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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수기]곰과 인연을 맺은 네 아이 엄마 댓글:  조회:307  추천:1  2023-01-08
곰과 인연을 맺은 네 아이 엄마 최미화 '녀자'와 '곰', 두 단어는 원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듯한데 네 아이를 둔 가냘픈 엄마가 육중한 곰 45마리를 거느린다고 하면 더욱더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그저 나온 말이 아니였음을 실감하게 하는 이야기를 전하고저 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곰엄마'라고 불리는 한 녀성에게 기 막힌 사연이 있다고 들은 나는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을 따라 길림송원목축업유한회사 탐방길에 올랐다. 룡정시 교외에 자리 잡은 이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환경고 어울리지 않게 왜소한 몸매에 이쁘장하게 생긴 최경희 사장이 환한 웃음을 머금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사락사락 나무잎이 흔들리는 소리에도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심장이 당금 튀여나올 것 같은 어둑시그레한 곰사양장, 건강한 청장년들도 무서워 주춤할만한 이곳에서 연약한 녀성이 25년간 곰사양이라는 특수업종에 종사하면서 회사를 운영해왔다는 게 눈으로 보고도 잘 믿기지 않았다.   최경희 사장은 25년전 결혼초기 남편과 함께 곰한마리를 사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45마리를 사양하는 규모를 갖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지난 세월을 돌이키며 험난하고 다사다난했던 곰과의 인연을, 오래동안 꽁꽁 마음구속에 숨기고 살았던 가슴 아픈 사연을 우리들에게 털어놓았다.   25년간 부부가 청춘을 깡그리 바쳐 곰 사양을 했더니 회사는 바람 대로 승승장구로 발전하여 꽤 짭짤한 수입을 창출하였다. 금슬 좋은 최경희 사장네 부부는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4남매를 바라보며서 행복에 젖어 살았다.   하지만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세상은 그들에게 행운과 행복만을 주지 않았다. 하늘같은 남편이 뇨독증 진단을 받고 9년 동안 복막투석, 혈액투석을 하면서 그녀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시름시름 앓는 남편을 보살피랴, 네명의 자녀를 돌보랴, 곰들을 챙기랴, 그녀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판이였다.   몇년전부터 웅담분 판매가 위기를 맞아 수입이 거의 없었음에도 그녀는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켜가면서 모든 난제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나가려고 더욱 악착같이 살아왔다.     남편이 병환에 있어도 마음 한구석은 든든했는데 작년에 하늘나라로 가면서 그녀의 생활에는 먹장구름이 끼게 되였다. 빚 50만원 그리고 가정과 회사의 모든 중임이 갸냘픈 그녀의 어깨를 산처럼 내리눌러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빚군들이 시도때도 없이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한때는 전화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떨렸다고 한다.   최경희 사장은 당시 자신의 삶은 두려움과 절망뿐이였다고 한다. 간혹 너무 힘들고 지치면 세상 모든 게 다 귀찮아 곰이 맞는 주사약을 자기 몸에 놓고 조용히 눈을 감을가고 생각을 했다가도 이대로 약하게 물앉을 수 없다고 마음을 추스르며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그녀는 이미 아빠가 없는 불쌍한 네 아이들한테 엄마마저 잃는 고통을 안겨줄 수가 없어 나쁜 생각을 하다가도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네 자식에 대한 모성애가 아니였더라면 그 험난했던 나날들을 어떻게 지탱해왔을가 싶다면서 아이들이야말로 자기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고백했다.   녀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최경희 사장은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피눈물 흘렸던 회사에서 다시 오또기처럼 우뚝 일어섰다.   '정싱 차리자! 분발하자! 삶마저 포기하려던 내가 무엇인들 무서우랴!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저 세상 남편한테 미안하고 자식들한테 죄를 짓는 짓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그녀는 회사의 밝은 미래와 가정의 행복한 앞날을 기대하면서 자신에게 다시금 신심과 용기라는 주문을 걸었다.   최경희 사장은 과학적으로 곰을 사양하는 데 모를 박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면서 우량 웅담분을 채취하고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정력을 몰부었다.   그녀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질 좋은 웅담분에 착한 가격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면역력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들이 차츰 늘어 회사가 다시 생기를 찾고 있다.   최경희 사장은 협회 전체 회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큰 힘을 얻는다면서 더욱 분발하여 애들도 잘 키우고 회사도 잘 운영해 이전과 같은 전성기를 다시 되찾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최경희 사장이 가정과 회사라는 두마리 토끼를 량손에 꼭 잡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22년 10호
212    어느 봄날의 풍경- 박영진 (외1수) 댓글:  조회:192  추천:0  2022-05-06
겨울에 지친 령혼이 허기져 비틀거릴 때 강가의 얼음장 돌아눕는 소리에 깊은 잠에 빠졌던 녀석들이 꿈결에 뒤척인다.   아물아물 아지랑이 토실토실 버들강아지 입 다시고 몸 비틀며 옴실대는 귀염둥이들   목련은 부푼 가슴 붙안고 불안하게 서성이는데 벚꽃은 하얗게 웃으며 수줍게 윙크한다.   누굴 기다리느라 민들레는 저토록 바장이고 있을가 산기슭에 진달래는 왜 또 저렇게 홍조 띄우며 수줍어하는지   어허, 뭔가를 목마르게 기다리며 그리는 귀여운 친구들 어디선가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날 보고 넌지시 웃고 있다.   봄을 그리다   겨울에 지친 령혼이 봄을 그리다 그리운 님 그리워 봄을 그리네 그림 속에 봄을 그리네 아물아물 아지랑이 토실토실 버들강아지 목련은 님 기다리고 벚꽃은 벗을 부르네 민들레는 길손을 유혹하고 진달래는 웃으며 날 반기네. 보슬보슬 봄비 속에 봄 오는 소리 꿈 안고 찾아오네 봄 아가씨 날 찾아오네 흑룡강신문 2022-03-04 
211    [수기] 우리의 삶에 리별이 다가올 때 댓글:  조회:239  추천:0  2022-03-29
우리의 삶에 리별이 다가올 때 박미자 (연길시제2고급중학교) 희붐히 밝아오는 새벽녘의 선잠을 뚫고 선뜻 깨여진 가슴 한 구석으로 예고도 없이 진한 아픔이 밀려온다.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짜릿한 아픔이 펌프질을 해대는 심장박동과 함께 혈관을 따라 발끝까지 전달된다. 사랑하는 딸애의 개학날, 행복이 솟아나는 상봉 속에 애잡짤한 리별의 순간은 눈 깜빡 할 사이에 다가온다.  필자 박미자 “엄마, 왜 그렇게 짜증이 났어?”딸애의 옷은 애 아빠가 사는 터라 솜옷 쪼르래기가 망가진 것도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한 자책, 돈을 절약한다고 일반 티켓을 구매한 딸애에 대한 아쉬움…북받치는 감정이 애한테는 신경질 적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미안하다. 완벽하게 잘 챙겨야 하는데…솜옷도, 두고 온 목도리도…비행기 좌석도 다 마음에 걸려서 그래!”12시간을 달려야 하는 긴 로정이 마음에 걸려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딸애는고생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꼭 끼였던 팔짱을 슬며시 풀고 덤덤한 뒤모습을 보이며 공항 보안 검색대로 향한다. 언뜻언뜻 사람들 틈에 끼여 겉옷을 벗고 안전검사를 받으며 검사구역을 지나는 모습이 눈에 띄이더니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비여진 자리, 목을 빼들고 찾아도 뒤모습을 더는 볼 수 없음을 실감하는 순간, 천천히 발길을 돌려 공항을 빠져나왔다. 왈칵,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터져나오는 아픔 속에 가슴에 남은 응어리 하나가 맴돌다가 꺽 하고 막혀버린다.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해주면 근심걱정을 뛰여넘어 안전하게 잘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가 무심히 흘러나올 수 있을가? 생명의 마지막 순간마저 깡그리 바쳐 추락하는 소슬한 락엽의 뿌리 사랑같은 모성애, 육신마저 자식에게 내주는 지독한 거미사랑, 엄마에게는 모질게 굴다가도 자식한테는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기만 한 엄마라는 그 이름을 무엇이라 정의를 내릴 수 있을가… 딸애의 대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된 리별과 상봉, 어쩌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리별과 상봉의 련속이다. 리별이 남기고 간 자리, 래일이 기약되는 리별과 기약되지 않는 리별, 그 순간을 위해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일가? “리별이 그렇게 싫으면서 교원직은 어떻게 했대?” “학생은 내 인생의 자락에 그냥 있는 거야…” 부녀간의 대화가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3년을 주기로 리별을 반복해야 하는 정해진 인연 속에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반복되는 리별과 상봉의 의미는 구경 어디에 있을가? 대학 입시와 함께 선생님과 제자의 인연은 한단락 막을 내리게 된다. 리별의 순간은 학생들의 찬란한 래일을 위한 알찬 꿈과 도약, 부모님들과 학교 지도부, 담임선생님들과 과임선생님들의 부푼 희망과 기대, 울고 웃던 3년간의 희로애락으로 여울져있다. “3년간 고마웠다. 대학 입시 잘 보자!”마지막 수업, 내 사랑을 송두리채 앗아갔던 첫 제자들, 담임선생님 생애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마음 먹었던 마지막 제자들, 차곡차곡 쌓았던 억눌렀던 감정 조각들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학생들도 훌쩍훌쩍 리별의 소용돌이에 휘몰아친다. “교사절을 축하합니다! 고마웠습니다!” 정성이 담긴 제자들의 교사절 이벤트, 졸업식 이벤트, 성장의 길에서 선생님의 옳바른 인도와 혈육의 정을 무색하게 하는 사랑과 훈육, 사랑하는 련인을 향한 랑만적인 이벤트도 울고 갈 이 세상에 두번 다시 없을 찬란한 깜짝쇼, 서로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의 표현이다. 성장과 비약을 해야 하는 삶의 한 단계,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과 기대, 학생으로서의 책임감과 도약, 울고 웃었던 시간들은 서로에 기대여가는 봄날의 따스한 정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해빛 한줌 / 바람 한 가닥 / 받고 또 받고 / 주고 또 주고 /살아 있는 것들은 저렇듯 / 누군가에게 기대여야 산다 /사람은 사람으로 이어지고 /길은 길에서 만나게 된다” 박수호의 〈살아 있는 것들〉이 기억을 스치운다. 졸업과 함께 다가온 리별의 순간, 함께 했던 시간 속에 믿음과 기대, 성장과 배려, 추억과 희망을 남기고 간다. 2009년 첫 졸업생을 계기로 방학은 학생들과의 만남의 장이다. 그 속에는 많은 추억이 소환되고 삶이 소환된다. 다채로운 대학교 생활, 다소 무거운 직장생활, 억척스러운 창업사, 오스트랄리아, 일본, 한국 등 이국 타향에서,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개척해나가는 삶의 이야기들, 놓칠 수 없는 학창시절의 추억들… “미안함다. 너무 늦게 찾아뵈여서… 조금은 성공한 모습으로 찾아뵙고 싶어서 이렇게 늦었슴다.”상해에서 당찬 꿈을 키우고 있는 야무졌던 그녀, 녀자가 반장을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당당하게 반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그녀의 출현은 상봉의 환락으로 들끓었던 만남을 눈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 학창시절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해주는 학생들, 스승 앞에서 항상 당당하고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은 학생들, 잘살아가고 있노라 전해주는 학생들, 너무나 자랑스런 제자들이다. “공부 성적도 낮았던 제가 뭐라고 퇴학 수속을 밟으러 갔을 때 대학시험을 보라고 그렇게 권고를 하셨습니까? 고마웠습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아마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을 겁니다. 내 인생에 참 고마운 분입니다.”, “제 인생에 담임선생님은 선생님 밖에 없슴다.” 인생의 자락에 그냥 있는 존재, 가담가담 들려오는 제자들의 소식, 래일의 상봉을 기약할 수 없는 가족 간의 정이 아닌 사생 간의 정은 인생의 자락에 청청한 가을달처럼 걸려있다. 리별과 상봉이 반복되는 삶, 그 속에는 꿈을 향한 분투의 려정이, 당당해야만 하는 인간의 자존감이, 고마웠다고 전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선물처럼 준비되여있었다. “인생에 생과 사의 리별이 다가왔을 때 자식의 짐이 되지 말아야지. 그리고 잘 살아왔노라 인사정도는 하고 가야지…” 50대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꿈 하나 생겼다. 허둥허둥 달려왔던 인생,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짧아진 변곡점에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길가에 피여나는 이름 모를 잡초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나, 가족과 학생들 속을 오가며 살아온 단조로운 인생, 우리의 삶에 리별이 다가왔을 때 남길 수 있는 것은 구경 무엇일가? “나는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는가” 무심히 읽었던 인생에 던진 철학자들의 물음 한마디, 무심하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평범함 속에서 찾아내야 하는 야광주같은 삶,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본연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일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 세대에서 끝을 내야지. 자식이 더는 부모님 때문에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사는 일이 없게 할 거다. 맏이라는 중임이 얼마나 큰지 너희들은 모른다. 그 희생도…” 친구들이 건네는 진솔한 이야기, 우리 세대의 많은 자식들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 그 속에는 부모님만의 희생이 아닌 부모를 위한 자식의 희생과 접어야 했던 꿈들이 꿈틀거린다. 마음 편한 리별을 위하여 서로가 놓아주면서 걸어가고 싶은 삶, 각자의 자리에서 인생에 대한 책임과 추구를 거듭하면서 잘살아내는 것, 나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겠다는 그 소망, 소박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이 길, 잘 걸어내야 한다. 수많은 리별과 상봉을 거듭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 사랑하고 리별하고 행복하고 아프고 이 모든 건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다. 리별은 힘들고 슬픈 것만이 아니다. 살아왔던 인생, 살아가야 할 인생에 대한 약속이다. 설레는 상봉과 화사한 리별을 위해 열정을 다해 오늘을 사는 것, 상봉과 리별 속에 길을 내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 그 길 우에 두고 가야 할 것들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닐가… “꽃이 핀다 / 계절이 열린다 / 꽃이 만개한다 / 계절이 익는다/ 꽃비가 내린다 / 찬란한 슬픔/ 꽃은 지지 않는다 / 꽃이 열어준 시작에 열매가 맺힌다 / 또 다른 시작이 열린다 / 마음에 지지않는 봄 하나가 피였다” 가슴에 남은 아름다운 드라마 대사 한조각, 똑 같은 리별 속에 담겨있는 또 다른 인생, 찬란한 슬픔 속에 노오란 봄이 피여오른다. 길림신문
