시 내리웠다. 또 한번 천천히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녀에 대한 기억의 엔딩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 엔딩은 나의 눈앞을 무한반복이 되여 끊임없이 지나간다.     똑똑똑     문이 열렸다. 대머리남자가 나왔다. 다카하시가 말하던 타투가 눈에 띄였고 옆이마에는 밴드에이드가 붙어져있었다.     “안녕하세요? 사이예요. 103호에 살아요.” “안녕하세요. 와타나베 유스케(渡边祐介)예요.” “다름아니라 부탁이 있어서요.” “네? 뭔데요?” “이 부근에 길고양들이 많이 살아요. 그중에 한쪽눈이 까만 얼룩이가 우리 아파트에 자주 와요. 뭐 큰 일은 아니구요, 시간날 때 저기 접시에 먹이를 좀 줄 수 없을가요? 제가 야간작업 하기에 저녁에 시간이 없어서요. 길고양이들이 참 불쌍해요. 그렇죠?” 와타나베는 내가 가리키는 방향따라 세탁기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얼룩이가 웅크리고 앉아 가릉거리며 먹이를 먹고 있었다. “귀엽네요. 이름이 뭐얘요?” “사크라예요.” 그는 알았다며 흔쾌히 응낙하였다. 겉인상과 달리 꽤 괜찮은 이웃 같았다. 사크라꼬도 이런 느낌이였을가? 나와의 만남을 “인생의 마지막 인간관계”라고 하던 그녀의 말은 나에게 사고적 가치를 남겨주었다. 오래동안 나는 가끔 아무 영문도없이 그녀의 모습이 눈 앞에 갑작스레 떠오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자신한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을가? 우리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가? 인간관계의 토대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가 죽은후 우리 사이도 이로써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또 기억이란 이름으로 현재의 나를 방문하였다.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 선명한 모습에 나는 시달리군 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노크하지 않았던 행동과 뿌리치려 했던 순간들, 그녀가 부탁하던 얼룩이도, “당황”이란 두 글자도, 첫사랑도, 이 세상을 향해 노크하던 만화도... 모든 것들이 더 이상은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존재할 때 그것들은 점차 나의 생활과 삶의 일부를 구성하기 시작하였다. 그것들은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문이 되였고 세상은 그 틀에 끼워진 조그마한 그림과도 같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누구도 인간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그 속에 존재하며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간다. 승인과 존중은 엄연히 다르다. 인간관계의 토대는 자아가치에 대한 상호승인에 있지 않을가? 더 나아가서 나는 이 세상에 부재(不在)하는 그녀에 대한 기억의 존재를, 또 그녀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고향에 대한 현실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와 인생과 삶에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걸가? 나는 얼룩이 앞에 쪼크리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사크라쨩, 맛 있어?” 얼룩이는 대답 대신 부스러기가 묻은 나의 손가락을 가볍게 핥아주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 고이며 점차 올라와 목구멍을 막아버렸다. 나는 목이 메여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2017년 5월 봄 씀 2017년 제7기 발표     소설평  아픔으로 커가는 자의 쓸쓸함의 두 경우 -와 를 읽으면서        김경훈   요즘은 읽은 소설 가운데서 매우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련이어 두편을 읽고 나니 새롭게 다가오는 삶의 양상들과 그 내면의 아픔들이 뭔가를 끄적거리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었다. 바로 채국범의 중편소설 와 조은경의 단편소설 가 그러했다. 이 소설들은 모두 젊은이들의 삶 속에서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와 이어진 소외화 그에 따른 여러가지 고민들을 다루고 있어서 그동안 외면하고 무관심하기 일쑤였던 그들의 내밀한 아픔에 대해 좀더 폭넓은 리해를 가지도록 만들어 한번 정도는 곰곰히 그 가치를 따지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노크’하기가 너무 힘든 공간 중편소설 는 일인칭의 시점으로 사크라꼬라고 하는 일본 녀자와의 일상적인 관계를 다루면서 이야기를 펼쳐간다. 도꾜에서도 유명한 신쥬꾸에 새로 든 집에서 이웃하고 있는 일본녀자와 중국에서 건너간 ‘나’의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들이 작품 이곳저곳에서 무시로 튕겨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자질구레한 사건들은 사실 잡다한 데 그치지 않는다. 그 하나하나가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주제를 표현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먼저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좀도적을 잡다가 나중에 사크라꼬까지 잡게 된 사연을 보자. 일본말로 ‘만비키’라고 부르는 좀도적의 마스크를 벗기는 순간 ‘나’는 상대가 사크라꼬임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제야 빼앗은 물건을 다시한번 확인해보니 200엔 밖에 안되는 고양이 먹이감이였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도 얼굴색 한번 바뀌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목석마냥 서있었다. 사실 주인공이 세방에 들어와서부터 사크라꼬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도록 부탁한 적이 있었다. 고양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쏟아왔던 그녀가 고양이 먹이감을 도덕질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200엔 밖에 안되는 그 먹이감을 훔친다는 것은 일종의 도벽에 가까운 행위였음을 주인공인 ‘나’는 학생시절 컨닝을 하면서 느꼈던 짜릿함과 련관시킴으로써 해명하려고 한다. 또 하나의 사건은 처음으로 그녀의 집을 들어가보면서 그녀가 만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분이다. 그런데 그녀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포인트로 하는 원피스(海贼王, 인기만화)나 탄탄한 이야기줄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나르토(火影忍者, 인기만화)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현실에 아주 가까운” 리얼리즘적 화가라는 점에 주인공은 인기가 얼마나 있을지 의심스러워한다. 그런데 실지로 사크라꼬는 마음이 따뜻한 녀자이다. 도적질한 적도 있지만 슈퍼에서 미처 지갑을 챙기지 못한 주인공에게 선불해주기도 하고 결과에 대한 보상이 없이 유부남을 사랑한 그녀지만 주인공의 녀자친구 등 일상에 대한 관심도 보여준다. 마치 보기 힘든 가을 벚꽃처럼 말이다. 오히려 주인공인 ‘나’는 그녀에 비해 메마르고 종잡을 수 없는 마음과 자세로 일관되여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떠돌이 고양이 ‘얼룩이’에게 종래로 먹이감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크라꼬의 여러번의 부탁이 있었음에도 주인공은 하나같이 등한시하며 밤중에 집앞에서 맞띄웠을 때는 놀란 김에 욕설을 내뱉고 고양이 먹이를 담는 접시를 발로 차버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행동에는 외국인으로서의 경계나 부적응의 심리가 작용하기도 하겠지만 사크라꼬와 같은 지극히 개성적인 일본인에 대한 몰리해가 그러한 소극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들지 않나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의 그러한 막히고 답답한 태도는 그로써 그치는 게 아니다. 제 나름 대로 노력하고 새롭게 세상을 보고저 하는 긍정적인 모습도 어느 정도 엿보인다. 사크라꼬한테서 그녀가 그린 만화를 갖고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자세가 바로 그러한 긍정적인 새 출발이라 하겠다. 집에 돌아와 샤와하고 초고를 한장한장 읽어보았다. 그녀의 만화소재는 그녀 자신이였다. 이야기는 소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첫 등교하는 모습, 단짝친구 후지하라 리에(藤原里惠)와 함께 바다가에서 조개를 줏는 모습, 그림을 잘 그려 칭찬받는 모습 등 일상 속에서 평범하면서도 작은 행복으로 가득한 동년시절을 그렸다. 만화는 이어서 그녀의 사춘기시절의 방황과 짝사랑이야기, 대학입시를 앞둔 고민과 미래에 대한 동경, 불안, 희망을 “때로는 사념에 사로잡힌 하얀색으로, 때로는 행복이 피는 핑크색으로, 때로는 그리움이 묻은 푸른색으로 그녀의 소녀시절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작가가 말하다싶이 ‘별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지만 주인공이 들여다본 만화에서 그나마 만화가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면 그녀의 대학교 마지막 시절에 만화써클에서 만난 선배이자 첫사랑인 나카무라 료(中村亮)와의 관계이다. 료는 그녀와 한고향이였는데 만화에 대한 느낌과 생각들을 나누면서 자연스레 좋아하게 되였다고 한다. 만화에는 “다정하게 손잡고 캠퍼스를 걷는 모습, 여름방학에 고향의 바다가에서 단짝친구랑 셋이서 바비큐파티를 여는 모습, 떨리는 첫 키스를 하다가 그만 료의 혀를 물어놓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두 사람 사이는 별로 큰 모순 없이 순조로웠고 알콩달콩하였다.” 그 만화에는 특별한 충격이 없이 일상의 사소하고 자잘한 이야기들로 가득하였고 더우기 그 화법이 “예전에 한번 피뜩 봤던 대로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지루하고 따분”하여 주인공의 사크라꼬에 대한 리해의 노력을 어느 정도 무의미하게 하는 듯했다. 주류(主流)가 아닌 그림풍격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신 그림은 아주 섬세하고 생동했다. 선 하나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쓰며 모든 정력을 쏟아부은 듯했고 재현된 만화는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이야기를 책 속에 락인해둔 것처럼 보였다. 만화도 컴퓨터로 그리는 시대에 돼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할가? 주인공은 사크라꼬의 만화에 별다른 호기심을 품지 못하며 이듬해 봄이 되여 함께 우연히 만나 덮밥을 같이 먹으면서도 만화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그러다 그후 사크라꼬가 문득 동네에서 사라진다.