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챗에서 상렬이의 부고 소식을 보는 순간 난 깜짝 놀랐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상렬이가 떠나가다니, 그 용암 같이 뜨거운 정열의 사나이 상렬이가 떠나가다니, 바위 같이 든든해 보이던 상렬이가 떠나가다니, 중학교, 대학 교를 같이 다닌 동창,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락이 별로 없어도, 언제든지 옆에 있는 것 같은 나의 동창 상렬이, 상렬이가 어떻게 떠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몸이 안 좋다는 것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아주 막연하게 상렬이 같이 정열적이고 재능이 넘치고 유머가 넘치는 착한 사람에게 병마는 꼭 비켜 가리라 믿고 싶었다. 꼭 기적이 일어나리라 믿고 싶었다. 어쩐지 상렬이는 꼭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했더니 “아, 소식이 벌써 거기까지 갔나? 괜찮아, 인생이 뭐 그런 거지 뭐, 결국은 다 가는 게 아이겠소?”하며 경상도 어투에 함경도 사투리가 섞인 상렬이 특유의 말투로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하였다. 심양의과대학이 그런 면에서는 수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수술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난 그런 거 아이하오. 인생 얼마 산다고 몸에 칼 대고 하는 짓을 하겠소? 난 그런 거 딱 질색이요. 사람이 살다가 때가 되면 가는 거지. 난 지금 중의로 보수적인 치료를 하오. …” 그때만 해도 너무나 당당하고 낙관적이었다. 병 있는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연변대학시절의 요녕출신 동창들, 앞줄 왼쪽 첫번째가 우상렬, 뒷줄 오른쪽 두번째가 필자 서정순.
상렬이와는 참 인연이 깊다. 소가툰에서 한 중학교, 한반을 다녔고 대학교를 같이 다녔으며 무순시조선족중학교에서 함께 교편을 잡았었다. 갓 무순시조선족중학교에 배치 받았을 때 상렬이, 황영(대학동창), 나 세사람은 그야말로 세상물을 먹지 않은 티 없이 순진한 ‘얼간이’들이었다. 근엄하신 선생님들이 조용히 앉아 비과備科를 하는 근무시간에 눈이 왔다고 흥분하여 셋이 운동장에 나가 하얀 눈을 마음껏 밟으며 소학생들처럼 눈싸움을 하면서 히히 호호 하였다. 2년이 좀 지나 상렬이는 연구생 시험을 쳐서 무순시조선족중학교를 떠났다.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어느 날 떠난다는 말도 없이 감쪽같이 떠나갔다. ‘상렬이 왜 그래? 왜 말도 없이 떠났어?” 그때도 나와 황영은 상렬이를 아주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말도 없이 떠나간 상렬이를.
무순조선족중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찍은 봄놀이 기념사진, 오른쪽 두번째가 우상렬. 세번째가 서정순.
2018년 12월 말, 료녕조선족문학회에서는 ≪료녕조선족문학통사≫ 발간식을 하였다. 그때 상렬이도 초대받아 왔었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만찬이 벌어졌다. 상렬이의 몸 상태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상렬이한테 와서 술을 권하였다. 상렬이는 권하는 대로 술을 받아 마셨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속이 조마조마하였다. “야, 너 그렇게 마시면 돼? 넌 술 대신 이런 물을 마셔야 해.”하며 내가 광천수를 주자 그는 “그런가?’하며 슬그머니 물을 마시었다. 몰라서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성의를 거절하지 못해서이다. 언제나 착해 빠진 상렬이, 다른 사람의 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상렬이, 선량함은 그의 인격의 기반이었다.
그날 상렬이는 저녁만찬 도중에 여덟 시 차로 떠나야 한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중학동창인 최정실이와 나는 몹시 아쉬워하며 극히 만류하였다. 기차표를 물리고 다음날 가라고. 상렬이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이야기들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상렬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재미가 나기 때문이다. 상렬이는 다음에 보자고 하며 기어이 떠났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나는 중의로 치료하는 것이 효과가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상렬이의 몸상태를 알면서도 나는 일찍 떠나가는 그가 무척 섭섭하였다. 최정실이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렇게 총망하게 떠나가지? 휘익휘익 바람을 일구며 떠나가는 그의 뒤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료녕조선족문학통사≫ 출간기념식 에서 고향인 소가툰 출신 문인들과 함께. 왼쪽으로부터 네번째가 우상렬 교수, 오른쪽으로부 세번째가 필자 서정순.