210    (수기) 오미크론, 결국 내 차례인가? 댓글:  조회:212  추천:0  2022-03-28
오미크론,  결국  내 차례인가? 김선화(재한조선족)   사진 클릭하면 원문 볼 수 있습니다.(3월 28일자 계정)
209    재미나는 고비뜯기 댓글:  조회:240  추천:0  2022-03-26
재미나는 고비뜯기 □ 주덕진 살랑살랑 마술쟁이 부채 같은 봄바람이 한번 불자 굳잠 자던 겨울나무 기지개 켜며 깨여나고 두번 불자 적막하고 쓸쓸하던 강산에 신록이 피여나 봄기운이 완연하다. 물소리 졸졸졸, 우거진 버들방천에서는 꾀꼴새 새봄 노래에 성수 나고 양지바른 언덕 개활지엔 새뽀얗게 털을 뒤집어쓴 탐스러운 쇠고비가 누군가에게 어서 오라 손저어 부른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쇠고비 황금채집철이 닥쳐온 것이다. 춘경파종 다그쳐 끝내고 고비채집에 떨쳐나선 마적달촌 마을은 이른새벽부터 들끓기 시작한다. ‘란시에 앉은뱅이 없다.’고 그야말로 온 마을이 떨쳐나선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쇠고비값이 또 올라 1킬로그람당 24원, 웬간하면 한 사람이 하루에 40~50원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나와 안해도 뒤질세라 자전거를 타고 복새판에 끼여들었다. 산길에 들어서니 얼핏 보아도 200여대는 실히 될 듯싶은 자전거대오가 길을  메우며 흐르는 것이 장관이라 사람들 시선을 즐겁게 한다. 실로 이 몇년 사이 농민들의 생활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생산적극성 자극으로 농사는 농사 대로 짓고 개인 부업도 쏠쏠하니 말이다. 시대가 좋고 정책이  좋으니 천지개벽의 위력, 놀라운 변화가 이 산간마을에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시간 좋이 달려서야 작은 넘마우골 어구에 이른 우리 부부는 앞치마를 두르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신록이 짙어가는 관목숲에 들어서니 싱그러운 풀내음이 코를 간지른다. 산 중턱에 이르니 가둑나무가 드문드문 서있는 개활지가 나타났다. “아니, 저 고비 좀 봐요!” 어느새 고비를 발견한 안해가 소리쳤다. 그리 넓지 않은 개활지에 애어린 고비가 듬성듬성 돋아있어 꺾기가 한창이였다. “당신은 왜 그리 굼뜨세요?” 쇤 부분을 가늠하며 꺾는 내 솜씨가 서툴어보였던지 지켜보던 안해가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 대로 리유가 있다. 쇤 부분이 길면 산에서 짐이 되고 가공할 때도 자르느라 손길이 더 가야 하니까. “먼저 꺾고 봐야지 그렇다고 주무르고만 있겠나요?” 안해는 핀잔하며 잽싸게 손을 놀렸다. 곁눈질로 안해가 꺾은 것을 보니 보자기에 무드기 쌓여있었다. 나처럼 꺾어선 정말 하루에 얼마 꺾을 것 같지 못했다. 제딴엔 손을 부지런히 놀리느라 애썼지만 숙련되지 않은 손놀림은 굼뜨기만 했다. 해살이 쭉 펴지자 산속은 바람 한점 없는 것이 시루 속처럼 찌는 듯 무더웠다. 그러나 시원한 그늘만 찾을 수 없는 상황인 우리는 땀투성이 되고 목에서 겨불내 났지만 산등성이를 넘고 골짜기를 누비며 고비를 찾아 이악스레 꺾었다. 우리 부부가 절반 짐을 채우고 보니 정오가 되였다. 우리는 점심 먹으러 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내려갔다. 내가 시원한 물에 세수를 하고 자리를 정하고 앉으니 안해가 어느새 정갈하게 씻은 취잎을 앞에 놓는다. “이건 어느새 뜯었소?” 나는 반색하며 물었다. “당신이 즐기기에 보이는 대로 뜯었어요.” “허, 덕분에 햇취쌈을 먹게 됐구만!” 안해의 배려에 나는 알싸하고 얼벌한 햇취쌈으로 점심을 만부하 충전할 수 있었다. “당신은 수고비를 마구 꺾었구만요.” 식사를 끝내고 나의 나물짐을 뒤적여보던 안해가 얼굴에 그늘을 지으며 말했다. “수고비를 꺾으면 어떻다오?”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다년간의 쇠고비 캐기 경험을 갖고 있는 안해가 고비에선 나보다 선생이였기 때문이다. “수고비는 적은데, 많이 꺾어버리면 고비의 번식에 영향이 있대요.” 안해는 아는 대로 말해주었다. “그러면 보호해야 되겠구만.” 수고비는 머리가 크고 실팍했다. 안해가 넘겨주는 수고비를 받아쥐고 살펴보노라니 나는 산을 아끼는 산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이 한가슴 뜨겁게 안겨왔다. 허리쉼을 하고 나서 방향을 바꾸어 동쪽으로 이동하니 넓다란 개활지가 나타났다. 문득 안해가 소리쳤다. “아이, 이 돈을!” 돈이라는 소리에 내가 반신반의하며 달려갔다. “돈? 돈이 어느 게요?” 내가 천진한 애처럼 물었다. “보세요. 여기 한벌 깔린 것이 돈이 아니고 무엇이예요?” 안해가 손을 들어 빙 둘러 가리켜보이며 말했다. “어?! 그래, 그렇지!” 안해의 손길을 따라 바라보던 내가 그제야 영문을 알고 “허허” 하고 웃자 안해도 “호호” 하고 따라 웃었다. 우리의 웃음소리에 산도 메아리쳐 화답했다. 넓다란 개활지에 털에 휩싸여 아기손 같은, 고개를 다소곳하게 숙인 고비가 융단처럼 한벌 쭉- 깔렸는데 노다지판이 따로 없었다. 고비가 탐스러우니 일손도 성수가 났다. 안해와 나는 승벽내기라도 하듯 부지런히 고비를 꺾었다. “여보세요, 여기 고슴도치가 있어요!” 나물을 캐다말고 안해가 불시로 소리쳐 부른다. “고슴도치라니?” 고슴도치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인 나는 안해한테로 달려갔다. 안해가 가리키는 손길을 따라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둬발작 앞에 온몸에 가시를 뒤집어쓴 고슴도치가 엎디여있었다. 내가 나무막대기를 찾아들고 고슴도치를 툭 치자 충격을 받은 고슴도치는 용수철처럼 벌떡 튕기며 공처럼 동그랗게 되였다. 좀 지나니 고슴도치가 또 몸을 느슨히 폈다. 내가 이번에 또 나무가지로 툭 건드리자 그놈은 에쿠나 하며 몸을 제꺽 움츠렸다. “호호호…” “하하하…” 고슴도치의 거동을 지켜보던 안해와 나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이 놈은 자기보호가 다른 동물들처럼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츠리는 것이라오. 그러면 아무리 사나운 범도 범접을 못하지.” 내가 어느 책에서 본, 고슴도치의 약하면서도 강한 자기보호술에 대해 알려줬다. “내가 보기에 이놈이 배 부른 걸 보면 암컷 같단 말이요. 새끼 딸린 에미일 수 있지. 지금쯤 새끼들이 에미를 얼마나 애타게 찾겠소. 남편이 되는 수컷도 얼마나 고독해하겠소? 우리 인젠 이 고슴도치를 놓아주고 자리를 뜨기오.” “고슴도치야 잘 있어, 우리 래년에 다시 만나자 빠이!” 우리 부부는 서로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해가 기우는지라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따라 내려가며 소고비를 찾았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옹기종기 울라초가 자리를 틀고 앉은 초지에서 굵직한 소고비밭을 만나 짐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오후 4시쯤 짐을 정돈한 우리 부부는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 무거워라!” 묵직한 고비짐에 눌리운 안해가 힘겨운 나머지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미안하오, 많이 뜯은 사람을 많이 지게 해서.” 자신의 무심함을 자책하며 나는 안해의 짐을 제꺽 바꿔메였다. “말리우면 10근이 나올가요?” 안해는 까만 눈을 슴벅이며 묻는다. “아마 그렇게 나겠지.” 나는 집에서 가공하던 때의 생각을 떠올리며 어림짐작으로 대답했다. “아이, 그러면 120원이나 되네요.” 속구구를 해보다가 애들처럼 환성을 지르는 안해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피여오른다. 항상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안해는 쇠고비를 팔아 돈을 쥐면 먼저 아이들 학비를 치르고 다음은 창작학습반에 다닐 때 입을 남편의 옷을 지을 생각에 마음이 벌써 흐뭇해지는 듯싶다.   산을 내려 자전거에 짐을 바꿔싣고 바람처럼 씽씽 달리는 우리 부부의 하루 피곤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마음은 흐뭇하기만 했다. 연변일보
208    감겨들면 말려든다 댓글:  조회:168  추천:0  2022-03-25
  감겨들면 말려든다 글 궁금이 · 방송 강설화      “우리 결혼해.” 오래전 드라마여서 제목은 가물가물하고 아무튼 어떤 녀성이 자기에게 별 관심이 없는 남자를 꾸준히 따라다니며 결혼하자고 감겨들던 그림이 인상적이다. 지금은 녀자가 먼저 고백하는 게 그렇게 희한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 관념상으로서는 가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줄곧 심드렁하던 상대도 결국은 말려들고 만다. 동생을 보고 언니가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가 나중에 동생과 결혼한 부부를 봤다. 초기에 언니와 사귀는 동안 동생이 불렀던 호칭은 당연히 형부다. 그런데 어느날 언니가 이런 말을 한다. “저 사람이 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어.” 그래서 어느날 형부에서 여보로 돼버린다. 언니를 보고 나니 동생이 더 좋아졌는지 아니면 애초에 제사보다 제밥에 더 관심이 있었는지는 본인만이 안다. 곡선구국이래도 좋고 치밀한 계획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사랑은 언니에서 동생으로 움직였다. 방심한 사이에 사랑이 찾아온다더니 그야말로 훅 치고 들어왔다. 말려드는 길은 속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직선보다는 곡선이 더 음밀하고 무섭다. 욕하다가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욕한다는 건 나와 어떻게라도 관계가 있어서 생기는 결과물이다. 관계라 함은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으로 풀이된다. 관계속에서 사람은 서로 영향줄 수밖에 없다. 설령 싫어하는 사이더라도 오랜 관계속에서는 부지불식간에 서로 닮아가게 된다. 요즘은 강아지도 드레스를 입는 시대지만 휴대폰에까지 옷을 입히는 걸 나는 이전부터 질색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내 휴대폰에도 버젓이 껍질이 씌워져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누워서 침 뱉는 격이 되지 않으려면 앞으로 나는 절대 같은 현상을 범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한 남을 쉽게 지적하는 게 아니다. 주식과 펀드는 나와 거리가 먼 금융상품이다. 그래프를 보면서 마음을 조이는 체질이 아니다. 얼마를 벌어야 그 조였던 마음에 보상이 될지 답이 없다. 돈 관리를 하지 않으면 돈도 주인을 외면한다고들 하지만 그냥 로임카드에 그대로 있는 게 똑 편안하다. 은행에서 대신 안전하게 보관해 주겠다는데 굳이 꺼내서 이러저리 돌려가며 신경을 쓸 시간이면 머리를 비우고 시원한 맥주나 한잔 더 기울이는 게 나에게 있어서 심리 건강에 훨씬 좋은 일이다. 정보다 더 무서운 게 돈에 말려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먹고 죽자고 해도 없는데 웬 돈타령이냐고 할가봐 미리 밝혀두는데 이건 돈이 많고 적고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의식형태의 문제다.  지구본을 샀다. 우크라이나사태가 발생하면서 여러 나라의 지리 위치와 린접한 국경에 갑자기 관심을 가지게 됐다. 궁금한 나라가 있으면 인터넷에 검색하면 되는 일이지만 한번두번 검색하다 보니 실물지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충동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지구본을 책상우에 사놓기는 했는데 무엇도 멍석을 깔아주면 안 한다더니 정작 눈앞에 가져다 놓으니 덩그렇게 자리만 차지하는 무용지물이 됐다. 대부분 집들에서 사놓는 러닝머신과 비슷한 운명인 것 같다. 특정 시기마다 불쑥 나타나는 관심사로 인하여 생기는 욕구는 충동 구매를 불러오고 그 관심사가 사라지면서 동시에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홈쇼핑 사회자의 말에 빠져들어 허겁지겁 지갑을 열었다가 이튿날에 바로 후회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다.  마약이 도대체 얼마나 인이 박히는 물건이기에 마약 사범들이 그토록 헤여나오기 힘들어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은 마약단속반 녀경이 직접 실험을 해본다. 나는 절대 거기에 빠질리 없고 설사 빠졌다고 하더라도 분명 헤여나올 자신이 있다고 단언했다. 그런데 정작 말려들고 보니 자기도 범죄자들의 처지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뒤늦게야 인정하게 된다. 이건 신념이나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로 그냥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무모한 실험이였다. 돌이킬 수 없는 수렁이라는 게 따로 있다. 말려들기만 하면 유턴이 안 되는 건 물론 후진도 어려운 일방통행이다. 바다가 마르고 바위가 썩어도 변치 않는다던 사랑이 언제 그랬냐 싶게 남남으로 돌아앉는다. 국민커플이라며 텔레비죤에까지 나와 전국민을 향해 광고하던 련인도 비껴가지 않는다. 좋을 때는 눈도 멀고 귀도 멀고 아이큐도 급속히 떨어지면서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사랑이 그냥 의욕과 결심으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더라며 두손 들어 투항한다. 그러다가 사랑으로 입은 상처는 다른 사랑으로 치유된다며 치매 아닌 치매 같은 기억력으로 또 똑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진다. 그러다가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면서 애꿎은 속세만 원망한다.  말려들지 않으려면 감겨들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중국조선어방송넷
207    댓글:  조회:232  추천:0  2022-03-22