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그로부터 또 한참 흘러 주인공은 녀자친구인 히토미와 함께 벚꽃구경을 하면서 겨우 일주일 밖에 피지 않는 벚꽃의 개화를 두고 짧은 만큼 아름다운 그 극치를 음미한다. “그 제한된 생명 속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벚꽃의 미는 창조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훼멸 속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벚꽃은 짧지만 기억 속에 오래 남아 그 생명을 또 다른 방식으로 연장한다.” 한시적인 생명력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소설의 녀자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사크라꼬의 외로운 죽음이다. 사크라꼬는 사실 어디로 사라졌거나 실종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방에서 쓸쓸히 목을 매고 자살하고 만 것이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어디선가 고약한 냄새가 풍겨왔다거나 고양이의 그릇에 오래동아 먼지가 쌓여있다거나 한 묘사들이 복선의 역할을 하는데 새로 이사 온 다카하시라는 일본인 녀대학생이 노크에 거의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보이는 남주인공과 달리 사크라꼬의 출입문을 노크하면서 결국 경찰에 의해 사크라꼬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사클꼬는 일주일 밖에 피지 않는 벚꽃처럼 잠시 이 동네에 살았던 것이며 주인공의 마음을 두드리다가 말없이 가버린 것이다. 특별히 주인공과 련애와 같은 미묘한 관계를 이루려고 한 것도 아니지만 주인공의 무덤덤함과 알수 없는 경계심에 의해 그 마음의 문을 노크하다가 가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바꾸어보면 주인공은 사크라꼬의 그러한 노크에 일종의 거부감을 느꼈고 그녀의 출입문을 노크하려고 몇번이고 문 앞에 섰지만 두드리지 못한 것은 어딘가 주인공의 마음의 깊숙한 곳에 사크라꼬와 그녀를 둘러 싼 장소와 공간에 대해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떠나가버린 후, 주인공은 그녀의 만화를 마저 읽고나서 그 속의 러브스토리가 그녀의 인생과 첫사랑에 대한 기록이자 회억이며 한차례 ‘의식(仪式)’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해 가을에는 벚꽃이 피지 않았다는 것과 사크라꼬가 살던 집에 새로 온 사람에게 ‘얼룩이’를 ‘사크라’라고 소개하는데 이러한 여러가지 상징적인 장면들은 주인공의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려진다는 점과 노크에 그토록 린색했던 마음의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음을 엿보이게 해준다. 소설의 마감에 ‘사크라’라고 개명한 ‘얼룩이’를 쓰다듬으며 울컥해하는 장면은 단편영화의 결말처럼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잘 처리되였는데 다만 그 사이에 감추어도 될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해버린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관계의 토대는 자아가치에 대한 상호승인에 있지 않을가? 더 나아가서 나는 이 세상에 부재(不在)하는 그녀에 대한 기억의 존재를, 또 그녀는 마음 속에 존재하는 고향에 대한 현실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와 인생과 삶에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걸가?  2017년 제10기 동북아신문
161    [수기] 학부모 회의 댓글:  조회:176  추천:0  2021-10-09
학부모 회의 김명화 태어난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유치원 중반생이 된 손주 개학을 앞두고 학부모회의를 한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아들며느리가 모두 직장에 출근하다보니 어린 손주를 유치원에 보내고 데리고 오는 일은 예순을 지척에 두고 있는 나의 몫이 되었다. 아들며느리가 금년에는 회사에 휴가내기 힘든지 손주의 학부모회의에 나보고 참가하라한다. 모처럼 손주 학부모회의에 참석하게 된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기분이 붕 뜬 아침이다. 애고사리 같은 손주의 보동보동한 손을 잡고 유치원 문 앞에 이르니 생기가 넘치는 젊은 선생님들이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로 일찌감치 대문앞까지 나와서 반갑게 기다리고 있었다. 저마끔 아이 손을 잡고 해맑게 웃으면서 회의실에 들어가는 숱한 젊은 엄마들 가운데 훤칠하고 멋진 남자가 양 손에 하나씩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알고보니 3반에 오누이쌍둥이를 둔 아빠란다. 오누이쌍둥이 아빠, 그러고 보니 나의 오빠도 오누이쌍둥이를 둔 아빠였는데... 그 남성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대학입학시험을 앞둔 고중3학년 학부모회의에 오빠가 부모를 대신해서 참가한 일이 떠올랐다. 41년전 일이다. 그날은 토요일이였는데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아버지처럼 듬직한 오빠가 학교 식당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시골에는 중학교도 졸업못한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남존여비사상이 심했던 외할아버지가 외삼촌 둘만 야학공부를 시키는 바람에  어머니는 남동생들한테서 몰래 글을 배워서야 겨우 조선글을 뗄 수 있었다. 어려운 나날에 그렇게라도 글을 익혔기에 참군한 오빠나 외지에서 공부하는 이 막내딸이 보낸 편지도 읽을 수 있었다 . 그러던 작은 외삼촌은 길에서 주어온 총알을 가지고 놀다가 터져서 목숨을 잃었고 그 슬품을 이기지 못한 외할머니도  작은외삼촌을 따라 가셨다. 해방후, 외할아버지는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17살에 난 엄마를 시집 아니, 돈을 받고 시집이라고 보내놓고 큰외삼촌만 데리고 한국으로 갔다며 어머니는 외할아버지를 원망하셨다. 그렇게 홀로 중국에 남은 어머니는 생전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을 이제나저제나 학수고대했다. 이제 한국가서 친정식구들을 만나게 되면 먼저 글을 가르쳐준 남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고향집 마당에는 홍시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홍시를 유난히 반기는 딸을 위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특별히 심은 거라고 하며 해마다 설날이 되면 언 감은 꼭 사다가 찬물에  담가주면서 아직도 그 홍시나무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평생 학교문에 들어서지 못한 게 여한으로 남아서 그랬던지 어머니는 일찍 아버지를 여인 우리 4남매를 남들 부럽지 않게 모두 고중공부까지 시켰다. 우리들도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세라 한결같이 공부를 잘했다. 어린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고 공부뒤바라지를 하느라 밤낮없이 궂은일, 바른일 가리지 않고 하느라고 어머니는 한번도 우리네 학부모회의에 참가한 적이 없었다. 학부모회의를 앞둔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사무실에 불러놓고 이렇게 단단히 일러주었다.  "김명화, 이번 학부모회의는 아주 중요하니 부모님께서 꼭 참가하셔야 한다. 알았지? " 나는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지만 동네에 있는 학교에 다닐 때조차 학부모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어머니가 20여리의 먼 시골길을 걸어서 학부모회의에 참석할 리 만무하다는 걸 마음속으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학부모회의가 있던 날,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밥을 먹으려고 학교 식당에 가고.있는데 같이 가던 친구가 느닷없이 "명화, 너의 오빠야!"라고 웨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닌게 아니라 오빠가 학교 식당 앞에서 우리를 보고 반갑게 웃고 있었다. 오빠를 보는 그 순간 나의 두눈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오빠가 "오~명화! 우리막내!"라고 부르면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오빠! 어떻게?"      나는 금시라도 두 눈에서 눈물이 굴러떨어질 것 같아 머리를 옆으로 살짝 돌렸다.      "막내야, 학부모회의가 있다는 걸 왜 미리 알리지 않았어? 너의 담임선생님 한선생님께서 널 칭찬하시더라. 문장을 잘 쓰고 랑송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린다구. 게다가 춤도 잘 추니 앞으로 사범학교를 나와 교원이 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오빠도 너의 선생님과 같은 생각이란다." 오빠는 이렇게 말하면서 호주머니에서 비타민C 한병과 돈 10원을 꺼내 나의 손에 쥐여주었다.      "오빠, 올케한테 드려요. 난 괜찮아요." 그 무렵, 올케는 오누이쌍둥이를 낳고 영양실조로 황달간염에 걸려 링겔주사를 맞고 있었고 어린 조카들은 우유를 사먹고 있는 힘든 형편이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로서는 오빠의 마음을 선뜻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빠는 호주머니에서 비타민C 한병을 꺼내 보여주면서 한 병 더 있으니 걱정말고 얼른 받으라고 밀어주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반죽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토닥토닥 등을 다독여주는 오빠의 따뜻한 사랑 앞에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한마디 말도 못했다... 그 날, 오빠가 학부모회의에 기적처럼 나타나 나를 응원해준 덕분에 그 뒤로 매일매일 온몸에 힘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여느때보다 공부도 더 열심히 했고 매일 아침저녘으로 비타민C를 두알씩 챙겨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밤자습이 끝나면 과자로 허기를 달래면서 밤을 새며 공부를 한 덕분에 대학에 이어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꿈까지 이루었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우리 고향에서도 한국으로 출국하는 바람이 불어 너도나도 돈을 번다고 고향을 등지고 떠났다. 어느 날인가 갑자기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막내야! 한국어시험에 만 합격되면 한국에 갈 수 있는 정책이 나왔다는구나. 네가 대신 알아보고 좀 등록해줄래? 더 늙기전에 돈을 벌어 층집사서 아들을 장가 보내고 로후대책도 마련해야겠구나. 막내야, 부탁한다." 나는 오빠의 부탁대로 어렵사리 인터넷으로 한국어시험 등록을 마쳤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어에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오빠는  우리 한국어학과 선생님들마저 깜짝 놀랄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되였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 오빠는 전화를 걸어와 회포에 잠긴 목소리로 속심말을 털어놓았다.    " 막내야, 고맙다! 네 덕분에 엄마가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던 한국에 가게 되였다. 이제 가서 자리를 잡게되면  엄마의 고향 경상북도에 가서 엄마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외삼촌을 찾아뵐 거야, 생전이면 좋겠는데... 혹시 돌아가셨다면 산소에 찾아가 제사상을 올려 엄마의 마음을 전할 거야... 이제 돈을 많이 벌어올테니 오빠 걱정 말라..." 그런데 막로동이 너무 고달팠던 걸가? 한국땅을 밟은 지 26일 만에 오빠는 심장병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에 오르고야 말았다...  사랑하는 오누이쌍둥이, 그리고 그동안 오빠를 아버지처럼 믿고 살아온 동생들과 작별인사 한마디도 없이... 이국땅의 반지하 세방에서 홀로 떠나야 했던 그 마지막 길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고 억울했을까... 오빠가 가시는 모습을 보지못해서 그런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가끔 버스역이나 기차역, 공항 같은 데서 오빠와 닮은 모습의 사람을 보면 저도 모르게 "오빠!"하고 부르면서 뒤쫓아가게 된다. 그리고 오빠의 친구분들을 만나도 오빠 생각이 북받쳐올라 뜨거운 눈물을 훔친다. 또한 가끔 고향윗체방에서 오빠친구분들이 즐거운 모임 사진이랑 보면 우리 오빠도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요즘은 60이 청춘이라는데 59세인 아까운 나이에 우리 오빠는 ...  이 좋은 세월에 너무 일찍이 떠난 오빠인생이 너무나 가벼워서 조용히"오빠 !" 부르며 하얗게 밤도 새군한다... 그리운 고향에도 오빠가 돌아가신 후로 발길을 뚝 끊었다. 어머니와 오빠가 계시지 않는 고향, 홍시 나무만이 고향집을 지키는 추억으로만,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하는 곳으로 남게 되였다. 나의 학부모회의에 참석했던 오빠의 모습을 새삼 되새겨 보게 한 손주의 학부모회의, 모든 게 방불히 어제 일인듯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고 어린 아이처럼 사랑하는 오빠를 애 타게 부르면서 흐느끼고 싶은 심정이다. 전화할 때마다 언제나 "오, 우리 막내, 명화구나,..."라며 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불러주던 오빠의 그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 사무치게 그립다.  김명화 :흑룡강성 동녕시 출생.연변조선족자치주조선족아동문학학회 회원.흑룡강성 조선말방송에 수필 우수상."아동문학샘터"에 시와 수필발표.동북삼성 한국어학과 한글짓기 우수지도상 등 수상.한국 KBS라디오 방송에 통신 다수 발표. 동북아신문
160    엄마의 소소한 행복 댓글:  조회:348  추천:0  2021-09-29
엄마의 소소한 행복 □강매화 3.8절이라 동갑내기 친구들이랑 레스토랑에 모여 파티를 벌렸다. 화려한 옷차림에 꽃단장까지 하고 서로서로 찰칵찰칵 사진도 찍으며 시끌벅적 명절분위기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딩동! 딩동! 위챗소리에 문자확인을 하니 엄마가 사진을 보내왔다. “매화야, 네가 보내준 선물 잘 받았어. 엄마 이쁘지? 고마워 내 딸! 이제 로인독보조에 나가면 모두들 부러워할 거야. 엄만 이제 다시 애가 되나 봐. 다 늙어빠진 로친네가 새옷 입으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있을가…” “그리고 또 우리 딸 덕분에 평생 엄두도 못낸 고급화장품도 쓰니까 이렇게 젊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짱이야!” 엄마는 내가 부녀절을 맞으며 사드린 새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과 함께 이런 문자를 날려왔다. 얼굴에 얼기설기 건너간 주름살로 웃음을 만들어보내는 엄마다. 허리도 이젠 튜브를 두른 것처럼 둥글둥글해서 내가 사보낼 때 예상했던 효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엄마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레스토랑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며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을 때 엄마는 우리 모임의 밥 한끼 값도 안되는 명품도 아닌 그냥 새옷을 입고 저렇게 기뻐하신다. 한국에 10여년 체류하면서 싸구려 스킨로션만 사서 발랐지 언제 아이크림에 비비쿠션까지 있는 세트화장품을 엄두조차 내셨을가. 문득 지난번 일이 떠오르며 나를 더욱 쥐구멍을 찾게 만든다. 지낸해 이라는 글이 수상하게 되였는데 편집일군이 전국애심녀성포럼 위챗계정에 글을 올려준다며 엄마하고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휴대폰 사진을 올리훑고 내리훑고 열심히 뒤졌는데 폰의 용량 절반을 차지하는 만장도 넘는 사진에서 엄마사진이 겨우 서너장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만분의 몇! 몇만분의 일! 내가 여유작작 멋진 경치들을 누비며 찰칵거리고 맛집들에서 진수성찬의 풍미에 함씬 취해 번쩍거릴 때 엄마는 무엇을 하고 계셨을가? 달랑 몇장의 엄마사진! 년중 음력설휴가 때에나 겨우 고향에 갈지말지 한데 그것도 고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밖을 도느라고 언제 다정하게 엄마와 얘기라도 나누어봤던가. 사진 찍을 시간조차 거의 없는 설휴가를 보내지 않았던가. 애 때문에 출근 때문에 일년에 겨우 한번밖에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들인데 명색이 부모님들과 설을 쇤다고 동네방네 소문만 내고는 결국 동창모임이나 진배없었던 나의 설명절.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앉아 겨우 아침식사나 같이하고는 이내 친척들 집에 다니며 설인사를 하고 친구들과 회포를 나눈답시고 시간을 다 보내버리군 했었다. 마흔이 넘도록 나는 엄마 앞에서 항상 철없는 딸이였다. 그런 딸도 귀엽다고 딸바보 엄마는 내가 돌아올 때면 무엇이든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지 못해 안달이시다. 자식한테서 받은 원피스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시는 엄마, 그렇게 쉽게 만족해하는 엄마의 너무나도 평범한 행복을 나는 왜 얼마든지 넘쳐나게 해드릴 수 있었는데 유독 엄마한테만 그렇게 린색했을가. 결혼해서 아들이 생기고 나서 항상 아들이 1순위였다. 맛집을 알게 되면 다음엔 아들을 데리고 와야지 하는 생각 뿐이였고 멋진 패션을 보면 아들한테 사줘야지 하는 생각만 들었지 부모님한테 해드릴 생각은 왜 그렇게도 하지 못했을가.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무슨 숙제라도 하듯 조그만 선물이나 용돈을 보내는 것으로 효도를 다한 것처럼 여겼던 나 자신은 얼마나 한심한 딸이였는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나는 부모님한테 그토록 사랑에 린색했지만 엄마는 여전히 주고 주고 또 주어도 성에 차지 않으신 모양이다. 요즘엔 대련에도 고향맛 반찬가게들도 많건만 엄마는 지금도 계절따라 나물이며 남새들로 밑반찬을 만들어 보내주신다. 고향의 강물처럼 변함없는 사랑을 장장 40년도 넘게 멈추지 않고 보내주신다. 선배들한테서 제일 많이 듣는 말중의 하나가 바로 부모님 계실 때 잘해드리라는 진심 어린 충고였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그렇게 바빠 그토록 작은 선물에도 한없이 기뻐하시는 엄마한테 여직 그런 사소한 행복조차 변변히 해드리지 못했을가. 며칠 후이면 ‘어머니의 날’이다. 이번에는 기어이 근사한 선물을 사드려 부모님께 효도 좀 해드리려고 나는 행복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에 체류하시는 동안 단 한번도 못해드렸던 이벤트 같은 것도 좀 자주 해드려야겠다.   울 엄마 주름으로 만들어내시는 그 함박웃음을 더 자주 보고 싶다. 연변일보 
159    [고시 산책] 가장 슬픈 시대의 가장 슬픈 시 댓글:  조회:178  추천:0  2021-09-27
가장 슬픈 시대의 가장 슬픈 시 (심양 시인) 리문호 리문호 시인 시는 역사의 증언이다. 민족정서의 반영이다. 우리민족은 수많은 치욕과 굴욕, 비운의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 깊은 정한이 잠재한 민족이다. 또한 비운의 역사 속에서 분발, 항쟁으로 무수한 선열들의 생명과 피로 나라를 보존한 민족이다. 이런 투쟁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강열한 민족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 정신의 중추가 되는 것은 문화, 풍속의 힘이다. 문화가 있는 민족은 쉽게 멸망하지 않고 정복당하지 않는다. 역사는 정의의 역사가 아니라 절대 강자의 역사이다. 그리고 매 시기마다 형세 판단은 중요한 전략과 전술 제정의 근거로 된다. 그릇된 판단은 그릇된 결과와 엄중한 민족적 재앙을 가져 온다. 이에 새로 부상한 청나라와 화친파, 척화파의 논쟁으로부터 정책을 척화파에 기울어 일어난 병자호란은 가장 침통한 역사 교훈이 된다. 결국 남한 산성에 포위된 인조는 성문을 나와 홍타시 앞에 세 번 절하고 돌에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 항복하였으며 세자는 불모로 심양에 잡혀 오고 3만 아녀자들은 종, 첩으로 잡혀 갔다. 서울은 약탈과 방화로 하여 수라장이 되였으며 조선 왕조는 피폐 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굴욕으로 나라를 보존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심양에 거주하면서 심양 고궁에 구경갈 때마다 형장의 이슬로 된 애국 지사 삼학사가 생각 난다. 삼 학사를 알게 된 것은 1960년대 조선에서 출간된 을 읽고 부터이다.나는 이 책을 통해 삼 학사와 김상헌이 심양에 얽힌 한을 알게 되였다. 나는 그들의 시를 가장 슬픈 시대의 가장 슬픈 시로 생각한다.    1637년 삼 학사 홍익한(洪翼漢), 오달재(吳達濟), 윤집(尹集)이 척화한 죄로 청나라의 성경 심양에 잡혀왔고 1642년에는 김상헌金尙憲)이 심양에 잡혀와 투옥 되였다. 그들은 청나라 황제 홍태극(洪太極)이가 자기의 신하로 되어 준다면 부귀영화를 주겠다는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송죽 같은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홍익한은 붓을 달래서 < 천만 번 죽더라도 마음에 달게 여기고 피를 북에 바르면 넋은 하늘을 날아 고국으로 날아 갈 것이다> 라 하였다. 여기에 심양 옥중에서 쓴 김상헌과 삼학사의 시를 소개한다. 瀋獄送秋日感懷 金尙憲 忽忽殘方斷送秋 (홀홀잔방단송추) 一年光景水爭流 (일년광경수쟁류) 連天敗草西風急 (연천패초서풍급) 羃碛寒雲落日愁 (멱적한운낙일수) 蘇武幾時終返國 (소무기시종반국) 仲宣何處可登樓 (중선하처가등루) 騷人烈士無窮恨 (소인열사무궁한) 地下傷心亦白頭 (지하상심역백두) 어느덧 이국에서 가을철 보내니 한 해 세월은 물보다 빠르구나 하늘가 시든 풀에 서풍이 세차고 겹겹 싸인 찬 구름에 지는 해 슬프다 이 몸 어느 날에 고국에 돌아 가랴 고향을 바라 볼 높은 루각도 없구나 마음 열렬한 선비의 크나 큰 한은 옥 안의 시름으로 머리가 또 희네 瀋獄踏靑日詠懷 洪翼漢 陽坡細草坼新胎 (양파세초탁신태) 孤鳥樊籠意轉哀 (고조번롱의전애) 荊俗踏靑心外事 (형속답청심외사) 禁城浮白夢中來 (금성부백몽중내) 風飜夜石陰山動 (풍번야석음산동) 雪入靑凘月窟開 (설입청시월굴개) 饑渴僅能聊縷命 (기아근능료루명) 百年今日淚沾腮 (백년금일루첨시) 양지바른 언덕에 가는 풀 새싹 움트는데 조롱안에 갇힌 외로운 새처럼 마음만 애닲아라 남의 나라 답청하는 풍속 상관할 바 있으랴만 궁 안에서 즐겁게 술 마시던 일 꿈속에 떠오르네 밤 바람이 돌을 들춰 싸늘한 산 흔들리고 눈은 성애로 녹아 달은 활짝 밝구나 배고프고 목말라 애오라지 실날 같은 목숨 이어 가니 하루가 백 년인 듯 지루해 눈물이 뺨을 적시네 瀋獄寄內南氏 吳達濟 琴瑟恩情重 (금슬은정중) 相逢未二朞 (상봉미이기) 今成萬離別 (금성만이별) 虛負百年期 (허부백년기) 地闊書難寄 (지활서난기) 山長夢亦遲 (산장몽역지) 吾生未可卜 (오생미가복) 順護腹中兒 (순호복중아) 우리의 사랑 그지없는데 서로 만난지 두해가 안 되서 오늘은 아득히 헤어졌으니 백 년의 가약 허사가 되였구려 먼먼 이국에서 글 보내기 어렵고 산이 첩첩하여 꿈 또한 더디오 내 살기를 짐작할 수 없으니 뱃속의 아이나 잘 부탁하오 除夜 尹集 半壁殘燈照不眠 (반벽잔등조불면) 夜深虛館思悽然 (심야허관사처연) 萱堂定省今安否 (훤당정성금안부) 鶴髮明朝又一年 (학발명조우닐년) 벽에 가물거리는 등잔불 보며 잠들지 못해라 밤 깊은 허전한 방에서 오늘 따라 심란도 하여라 늙으신 어머님 오늘도 편안하신지 시름 많은 백발로 또 한 해를 맞겠구나 이상 삼 학사와 김상헌의 시는 천추에 남긴 절통한 상감의 시들이다. 그들의 나라에 대한 충정으로 쓴 시는 오늘에도 강한 진동을 남긴다. 그러나 선비의 충정으로는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침통한 교훈을 후세에 남긴다. 그리고 남북 분단이란 특정 위치와 한 반도를 둘러 싸고 복잡하게 얽힌 국제 형세 속에서 어떻게 평화적으로 슬기롭게 풀어 나가야 하는 가는 민족 앞에 커다란 숙제로 대두하였다    동북아신문