요즘 위챗에 올라오는 상렬이의 ‘콤플랙스’ 계렬 수필들을 나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듣고 있다. 전에 잡지에서 읽었을 때는 그냥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읽었고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하는 구나 하며 읽었다. 그의 수필은 상렬이라는 사람처럼 가식이 조금도 없었다. 오직 진실, 진정, 진심이 수필에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그래서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상렬이가 떠난 후 다시 들으니 한 맺힌 한 남자애의, 한 사나이의 절절한 절규가 느껴졌다. 난, 우린 동창으로서의 상렬이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콤플렉스에 맺힌 절절한 그 한들을 난, 우린, 선생님들은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를 들으며 나는 중학시절의 상렬이를 떠올렸다. 군복을 입기 좋아했고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으며 나팔바지를 입었고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난 남자애, 상렬이가 휘익휘익 바람을 일구며 걸어올 때면 길고 넓은 나팔바지가 길우의 먼지를 다 쓸어버릴 것 같았다. 몸을 팔자로 꼬며 땅만 보고 걷는 상렬이, 그는 학교에서 유명 짜한 학생이었다. 머리가 좋아 공부는 잘하는데 그의 주위에는 희한하게도 공부 못하는 친구들만 모여 있었다. 중학교 때 그와 앙숙인 친구의 주위에는 공부 잘하는 애들만 모여 있는데. 둘은 한반에서 눈만 마주치면 한판 붙곤 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상렬이는 싸움을 잘한 것으로 기억한다. 둘만 싸우면 상렬이가 우위였다. 상렬이는 굉장히 몸이 날래었다. 그런데 어쩌랴. 그 중점반에서 상렬이의 짝꿍은 한 명도 없었으니.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상렬이 앙숙의 짝꿍들이 상렬이를 빙 둘러쌌고 담임선생님도 번마다 상렬이를 꾸지람하였다. 여학생들도 놀란 눈빛으로 은근히 상렬이 앙숙의 편을 들었다. 공부성적이 우상이었던 그 시절 공부 못하는 애들을 거느린 상렬이에게, 못나 보이는 상렬이에게 호감을 느낀 여학생들이 있었던가? 그리고 상렬이와 앙숙이었던 남자애는 전교에서도 1, 2등 하는 애가 아니었던가.
중학시절 여드름투성이의 남자애, 부끄러움이 많아 땅만 보고 걸었던 남자애, 군복에 군모에, 그리고 나팔바지에 한껏 멋을 부린다고 했지만 촌티를 확확 풍겼던 남자애는 콤플렉스 속에서 콤플렉스를 이겨내고 진정 멋스럽고 당당한 사내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뚝 섰다.
상렬이가 떠나간 후 조선족문학 위챗췬을 가득 덮은 추모의 물결을 보며 나는 다시 상렬이를 돌아보았다. 상렬이는 자신의 넉넉한 인품과 박식한 학식으로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과 꿈을 주었구나. 한 사람이 한 생을 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웃음을 주고 희망을 주고 꿈을 주고 용기를 주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헛되이 살지 않았다. 상렬이는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분명 비범한 사람이었다.
내 먼 기억속에 남아있는 중학시절의 상렬이의 모습 때문에 어쩌면 난 상렬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모르고 지난 것 같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조선족문학을 위해 한 몸을 불살랐던 상렬이, 위챗췬에 넘쳐나는 추모의 물결들과 추모의 시와 글들, 그것은 상렬이의 인품에 대한 최고의 평가였고 상렬이의 학식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정열적이고 정직하고 유머러스하고 박식하고 선량한 상렬이, 그 두툼한 뱃속에 가득 채운 이야기들과 그 비상한 머리속에 가득 쌓아 놓은 지식들과 그 따뜻한 인정속에 한껏 넘쳐흐르는 감성들을 더 듣고 싶고 더 느끼고 싶은데 이제는 다시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구나. 창천은 어이하여 이렇게 재능 있고 좋은 사람을 질투하는가. 뭐가 그리 급해 58세라는 한창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게 하는가. 조선족문단이 이렇게 애타게 너를 부르는데, 배움에 목마른 청춘들이 애타게 너를 찾고 있는데 상렬아, 넌 언제나 그렇게 괘씸하게, 섭섭하게, 원통하게 우리 곁을 떠나가느냐. 정말 너무 너무 얄밉다. 정말 너무 너무 원통하다. 정말 너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진정한 사나이-우상렬, 나의 동창이며 친구인 우상렬,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거절하는 법도 좀 배우게. 특히 술을 거절하는 예술을.
상렬아, 잘 가. 명복을 빈다.
2021. 7. 15 새벽 한시
서정순(徐貞順) 약력: 중국 요녕성 심양 출생, 1985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작가협회 회원, 요녕성조선족문학회 이사, 수필분과 주임. 수필집 《흰눈이 내리면 그리움도 내린다》(2010년 출간), 한중시집 《시의 소통, 경계를 넘어선 만남》(2009년 번역), 《문학명작열독지도》(2012년, 공저)
동북아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