산 □ 리향옥 시험장에 들어갔다. 긴장감에 머리가 터질 듯 아파나고 텅 빈 공백상태이다. 아무리 머리를 쥐여뜯어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머리속은 하얗게 비여갔다. 필을 든 손은 가늘게 떨려 시험지에 뭘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안달아난 심정은 뒤죽박죽이 되여버려 식은 땀이 쫙 흘렀다. 가위에 눌린 듯 숨이 막혀 화들짝 놀라 깨고 보니 희붐히 밝아오는 새벽이였다. 산재지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종종 시험을 보는 꿈을 꾸었다. 항상 답을 몰라 시험을 망치는 장면이였다. 새로운 일을 접하고 진척이 잘되지 않아 무한한 고민에 빠질 무렵 똑같은 꿈이 질리게 등장하군 했다. 눈을 뜨고 다행히 꿈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쪽잠이 들었다 다시 깨여나는 바람에 엄청 늦었다. 흐리멍텅한 상태로 부랴부랴 출근길에 올랐다. 멀리서 전철이 역에 들어오는 게 어렴풋이 보여 계단을 밟으며 힘껏 뛰였다. 이번 전철을 타지 못하면 지각할 것이 뻔했다. 숨이 턱까지 올라와 헐떡거리며 주체할 수 없이 세차게 뛰는 심장을 어루만졌다. 회사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화장실도 뛰여가야 할 정도로 바쁠 때면 8시에 시작한 업무가 오후 5시 퇴근 시간까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가 다반사이다. 일이 몰리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무작정 잔업을 이어야 하는 상황에 건강과 의지는 과로로 인해 야금야금 갉아먹혔고 몸살이 났다. 아픈 부위에 차거운 파스를 부치고 아물거리는 눈에 눈약을 떨구고 또다시 일에 매달려야 했다. 잔업으로 늦어진 차디찬 밤길은 한산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불안에 찬 상태로 미지의 분야의 지식을 흡수했다. 시스템이 리론과 맞물려 소화를 할 수 있는지 꼼꼼히 데스트 했다. 난도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높았지만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문제점을 정리해 담당과 상의하며 하나하나 풀어갔다. 성격이 괴벽하기로 유명한 본사 책임자와 몇달 동안 부딛치며 크고 작은 상처자국을 남겼다. 가시밭에서 정답이 없는 업무를 파악하며 새 길을 개척해나갔다. 불혹의 나이에 온정을 바라던 나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그사이에 가슴 밑바닥까지 빡빡 긁혀 볼품이 없는 자존심은 깊은 한숨만으로 역부족이였다. 익숙한 불빛이 멀지 않은 곳에서 얼핏 눈에 띄였다. 늦은 밤 고객 한명 없는 옷가게는 고독하게 영업했다. 나는 불빛에 홀리기라도 한듯 문을 떼고 들어섰다. 삼일째 련거퍼 눈이 내려 단화를 신은 발은 얼어들어 따뜻한 신발을 구매하고 싶었던 것도 한몫 했다. 가게 주인은 내 발에 맞는 사이즈의 까만 구두를 내밀었다. 구두는 따뜻했지만 볼이 좁아서 금세 발이 아파났다. 옷을 위주로 파는지라 신발은 별로 없었다. 가게 주인은 인츰 두 사이즈나 큰 신을 내밀며 신어보라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볼이 넓다 하더라도 두 사이즈는 너무 한 듯싶었으나 가게 주인의 친절에 못이기는 척 신어봤지만 역시 어울리지 않았다. 이어 가게 주인이 추천해준 옷 몇 벌도 입어봤다. 그냥 한벌 정도 사려고 했는데 가게주인은 외투에 바지, 속옷, 양말 등 추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티셔츠 두벌이 마음에 쏙 들어왔지만 그중 하나만 고르고 싶어 잠간 고민에 잠겼다. 가게 주인은 두벌 다 사라고 입이 다슬 때까지 얘기했다. 주춤하다가 한벌만 사가지고 실망에 잠긴 가게 주인을 뒤로 하고 나왔다. 차거운 공기가 페부로 깊숙히 들어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가게의 팽팽한 공기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너무 독촉하는 바람에 드바삐 뛰여나오고 말았다. 금년 겨울, 가게의 옛 주인은 아이를 출산하면서 가게를 접었고 직원으로 일하던 그녀가 인수인계 받았다. 그녀와 꽤 오래동안 알고 지냈고 원래는 매번 들릴 때마다 편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나누며 구매할 수 있어 즐거웠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게 주인이 되자 매출이라는 ‘산’ 앞에서 한벌이라도 더 팔려고 억지를 부리니 부담만 커갔다. 오래동안 면목을 알고 지냈는지라 거절하는데 힘만 들어갔고 원래는 편한 분위기가 무르익는 환경이였는데 지금은 팽팽한 공기로 숨막혔다. 십년 전, 그때도 겨울이였다. 몸과 마음이 얼어터져 진흙탕으로 얼룩진 길에서 갈팡질팡할 때였다. 본사에서 새 업무를 한달 만에 인수인계 받았다. 종류와 량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욱더 많았지만 배울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여러가지 업무를 단기간에 진척하는지라 나는 각 업무마다 일부분씩 배웠다. 담당은 한가지 업무를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배울 때 나는 매일마다 시간별로 각 업무를 습득하고 뒤죽박죽이 된 상태에서 귀국을 하였다. 엄청난 량과 인원부족으로 한동안 혼란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매일 밤 늦게 집에 도착했고 나는 스트레스 해소로 정신없이 간식을 흡입했다. 위는 불온정한 정서와 음식습관으로 혹사를 당하고 말았고 반년 만에 위장염에 걸려 병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찬란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보이지 않는 현실과의 괴리감에 나는 슬럼프에 빠져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였다. 반년 후, 인원을 보강하고 경험도 조금씩 쌓아가기 시작하며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죽을둥 살둥 모르고 일에 전념했고 미지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며 나의 색갈이 다분한 길을 개척했다. 첫시작이 절반이라 하지만 새로운 길에서 항상 시행착오를 범하게 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젊음의 충동에 힘껏 불타오르지만 순조롭게 진행될 리가 없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긍정을 받고 싶은 마음과 뭔가 이루기 위해 조급한 심정은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 같았다. 슬럼프에 빠질수록 랭정하게 분석하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과로로 인한 정신상태는 늘 흐릿했다. 그번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업무를 인수인계를 받을 때면 내가 원하는 그런 과정으로 조금씩 순리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랭정을 찾고 멀리 내다보며 방향을 잡아 팀원들의 힘을 합쳐 앞으로 나아갔다. 십여년 동안 그 바닥에서 점점 온정을 찾았지만 작년부터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여 본의 아니게 또다시 팽이처럼 뱅뱅 돌아치게 되였다. 진행할 방법을 저절로 찾아서 팀을 이끌어야 했고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아 무한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조금만 더 견지하면 나아질 거라는 희미한 희망 속에서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시간은 물처럼 조용히 흘러갔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일년 동안 테스트 기간을 걸쳐 드디어 출시를 하게 되였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준비했지만 아츠랗게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릴 정도로 분망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산 넘어 산인가 했더니 그래도 평지에 도착한 듯했다. 요즘은 칼퇴근을 할 수 있어 몸도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나는 퇴근길에 또 그 가게에 들렸다. 가게 주인은 책상에 다이어리를 펴고 뭔가 열심히 적고 있었고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어주었다. 신상이 많이 들어왔는데 저절로 찾아보라고 하였다. 나는 한바퀴 빙 돌면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봤다. 우리는 그냥 평소에 얘기하던 대로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나는 코트와 바지를 구매했다. 가게 주인은 양말을 선물로 챙겨주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였다. 그러고 보니 가게 주인이 새로 인수인계를 받았을 때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고객이 거의 없을 때였다. 그 시기에 때마침 내가 가게에 들렸고 가게 주인의 모든 정력은 매출에만 집중되였다. 나 역시 옷보다 위로가 필요했고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수요와 제공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리해의 불일치로 우리는 서로 불편했다. 서로 마음의 여유가 없이 편한 관계는 힘들다. 보아하니 요즘 가게 주인은 매출이라는 ‘산’을 넘은 것 같았다. 인생길에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큰 산이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매번마다 크고 작은 산을 넘고 나면 성취감으로 마음 가득 차지 않았던가?   눈길에서 힘겹게 걷더라도 귀맛 좋은 그 발자국소리를 회억하노라면 아마도 앞으로 용감히 전진할 수 있을듯싶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그날 밤의 이야기와 발밑에서 들리던 뽀드득뽀드득 소리는 마음 깊은 곳에 저장되여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들릴 것이다. 어둠이 드리워진 하얀 세계에서 나는 한보한보 어렵게 앞으로 나아갔었다.어쩌면 우리는 태여나서부터 자기만의 색갈이 다분한 발자국을 야무지게 찍으며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연변일보
206    윈터링 댓글:  조회:215  추천:0  2022-03-22
윈터링 □ 허연주 계단에서 들려오는 숨가쁜 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키가 작달막한 남자가 곧장 603호로 가더니 그녀의 집 문을 거칠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쿵… 쿵 ” 낡은 아빠트 6층에서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신경이 곧장 예민해졌다. 오랜만에 찾아 온 한파가 무릎 안쪽을 파고드는 동안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일가? 소음이 사라지고 남자가 붙이고 간 종이가 매서운 겨울바람에 펄럭이였다. 법정에 출두하지 않으면 집이 곧 경매로 넘어간다는 내용이였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열흘 전 즈음이였다. 경력도 단절된 그녀가 디자인 심사를 통과하고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자체가 아이러니했다. 문이 열리고 놀란 그녀가 우리 말로 “현석아”라고 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답을 피했다. 인사팀과 함께한 자리였기에 어설픈 인사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싫어서였다. 어린시절 기억으로 점철된 그녀에게 사회적 평가의 자대를 들이 댈 수 밖에 없는 자리였다. “혼인 란이 비여 있네요?” “리혼… 했습니다.” 겨울을 보내기엔 추워 보이는 신발이 여유롭지 않은 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작품은 훌륭하지만 재혼과 출산의 우려가 있다는 인사팀의 보고에 나는 입사 통지를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급하게 면접실을 나가는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 주었지만 그녀는 련락을 하지 않았다. 나라도 련락을 하기 싫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하고 싶은 말보다 해야 되는 말이 중요한, 중년이 되여버린 우리를 생각하던 그날 아침은 다 낡은 넥타이를 고르면서 참을 수없이 지독한 우울함이 찾아왔다. 오래 된 친구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고립된 계절의 혹독한 추위를 피하 듯 촘촘히 붙어있는 아빠트 입구로 들어서는 찰나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구급차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구급대원들이 스쳐 지나갔다. “리혼하고 혼자 산다는 그 처자 맞소?” “참하게 생겼더니 자살이라니!” 귀가의 소음들이 먼지처럼 하얗게 되여 사라졌다. 나는 더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6층을 향해 정신없이 뛰여 올라갔다. 그렇게 빨리 뛰여본 것은 생전 처음이였다. 제발 아니기를 바랬다. 둥그렇게 모인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나서야 새롭게 붙어있는 딱지가 보였다. 전기 료금을 물지 않을 경우 전기를 중단한다는 통지서였다. 내몰려진 현실의 끝에 위태롭게 서있던 그녀를 잡아주지 못하고 차거운 방바닥에서 삶을 마감하게 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냥 돌아가서는 안되는 것이였다. 부당한 리유로 입사가 보류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친구의 불행에 등을 돌리던 자신에 대한 원망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여 가슴을 란도질 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곤두박질 치듯 떨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퀭한 표정으로 란간에 걸쳐있는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너…” 습도 높은 한 겨울의 도심 속에서 환청처럼 들려오는 그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거기 아냐.” 그녀가 603호 앞에 쭈그리고 있던 나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추운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603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턴넬과 같은 긴 겨울을 나기까지 얼마나 심각할지 모르지만 잠시라도 따뜻하게 발 붙일 곳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전기료금 고지서를 떼여 지갑에 넣어두었다. 응급차가 떠난 길에 하얀 눈이 떨어졌다. 춥고 결핍된 계절의 끝에서 그녀에게 물었다. “살릴 수 있겠지?” “그럼.” 단호한 모습으로 눈 속을 한참이나 걸어가던 그녀가 웨쳤다. “매화다!” 얼어 붙을 것같은 한 겨울의 추위를 자양분 삼아 피여난 매화에게 시선을 뺏긴 그녀를 보다 흰 눈이 겹겹이 쌓인 나무가지를 툭 하고 건드렸다. 떨어지는 흰 눈 사이로 그녀의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입사 축하해.” 연변일보
205    공 (空) 댓글:  조회:378  추천:0  2022-03-11
공 (空) □ 주련화 “95호로 가득 채워주세요.” 차창을 내린 후 나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내뱉었다. 시원한 밤 바람이 머리 우로 흘러내린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주유소 직원이 다가오더니 익숙한 동작으로 주유총을 뽑아들었다. 눈길이 차체를 꼼꼼하게 훑고 다시 나한테 머문다. 가까이에서 본 그의 눈은 뻘겋게 충혈되여있었다. 웬지 밤샘을 하면서 핸드폰게임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감한 무사가 되여 큰 칼을 휘두르면서 밤새 괴물을 무찌르고 또 무찔렀을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황급하게 눈길을 거두어들였다. 피씩 입가로 웃음이 새여나왔다. 기름통이 절반쯤 찼을 무렵, 그의 눈길이 집요하리만치 또다시 나의 얼굴을 훑는다. 도심을 훨씬 벗어난 외곽, 이런 곳에서 고급 외제차를 본 적은 몇번 없을 테지. 그의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이 너무 궁금하다. 젊은 성공인사? 재벌2세? 또 아니면? 입귀가 슬며시 올라간다. 물론 나는 그가 좀전에 사채업자의 빚재촉 전화를 받았다는 걸 알길이 없다. 사채업자가 3일이라는 기한을 줬다는 건 더더욱 모른다. 10분 후, 나는 곧 뮤즈바 앞에 나타날 것이다. 이 도시에서 제일가는 미녀와 갑부들이 모인다는 그곳. 돈이 입장권이고 곧 신분증인 바로 그곳에서 최고의 미녀랑 와인 한잔 기울이고 댄스를 출 것이다. 사람들은 새 페이스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어디서 왔느냐고 묻지는 않을 것이다. 자고로 영웅은 출처를 묻지 않는다고 했다. 돈다발을 가슴 속으로 찔러주면 미녀는 마시멜로처럼 내 품안으로 녹아들겠지. “오늘 밤 함께 있고 싶어요.”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매는 상당히 고혹적이다. 가난한 게 죄냐고 히스테리적으로 울부짖던 스무살의 내가 보인다. 가난은 죄가 맞다고 또박또박 내뱉던 미희의 얼굴도 보인다. 미희는 나의 첫사랑이였고 마지막 사랑이였다. 물론 내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미희가 자기 아버지보다 세살 이상인 남자랑 같이 산다고 말해준건 한때 미희가 좋다고 따라다녔던 정수였다. 그 말을 하면서 정수는 손가락 세개를 들어보였다. 미친놈임에 틀림없었다. 사정없이 주먹을 날리고 나오면서 나는 미희의 불행을 빌었다. “땡큐, 이건 팁이에요.” 주유소 직원한테 100원짜리 한장을 찔러준 뒤 엑셀을 힘껏 밟았다. 독일의 최고 장인들이 만들었다는 엔진이 기분 좋은 중저음을 내뱉는다. 후시경으로 주유소 직원이 허둥지둥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의 대화내용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궁금할 리가 없다. 기껏해야 친구한테 비싼 외제차를 봤다고 자랑을 하거나 고급차량에 주유나 하는 자기 인생을 한탄하거나 둘중 하나일 것이다. 10초가 되지 않아 직원은 이내 작은 점이 되여 사라졌다. 그 시각, 직원은 핸드폰을 든 채로 차가 사라지는 방향을 향해 한참을 서있었다. “110이죠? 여기 고속도로 옆 주유소입니다. 뉴스에서 봤는데 외제차를 훔치고 도망간 사람을 제보하면 10만원 상금 준다고 하셨죠? 제가 이제 방금 그 사람을 봤습니다… 네? 정신이상 증세가 보이고 공격성도 지니고 있다고요? 아니요, 공격은 당하지 않았습니다… 네, 자주색 스포츠카에 회색 양복을 입었더군요. 네. 뉴스에서 나오는 그 사람이 맞습니다. 왼쪽 얼굴에 기미가 있었어요. 네? 이미 다른 사람이 제보했다구요?”   직원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머리 우에는 핸드폰 사용금지라고 쓴 빨간 패쪽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연변일보 