158    새롭게 태어나다, 외 4수 댓글:  조회:193  추천:0  2021-09-24
새롭게 태어나다, 외 4수 김화숙  육신을 끌고 밖으로만 나아갔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 나라까지 떠나 와서도 또 어디로든 떠나는 꿈만 꾼다 수묵이 한지에 번지듯 내가 곱게 스며들 그런 곳이 어디 있을 것 같았다 육신이 나의 끝 나의 밖이라고 여기고부터 육신 안에 무한함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작은 눈이  세상과 우주를 끌어 담듯 육신 안에는 몇 십 년 걸어온 길과 만난 사람 느꼈던 희로애락이 한편의 대하드라마로 남아있다 밖으로의 확장은 씨앗이 잎 틔우고 가지 뻗어 꽃피고 열매 맺는 과정이라면 안으로의 확장은 씨앗이 다시 땅에 묻혀 살아온 모든 기억을 일으켜 몸 여는 법을 되살려 새로운 뿌리가 되는 과정이다 암흑 같은 절망과 고독을 견딜 수만 있다면 스스로를 열매가 아닌 씨앗으로 여겨 죽어서 환생하기 전에 살아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겠다.   입동 참고 있던 울화통이 한꺼번에 터졌을까 창밖의 나뭇잎들이 관우의 얼굴색으로 변했다 그 흔한 꽃 한 송이 내걸지 못하는 운명을 슬퍼하듯 몸을 떨면 악몽처럼 나뭇잎이 진다 또 한해가 빠져나가 한층 깊어진 늙음을 두터운 겉옷으로 감싸며 겨울의 입구에서 나무와 키재기를 한다.   절묘한 갈등 컴퍼스는 보다 큰 원을 그리기 위해 몸을 낮춘다 낮추지 않고 넓어질 수는 없다 컴퍼스 체형과 꼭 닮은 나 구두굽이 높아질수록 걷는 보폭은 좁아진다 높이와 넓이 사이의 갈등 집중과 분산 사이 시와 시인인 나와의 절묘한 갈등   이별의 계절 봄은 오는 계절이고 가을은 가는 계절이다 연둣빛 돋아나듯 봄은 조용히 스며오는데 앞집 할머니 낙엽 쓸어 모으는 비질 소리처럼 가을은 버석대며 간다 창밖 마른나무 가지 위  아침명상을 하고 있던 새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새보다 내가 더 놀랐다 또 한 계절이 앙상한 나뭇가지와  나를 세워두고 서걱대며 떠나고 있다.   눈물에 갇힌 것들 가을비에 낙엽은 무겁게 가라앉고 그 위를 누르는 적막 가을비에 상념은 슬픈 날개 달고 그 위로 고이는 그리움 그리움을 데리고 적막을 건너다보면 그 끝에 먼저와 걸려있는 반짝이는 눈물들. 김화숙 약력 :  중국 심양 출생. 길림사범대학 철학과 졸업. 길림조중 교원(전). 월간 「문학세계」로 등단.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 제 12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 시 부문 대상. 동포문학 10회 시 부문 최우수상. 세계문인협회 일본지회장.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시집 『아름다운 착각』(2015), 『빛이 오는 방식』(2017), 『날개는 꿈이 아니다』(2019). 출처 : 동북아신문(http://www.dbanews.com)
157    류춘옥 시 '도쿄의 조선족', 외 4수와 한영남 시평 댓글:  조회:283  추천:0  2021-09-23
한영남 시평 : 재팬 드림 그 실상과 허상에 대한 고발 및 디아스포라의 애환 류춘옥(柳春玉) 약력: 1978년 흑룡강성 녕안시 출생. 1998년 중국정법대학 수료. 2000년부터 일본 거주. 현재 일본 옥룡상사주식회사 전무 이사.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사무국장.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길림신문 수기상, ‘애심녀성컵’ 제4회 전국조선족여성 생활수기상, ‘청년생활’ 계림문화상 등 다수 수상. 도쿄의 조선족    나는 일본에 산다 세계 경제대국으로 꼽히는 아침의 나라 기모노를 입고 늘 생글거리는 미소가 하얀 백목련으로 아름다운 나라 이곳에서 나는 그 유명한 긴자거리를 옆집 쌍가매네집 놀러 가듯 동네돌이처럼 한다 초밥을 먹고 아사히를 마시며 사시미에 심취되기도 하지만 대화를 할라치면 발음부터 꼬인다 악센트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나는 이방인 어쩔 수 없는 이방인 당신 재팬? 아니요! 차이나? 아니요! 나는 재일 조선족입니다 조선족? 코리아?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나는 말입니다 중국 조선족입니다! 동그란 도쿄에서 도쿄가 세상 전부인 듯이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알 수가 없으리라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내 형제들을 한반도에서 북만주로 갔다가 이제 개혁개방으로 일본까지 건너와 이렇게 오겡끼데스까를 중얼거리는 내가 중국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김치를 좋아하는 내 아이들이 때로는 아리랑을 흥얼거린다는 사실을   도쿄의 유산 2020년 5월 29일 효고켄 타카라즈카시는 뉴스를 발표했다 효고켄 타카라즈카 시립병원에서 최후를 마감하신 90대 할머니께서 3580만엔을 병원에 기부하셨다고 했다 새로운 의료기기들을 구입해 더 많은 환자들한테 삶의 희망을 안겨주라는 따뜻한 말씀을 얹어서 90여 년의 긴 려정을 마치면서 소담한 꽃노을로 하늘 한 자락 곱게 물들이신 할머니 그날 락조는 무지개보다 아름다웠다   도쿄의 터널 어느 별에서 왔는지 전혀 관심이 없지요 오 나의 도쿄 네모 반듯한 미소만 넘치는 곳 칼로 자르듯 거절하지 않는 곳 누군가에게는 천국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이겠지요 왜 여기 이러고 있는지 아무도 물어주지 않아요 오 나의 도쿄 나의 항구 하소연은 귀등으로 스치네요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꽃피는 거리 누군가에게는 가족마저 잃어야 하는 곳 가을도 아닌데 해살만 눈부시고 겨울도 아닌데 찬바람이 부는 곳 죽음과 환생의 갈림길을 수없이 오가며 방황이 반칙으로 결론나는 곳 오 도쿄 오 나의 도쿄 나의 청춘의 터널이여   도쿄의 텃새 도쿄의 까마귀는 길조도 흉조도 아니고 그냥 텃새라 부른다 도쿄의 아침은 그 까악까악 소리에 열리고 이 텃새들은 까만 눈이 아닌 냄새로 먹이를 찾아헤맨다 그물을 덮어 길바닥에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덮치는 도심 속 무법자들 어둠이 춤 출 때에야 비로소 시큼한 입을 다시며 시커먼 하늘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도쿄는 매일마다 먹이를 찾아헤매는 텃새들의 보금자리이고 아침마다 잠 깨우는 까마귀 까마귀 남편과 새끼들을 먹이겠노라 아침부터 주방에서 분주한 나도 도쿄의 한 마리 텃새일가 이름만이라도 철새라 불리웠으면 언젠가 고향 돌아갈 아아 그 이름 철새 철새   도쿄의 파티 요즘 도쿄의 파티에는 맥주도 없고 와인도 없다 그 흔하디 흔한 신선한 사시미도 없고  꿀처럼 달달한 디저트도 없다 황량한 들판에서 말라가는 갈대처럼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누렇게 부스럭거리는  가을 국화들의 모임처럼  물 한모금 없이 목만 타들어간다 지난 해 바닥을 치던 무우값처럼 초대장 가격이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올해 하늘을 찌르던 마스크값처럼 초대받은 손님들의 생활이 활짝 피여난 것도 아니겠는데 봉투의 무게는 변함없고 어쩐지 선거권 한표가 늘 모자란 도쿄의 어눌한 파티   문학비평 재팬 드림 그 실상과 허상에 대한 고발 및 디아스포라의 애환 ㅡ 류춘옥시인의 도쿄시 시리즈에 부쳐    한영남   한영남 약력 : 한영남 1967년 길림성 안도 출생. 시, 소설, 수필, 실화, 평론 등 300여만자 발표. 소설집 , 장시집 등 출간. 중국조선족수필상, 중국조선족동시상, 중국조선족연해문학상, 연변일보 제일제당상, 흑룡강신문 랑시문학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흑룡강성소수민족문학상, 연변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등 다수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성작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자유기고인.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있다. 아메라칸 드림(Amrican Dream)이라는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James Truslow Adams라는 작가가 쓴 『Epic of America(미국의 서사시)』(1931)라는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배경은 20세기 초 미국의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에 따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열심히만 일하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결국 미국이민의 꿈으로 연결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꿈을 지향하는 용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일본 땅을 밟은 중국의 조선족들 역시 재팬 드림을 꿈꾸었고 아직 일본을 모를 때 그들에게 도쿄는 천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교육에만 물 젖어 있던 그들에게 자본주의 세계는 냉혹하기 그지없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혹자는 눈물을 삼키며 혹자는 침을 뱉으며 혹자는 엿을 먹이며 정이 들까 말까 하는 꿈의 천당을 떠나야 했다. 그들에게는 자본주의 생리만을 고집하는 재팬이 인정머리 없는 고장이었고 다시 뒤돌아보고도 싶지 않은 지옥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성실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내면서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2세 3세를 낳아 키우면서 그들만의 삶의 신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이라고 손쉽게 그런 생활의 기반을 마련했을 리는 만무할 것이다. 그들도 새로운 환경, 새로운 풍토, 새로운 인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눈물을 깨물어 삼키며 비로소 오늘의 생활을 가꾸어온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은 일본에 사는, 아니 도쿄에 사는 조선족으로서의 당당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중국조선족들이 일본에서의 생활을 소설로, 수필로, 실화로, 기행문으로 적어왔지만 시문학으로, 그것도 를 꺼내들고 세상에 이름을 알려온 이는 일찍 없었다. 