204    엄마의 유산 댓글:  조회:155  추천:0  2022-03-09
엄마의 유산 김상복  가난한 농민가정의 셋째딸로 태여난 나는 21살 때 한마을 총각과 결혼하였다. 형제중 둘째인 남편은 아래로 남동생이 네명 있었고 14명이나 되는 식솔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이러한 대가족으로 시집 가기 전 내가 엄마한테서 물려받은 한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장을 담그는 방법이였다. 식구가 많다보니 메주를 쑤어 장과 간장을 만들어 먹으면 생활에 여간 보탬이 되는 게 아니였다. 엄마도 여직껏 친척들한테 장과 간장을 나누어주며 살아왔다. 이젠 그 일을 내가 맡아할 때가 온 것이다.     메주를 만들려면 우선 콩을 깨끗이 씻어 물에 불구었다가 삶아야 한다. 삶은 콩을 다시 절구에 넣고 찧어 둥글게 모양을 낸 뒤 흙집 가마보에 달아맨다. 음력 10~11월부터 정월까지 그 메주를 띄운다. 그런 다음 밖에 널어 10일간 바람에 말리우면 냄새가 없어진다. 그후 깨끗한 물에 씻어서 장을 담그면 된다. 먼저 장을 담글 큰 독에 깨끗이 씻은 메주를 차곡차곡 넣는다. 그 다음 물 30근에 소금 세사발의 비례로 메주가 물에 잠길 만큼 계량하여 물을 붓는다. 10일후부터 장독의 물로 간장을 만들 수 있다. 간장은 소금이 우에 뜰 때까지 달여줘야 한다. 싱거우면 소금을 더 넣어주며 조절해야 장이나 간장이 그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고 엄마가 강조했었다.   나는 시집 간 첫해부터 지금까지 53년간 엄마한테서 배운 대로 메주를 만들어왔다.   메주로부터 장과 간장이 되려면 적어도 100일이 걸린다. 그리고 삶은 콩을 50시간 정도 상온에 두면 구수한 맛을 내는 청국장이 된다. 장과 간장, 이것은 엄마가 나한테 물려준 참 소중한 유산이다.       올해는 메주를 쑬 때 녀동생이 딸애와 손녀를 데리고 놀러 왔다. 방금 가마에서 푹 삶아낸 콩을 맛 있게 먹는 조카와 손녀를 바라보노라니 너무 흐뭇했다.    콩이 수동교반기에서 국수가락처럼 밀려나오는 것을 희한하게 지켜보는 그들 때문에 지루할 번했던 일이 한결 재미가 났다. 나는 잘 갈린 콩으로 메주를 빚기 시작했다. 손녀가 자기도 해보겠다고 두 팔을 걷어붙인다. 콩알 만한 녀석이 나를 따라 메주를 조물락조물락 만지고 찰싹찰싹 쳐가면서 모양을 내겠다고 용을 쓰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이 메주로 장과 간장을 내면 또 요 녀석 입에 들어가겠지 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엄마의 손에서 내 손으로 물려온 메주지만 이젠 더 이상 물려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유감스럽다. 가마와 온돌이 있는 집에서 푹 삶고 잘 띄워야 장과 간장이 그 진맛을 낼 텐데 친척들도 자식들도 다 시내에 살다보니 만들 수 있는 조건이 안되니 말이다.   나는 해마다 100여근의 콩으로 장과 간장을 만든다. 시내에 살고 있는 형제들과 친척들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많은 먹을거리를 사오지만 한평생 흙과 씨름하며 산에서 살고 있는 나는 친척들에게 줄 수 있는 물건이 장과 간장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너무 행복하다. 백일간의 정성이 듬뿍 담긴 토장과 간장을 들고 돌아서는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노라면 고달팠던 일상이 싹 잊히며 나라는 존재가 아직 쓸모가 있구나 뿌듯해지기까지 한다. 앞으로 몇해나 더 장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매년 장을 담글 생각이다.
203    흑백사진의 계시 댓글:  조회:226  추천:0  2022-03-02
흑백사진의 계시 글 궁금이 · 방송 강설화                 외사촌동생으로부터 어렸을 때 찍은 사진 한장을 받았다. 우리 마을에 놀러왔을 때 누가 찍어줬었나 보다. 찍었던 기억이 없는데 왼쪽에는 외사촌남동생이고 오른쪽에는 사촌녀동생이다. 셋이서 “영광의 집”이라는 패말이 붙어있는 벽돌집 앞에서 찍었다.         사진에서 두가지 신호가 읽힌다. “영광의 집”이라고 함은 그 집에서 군대에 간 사람이 있다는 얘기고 마을의 대부분이 초가집에서 살았던 시절에 벽돌로 됐다는 건 잘사는 집이였음을 의미한다.         “어째 우리 둘은 붉은넥타이가 없고 녀동생만 매고 있지? 그러고 보니 우리 둘은 영 없어 보이오.”     나도 무슨 원인에서인지 모르겠는데 셋중에 사촌녀동생만이 보란 듯이 넥타이를 매고 있고 우리 둘은 “민간인”차림이다. 그런대로 굳이 자존심을 세우자면 녀동생은 웃옷주머니가 없는데 나와 외사촌동생은 웃옷주머니에 뚜껑까지 달렸다. 아직 연필을 썼을 때의 나이라 만년필만 안 꽂았을 뿐이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습디다.”     전에 우리나라에 관광을 온 한국인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얘기다. 사진기가 고가품이였던건 물론 필름을 썼던 시절이라 사진 한장 남긴다는 게 지금의 휴대폰카메라로 찍어대듯이 흔한 현상이 아니였다. 필름 소모해가면서 사진으로 남겨준다는 건 선택된 배려였다.        주말에 식물원에 갔더니 아직 어떤 꽃도 피지 않은 상태에서 겨우 푸름을 자랑하는 식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아주머니들의 표정이 매우 행복하다. 타성에서 어렵사리 관광을 왔다면 충분히 가능한 그림인데 억양을 봐서는 전부 현지인들이다. 물론 배경이 화사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사진의 핵심은 그래도 사람이다. 오히려 배경이 너무 튀면 사람이 묻히는 수도 있다.         지금은 술한잔 하다가도 식당 종업원보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찍어도 현상하는 경우는 드물다. 다 위챗으로 전송해서 공유하고 클라우드에 저장이 돼서 영원히 없어질 위험도 없다. 그래서 실물로 현상되여 나온 옛날 사진이 더 소중해진다. 시골에서 간만에 시내에 들어갈 기회가 생기면 일부러 사진관을 찾아서 찍었던 그런 사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가 되고 그 순간으로 하여 과거가 또렷이 남겨진다는 점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진귀해진다. 그래서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라는 식상한 말도 나온다. 엄마가 계셨을 때는 쩍하면 사진첩을 끄집어내서는 한참을 번지다가 나까지 끌어들여서 보라고 했다. 엄마가 안 계시고 이제 사진첩을 뒤져본 지도 몇년은 되는 것 같다. 90년대 후반 조선에 함께 갔던 선배가 어느날 서해갑문 해수욕장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내왔었는데 감회가 깊었다. 평양에 있었던 3개월간의 모든 일들이 그 사진 한장으로 쭉 이어져서 떠오르면서 사진의 가치를 몇배로 높여주었다.        얼마전에 외사촌형이 북경에서 수술을 받고 난 뒤에 외사촌동생으로부터 받은 사진이라 느낌이 또 달랐다. 그 사이 시간이 많이 흐른 느낌이고 갈수록 줄어드는 친척 관계가 더 소중해지는 느낌이다. 방역상 원인으로 옛날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촌관계가 어디 가지는 않는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더 적어진 나이에서 정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한결 더 집착하는 쪽으로 바뀌여가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친척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고 전반 인간관계에로 넓혀지고 있다. 웬만한 일로는 따지고 싶지 않은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생각이 없이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나쁜 일일가 싶다. 사사건건 옴니암니 캐봐야 본인만 피곤하고 세상은 원래 무슨 모양이였으면 어김없이 그 모양대로 돌아간다. 자기 존재와 역할을 과대 평가할 필요가 없다. 서서히 가열하는 물에서 죽어가는 개구리를 웃는데 개구리가 무슨 죄냐는 생각도 한다. 사람은 자기도 못하는 것을 말못하는 동물에 의탁하는 묘한 경향을 갖고 산다.        살아가는 데 정답이 없음에도 자꾸 자기만의 답안을 제시하려 한다. 그리고 본인의 주장이 미래지향적이고 모범답안이라 착각하고 강요한다. 지레대 하나만 주면 지구라도 들 것처럼 정서가 격양되여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한다. 그러다가 여의치 않으면 울적해지고 그 울적함이 또 다른 불만을 낳는다. 허구한 날 체중만 뜨지 말고 자기의 위치와 능력의 좌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자기 체중의 20배의 물건을 든다고 해도 개미는 결국 개미다.       불만과 사리를 구별해도 많이 편하게 산다. 중국조선어방송넷 
202    [중편소설] 바다는 국경선 있어도 물은 국경선 없다 댓글:  조회:266  추천:0  2022-03-02
[중편소설] 바다는 국경선 있어도 물은 국경선 없다 남태일 1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대성은 문뜩, “행운을 파는 곳이 있으면 사고 싶다”라는 헤밍웨이 말이 떠올랐다. 당장 사채를 빌려서라도 행운을 사고 싶은 것이 지금의 갈급한 심정이다. 이때였다. 텔레비전에서 녀 아나운서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비 태풍’이 서해를 강타한 소식을 한창 방송하고 있었다. “……단동시와 동항시는 ‘나비 태풍’의 반경에 들어있었지만, 기상청에서 미리 방송하고 사전의 충분한 준비가 되었으므로 피해가 적었다. 북조선에서는 급작스레 나타난 ‘나비태풍’을 예고하지 못하여 고깃배 수십 척이 침몰 되고 인명 피해도 적지 않았다…….” 단동시의 텔레비전 뉴스 방송을 듣고 난 대성은 요즘 잔뜩 부풀어 올랐던 희망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그는 담배 한 모금 깊게 빨았다가 내뿜으며, 담뱃재를 창문 밑에 열병처럼 세워 놓은 빈 맥주병 속에 털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안개는 마치 작은 벌레떼처럼 한 덩어리로 엉켜 있고, 부둣가 가로등은 열심히 어둠을 삼키며 불그레한 빛을 발사하고 있다. 어젯밤까지 미쳐 날뛰던 바다는 아침이 되자, 간밤에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침목을 지켰다. 해경은 오늘까지 모든 배와 선박을 출항 금지했다.  ……대성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B 회사 회장을 대행하여 북조선 평안북도에 사는 회장의 친동생과 비밀리에 서해 코끼리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필이면 만나자 약속한 날, ‘나비 태풍’이 서해를 강타했다. 집채같은 큰 파도가 콘크리트 방파제를 대릴 때마다 인근 숙소의 유리창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지금 대성의 가슴에서 어지러운 잡념과 추측이 마치 열 받은 냄비 속의 물과 같이 들끓었다. “아니야, 북조선 바다 인근에 사는 어부들은 자기 경험으로도 태풍 오는 줄 알고 출항하지 않을 것이야.” “그래, 육손이 아저씨는 지금 북한에서 잘 계시고 있을 거야……”. 대성은 자기 마음을 달래며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해도 자꾸 불길한 예감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의 전화였다.  “아버지, 잘 계셨어요? 어쩐 일인 기요? ” “이번 팔월 추석에 집에 올기가? ”  수술 후 변해버린 아버지 쉰 목소리를 듣자, 죄송한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울음이 울컥 딸려 나왔다. 대성은 은빛처럼 반짝이는 ‘망류하’가 푸른 평야에서 굽이쳐 흐르고, 아련한 추억들이 아버지가 갈아엎던 흑토(黑土) 덩어리같이 많은 고향이 오늘따라 간절하게 생각났다.  2 90년대 후기, 교화 시의 산간마을, 홍풍촌에도 봄이 찾아왔다. 마을을 가로지른 큰길 량쪽에 앙상한 백양나무들이 아직 가난한 색을 드러내며 열병처럼 서 있다. 큰길 뒷줄에 새로 지은 벽돌집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한가운데, 초라한 초가 한 채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가지런히 자란 치아 한가운데 썩은 충치 한 대가 거멓게 꽂혀 있는 것 같았다.  초가 집안에 들어가 보면 비록 흙바닥일망정 깨끗이 정돈되어 있고 가구들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정갈한 조선족의 집안 구조였다. 벽에는 누렇게 바랜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대성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릴 때의 큰아버지와 아버지였다. 만주에 오기 전에 한국 고향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예전에 깊이 숨겨둔 사진인데 한중 수교 뒤, 길이 트이면서 멋진 사진액자를 사서 벽 한가운데 번 듯이 걸어 놓았다.  고향이 한국 경북인 정 씨는 환갑 나이에 비운이 날아들었다. 대장암 3기로 수술을 받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또 재발하여 새집 짓는다고 은행에 저축해 두었던 돈을 몽땅 찾아 병원에 가져다주었다.  중국해군 부대에서 4년 복역하다 제대한 아들 대성은 친구 따라 큰돈을 번다며 전국을 누비고 다녔지만, 밑천이 없는 그에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여동생 은영은 아버지 때문에 다른 여자애들처럼 대도시에 돈 벌러 나가지도 못하고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었다. 장가갈 나이가 된 대성에게 처녀 소개는 많이 들어오지만, 결국 대성의 깊은 한숨으로 마무리 짓는다. 오늘도 외숙모가 인근 향에 사는 처녀를 소개했다. 아직도 가난의 냄새가 나는 초가집에 산다는 이유로 처녀에게 거절당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무어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가슴이 곧 터질 것 같았다. ‘이번에 벌써 아홉 번째……, 정말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장가도 못 가보고, 포톨(외톨이) 귀신이 되겠다. 밑천 없이 장사해도 안되고, 에라! 모르겠다. 이제는 한국 가는 길밖에 없구나’   아들이 마치 물을 잔뜩 먹은 종이처럼 축 늘어져 집에 들어오자 대성 어머니는 벽에 걸린 누렇게 바랜 옛날 사진을 힐끔 바라다보며 원망 같기도 하고 나무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에 시아버지나 시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치고, 형님 되는 분은 그래, 하나밖에 없는 친동생을 초청해서 만나보면 얼마나 좋아요. 참! 인정머리도 없는 사람들이지. 편지 회답도 없고…….” 가만히 듣고 있던 대성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며 마누라를 나무랐다. “뭐라카노? 또 시작이네, 한국 힝님이 살아만 있으먼 언제던 초청할기 아니가.” 며칠이 지난 뒤 대성이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집 식구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아버지, 어머니, 우리는 계속 이렇게 가난하게 살 수 없어요. 이틀 뒤에 저의 친구 성국이 소개로 심양시에 있는 한국회사에 가기로 했어요. 한국회사에서 2년 열심히 일하면 한국 본사에 연수생으로 갈 수 있데요, 한국에 가면 큰아버지를 꼭 찾아뵐게요.”  3 심양시 교구(郊區)정부에서 두 달에 한 번씩 축구 시합을 했다. 