그 경이로운 작업을 류춘옥 시인은 해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작품의 호불호를 떠나서 라는 타이틀만 가지고도 벌써 류춘옥 시인이 성공한 시인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도쿄시 시리즈 창작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1인으로서 이 시리즈에는 일본에서 재팬 드림을 위해 엎어지며 뒹굴며 몸부림쳐온 조선족들의 삶의 모습이 적라라하게 투영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싶다. 구체적인 시작품에서 더욱 소상하게 밝히겠거니와 이와 같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시작품의 완성만을 위해 오롯이 제3자의 각도에서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스스로 벌거벗고 세상의 수술대위에 오르는 행위에 다름 아니며 자신과 자기 주변 지인들의 아픈 상처에 메스를 들이대는 행위에 다름 아닐 것인 까닭이다. 어쨌거나 그 어려운 작업을 류춘옥 시인은 해냈고 그것이 이제 라는 타이틀로 우리 앞에 성큼 와주었다. 구체 작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자. 시 은 제목 자체부터 포장 따위를 걷어내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들한테 앵글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그런가 하면 를 입고 을 먹으며 를 마시고 에 심취되기도 한다. 얼핏 보면 일본인이 다 되어버린 듯 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발음을 들어보면 어김없는 이방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을 받는다. 일본인, 한국인으로 오해를 받을 때마다 반발처럼 치켜드는 것이 바로 라는 말이다. 못살고 낙후할망정 그것은 를 낳아 키워준 조국이요 고향인 까닭이다. 독자들은 시줄에 이끌려 이 대목까지 이르러서는 저도 모르게 뭉클해내는 심정이 되어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반성해보게 된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욱 숨김없이 까발린다. 도쿄가 세상 전부인듯이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알 수가 없으리라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내 형제들을 한반도에서 북만주로 갔다가 이제 개혁개방으로 일본까지 건너와 이렇게 오겡끼데스까를 중얼거리는 내가 중국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김치를 좋아하는 내 아이들이 때로는 아리랑을 흥얼거린다는 사실을 ㅡ 시 에서 재팬들의 포위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중국 조선족임을 밝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자랑스럽다. 가난하고 헐벗었다고 어머니가 아닐 수 없듯이 시인에게 있어 낙후하다고 해서 조국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거기에 이 시의 핵이 묻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은 폭발하면서 독자들한테 엄청난 파장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시 을 보기로 하자. 시에서는 뉴스를 생방송하고 있다. 뉴스를 발표하는 연 월 일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신빙성을 부여하고 뉴스시의 정의에 충실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이 뉴스시에 대해 일부 시인들은 사건에만 치중하면서 뉴스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류춘옥 시인은 뉴스시의 생명인 정확성을 확보해줌으로써 독자들의 믿음을 견인해내고 그로부터 독자와의 소통에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있다. 90대 할머니가 3580만엔을 병원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전부의 내용이다. 여기서도 구체적인 숫자를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신빙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 일본에 등 돌려버린 사람들한테도 따끔한 일침이 될 수 있는 시이다. 왜냐면 자본주의 사회가 냉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도 인정이 있고 가슴 따스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시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지극히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봤음을 증명해보인 셈이기도 하다. 시의 말미를 같이 보기로 하자. 90여 년의 긴 려정을 마치면서 소담한 꽃노을로 하늘 한 자락 곱게 물들이신 할머니 그날 락조는 무지개보다 아름다웠다 ㅡ 시 에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인정이 넘치고 선량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그리하여 이 세상은 살만한 곳임을 굵고 큰 목소리가 아닌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있는 것이다. 시 을 같이 걸어가 보기로 하자. 이 시야말로 도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과 이해를 냉철하게 객관화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시인은 이라는 간결한 시구로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들에 대한 총적인 인상을 집약적으로 개괄하고 있다. 일 수 있는 일본 도쿄는 왜 시적 화자한테 이며 로 자리매김 되고 있을까. 그것은 청춘의 한 토막을 일본에서 생활의 지반을 닦기 위해 바쳐온 시인의 인생 경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일본에서 살아본 조선족이라면 혹은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시에서는 이라는 재미나는 표현을 만날 수 있다. 방황이 반칙이라면 그럼 반칙을 하지 말라는, 못한다는 말로 풀이되겠는데 그것은 어떤 상황이란 말인가? 그럴 것이다.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없이 겪었을 법한 생활이고 이유 불문하고 따라야 했던 무가내한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시인은 더없이 냉철, 냉정 지어 냉혹하리만치 사정을 두지 않고 꼬집는다. 시에는 이와 같은 발상들이 숨어 있어야 시가 시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 를 구경해보자. 드디어 우리한테도 익숙한 새가 등장한다. 그런데 하필 까마귀이다. 우리는 대체로 까마귀를 보면 재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까마귀야말로 효조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까마귀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렇다면 시인의 눈에 비친 도쿄의 까마귀는 어떤 모습일까. 무법자들이다. 그리고 까마귀들이 번창하면서 다른 새들은 다 쫓겨버린 셈이고 그리하여 까마귀는 텃새로 군림한다. 그렇다면 는 어떤가. 나 역시 한 마리 에 불과한 것이다. 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시가 끝나도 괜찮은 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한 번 잡은 시상을 절대 허투루 놓치지 않는다. 결국 시인은 까마귀에서 라는 낱말을 떠올리고 이라는 낱말을 길어올리고 있다. 까마귀가 새삼스레 뭉클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시는 시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코로나사태가 터진 다음 창작된 것으로 헤아려진다. 는 파티라니? 왜 그런 황당한 일이 생겨야 하는 것일까. 황량한 들판에서 말라가는 갈대처럼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누렇게 부스럭거리는  가을 국화들의 모임처럼 ㅡ 시 에서 이런 모습이 되어버린 파티는 스산하기 짝이 없다. 현실고발형의 시는 아무래도 가슴 아픈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백안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시인이다. 그런 현실을 폭로 비판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견인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는 코로나시대의 한 단면을 파티라는 특정 모임을 빌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시에서는 이나 등의 말들로 현장감을 긴장시키고 있으며 등의 시구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할수무가내한 삶의 측면에도 렌즈를 돌리고 있어 주목된다. 이상 류춘옥 시인의 를 살펴보았다. 긍정적인 것은 시인의 도쿄시 시리즈가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도쿄에서의 조선족들의 삶에 서치라이트를 켜댈지 모르지만 라는 타이틀을 처음 내건 시인이라는 점과 시들이 점차 성숙되고 완숙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가 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코리안 드림, 아메리칸 드림, 재팬 드림 등 꿈을 위해 새로운 터전을 찾는 이들에게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 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류춘옥 시인의 도쿄시 시리즈는 미래지향적이며 건전한 시행보가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좋은 시를 써준 시인에게 박수를 보내며 시인의 보다 성숙된 도쿄시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1년 8월 할빈에서    
156    속터지는 기억력 댓글:  조회:164  추천:0  2021-09-23