현지의 청년 축구팀과 중년 축구팀, 한국기업 축구팀이 모두 10개 팀이 참가했다. 중국 진출한 한국 B회사 사장과 부장은 축구를 즐기는 분들이지만, B 회사 축구팀은 해마다 시합에 참여해도 꼴찌를 겨우 면할 수준이었다.  대성이 B회사 입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축구 운동대회가 열렸다. 제비를 뽑다 보니 현지에 청년팀과 맞붙게 되었다. 금방 시작하여 얼마 안 되어 연속 골 두 개가 들어가면서 0 : 2로 지고 있었다. 대성은 금방 입사한 초보자다 보니 운동 구경도 못 하고 자질구레한 심부름하기가 바빴다. 금방 손수레에 물과 음료수를 싣고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 대원 한 명이 다리를 다쳤다. 김부장은 대성을 보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성씨, 일단 심부름은 그만하고 팀에 한사람이 모자라니 들어가서 숫자나 채워 주세요.”  부장이 시키는 대로 하던 심부름을 놔두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운동장에 뛰어 들어갔다. 몇 발자국 가지 않아 공이 앞으로 굴러왔다. 익숙한 발놀림으로 요리조리 공을 몰고 상대방의 선수들을 뒤로 젖히고, 골문 앞에 가서 살짝 슈팅하자 공이 골문 안으로 대굴대굴 굴러 들어갔다. “와아!!” 환호성이 터졌다. 잠시 후 대성은 머리로 헤딩하여 또 한 골을 넣었다. 전반전이 끝나자 대성은 또 손수레를 밀고 간식을 사러 가려고 했다. 김 부장은 대성을 끌어당기며 성질이 나서 고함을 쳤다.  “지금 무엇 하는 거야, 누가 자네에게 심부름시켜서! 엉!” 김 부장은 화가 나서 고함칠 때 얼굴색까지 변했다.  “김 부장님이 시켰는데요.” “뭐, 김 부장, 김 부장이 누구야, 당장 다른 사람 시켜!” 옆에 사람들이 하하하 웃자, 김 부장은 그제야 알아차리고 얼굴을 붉히며 같이 따라 웃었다. 후반전에 대성은 운동복 입고 정식으로 투입되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대성이 몸을 민첩하게 놀리며 무인지경처럼 혼자서 공을 몰고 들어가 멋진 슈팅으로 또 골을 넣었다. 대성이 골 세 개를 넣자 대원들이 투지가 살아나면서 더욱 신나게 공격했다. 결국, 청년팀과 4 : 2로 이겼고, B 회사는 중국에 진출한 후 처음으로 2등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김 부장은 음료수 뚜껑을 열어 대성에게 주면서 물었다. “대성 씨, 옛날에 축구 해보았어?” “네, 중학교 다닐 때 ‘성省 소년 축구팀’에서 축구 시합에 많이 참가해 보았어요?” “그러면 그렇지!, 야! 앞으로 우리 축구팀도 희망이 있겠구만, 대성 씨는 어디도 가지 말고 우리 회사에서 해요. 하, 하, 하”  칠순이 넘은 B회사 회장은 시합이 끝나자 잰걸음으로 달려와 대성을 안아주면서 어깨를 살갑게 다독여주었다. “나는 자네가 입사할 때부터 이미 우수한 사원이 될 것이라고 짐작했네, 열심히 하게, 내가 자네를 언제든지 중히 써 줄기다.” 흥분한 회장은 소리 내어 껄껄 웃었다.   “대성씨 수고했어요. 정말 대단해요.” 아침 공기처럼 상쾌한 젊은 녀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회사 인사과 과장, 회장의 무남독녀인 현미 과장이 대성이 옆으로 다가왔다. 대륙의 젊은 녀자보다 더 희고 맑은 얼굴, 자연스럽지 않을 정도로 쪽 곧은 콧대, 첫눈에 보기만 해도 전형적인 한국 젊은 녀성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쌩긋쌩긋 웃으며 대성 옆으로 다가섰다. 현미 과장은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손수건을 꺼내, 쑥스러워 어쩔 바를 모르는 대성이 이마에 돋은 땀방울을 꾹꾹 찍어서 닦아 주었다. 대성은 가슴이 세차게 뛰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자꾸 뒷걸음을 쳤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저 혼자 닦겠습니다.” “대성 씨, 나는 대성 씨보다 한 살 더 많으니까, 나보고 누나라고 불러야 해요.” “아닙니다. 과장님, 저 같은 사람이 어찌 과장님을 보고 누님이라고…….” 그때, 현미 과장과 대성의 눈길이 마주쳤다. 대성은 이상하게도 얼굴,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눈길에서 구름처럼 스치는 애수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4 봄 아가씨가 아지랑이를 폴폴 날리며 다가오자, 앙상한 나무들도 싱싱하게 살이 오르고 산과 들판은 점차 초록색으로 변해 갔다. 휴식 시간이 되면 현미 과장은 자주 대성을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대성이 사무실에 들어서면 그녀는 살짝 웃으며 얼굴이 삽시에 밝아지고, 커피를 타서 대성 손에 쥐여주었다. 대성은 회장의 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세련된 의복과 몸짓에서 범접하지 못할 생소한 기질을 느껴서 그런지, 자기도 모르게 그녀 앞에 서면 자꾸 위축감을 느꼈다. 때로는 너무 긴장하여 그녀의 앞에서 말을 더듬고 엉뚱한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진작 밖으로 나가면 향기 도는 아늑한 공간에서 그녀와 오래 얘기 못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날도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2층 현미 과장 사무실 앞으로 지나가면서 위로 쳐다보았다. 창문의 화분 통에서 자란 앙증스러운 꽃 몇 송이가 한 가닥 미풍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녀는 꽃 속으로 하얀 얼굴을 내밀며 2층으로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 단말기를 내밀면서 말했다. “대성 씨, 휴대전화기가 없죠? 제가 오늘 휴대전화 단말기를 교체했는데 아직 새것이라서 버리기 아깝네요. 쓰던 거라서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으시다면…… ”  그녀가 준 휴대전화 단말기를 손에 쥐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없이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렇게 잘 대해 주는 걸까? 그는 온갖 생각을 다 해보았지만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남녀 관계에선 아예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아니, 정말 이해 안 돼!’ 대성에게는 현미 과장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일 뿐이었다.  목요일 저녁 퇴근할 무렵이었다. 검은 먹장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으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샤워장에서 몸을 씻고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었다. 전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현미 과장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쉰듯해서 뭔가 슬픔에 젖은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한국 K료리집에서 식사하려고 하는데 그곳으로 와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했다. 전화를 받자 긴장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비록 누나라 불러 달라고 말 한 적이 있지만, 아직 단둘이서 식사할 정도로 편안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현미 과장 앞에만 서면 자기도 모르게 위축감을 느끼며 항상 말과 행동이 혼란에 빠지기가 다반사였다. 갑자기 자기 같은 하층 일꾼을 불러 단둘이 식사하자고 하니 불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그렇다고 못 간다는 말은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은근히 묘한 흥분에 사로잡히며 알 수 없는 설렘이 온몸으로 번져 갔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시외(市外) 저수지 옆에 전망이 좋은 한국 K료리집으로 갔다. K료리집은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으나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한국 고급 료리집이었다.  비가 그치자, 부드러운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른 끝없이 펼쳐진 저수지는 마치 즐거운 꿈이라도 꾼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K 료리집은 말 그대로 푸른 산, 맑은 물, 일류의 풍미를 자랑하는 료리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거 같다.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서자 이미 식당 안은 많은 손님이 북적였고 중국 사람들의 특유한 고성으로 귀가 먹먹했다. 서빙을 하는 녀직원의 안내를 받아 2층의 특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푸짐한 음식상이 차려져 있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대성 씨” 그녀는 반가워하며 하얀 이가 약간 보이게 미소를 지었지만, 금방 얼굴색이 굳어졌다. 그녀는 오늘 어쩐지 아래위로 검은색 옷을 입었다. 대성은 현미 과장 정면으로 앉지 못하고 대각선으로 부자연스럽게 앉아 곁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웬일인지 여느 때같이 활기찬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깔끔한 피부는 몹시 창백하고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으며 두 눈이 약간 부은 듯했다. 그녀는 몸을 약간 일으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술 한 잔을 따라 주었다. 목소리는 조금 불안했다. “저녁인데 쉬지 못하게 불러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식당에 불러 주셔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죠.’ 대성도 현미 과장에게 술 한 잔을 부어 주었다. 서로 술잔이 부딪치자 현미 과장이 먼저 건배했다.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조용한 특실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그녀는 낮고도 조용한 목소리로 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대성 씨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 말하면 적잖게 불쾌할 수도 있어요.”  밝은 등불 아래 그녀의 얼굴에 눈물 자국을 볼 수 있었다. 날 파리 한 마리가 등불을 빙빙 돌다가 무거운 기분에 힘이 빠졌는지 테이블 한쪽 구석에 차분히 붙어 있었다.  “사실 저는 3년 전에 결혼했어요, 신랑은 저의 대학 동창이고 대학병원의 부교수였죠, 3년 전 바로 오늘이었어요, 둘이서 같이 점심을 먹고 신랑이 대구에 학술토론 하러 간다고 차를 운전하고 떠났어요. 평소에는 사람들 많은 곳에서 한 번도 안아 준 적이 없던 그이가 저를 꼭 안아주더군요. 그리고 세 시간 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교통사고라고. 허둥지둥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어요.”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엔 우울감이 비쳐 있었다. 검정 옷깃에 다인 하얀 목덜미는 윤기가 없고 메마르고 창백하였다. “대성 씨가 처음 입사했을 때, 저가 대성 씨 이력서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대성 씨의 사진 속 얼굴이 돌아간 남편과 너무나 닮았어요, 넓은 이마와 눈, 코가 똑 닮았어요. 그때 제 가슴은 세차게 뛰고 현기증까지 났어요, 대성 씨의 이력서를 한쪽에 밀어 놓고 오랫동안 고민을 했죠. 아버지는 대성 씨가 저세상 사람인 사위와 많이 닮았다며, 나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채용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가 상관없다고 고집하자 아버지는 허락하시더군요. 축구 하는 모습까지 많이 닮았어요.  대성 씨를 죽은 남편과 생김새를 비교하는 거는 저 자신이 너무 황당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오늘만 지나면 그이에게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울 거에요. 그래야만 그이도 내 마음에서 떠나 천국으로 갈 수 있겠죠.” 대성은 현미 과장의 이런 사연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준 리해할 수 없었던 행동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애수의 그늘이 진 눈빛의 비밀도 알게 되었다. 죽은 사람의 환영(幻影)으로 인식되었다는 거는 분명 기분 좋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듣고 보니 젊은 녀자가 자기 앞에서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상처와 비밀을 토로했던 것은 그만큼 자기를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성은 현미 과장의 술잔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과장님, 저 같은 사람에게 한 젊은 녀자가 마음속 상처를 보여준다는 것은 저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과장님의 남편이 죽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저의 생김새도 저의 의지 되로 되지 않습니다. 과장님의 아픈 상처를 빨리 치유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서슴지 않고 돕고 싶습니다.”  그날 현미 과장은 술을 많이 마셨고 취했다. 택시를 타고 그녀의 숙소로 갈 때였다. 그녀는 머리를 대성의 어깨에 살짝 기대고 잠들었다. 깔끔하고 유난히 흰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에서 까만 머리카락 세 오리가 얼굴의 눈물 자국에 묻어 있었다. 이제까지 대성은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행복할 줄로만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남편을 잃은 현미 과장이 3년간 겪은 슬픈 시간은 가난한 자기보다 오히려 더 처참했을 거로 생각했다. 5 대성이 B 회사에 왔는지 3개월 되는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현미 과장이 숙소에서 쉬고 있는 대성이를 찾으러 왔다. 현미는 해맑게 웃으면서 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성씨, 회장님이 대성씨를 회장실에서 뵙겠다고 하네요. 회장님이 대성씨에게 큰일을 맡길 거 같아요. 중요한 일을 상의한다고 했어요. 빨리 올라가 봐요. ”  “네? 저하고 중요한 일을 상의하신다고요?” 대성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화장은 반갑게 맞이하며 악수까지 했다. 대성은 당황하여 어쩔 바를 몰랐다. 현미 과장이 따끈한 커피 한잔을 대성이 앞에 가져다주었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대성이 자네가 해군 출신이라면서?” “네, 회장님”  “나는 솔직히 말해서 중국에 진출하면서부터 오랜 시간 동안 현지 동포 중에서 젊고 정직하고 담력이 있는 친구를 찾던 중이었는데……, 그래서 사실 자네가 입사한 뒤부터 줄곧 관찰 해왔네. 자네에게 에돌아 얘기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옛날 나의 고향은 한국 충청도였네, 우리는 남자 형제가 둘이었어. 어릴 때, 아버지가 벌목장에서 일하시다 사고로 돌아가게 되었네. 어머니 혼자서 어린 우리 둘 형제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겠지. 그 무렵 아들이 없는 큰외삼촌이 만주로 가면서 내 동생 영철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네. 그 뒤에 외삼촌이 만주 봉천에서 잘 있다고 편지를 써서 인편으로 보내왔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소문에 외삼촌이 병으로 돌아가고 외숙모가 재가하게 되자 동생 영철이가 공부를 더 하겠다며 북한으로 갔다고 했네, 그 뒤에 월남한 영철이 친구가 나에게 전하는 말에 의하면 평안북도에서 현지의 처녀와 결혼하여 살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네.”   잠시 말하는 동안 회장은 기침을 자주 했고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돋아났다. 회장의 창백한 얼굴에 잔주름은 많았지만, 눈빛은 강렬했다. 그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천천히 창가에 다가가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에 오동나무 파란 잎들이 회장의 조각난 기억처럼 미풍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작은 새 한 마리가 잎이 무성한 가지에서 한 송이 꽃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회장은 깊은 감회 속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중국 단둥시의 중국인들이 북한 평안북도의 주민들과 서해에서 민간 무역을 하고 있는데, 북한 주민 중 많은 사람이 이 기회에 탈북했다는 소문을 들었네. 그때부터 나는 믿을만한 조선족 젊은이들을 눈여겨보았네. 북한 주민들과 무역 거래를 하면서 동생 영철이를 찾아 중국에서 한 번이라도 만나 볼 계획이네.”  회장은 대성을 오래 관찰한 끝에 적임자로 선정하고, 현미도 적극적으로 추천하였기에 더 주목하게 됐노라고 말했다. 회장은 대성의 손을 꼭 잡으며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암 수술을 받은 사람이라 오래 살 수 있다는 보증도 없네, 내가 죽기 전에 동생 영철이를 한번 만날 수 있다면 한이 없네, 그렇다고 가족은 놔두고 동생만 한국으로 데리고 갈 생각은 없네, 동생을 찾은 뒤 거취 문제는 차차 얘기하기로 하게. 우리는 자네를 믿고 이 위험하고 고생스러운 일을 부탁하는 것이네, 자네 능력으로 꼭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네, 자네, 잘 생각해 보고 삼 일 안으로 확답 주기 바라네,” “그리고 일만 성공하면 앞으로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유학하겠다면 경비까지 내가 다 책임지겠네, 만약 동의한다면 당장 각서까지 쓰겠네.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월급도 지급하고 모든 경비까지 내가 책임지겠네”  옆에서 듣고 있던 현미 과장이 웃는 얼굴로 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성 씨는 한국 유학하는 것이 제일 큰 소망이라고 말했잖아요, 호호호”  대성은 회장의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다가 벌떡 일어서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제가 비록 큰 능력은 없지만, 만약 그분이 살아 계시면 최선을 다해 동생분을 찾아서 회장님 앞에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역시 대성 씨는 기백이 있는 남자군. 꼭 기억해 둘 거는, 동생 영철은 1936년생이고 왼손이 여섯 손가락이야, 좀 특별하지, 허, 허.” 회장은 대성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마침, 단둥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친구가 있고, 인맥이 넓다고 하니 그 친구를 찾아가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대성이 짐을 꾸려 숙소에서 나왔을 때, 비가 구질구질 내렸다. 생각밖에 현미 자가용 자동차가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제가 대성씨를 기차역까지 대려다 줄께요.” 그녀는 대성 얼굴을 얼핏 보고는 머리를 돌려 막연하게 비를 맞고 있는 나무를 쳐다보았다. 그때 그녀의 눈빛은 비를 맞고 있는 축축한 나뭇잎처럼 우울하고 생기가 없었다. “아니, 일없어요. 저 혼자 버스 타고 가면 돼요. 과장님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저 같은 일꾼까지 신경 쓰시고…….” 빗방울은 쉴새 없이 승용차 유리창에 부딪히면서 미끄러져 내렸다. 그녀의 두 눈에는 애수의 그늘이 자주 스치곤 했다. 오늘따라 새 옷을 갈아입은 대성은 키가 유난히 크게 보였고 헌칠한 몸매도 의젓하고 름름해 보였다. 개찰구 앞에서 현미는 잘생긴 대성 얼굴을 쳐다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성씨가 뜨나니 내 마음이 왠지 허전하네요. 자주 전화해요. 너무 위험하면 다른 회사에 가지 말고 꼭 우리 회사로 돌아와요. 내가 언제든 반겨 줄 테니까요.”  6 대성은 단둥시에서 식당을 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는 단둥에 오게 된 사연을 얘기했다. 친구는 대성에게 북조선이 가까운 동항시에 가서 통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어선보다 조그마한 무역 배를 타면 북조선의 민간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친구는 대성에게 허 군이라는 중국 선장을 소개해 주었다. 허 선장이 자그마한 배로 무역하는데 요즘 마누라가 병으로 죽고, 좋은 통역이 없어 돈벌이가 안 되니 좀 도와주라고 했다.   단둥시에 소속되는 현급시 동항시(東港市)는 중국 해안선에서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동항시 동쪽으로는 사품 치며 흐르는 압록강이 있고, 남쪽으로는 바다 파도가 높다는 서해를 끼고 있다. 북조선 평안북도 신도군(薪島郡)은 동항시에서 손만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북조선의 에 당국에서는 평안북도의 룡천군, 신도군 인근 바다를 중국 배들이 래왕하도록 눈을 감아 주었다. 북조선 사람들이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과 중국 곡물을 바꾸는데 편리를 위한 것이다. 그 후부터 룡천군과 신도군 인근 바다는 북조선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 같이 고기도 잡고, 물물교환하는 공해가 되었다. 북조선 사람들은 주요로 해산물과 구리, 동, 철, 때로는 귀한 약초도 가지고 나왔다. 허 선장의 디젤엔진으로 추진하는 소형목선에는 백화점같이 많은 물건이 꽉 차 있었다. 입쌀, 옥수수, 콩 등 여러 가지 양식을 비롯하여 과자, 사탕, 주류, 음료수, 채소 등 부식품이 있고, 화장품과 녀자들의 액세서리 등도 진열해 놓았다. 북조선 주민들이 바다에 나올 수 있다는 자체는 행운이었다. 내륙사람들이 몹시 부러워한다고 했다. 그들이 조금씩 캔 조개와 바지락을 들고 와서 양식과 바꾼 뒤 서비스를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다. 선장이 냉정하게 거절하면, 얼마 되지 않은 양식만 배낭에 넣고 힘겹게 배에 오르는 뒷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불쌍했다.  대성은 며칠 바다에 다니며 굶어서 뼈만 앙상한 동포들을 바라보고 가슴이 아팠다. 듣는 말보다 더 처참했다. 그래서 자기 혼자 계획을 세웠다. 한국회사에서 받은 월급은 은행에 저축하고, 배에서 통역하여 번 돈은 아예 량식을 사서 선창 뒤에 따로 보관해 두었다.  북조선 로약자들을 만나면 쌀을 푹푹 떠서 배낭에 넣어 주었다. 대성은 자기가 준 쌀을 배낭에 넣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할 때 가슴이 뿌듯했다. 앞으로 돈 벌어 현미와 함께 북조선과 무역도 하고 싶었다. 자기가 돈을 많이 벌어서 아무 방법 없이 굶고 있는 동포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성에게 배려를 받은 북조선 주민들은 돌아가서 사람 찾는 홍보도 많이 해주었다. 대성이 북조선 사람들과 물물교환하다, 우연히 북조선 신도에 육십 대 되는 육 손이 아저씨가 살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태양이 솟아오르자 신도 앞바다에 숲을 이루는 칼바위 봉오리들이 하얀 바닷속에서 서서히 솟아올랐다. 만조가 된 고요한 바다 수면에는 산봉우리가 투영한 길고도 검은 그림자가 마치 거대한 구렁이들이 기어가는 것같이 물속에서 일렁거렸다.  대성의 목선은 곧바로 신도 방향으로 달렸다. 신도가 가까울수록 육손이 아저씨를 정말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겠는가, 설레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사실 다지증(多指症)은 인구의 1000명 중 2명 정도라고 한다.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도 육손인 사람을 찾기 힘든데 북조선 사람 중에서 육손인 사람을 찾았다는 거는 희망이 보인다는 징표였다.  대성은 신도의 육손이 아저씨가 진짜 B회사 사장의 친동생이라면, 하늘이 행운을 준 것으로 생각했다. 일이 잘 풀리면 한국도 갈 수 있고. 한국의 큰아버지도 찾아뵙고, 몇 년 류학하여 중국에 돌아오면……그는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오색영롱한 그림을 그렸다. 초록색 하늘에 흰 구름이 굴러가고 그 아래 푸른 바다에서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북조선 아저씨들이 통나무 쪽배에서 노를 살랑살랑 저으며 고기 낚시를 하고 있었다. 숲을 이룬 칼바위와 돌기둥 사이로 다니며 낚시하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저분들이 굶주리지만 않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대성은 혼자 생각했다. 디젤엔진의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허 선장 배가 신도 바다로 진입했다. 그들은 중국 배라는 거를 이미 알고 허 씨 배에 붙였다.  쪽배마다 아침에 낚은 싱싱한 2~3킬로 되는 송어를 꺼내 놓았다. 북조선 사람들과 물물교환 할 때, 마치 상점에 상품같이 가격이 이미 정해져 있는 만큼 흥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술 담배 같은 서비스를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징징댄다. 마침, 대성이도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기에 북조선 아저씨와 같이 식사하자면서 술과 그들이 제일 즐겨 먹는 삶은 돼지고기를 꺼내 놓았다.  그들은 푸짐하게 쓸어 놓은 삶은 돼지고기를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했다. 굶다 보니 위장이 작아졌는지, 중국인보다 식사량이 적었다. 대신 술 4병은 눈 깜박할 사이에 다 마셔 버렸다. 그들은 남은 돼지고기와 과자를 조금씩 나누어 신문지에 싸서 배낭에 깊숙이 넣고 그 위에 다른 물건을 넣었다. 사람 좋게 생긴 아저씨는 아버지가 오래전부터 고기를 먹고 싶어 했는데 이제 소원을 풀 수 있다며 하늘의 룡고기라도 얻은 것처럼 좋아했다. 한 아줌마는 내일 군대에서 휴가오는 아들에게 고기에 시래기를 넣어 푹 끓여주겠다며 기뻐했다. 북조선 사람 얼굴에 항상 수심이 어려 있고, 사람끼리 경계하고 의심이 많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 대성은 육손이 아저씨 찾는 사연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저는 중국통역 해석(바다에서 부르는 별명)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찾으려는 육손이 아저씨 외삼촌 딸 되는 분이 중국에서 돈을 엄청 많이 벌었어요. 누구든지 육손이 아저씨를 찾아 주시면 수고비를 많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 동네 가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키가 작고 야위어 뼈만 앙상한 한 아저씨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신도에 육손이 아저씨가 살고 있고 나이도 비슷하다고 했다. 고기 낚시는 하지 않고 사리 때, 갯벌에서 조개 캐러 나온다고 했다. 그 아저씨는 육손이 아저씨 옆집에 산다면서 오늘 새벽 함께 바다에 나왔다고 했다.  대성은 그 아저씨에게 술 두 병, 담배 한 보루, 그리고 바가지로 쌀을 푹푹 떠서 배낭을 가득 채워 주었다. 썰물 전에 그 육손이 아저씨를 만나러 같이 가자고 했다. 대성은 육손이 아저씨가 있다는 곳에 다가갈수록 가슴 속에 솟구치는 희열을 억제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육손이 아저씨가 탄 배를 찾았고 그 옆에 나란히 배를 붙였다.  대성은 심장이 세차게 뛰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렸다. 그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 그 육손이 아저씨와 악수했다. 먼저 손가락을 보니 여섯 손가락이었다. 나이도 비슷하였다. 육손이 아저씨는 흐릿하고 정기 없는 눈빛은 낡고 도수 높은 안경에 가려 누구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낯선 사람을 거리끼는 기색이었다. 대화가 매우 힘들었다.  묵묵히 앉아 있던 육손이 아저씨가 갑자기 손을 내밀며 술 한 모금을 돌라고 했다. 비닐봉지 술 한 봉지를 건네주자, 그는 이빨로 물어뜯고 물 마시듯 꿀컥꿀컥 마셨다. 조금 뒤, 술기운이 오르자 대화가 순리로 워 졌다.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성은 출렁이는 파도가 뱃전에 부딪히며 하얗게 부서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육손이 아저씨에게 비닐봉지 술 5개, 담배 한 보루와 배낭에 하얀 입쌀을 가득 채워 주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마음이 자꾸 울적해지고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일이 잘 안 되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를 깬다고. 신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대성은 변장한 북조선 군인들의 배를 민간인 배인 줄 알고, 잘못 붙였다가 큰 낭패를 보았다. 군인들에게 배 안에 물건을 몽땅 빼앗겼다. 대성이 성질에 가만히 앉아 그들에게 빼앗기리 만무했다. 4명과 격투하다 나무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혼미해 쓰러졌다. 너무 심하게 폭행당하여 갈비뼈 4개나 부러지고 피투성이 되었다. 때마침 중국 해경 순찰 선박이 옆으로 지나가기에 다행이었다. 대성은 난생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 단동시에서 식당 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대성이 너, 북한 군인에게 당했다며? 너 그래도 운수 좋은거야, 북조선 군인들에게 그렇게 물건 빼앗기고 맞는 거는 보통이야, 그렇다고 어디 가서 해볼 자리도 없어……. 조선족 통역 중 80%는 한 번씩 당해 보았을 거야.  다음부터 신경 많이 쓰고 조심해, 그런데 대성아! 너,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허 선장네 빛 6만 원 다 갚았다메, 허 선장 완전히 너를 신(神)으로 떠받들더라. 너, 담력 있고 장사 잘한다고 우리 식당까지 소문이 자자하게 났어. 너 때문에, 나도 장사가 더 잘 되는 거 같다. 친구야 빨리 치료받고 우리 식당에 놀러 와! 내가 단동시 제일 고급 식당에 가서 대접할게. 친구 쨔유!     7 동항시에 조선족 통역협회가 있었다. 한 달에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하면서 정보와 경험 교류를 했다. 대성은 육손이 아저씨 찾는 단서가 단절되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마침 통역들의 모임에 참가했다. 친구들에게 자기의 고민을 얘기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통역 친구가 육손이 아저씨에 대한 단서를 고맙게 알려 주었다. “남포시를 가기 전에 온천군에서 육손인 노인과 해산물 거래도 해보았는데 중국에 친척도 있다고 하더라.” 그 통역 친구는 한참 생각 뒤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포 바다에는 개방하지 않아 아무 사람이나 갈 수 없어, 오직 고속 보트만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전번에 우리가 보트에 물건을 잔뜩 싣고 돌아오는데 북조선군대가 목선으로 쫓다가 안 되니 총으로 사격하고 포까지 쏘았던 거야, 선장 허벅지에 총알이 관통하여 많은 고생을 했어.” 그러나 대성은 보트를 임대해서라도 꼭 가야겠다고 하자, 통역 친구가 함께 남포 바다에 다니는 다른 보트 통역이 북조선군대 총에 상처를 입어 병원 치료를 받고 있으니 그 보트 선장을 찾아가서 연락해 보라고 했다. 대성이 보트 선장을 찾아갔을 때, 통역 친구가 미리 선장에게 소개했었다. 대성은 이 바닥에서 장사를 잘한다고 선장들에게 인기가 좋다 보니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일주일 뒤, 대성은 고속 보트를 타고 남포 바다로 갔다. 