  속터지는 기억력 글 궁금이 ·/ 방송  구서림         호주 총리 이름을 깜빡한 바이든 “호주 친구, 감사합니다.”     한국 모 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현지시간으로 지난주 15일에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오스트랄리아 모리슨 총리와 영국 보리스 총리와 공동으로 가진 화상 기자회견에서 생긴 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먼저 영국 총리에게 인사를 건넨후 다시 호주 총리에게 얼굴을 돌리는 순간 아마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다운 언더(지구 아래쪽에 위치한 오스트랄리아를 가리키는 말)친구”라고 했다가 이어서 “정말 고마워요 친구. 총리님 감사합니다.”고 했다. 벌어진 사실 자체로만도 충분히 황당하지만 기사 제목 또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기자들이 독자의 눈을 끌기 위한 제목 작전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이렇게 눈앞에서 사람을 마주하고도 갑자기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동네집 아이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한 나라 총리를 친구라고 한 건 너무했다. 내가 같은 상황이였으면 솔직히 이랬을 것 같다.      “어디 보자... 내가 지금 깜빡해서 그런데 미안하지만 성함이 뭐였죠?”     사실 나도 사무실에서 동료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이름을 불러야 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다른 말로 돌리다가 생각난 다음에 다시 원 주제로 돌아온다.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였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런 날이 왔다. 슬퍼도 어쩔 수 없고 안타까워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마치 시력이 서서히 떨어지고 흰머리카락이 하나둘 생기는 것과 같은 도리다.      옆부서의 동료는 나보다 이상인데 중요한 회의가 예고돼 있을 때면 나한테 찾아와서 갈 때 자기를 불러서 같이 가자고 한다. 쉽게 잊어먹기 때문에 귀띔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앞으로 나에게도 그럴 날이 오겠는데 흔쾌히 대답한다.     그런가 하면 잊혀졌으면 하는 일들은 기를 쓰고 또렷하게 남아서 시도때도 없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이를테면 얼핏 생각해도 손이 오그라드는 일들이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리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그 나이 때는 그 나이의 어쩔 수 없는 유치함이라는 게 있는가 보다. 사람들은 제 살기에도 바쁜데 다른 사람의 실수 같은 걸 오래 두고 기억할 여력이 없다고들 한다. 그래도 왠지 그게 믿기지 않고 아는 사람들은 아직도 다 기억하고 있을 것 같으면서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되새기면서 소름이 돋는다.      반대로 잊고 싶지 않은데 희미해져가는 기억도 있다. 엄마에게 미안했던 모든 일들이다. 위챗에서도 이미 많이 다루었고 책의 제목으로도 썼던 부분이다. 여기서 다시 반복하지 않지만 지금도 조용할 때 혼자 생각하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그런데 그 생각의 강도는 점점 옅어져가고 있다는 것도 동시에 느낀다. 물리적인 거리가 마음상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고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더 믿고 싶어진다.     사람은 평생 살아도 뇌의 극소부분만 활용하고 간다고 하는데 나머지 부분을 전부 기억장치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일가. 마치 우리가 메모리칩을 용량이 큰 것으로 선택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면 지나온 소중한 일들을 차곡차곡 분류해서 잘 저장해놓을 건데...     희망사항은 희망사항일 뿐인다. “원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될 수 있고”는 노래 가사에서나 나올 법한 구절이고 설사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진다고 쳐도 그게 과연 생각처럼 아름다운 삶이라는 보장도 없다.      기억력을 채로 칠 수도 없고 콩알 고르 듯이 쭉정이만 빼낼 수도 없는 일이다. 원하든 말든 남게 될 기억은 남을 것이고 잊혀질 일들은 가차 없이 기억 속에서 살아져갈 것이다.      랭혹한 얘기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지난 기억을 위해 살지는 않는다.   중국조선어방송넷
155    생일선물 댓글:  조회:195  추천:0  2021-09-22
[수필] 생일선물 김경옥 50대 초반에 할머니가 되어서  요즘치고는 좀 이른 편이라 쑥스러울 때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외손주들이 재롱을 피우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매일매일  할머니소리를 들어도 행복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아침부터 둘째 외손주 두돌 생일파티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우부터  시작해서 없는것 없이  조목조목 다 챙기다보니 상다리가 부러질까 걱정이다. 게다가 친할머니, 큰아빠, 큰엄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아빠의  생일선물이 방 천장이 안 보일만큼 높이높이 쌓였다. 요즘 애들은 그야말로 공주이고 왕자이다.  옛날같았으면 엄두도 못냈을텐데 요즘은 참  신기하기도 하다. 아기때부터 가지고 싶은거  다 가지고  먹고 싶은거  다 먹으니 말이다.   요즘 말로 라떼는 아이한테 과자나  놀이감을 사주려고 해도 돈이 없으니 일년을 벼르고 벼르다가 생일날이 돼서야 겨우 장난감 하나 사주고 간식은 생 무나 마늘장아찌 등이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말할것도 없고 우리 세대는 아껴쓰고 모으기 바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돈을 별로 많이 모으지도 못했고 고질병만 얻었다. 외손주 생일상을 바라보라니 문득 과거 소녀시절  엄마밖에 모르던  때가 생각났다.  1976년 그 해 겨울, 내가 열두살때 일이다. 음력설이 지나고 엄마생신이 돌아올 무렵이 되었다. 철이 들기 시작한 나는 우리 형제들을 키우느라 고생하시는 엄마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다. 가진 돈은 없고  동생들 셋과 머리 맞대고 토론 끝에  고물을 주어서 팔기로 했다.  하지만  엄동설한(중국 동북은 영하30도좌우)이라 시골에는 밖에 나가면 온통 흰눈천지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동네 집집마다 집옆에 쓰레기 버리는 곳이 있었는데  나는 삽과 꽉지(괭이의 방언)를 들고 동생 (막내동생은 그 당시 네살이었다.)들을 데리고  눈을 파 헤치면서 비닐이나 신발  버린것을 찿았다. 고무신을 신고 따라 나선 막둥이는  뒤뚱거리다가 미끌어 넘어져 눈속에 빠져  절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버둥거렸다.동생들 얼굴은 얼어서 사과알처럼 빨갛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 생일선물 사려는 생각에 계속 눈을 파헤쳤다. 내가 파헤치면 동생들은 눈속에서  폐 비닐조각이랑 입을 헤벌린 버려진 고무신발을 찾아 소쿠리에 담았다. 한나절 동네를 다 헤집고 나서야 겨우 고물 한 소쿠리 주었다. 우리는 그 길로 합작사(동네슈퍼)에 가져다 팔았다.슈퍼 아저씨는 기특하다며 저울에 달지도 않고 20전을 주었다. 돈을 받아들고 우리는 다 같이 끌어안고 퐁당퐁당 뛰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처음 벌어 본 돈이었다. 돈을  꼬깃꼬깃 만지작거리면서 슈퍼안을 왔다 갔다가 하다가 나는 결국 꽃감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며칠전 설날에 엄마가 꽃감을 사왔었는데 우리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당신은 꽃감을 안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왠지 엄마가 거짓말을 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곶감은 벌써 내 목구멍을 넘어간 다음이었다.그래서 엄마 생일선물을 곶감으로 정했다. 우리는 슈퍼 아저씨한테서 20전으로 곶감  세개를  샀다.  우리 넷은 곶감을 사들고 줄을 서서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이 빨갛다 못해 시퍼렇게 되었지만 우리는 엄청 신났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동생들 얼굴이 얼도록 밖에서 데리고 놀았다고 맏이인 나를 엄청 나무랐다. 나의 커다란 두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억울한 듯 엄마를 쳐다보며 곶감을 쑥 내밀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곶감을 내려놓고 빨갛게 언 우리 손을 차례로 당신의 겨드랑이에 넣고 녹여줬다. 그때 나는 엄마의 크고 고운 눈가에 이슬이 맺힌 것을 보았다. 그것이 내가 소녀시절 엄마에게 했던 첫 선물이었다. 그때는 어른이 되면  더 많은 선물을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려야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 살기만 급급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정작 많이 못해 드렸다. 어릴때 할아버지,할머니와 중국으로 이주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국적을 회복하신 부모님 덕분에  나도 한국에 와서 정착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지금은 어느새 살림이 많이  폈지만 늘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초심은 잃고 자기 사는데만 혈안이 되어  엄마를 많이 못 챙겨드린것 같다. 늘 고생만 하신 우리 엄마, 늘그막에 난소암 판정을 받으셨지만 나는 항상 내 남편,내 자식,내 손주가 우선이었던것 같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더니  아무래도 이 말은 틀린것 같다. 수십년간 고생한 엄마가 이런 몹쓸병에 걸리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 아픈 일이다. 나는 아직 엄마에게 못 해드린것이 많은데 엄마는 점점 기력이 떨어진다. 두번의 대수술과 수차례 항암치료를 반복했는데 언제까지 버티실지 모르겠다. 이제 며칠 지나 정월 열흘이면  엄마의 80세 생신인데 나는 과연 엄마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올해는  코로나때문에  팔순잔치도 못하게 되었고 엄마 모시고 형제들과  한자리에 모여서 오손도손  즐겁게 보낼수 있을지 고민이다. 연로하신 엄마한테는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잠시 옛날 생각이 나서 멍 때리고 있다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외손주 생일상을 차리느라 장만한 음식더미와 생일선물을 바라보던 나는 급기야 반찬통과 보자기를 가져와 바리바리 짐을 싸기 시작했다. 딸래미의 "엄마, 어디가요?"라는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김경옥 프로필: 흑룡강성 녕안출생.수필 다수 발표. 현재 한국에 거주. 동북아신문
154    [단편소설] 혼주 댓글:  조회:293  추천:0  2021-09-18
[장문영 단편소설] 혼주 장문영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침부터 명선이는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고는 머리를 감으랴 화장을 하랴 분주히 서둘렀다. 남편의 고향친구 철석이네 딸 결혼식에 가야 했다.  참, 이게 얼마만의 서울 나들이냐?  괜히 신바람이 나서 코노래가 절로 났다. 남편 기호도 벌써 옷을 갈아입고 괜히 집안팎을 들락날락 서성대며 부산스럽다.  망할 놈의 코로나 이후로 일년반동안 경기도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 서울 근처에도 안가다보니 친구들 얼굴도 잊어먹게 생겼다. 마지막 친구모임인 19년 년말송년회때 모여서는 ‘5학년’이 된 기념으로 이제 남은 하루하루를 즐겁고 신나게 살자는 인생목표를 세우고 의기투합하여 새해에는 1박2일로 어디 펜션이라도 얻어 좋은 추억 만들어 보자고 새해 모임계획까지 거창하게 세웠는데 그것도 무산됐다. 모임은 커녕 회사ㅡ집ㅡ회사, 이렇게 두 점 사이만 토끼처럼 왕복을 한 지도 어언간 일년 반이 되여 갔다.  처음엔 회사서도 단속하지만 겁도 나고 해서 진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TV에서 시키는대로 회식도 일체 안하고 방콕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코로나에 내성이 생겼나 보다. 마스크만 끼고 조심하면 괜찮겠지 하고 마음의 탕개가 풀어졌다. 오래동안 외부활동을 못한 보상심리도 생겼고 고향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찐하게 술 한잔 하고 싶어졌다.  “여보, 아직 멀었소? 늦겠소 참.” “다 됐어요, 보채기는, 자기도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 볼 생각하니 조바심 났구만요, 호호…다됐어요, 아직 안늦은데 뭘 그리….”  “가서 술한잔 하려면 차를 두고 버스 타고 지하철 갈아타고 가야하는데  버스기다리는데 시간 많이 걸릴수도 있구 …” “다 됐어요, 가요, 가.” 명선이는 헤라쿠션의 퍼프로 얼굴에 잡티부분을 한번 더 눌러주고 화장을 마무리했다. 매일 마스크를 끼고 다니니 화장해도 눈위로는 보이지도 않고 마스크에 화장품 묻는 것도 귀찮고 해서 옛날에 매일매일 화장 곱게하고 출근하던 습관이 무색하게 요즘은 스킨로션만 바를때가  많았다. 갑자기 풀 메이크업을 하려니 화장이 뜨면서 잘  먹지도 않는다.  화장을 하는 내내 친구 미영이 얼굴이 떠올랐다. 작년에 결혼날짜 받았다고 전화를 주며 뭐부터 준비를 해야지? 정말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하고 기쁨반 걱정반 너스레를 떨던 친구다.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코로나 판국에 무슨 결혼식을 올린다고 그러냐고 하겠지만, 코로나 유행전부터 결혼말이 오갔는데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다. 작년 5월로 예식장을 잡았다가 10월로 미루고 다시 새해 1월달로 변경했는데 3차 대유행조짐이 있어 또 식을 못올리게 됐단다.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예식장의 통보가 와서 울며겨자먹기로 형편껏 하기로 했단다. 어찌보면 신랑신부들이 젤 불쌍한 피해자들이다. 평생을 두고 잊지못할 행복하고 뜻깊은 날에  많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하는데  코로나로 의도치않게  된서리를 맞았으니까.  코로나 때문에 자꾸 결혼식이 미뤄지자 미영이는 속상하다고 자주 전화를 해왔었다.  솔직히 남들은 아들딸 다 시집장가 보내도 그렇게 내숭을 떨지 않더니만 친구는 좀 유별난 것 같았다. 특히 결혼식장에 혼주로 앉는 게 무슨 벼슬자리를 얻는 것처럼 유난히도 생색을 냈다.   “그건 모르는 소리, 내 처지에서 혼주자리에 앉는게 얼마나 영광인데 얘? 그건, 내가 철석씨와 살면서 내가 할 도리를 다했다는 말이 아니야? 더욱이 이붓에미로 자식한테 당당히 인정을 받고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리고 친구들이랑 세상 사람들한테 내가 인정받고 평가 받는 자리라고 생각된다. 내가 너무 소심하고 야단스러운가? 호호.”  아무튼, 미영이는 말을 해도 똑 부러지게 해서 마음에 들었다.  특히, 남편들 끼리 꽤 친하게 지내다 보니 코로나 전에는 부부동반으로 자주 만나 술 파티도 열고 같이 여행도 다니곤 했다. 친구네 집에 숟가락 몇 개가 있고 사발 몇 개가 있는 것 까지 서로가 환히 알고 있을 정도다. 제남편 흉을 보다가도 남편들이 어리둥절해서 다가오면 아닌 보살 손벽을 치며 능청을 떠는 사이가 됐었다. 다 같이 딸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미영이마음이자 자기 마음 같았다.      혼주가 된 친구가 빨리 보고싶다. 코로나전까지만 해도 친구모임도 자주 있고 대림이나 구로의 예식장 같은데서도 자주 만났었는데, 세월이 하도 수상해 이젠 얼굴 본지도 한참이 됐다.  오늘 가면 예쁜 한복입고  메이크업까지 받아서 이쁘게 단장했을 미영이를 생각하며 명선이도 갖고있는 옷들중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옷을 골라입고 길을 나섰다.  두 사람이 서둘러 신도림 역부근에 위치한 예식장에 도착해보니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각자 여러 가지 색상의 마스크를 낀채 큰 예식장홀에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  같았다. 더는 방구석을 못참고 이 기회에 코바람이나 씌우려는 심산들인 것 같았다. 사상 유례없는 마스크 행색들이지만 이 일년이 넘는 시간동안 많이들 습관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마스크안끼면 허전할 지경이다. 중국에 있을 때 매일 만나고 부딪치고 하면서 정겹게 지냈던 고향마을 반가운 분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도 담소를 나누었다. 여기저기서 놀란 소리가 터졌다.  “어마야, 누군가 했네.”   “마스크끼니 못알아봤소!”  명선이는 미영이를 찾아 사람들 틈 사이로 분주히 눈길을 옮겼다.  아마 이런날은 무척 바쁘겠지 싶으면서도 손잡고 직접 축하라도 해주고 싶어서 신부대기실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신부대기실에는 하아얀 드레스를 곱게 받쳐입고 부케를 든 신부가 검은정장을 입은 예식장 직원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하객들과 한창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신부님만 마스크 벗고 다른분들은 벗으면 안돼요. 신부님도 사진 다 찍었으면 마스크 쓸게요” “손 님~!  마스크 끼셔야 해요, 이러다 보건소 직원분들 오시면 큰일나요!”  한 친척이 마스크벗고 사진 찍으려다가 직원한테 야단을 맞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평생을 두고두고 간직할 소중한 결혼식 사진들이 마스크로 도배됐다. 휴~, 먼 훗날 그땐 그랬었단다 하면서 옛말하는 날이 오겠지? 신부대기실에서 미영이를 못찾은 명선이는 다시 홀로 나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신랑신부 부조석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자기눈을 의심하듯 다시 자세히 봤다.  분명 양복을 입고 꽃을 단 남편 친구 철석이 옆에 분홍색 한복 저고리를 곱게 입고 서있는 사람은 철석의 아내 미영이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 세상에나,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명선이는 마침 담배 피우러 1층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신랑을 발견하자 그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가서 목소리 죽여 물었다.      “자기야, 철석이옆에 저 여자 누구야?”  “아, 저 여자~ 철석이 본처지 누구겠어, 당신은 첨 보겠네, 애가 어려서 이혼 했으니”   명선이는 갑자기 머리를 한매 맞은 듯 띵해 났다. 그럼 미영이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서 미영의 번호를 찾아 눌러보니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명선이는 이 시각, 그 어딘가에서 외로이 있을 미영이의 마음이 남의일 같지가 않았다.  아무리 미영이가 철석이와 재혼을 한 사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  뭐, 다 그렇구 그런 사연이 있어서 자기 혼인을 끝까지 지키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새로 만난 인연들은 서로 늦게 만난게 한스러울만큼 금슬이 좋지 않았던가!? 기호와 재혼을 해서 알콩달콩 살고 있는 자신도 부러워 늘 항상 롤모델 삼고싶을  만큼 다정한 잉꼬부부였다.   서로 각자 딸을 데리고 재혼한 기호네 부부와 달리  철석이네는 철석이 딸 하나 뿐이였는데 불임이였던 미영이는  철석이가 데려온 딸애를 지극정성을 다해 키웠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다 보니 온갖 정성을 다해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키웠었다. 딸도 엄마 엄마 하면서 팔짱 꼭 끼고  쇼핑도 다니고 영화보러도 다니는 여느 친모녀사이 부럽지 않게 보였었다.  명선이는 누구한테 머리 하나 얻어맞은 듯 너무나 큰 충격을 먹었다. 한편 미영이한테 알 수 없는 동지의식이 생겨났다. 이건 너무 불공평했다. 이럴 수가 없지 않는가!      명선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결혼식장에 입장을 했다. 옆테이블에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철석이 처는 안보이네.” “오, 집에 있대, 딸애가 글쎄 지 엄마 혼주 앉힌다고 십여 년만에 연락했대, 피줄이 무섭지머” “암만 잘해주면 뭐해 잘 키워줘 봤자, 그래도 낳아준 엄마 찾는데…이 결혼식도 철석이네가 다 해주는 거라고 하던데, 쯧쯧.” ……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길에 명선이는 남편한테 조용히 물었다.  “자기는 철석이네 결혼식 보니 어때?”  “뭐가?”  코로나 때문에 예전의 동포들 관행이였던 결혼식의  기본 3차-부페,노래방,중국식당 코스는 싹 취소되고 뷔페서도 방역수칙을 지켜야 해서 멀리씩 떨어져 앉는 바람에 혼자서 한잔 마신 것 가지고는 영 성에 차지 않아 서운하던 남편 기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서 아내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나 보다. 어쩌다 서울까지 와서 1차로 끝나는게 못내 아쉬워서 “옛날같으면…” 하고 술에 간이 동동 뜰때까지 먹고 마시던 옛날 생각을 하고있을 것이다. “뭐긴 뭐겠어요, 철석이 본처가 혼주자리에 척 앉아있구 미영이는 집에서 혼자있는거 말이지” “아니 당연한거 아니야? 애 친엄마인데…그리구 미영이도 그렇지, 뭐 안오구 그럴꺼까지 있어, 다들 사정모르는거도  아니구  굳이 그렇게 까지 할 것 있나?” 명선이는 한지붕아래 살면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서늘한 찬 바람 한오리가 명치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럼 남편의 딸 지혜도 결혼식 때 제 친엄마를 불러 혼주자리에 앉힐까? 그럼 난 결혼식에 참가해야 하나? 하지말아야 하나? 내딸 은수가 결혼할 때는? 지긋지긋해서 그림자도 보기 싫은 전 남편이랑 나란히 앉아 사위의 절을 받아야 하나? 그때 이사람은 어디에 있구?…. 명선이는 아직은 딸애들이 학생들이라 생각해 본적 조차 없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집에 돌아와서 저녘에 TV를 보는데 MBN의  ‘속풀이쇼 동치미’에서 재혼가정의 자녀 결혼식에 혼주로 누가 앉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연예인들이 열띤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2021.  5.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침부터 명선이는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고는 머리를 감으랴 화장을 하랴 분주히 서둘렀다. 남편의 고향친구 철석이네 딸 결혼식에 가야 했다.  참, 이게 얼마만의 서울 나들이냐?  괜히 신바람이 나서 코노래가 절로 났다. 남편 기호도 벌써 옷을 갈아입고 괜히 집안팎을 들락날락 서성대며 부산스럽다.  