비록 새로 구매한 고속 보트지만 외부에 총알 맞은 구멍과 포탄 파편에 찢어진 자리가 력력히 보였다.  남포 특별시는 수도인 평양과 해외를 연결하는 관문이자 북조선의 가장 중요한 무역도시이다. 고속 보트가 한 시간쯤 달리자 푸른 바다에 북조선의 작은 고깃배들이 보였다. 대성이 보트는 작은 섬 사이로 다니며 수산물거래를 했다. 북조선의 남포시 방향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거는 아주 위험한 도전이었다. 위험한 만큼 싱싱한 해삼, 골뱅이 등 조개류와 해산물을 저렴하게 곡물로 바꾸어 올 수 있다. 남포 바다에 가려면 목선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고속 보트로 남포 바다 범바위까지만 들어가면 싱싱한 해산물을 잠깐 사이에 선창을 가득 채울 수 있다.  계산이 끝나자 북조선 어부들이 아침밥을 못 먹었다며 빨리 식사를 하자고 졸랐다. 소고기볶음, 삶은 돼지고기 그리고 구운 닭고기에 술까지 마음껏 먹으라고 주었다. 금방까지 먹구름 끼었던 얼굴이 환해지고 눈빛이 반짝이었다. 그들은 조금씩 맛만 보고 더 먹지 않고 나누어 제각기 배낭 속에 넣었다.   대성은 담배 한 보루와 과자, 사탕을 꺼내 갑판 위에 놓고 어민들에게 사람 찾는 데 도움을 청했다. 찾아 주신 분에게 수고비를 돈이나 량식으로 섭섭하지 않게 주겠다고 했다. 듣고 난 그들은 집에 돌아가면 다른 일을 제쳐 놓고 육손이 아저씨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때였다.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오십 대 중반 되는 아줌마가 중요한 단서를 알려 주었다. 육십 대 되는 육손인 노인 한 분이 자기 며느리 친정 동네, 온천군에 살고 있다고 했다. 오늘 군대 초소에서 같이 바다로 나왔고, 그 사람은 자기 동생과 함께 다른 섬으로 갔다고 했다.  보트로 가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으니 지금 그곳으로 가면 육손이 아저씨를 만날 수 있다 했다. 대성은 그 아줌마에게 쌀 한 포대 주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 자그마한 섬을 몇 개 지나가자 넓은 갯벌이 나타났다. 북조선 사람들이 밀물이 서서히 차오른 갯벌에서 단골 중국 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성이 보트가 밀물 따라 그들에게로 다가 갔을 때, 배들이 서로 다투며 보트 옆에 붙였다.   대성은 육손이 아저씨를 만나 보았다. 아저씨와 악수를 하며 손가락을 보니 손가락이 여섯 개는 분명했다. 자세히 물어보니 그는 중국에 친척은 있으나 본적은 남포시라고 했다.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 쌀 한 포대와 사탕 한 봉지를 주었다.  남태일 약력 :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 시, 소설 등 수십 편 발표. 수상 다수 동북아신문
메인(Maine)주는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의 가장 북쪽에 있는 주로 주도는 오거스타이다. 남쪽과 동쪽은 대서양에 닿아 있으며, 북동쪽은 캐나다의 뉴브런즈윅, 북서쪽은 퀘벡 북서쪽과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는 미국 뉴햄프셔주와 경계를 하고 있다. 아카디아 국립 해상공원과 바닷가재의 주산지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미국 50개 주에서 크기로 39위에 불과한 아주 작은 주이다.   필자는 뉴저지주 공립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작은딸과 주말을 이용하여 뉴저지 집을 출발해서 뉴욕주를 걸쳐 미국의 탄생지 뉴잉글랜드인 코네티컷주, 매사추세츠주를 거쳐 메인주 포틀랜드에 도착했다. 뉴잉글랜드는 3개 주 외에 뉴햄프셔주, 로드아일랜드주 등 총 다섯 개의 특별한 주로 구성되어있다. 가는 도중 평소 관심이 많은 코네티컷주에 있는 예일대학(1701년),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하버드대학(1639), 매사츠세츠공대(1865)을 구경하면서 오랜 전통을 가진 세계적인 대학들의 개척자적 정신과 캠퍼스 향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유학 시절 우연히 어느 신문에서 감명 갚게 읽고 필자의 뇌리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생각나게 하는 롱펠로우(Henry W. Longfellow) 집을 여행 중 꼭 가보고 싶었다. 롱펠로우가 75세가 되어 그의 임종이 가까운 어느 날 어떤 기자가 그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부인의 사별뿐 아니라 여러 가지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쓸 수가 있었습니까.”롱펠로우는 마당에 서 있는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옛 가지에서 새 가지가 조금씩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도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새 생명을 끊임없이 공급받아 인생의 새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대 문호 톨스토이는 “고통은 깨달음을 준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후에 우리는 진리 하나를 얻는다. 만약 지금 당신에게 슬픔이 찾아왔다면 기쁘게 맞이하고 마음속으로 공부할 준비를 갖추어라. 그러면 슬픔은 어느새 기쁨으로 바뀌고 고통은 즐거움으로 바뀔 것이다.”라고 말했다.   롱펠로우는 1807년 2월27일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당시 매사츠세츠)에서 질파 워즈워스 롱펠로와 스테판 롱펠로의 8명 자녀 중 둘째 아들로 출생하여 만 75세인 1882년 사망했다. 양부모 모두 명문가 출생이었으며 뉴잉글랜드 지방 초기 정착가들의 후손이었다. 그는 학문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6세에 라틴어에 아주 능했다고 한다. 당대 롱펠로는 미국의 어느 시인도 누려보지 못한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그를 “불멸의 왕관을 쓴 시인”으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의 시는 단순한 리듬과 강한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진설명: 메인주 최초의 하우스 박물관으로 미국 시인 헨리 롱펠로우가 자란 곳. 이 집은 Peleg Wadsworth 장군에 의해 1785에 지어졌음. 1807에 태어난 헨리는 이 집에서 자랐음. 헨리의 여동생 인 앤 롱펠로 우 피어스는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살았음. 이 집에는 식물원이 있어 많은 나무와 꽃들이 있음   미국 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그의 흉상이 비치되고 있다. 그는 당대에 “에반젤린”, “인생찬가” 등과 같은 명시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고 또한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신곡을 포함한 단테의 문학작품을 완벽하게 번역한 충실한 학자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시인이자 교육자이다. 그는 또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예 코미디(Dante Alighieri's Divine Comedy)를 번역한 최초의 미국인이었으며 뉴잉글랜드 출신의 노변 시인의 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녔으나 아버지 권유로 교사가 됐다. 1825년 메인주에 있는 보드윈대학(Bodwin University)을 졸업하고 1929년까지 유럽을 여행하면서 스페인어, 불어, 독일어, 이태리어, 라틴어 등 8개 국어를 익혀 뛰어난 어학실력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어학실력으로 후일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게 되었다. 유럽 여행 중 많은 것들을 유적과 문화유산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이 경험은 그의 문학에 대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제까지 상상 속에 들어있었던 파편화된 세계의 이미지들과 테마에 역사성을 부여해 구체적으로 구성해 나갔던 것이다. 그는 보드윈대학에서 8년 동안 근대어를 가르치면서 문학에 대한 혼을 깨우기 위해 유럽여행을 떠나는 등 문학에 대한 많은 지식을 착실하게 쌓아나갔다. 1835년 매리 포터와 결혼한 후 첫 출산을 앞두고 함께 유럽을 여행하는 중 출산하다가 그의 아내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사랑의 이별은 롱펠로우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사랑의 아픔은 오랜 고통의 시간을 거쳐 10여년 후 아름다운 사랑의 대서사시 ‘에반젤린’을 탄생시킨다. ‘에반젤린’은 알프렐여사와 재혼하고 4년여 시간이 흐른 후 마음에의 평화를 찾은 때 씌어졌다.    그는 하버드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1854년까지 18년 동안 현대 언어학, 프랑스어 등을 가르쳤다. 이후 문학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에서 물러나 창작에만 온 힘을 쏟았다. 1842년 ‘노예의 시’를 시작으로 많은 시를 발표했다. 다른 나라의 민요를 번역하기도 하고 민요를 바탕으로 작품을 쓰기도 했다. ‘밤의 목소리’, ‘마을의 대장간’, ‘불루우즈의 종탑’, ‘노예의 시’, ‘노번여인숙 이야기’, ‘하이와사의 노래’, ‘마일즈 스탠디쉬씨의 청혼’ 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대가의 명성을 얻게 된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찬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그의 부인인 알프렐 여사가 드레스에 불이 붙은 채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파머를 위해 밀랍향초에 불을 붙이다 드레스에 불이 옮겨 붙었던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사랑하는 부인이 그의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큰 화상을 입었으며 이로 인해 서서히 죽어갔다. 이 모습에 또 한 번의 큰 충격을 받았으며, 마음에 가득 찬 번뇌와 아픔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가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면서 천상의 장면을 무서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부인과 이러한 경험들과 아픔이 많이 작용하였던 것이다. ‘신곡’은 이탈리아어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 되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원본보다 더 훌륭하게 번역해 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는 험난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 운명들을 정면에서 극복하고 돌파해 나갔다. 운명 앞에 당당하게 맞섰으며,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았다. 인생의 황혼기에 잃은 두 번째 부인으로 인해 더욱 영적으로 깊은 삶을 살았으며, 성자와 갈은 생활을 했다. ‘인생에 대한 찬가’가 위대한 것은 이러한 단장(斷腸)의 깊은 슬픔을 찬란한 슬픔으로 바꾼 문학의 힘이 더 위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인간의 한계와 비애를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대한 찬가를 노래했다.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아라. 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니 만물의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중략---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매장하라! 활동하라, 살아 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코로나19시대에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중장년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선지자적 가르침인가!   롱펠로우는 〈비 오는 날〉에서 ‘슬픈 마음이여! 한탄하지 말라’고 노래한다. “내 인생 춥고 어둡고 쓸쓸도 하다. 비 내리고 쉬지도 않고. 중략---조용하거라, 슬픈 마음들이여! 그리고 한탄일랑 말지어다.  구름 뒤에 태양은 아직 비치고 그대 운명은 뭇 사람의 운명이러니. 누구에게나 반드시 얼마간의 비는 내리고  어둡고 쓸쓸한 날 있는 법이니.”   인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적극적으로 보았던 롱펠로우는 사랑하는 첫 번째 부인 매리 포터와 사별하고 그 아픔을 승화시켜 사랑의 장편 대서사시인 ‘에반젤린’을 쓰게 된다. ‘에반젤린’은 1755년 아카디아(지금의 노바스코샤)의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영국군에게 쫓겨 강제로 이주 당했을 때의 실화를 배경으로 쓴 시로 아카디아 지방 초원에 있는 마을을 배경으로 대장장이의 아들 가브리엘과 부유한 농부의 천사같이 아름다운 딸 에반젤린의 구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목가적인 그랑프레 마을의 젊은 남녀 가브리엘과 에반젤린은 결혼식 날 영국군이 마을을 점령하자 추방당하여 이별을 하게 된다. 오랜 세월 남편을 찾아 미국 각지를 떠돌던 에반젤린은 악성 전염병이 돌던 필라델피아의 의료원에서 환자를 간호하던 중 죽음에 임박한 남편을 만나게 됨을 그리고 있다. ‘에반젤’에서 에반젤린의 남편으로 묘사된 실제 인물 루이 아르세노가 노바스코샤에서 추방된 후 살았던 집으로 여겨지는 집이 미국 루이지애나주 남부 세인트마틴빌 북쪽에 있는데, 이곳을 ‘롱펠로 에반젤린 주립 기념지역’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롱펠로우처럼 시련을 극복하면서 자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실행한다면 우리도 보람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1박 2일 일정으로 500마일(800km), 2,000리 길, 힘든 여정이었지만 유별나게 붉은 석양을 바라보면서 롱펠로우와 그의 가족들이 생활했던 집을 뒤로하고 뉴욕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서 필자는 앞으로의 인생여정을 깊게 생각하는 계기를 가졌다. 긍정적인 삶과 쓰라린 고통의 속에서도 아름다운 시를 쓴 롱펠로우를 생각하면서! (끝)동북아신문 이남철(경제학 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교육과학부 자문관)
200    김성우 I《시경》과 술문화 댓글:  조회:153  추천:0  2022-02-23