망할 놈의 코로나 이후로 일년반동안 경기도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 서울 근처에도 안가다보니 친구들 얼굴도 잊어먹게 생겼다. 마지막 친구모임인 19년 년말송년회때 모여서는 ‘5학년’이 된 기념으로 이제 남은 하루하루를 즐겁고 신나게 살자는 인생목표를 세우고 의기투합하여 새해에는 1박2일로 어디 펜션이라도 얻어 좋은 추억 만들어 보자고 새해 모임계획까지 거창하게 세웠는데 그것도 무산됐다. 모임은 커녕 회사ㅡ집ㅡ회사, 이렇게 두 점 사이만 토끼처럼 왕복을 한 지도 어언간 일년 반이 되여 갔다.  처음엔 회사서도 단속하지만 겁도 나고 해서 진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TV에서 시키는대로 회식도 일체 안하고 방콕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코로나에 내성이 생겼나 보다. 마스크만 끼고 조심하면 괜찮겠지 하고 마음의 탕개가 풀어졌다. 오래동안 외부활동을 못한 보상심리도 생겼고 고향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찐하게 술 한잔 하고 싶어졌다.  “여보, 아직 멀었소? 늦겠소 참.” “다 됐어요, 보채기는, 자기도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 볼 생각하니 조바심 났구만요, 호호…다됐어요, 아직 안늦은데 뭘 그리….”  “가서 술한잔 하려면 차를 두고 버스 타고 지하철 갈아타고 가야하는데  버스기다리는데 시간 많이 걸릴수도 있구 …” “다 됐어요, 가요, 가.” 명선이는 헤라쿠션의 퍼프로 얼굴에 잡티부분을 한번 더 눌러주고 화장을 마무리했다. 매일 마스크를 끼고 다니니 화장해도 눈위로는 보이지도 않고 마스크에 화장품 묻는 것도 귀찮고 해서 옛날에 매일매일 화장 곱게하고 출근하던 습관이 무색하게 요즘은 스킨로션만 바를때가  많았다. 갑자기 풀 메이크업을 하려니 화장이 뜨면서 잘  먹지도 않는다.  화장을 하는 내내 친구 미영이 얼굴이 떠올랐다. 작년에 결혼날짜 받았다고 전화를 주며 뭐부터 준비를 해야지? 정말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하고 기쁨반 걱정반 너스레를 떨던 친구다.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코로나 판국에 무슨 결혼식을 올린다고 그러냐고 하겠지만, 코로나 유행전부터 결혼말이 오갔는데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다. 작년 5월로 예식장을 잡았다가 10월로 미루고 다시 새해 1월달로 변경했는데 3차 대유행조짐이 있어 또 식을 못올리게 됐단다.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예식장의 통보가 와서 울며겨자먹기로 형편껏 하기로 했단다. 어찌보면 신랑신부들이 젤 불쌍한 피해자들이다. 평생을 두고 잊지못할 행복하고 뜻깊은 날에  많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하는데  코로나로 의도치않게  된서리를 맞았으니까.  코로나 때문에 자꾸 결혼식이 미뤄지자 미영이는 속상하다고 자주 전화를 해왔었다.  솔직히 남들은 아들딸 다 시집장가 보내도 그렇게 내숭을 떨지 않더니만 친구는 좀 유별난 것 같았다. 특히 결혼식장에 혼주로 앉는 게 무슨 벼슬자리를 얻는 것처럼 유난히도 생색을 냈다.   “그건 모르는 소리, 내 처지에서 혼주자리에 앉는게 얼마나 영광인데 얘? 그건, 내가 철석씨와 살면서 내가 할 도리를 다했다는 말이 아니야? 더욱이 이붓에미로 자식한테 당당히 인정을 받고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리고 친구들이랑 세상 사람들한테 내가 인정받고 평가 받는 자리라고 생각된다. 내가 너무 소심하고 야단스러운가? 호호.”  아무튼, 미영이는 말을 해도 똑 부러지게 해서 마음에 들었다.  특히, 남편들 끼리 꽤 친하게 지내다 보니 코로나 전에는 부부동반으로 자주 만나 술 파티도 열고 같이 여행도 다니곤 했다. 친구네 집에 숟가락 몇 개가 있고 사발 몇 개가 있는 것 까지 서로가 환히 알고 있을 정도다. 제남편 흉을 보다가도 남편들이 어리둥절해서 다가오면 아닌 보살 손벽을 치며 능청을 떠는 사이가 됐었다. 다 같이 딸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미영이마음이자 자기 마음 같았다.      혼주가 된 친구가 빨리 보고싶다. 코로나전까지만 해도 친구모임도 자주 있고 대림이나 구로의 예식장 같은데서도 자주 만났었는데, 세월이 하도 수상해 이젠 얼굴 본지도 한참이 됐다.  오늘 가면 예쁜 한복입고  메이크업까지 받아서 이쁘게 단장했을 미영이를 생각하며 명선이도 갖고있는 옷들중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옷을 골라입고 길을 나섰다.  두 사람이 서둘러 신도림 역부근에 위치한 예식장에 도착해보니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각자 여러 가지 색상의 마스크를 낀채 큰 예식장홀에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  같았다. 더는 방구석을 못참고 이 기회에 코바람이나 씌우려는 심산들인 것 같았다. 사상 유례없는 마스크 행색들이지만 이 일년이 넘는 시간동안 많이들 습관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마스크안끼면 허전할 지경이다. 중국에 있을 때 매일 만나고 부딪치고 하면서 정겹게 지냈던 고향마을 반가운 분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도 담소를 나누었다. 여기저기서 놀란 소리가 터졌다.  “어마야, 누군가 했네.”   “마스크끼니 못알아봤소!”  명선이는 미영이를 찾아 사람들 틈 사이로 분주히 눈길을 옮겼다.  아마 이런날은 무척 바쁘겠지 싶으면서도 손잡고 직접 축하라도 해주고 싶어서 신부대기실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신부대기실에는 하아얀 드레스를 곱게 받쳐입고 부케를 든 신부가 검은정장을 입은 예식장 직원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하객들과 한창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신부님만 마스크 벗고 다른분들은 벗으면 안돼요. 신부님도 사진 다 찍었으면 마스크 쓸게요” “손 님~!  마스크 끼셔야 해요, 이러다 보건소 직원분들 오시면 큰일나요!”  한 친척이 마스크벗고 사진 찍으려다가 직원한테 야단을 맞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평생을 두고두고 간직할 소중한 결혼식 사진들이 마스크로 도배됐다. 휴~, 먼 훗날 그땐 그랬었단다 하면서 옛말하는 날이 오겠지? 신부대기실에서 미영이를 못찾은 명선이는 다시 홀로 나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신랑신부 부조석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자기눈을 의심하듯 다시 자세히 봤다.  분명 양복을 입고 꽃을 단 남편 친구 철석이 옆에 분홍색 한복 저고리를 곱게 입고 서있는 사람은 철석의 아내 미영이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 세상에나,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명선이는 마침 담배 피우러 1층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신랑을 발견하자 그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가서 목소리 죽여 물었다.      “자기야, 철석이옆에 저 여자 누구야?”  “아, 저 여자~ 철석이 본처지 누구겠어, 당신은 첨 보겠네, 애가 어려서 이혼 했으니”   명선이는 갑자기 머리를 한매 맞은 듯 띵해 났다. 그럼 미영이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서 미영의 번호를 찾아 눌러보니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명선이는 이 시각, 그 어딘가에서 외로이 있을 미영이의 마음이 남의일 같지가 않았다.  아무리 미영이가 철석이와 재혼을 한 사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  뭐, 다 그렇구 그런 사연이 있어서 자기 혼인을 끝까지 지키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새로 만난 인연들은 서로 늦게 만난게 한스러울만큼 금슬이 좋지 않았던가!? 기호와 재혼을 해서 알콩달콩 살고 있는 자신도 부러워 늘 항상 롤모델 삼고싶을  만큼 다정한 잉꼬부부였다.   서로 각자 딸을 데리고 재혼한 기호네 부부와 달리  철석이네는 철석이 딸 하나 뿐이였는데 불임이였던 미영이는  철석이가 데려온 딸애를 지극정성을 다해 키웠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다 보니 온갖 정성을 다해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키웠었다. 딸도 엄마 엄마 하면서 팔짱 꼭 끼고  쇼핑도 다니고 영화보러도 다니는 여느 친모녀사이 부럽지 않게 보였었다.  명선이는 누구한테 머리 하나 얻어맞은 듯 너무나 큰 충격을 먹었다. 한편 미영이한테 알 수 없는 동지의식이 생겨났다. 이건 너무 불공평했다. 이럴 수가 없지 않는가!      명선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결혼식장에 입장을 했다. 옆테이블에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철석이 처는 안보이네.” “오, 집에 있대, 딸애가 글쎄 지 엄마 혼주 앉힌다고 십여 년만에 연락했대, 피줄이 무섭지머” “암만 잘해주면 뭐해 잘 키워줘 봤자, 그래도 낳아준 엄마 찾는데…이 결혼식도 철석이네가 다 해주는 거라고 하던데, 쯧쯧.” ……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길에 명선이는 남편한테 조용히 물었다.  “자기는 철석이네 결혼식 보니 어때?”  “뭐가?”  코로나 때문에 예전의 동포들 관행이였던 결혼식의  기본 3차-부페,노래방,중국식당 코스는 싹 취소되고 뷔페서도 방역수칙을 지켜야 해서 멀리씩 떨어져 앉는 바람에 혼자서 한잔 마신 것 가지고는 영 성에 차지 않아 서운하던 남편 기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서 아내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나 보다. 어쩌다 서울까지 와서 1차로 끝나는게 못내 아쉬워서 “옛날같으면…” 하고 술에 간이 동동 뜰때까지 먹고 마시던 옛날 생각을 하고있을 것이다. “뭐긴 뭐겠어요, 철석이 본처가 혼주자리에 척 앉아있구 미영이는 집에서 혼자있는거 말이지” “아니 당연한거 아니야? 애 친엄마인데…그리구 미영이도 그렇지, 뭐 안오구 그럴꺼까지 있어, 다들 사정모르는거도  아니구  굳이 그렇게 까지 할 것 있나?” 명선이는 한지붕아래 살면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서늘한 찬 바람 한오리가 명치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럼 남편의 딸 지혜도 결혼식 때 제 친엄마를 불러 혼주자리에 앉힐까? 그럼 난 결혼식에 참가해야 하나? 하지말아야 하나? 내딸 은수가 결혼할 때는? 지긋지긋해서 그림자도 보기 싫은 전 남편이랑 나란히 앉아 사위의 절을 받아야 하나? 그때 이사람은 어디에 있구?…. 명선이는 아직은 딸애들이 학생들이라 생각해 본적 조차 없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집에 돌아와서 저녘에 TV를 보는데 MBN의  ‘속풀이쇼 동치미’에서 재혼가정의 자녀 결혼식에 혼주로 누가 앉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연예인들이 열띤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2021.  5.   장문영 약력 : 흑룡강성 벌리현 출생, 2006년부터  한국  거주. 재한동포문인협회회원.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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