《시경》과 술문화 김성우   중국의 술문화 현상을 최초로 문학작품에 진실하게 묘사하고 반영한 것이 바로《시경(诗经)》이다.    중국 고대사회에서 생활의 ‘백과전서’라고까지 불리는《시경》에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민속문화 내용이 담겨져있어 후세의 민속문화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를 제시해주고 있다. 특히 술에 대한 시가 아주 많은데 술을 빚고 마시고 하는 옛사람들의 생활이 폭넓게 반영되여있다. 술을 언급한 시만도 50수가 넘는데 그중 한수만 맛 보기로 하자.    안해가 멀리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된 시〈권이(卷耳)〉는 도꼬마리 뜯는 녀인의 갖가지 상상을 통하여 남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표현하면서 더해가는 시름을 술로써 풀려 한다.    저기 가파른 바위산에 올라가려니  내 말은 지쳐서 휘청거리네  나도 잠간 청동술잔에 술을 따라서  오래된 이 그리움 잊어나 볼가  (陟彼崔嵬,我马虺隤。 我姑酌彼金罍,维以不永怀。)    저 가파른 산등성이에 올라가려니  말이 지쳐서 털빛이 검누렇게 되였네  내 잠간 소뿔잔에 술을 따라서  오래된 이내 시름 달래나 볼가  (陟彼高冈,我马玄黃。 我姑酌彼兕觥,维以不永伤)   간추린 통계에 의하면《시경》에 술 ‘주(酒)’자가 나오는 곳만 60여곳이 된다. 그중〈아(雅)〉에서만 50여곳이 된다. 시경에는 술의 뜻으로 씌여진 글자가 ‘주(酒)’뿐만 아니라 ‘례(醴)’, ‘고(酤)’ 등 여러 글자들이 있다. 이외 제사를 지내고 연회를 베풀고 하는 등 술과 관련된 내용만 해도 100여곳이나 된다. 그리고 제사에 쓰이는 술 기명들의 명칭도 수태 나온다.     중국 고전문학에서 시 300편으로 사실주의문학의 시조로 추앙받는《시경》이 이렇듯 술에 관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것은 고대사회에서 술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점에서 일부 학자들은 지어 “《시경》은 ‘주경(酒经)’이다.”라고도 말한다. 일찍 청조 때의 학자인 요제항(姚际恒) 은《시경통론》에서  “《시경》의〈빈풍 칠월(豳风ㆍ七月)〉은 마치 한권의 술에 관한 경전 같다.”고 말한바 있다.    《시경》에서 술은 또한 ‘지주(旨酒)’, ‘청주(清酒)’, ‘시주 (酾酒)’ 등으로 감칠맛 있게 노래되고 있다.    옛날, 가장 중요한 일은 전쟁과 제사였다. 술이 당시 제사 같은 아주 중요한 행사에 씌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여기에서의 경로의 뜻은 한층 더 경건한 것이리라.    술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은 확실한 정설이 없으나 동방에서 문자기재로 가장 일찍한 것은 갑골문의 표기인데 거기서 술은 ‘유(酉)’로, 즉 용기모양으로 새겨져있다. 그런데 갑골문의 대부분 내용은 제사와 점복이다. 그러니 사실상 술은 썩 더 이전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술은 신의 음식으로 신과 통하는 매개로 작용하였기에 부족내에서 술을 관할하는 자 역시 그 신임과 지위가 대단하였다. 부족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추장’이라는 의미의 ‘추(酋)’ 자도 술(酒)과 련계되여있고 술을 관할하는 자는 ‘대추(大酋)’로 불리였다. 그러고 보면 ‘존경’의 높을 ‘존(尊)’도 술과 관계가 있은 것은 물론 높직하고 굵직한 행사에는 모두 술이 돌려졌던 것이다.        옛날(은나라와 주나라 시기) 술은 전부 알곡 혹은 과일류로 빚어진 것이였다.    《시경》에는 술이 제사에 쓰이는 대목이 많은데 제사외에도〈빈풍 칠월〉처럼 농가의 로인을 공양하는 장면에도 나오고 있다. 주나라에서도 음주가 성하였는데 이는 농업의 자급자족으로 알곡생산의 풍요로움과도 관계가 되며 특히 지금 말로 하면 산 사람을 위한 술의 양생학적 기능에 대한 연구가 발전한 것과도 관계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시경》에는 술과 더불어 이제는 귀신을 즐겁게 하는 것외에도 산 사람의 수명을 축원하는 단어들도 나온다.   ‘만수무강(万寿无疆)’이니 ‘수고만년(寿考万年)’ 같은 말들 모두가 술과 함께 《시경》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꼭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으니〈빈풍 칠월〉의 ‘봄술’이 겨울에 빚어서 봄에 걸러 마시는, 한자로 ‘醪(료)’라고 하는 것으로 바로 우리말의 ‘막걸리’라는 것이다. 계정
199    등산의 즐거움 댓글:  조회:147  추천:0  2022-02-21
등산의 즐거움 심련희    요즘 도시에서 류행되는 것이 웰빙열풍이다.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현대인들의 삶은 보다 풍요롭고도 여유로와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건강에 대한 관심도도 점점 높아져가는 추세이다. 등산은 이런 웰빙열풍이 불기 오래전부터 취미 혹은 레저스포츠의 한 부분으로 사람들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왔다. 새벽에 약수를 뜨러 앞산, 뒤산에 오르던 데로부터 취미의 령역을 넘어서서 멀리에 있는 높은 산을 등정하기까지 등산은 이제 생활스포츠의 한 부분으로 완전히 전향되고 있다.   등산은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최대의 건강증진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렇다면 겨울 등산의 묘미는 과연 어디에 있을가? 색다른 호기심을 품고 연길시 의란진의 구룡산을 톺아오르기로 결심했다.   아홉갈래의 골짜기가 줄기줄기 뻗어있어 마치 아홉마리의 룡이 산봉으로부터 산발을 타고 내리는 형상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여진 구룡산은 매우 매력적인 산이다. 오전 9시 반,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차에서 내리자마자 산간의 찬 공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자 상쾌한 공기와 청량한 기운이 주위를 맴돌았다. 소복이 쌓인 눈을 자박자박 밟으며 반시간 정도 산을 오르니 몸이 후끈후끈해나면서 추운 느낌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릉선을 따라 눈 쌓인 겨울산을 오르는 것은 따뜻한 실내에서 느낄 수 없는, 가슴속까지 뻥 뚫어주는 시원함을 만긱하는 순간이였다.   병풍처럼 둘러선 산자락을 에돌아 그 정상인 구룡봉에 가까와오자 등산길은 점점 더 가파로와지기 시작했다. 배낭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노라니 숨이 차오르고 다리의 근육통도 심하게 느껴졌다.        드디여 정상에 올랐다. 자연만을 무대로 하여 상대한다는 점에서 등산은 다른 스포츠와 구별된다. 정상을 정복함으로써 자신의 용기, 체력, 기량 등을 체크할 수 있고 또 험난한 산봉우리를 정복하였다는 그 쾌감과 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전률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산에 올라가는 동안은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도 싶었습니다. 허나 그 힘듦을 이겨내고 정상에 올라가 맞는 바람의 상쾌함은 나로 하여금 등산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하였습니다. 등산을 시작하고 나서 10년은 더 젊어진 것 같습니다.”며 일행중의 한명이 정상에서 느끼는 희열을 토로하였다.   등산은 스트레스로 찌든 현대인 특히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삶의 균형을 찾아주며 자연 친화적인 공간에서의 여가생활을 시원하게 선사해준다. 더우기 하루종일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이나 서서 일하는 근로자의 만성피로감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고 스트레스 해소, 우울증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등산은 장시간 걷는 유산소운동이기에 심페기능향상, 근력강화 등에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구룡산을 내려오는 걸음은 분명 신선의 발걸음이였고 기분은 훨훨 나는 나비를 방불케 했다. 나는 더없이 좋은 경험을 하였다. 나도 이제부터는 산을 오르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의 한 사람이 될 것이다.
198    수필 - 꽃길을 걸으며 댓글:  조회:240  추천:0  2022-02-18
수필 / 안수복   꽃길을 걸으며       하루에 최소한 두번은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다. 꽃길을 걸으며 출퇴근한지가 벌써 4년 철이 되여온다. 집과 가게 사이에 생겨난 이 작은 공원의 꽃길, 봄이면 의장대처럼 잘 진렬되여 심은 꽃나무들이 너도 나도 뒤질 세라 붉은 꽃을 활짝 피워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연분홍진달래가 무더기로 활짝 피여난 것 같다. 머리만 들면 온통 분홍빛이다. 여름에는 파란 잔디 우로 유난히 이색적인 꽃들이 방긋방긋 인사를 건넨다. 옛날에 산동네였는지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여 아름답게 펼쳐지는 진풍경들을 뒤로 보내며 걷다 보면 숨박곡질하듯 불쑥불쑥 만나는 꽃들중에서 노란꽃들이 참 많다. 꽃다지, 냉이, 민들레, 씀바귀, 고들빼기꽃들이… 가을에는 화단에 심어놓은 각양각색의 국화꽃과 더불어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일매지게 자란 나무잎들이 붉고 노란 단풍으로 길손들의 마음을 끝없이 일렁이게 한다. 겨울에는 소복소복 내리는 흰눈이 마치 천사의 날개옷이 떨어져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여난 것처럼 나무잎을 죄다 떨구고 잔가지 훤히 보이는 라목에 매혹적인 눈꽃을 소담스레 피워 한껏 겨울의 정취를 돋우어준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랍도록 감사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또는 삶의 방향과 새로운 발견의 길이기도 한 것 같다. 길을 걸을 때는 누군가의 동행이 있어야 하지만 동행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나무 하나, 풀 한포기, 꽃 한송이, 작은 돌 하나, 솔솔 부는 바람이나 저 하늘에 흐르는 별빛까지도 훌륭한 동행이다. 그래서인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겨울에도 꽃길을 걷노라면 저도 모르게 봄날의 향연을 느낀다. 마치도 봄이면 뾰족하게 솟아나는 파란 쑥이나 조뱅이, 소라지, 능쟁이, 토끼풀, 쇠비름 같은 풀들의 봄내음을 맡으며 봄날의 정취에 흠뻑 취하게 되는 것 같다.   꽃길, 아무리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고 있어도 가슴 속에 한송이라도 꽃을 키우고 살아가면 그 길은 꽃길인생일가?30년을 한 우물만 파며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헤쳐온 지난날들은 결코 꽃길만이 아니였던 것 같다. 인생에 지름길은 없다. 무수히 많은 조각들을 밟고 지나가야 만했던 그 길은 수많은 암초와 낭떠러지, 위험과 추락이 동반된 가시덤불길이였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 아니라고 방황하거나 불평한 적도, 황량한 길이라고 주저앉거나 바꿔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혹한을 참아낸 들꽃의 생명력이 더 강하다고 삶이라는 사막에서 용케도 악착같이 살아남은 나다. 봄이면 저 꽃길의 팝콘처럼 다닥다닥 꽃을 피워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매혹적인 분홍꽃나무나 나무줄기에 찰싹 달라붙어 눈이 부시게 새하얀 꽃을 피운 몽글몽글한 오얏꽃이 아닌 밟히면 밟힐수록 더 끈질기게 살아남아 봄부터 늦가을까지 행인들에게 웃음을 보여주는 저 노란 민들레꽃이나 씀바귀꽃 같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원의 꽃이 가슴 속에서 싹 트고 자라나고 있었음을 이 꽃길을 걸으며 비로소 터득하게 되였다.   누군가는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꽃이 피여난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꽃들을 생각하며 걷는 길일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한마디로 꽃길만 걷는 인생, 무척 랑만적이고 행복하고 복 받은 사람만이 걷는 일 같다. 하지만 인생은 뒤로 걷는 꽃길이나 예측할 수 없는 빗나간 삶 같다고 할가? 잠시나마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꽃 무지개 꿈의 인생길을 걷는 것처럼 위안이 된다. 흰 소의 기운으로 보다 상서롭고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은 요즈음 매일 아침 핸드폰을 펼치면 모멘트나 카톡에서 친척 친구, 지인들로부터 “좋은 아침, 새해는 꽃길만 걸으세요. 사랑합니다.”하는 가슴 뭉클한 문자 메시지나 축복의 인사말을 전해 받을 때면 감출 수 없는 솟구치는 감동과 파도처럼 일렁이는 설레임, 알 수 없는 행복과 무언의 기쁨이 활력소로 승화 되여 저도 모르게 온하루 사랑의 도가니에 빠져 랑만과 즐거움을 만긱하게 된다.    꽃길만 걷자는 말, 꽃길이라 함은 꽃과 함께 걷는다는 말일 수도 또는 인생에서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살자 라는 중의적 표현이리라.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 길이든 행복하지 않는 길은 없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선택의 순간 갈림길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찬비에 우수수 떨어진 꽃잎일지라도, 꽃잎 가득 채워진 아름다운 꽃길 아니래도 꽃길만 걷고 싶다.   삶이란 예상보다 더 잔인한 것, 때론 고독이, 고행이 극한에 달한다. 20년 전 십년나마 피땀을 쏟아 십만여원을 투자해 어렵게 마련한 가게를 한번도 아니고 련속 두번이나 상상도 못한 단돈 2만원이라는 헐값으로 파가이주통지서를 받았을 때, 예고없이 방문한 불행의 그 황당한 쓰나미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직 잘살아보겠다는 소망 하나로 출근하던 공장이 파산되자 한돌 되는 아들애를 둘쳐업고 부부가 십여년을 밤낮없이 손발이 터지게 애면글면 아등바등 악착스레 경영해온 생명줄과 다름없는 음식점 가게였다. 소도시발전계획의 수요라지만 너무 억이 막혔다. 30만원에 맞먹는 1, 2층으로 새로 완공된 그 자리에서 다시 영업하자니 2만원의 파가이주비는 보탬은 고사하고 가게 장식재료 값으로도 엄청 부족이였다. 되려 고슴도치 외 따지듯 수십만원의 빚만 잔뜩 걸머졌다.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듯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량가부모님들은 년로하고 중병으로 매일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갔다. 실로 촌보난행이였다. 그러나 생존본능이라 할가 살기 위해 해볼 건 다 해보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우리 부부는 사처로 뛰여다니며 은행에 대부금을 신청한다 고리자돈을 얻는다 가게 규모를 확대한다 경영항목을 늘인다 하면서 밤낮으로 고군작전을 펼쳐 코에 넣은 생콩이 익도록 생존이라는 들판을 치렬하게 뛰였다. 뭐든 하나에 전념하면 통달한다더니 하도 악착같이 버티고 열심히 애쓴 보람으로 가게경영아마추어에서부터 일약 프로로 도약해 시작할 때는 30평 되나마나한 코구멍 만한 세집부터 시작한 가게지만 30년이 된 지금에는 가치가 수백만원이 되는 가게로 탈바꿈 했다. 도시에 가게 하나 차리는 것이 인생의 작은 소원이고 핑크빛 꿈이였는데 그 소박한 소원과 꿈이 드디여 저 꽃길의 아름다운 붉은 꽃으로 피여난 것이다.    그래서 꽃길을 걸으며 꽃처럼 살짝 웃어본다. 꽃이 피여난 리유와 꽃이 피는 그 진가를 터득하고 있기에.   꽃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 힘들다.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일이 내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요즈음 우리 동네에는 ‘꿈에 그린 집’이라는 영업집이 오픈했는데 지날 때마다 은은하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게의 인테리어에 저도 모르게 자석에나 끌린 듯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비밀을 간직한 숲처럼 내부시설이 마치 공원의 꽃밭이나 벤치에 앉아 커피나 차를 홀짝이는 것처럼 편안하고 정교한 폭신한 의자들에서 여유로움이 물씬 풍긴다. 가게를 리용하는 젊은 고객들을 상대로 아이들의 놀이터마저 아이들의 동심이나 취미에 맞게 꾸며 놓아서 아늑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아이 손목을 끌고 산책하러 나온 부부들의 편안한 쉼터로도 되였다. 꽃잎처럼 예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주인이 진정 돋보인다. 꽃처럼 화려하게 보여도 걸어온 꽃길에는 수많은 곡절과 힘들었던 사연 그리고 숨은 노력이 깔려있으리라. “부모의 혜택이나 외국나들이도 없이 애 둘을 낳아 키우며 창업해서 모은 돈으로 가게를 오픈했다는 젊은 부부의 ‘꿈에 그린 집’가게, 어쩌면 내 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꿈에 그린  집’을  그려보며 꽃길만 걷기를 소망한다. 생물학적으로 그 의미가 무엇이든 꽃의 미덕은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뿌리와 잎이 혼신의 힘을 다해야 꽃이 피는, 그리고 꽃이 제 생명을 다 바치고 시든 다음에야 열매가 맺히는 것이 고단한 현실임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걸으면 생각이 새로워지고 만남이 새로워지고 느낌이 달라진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연과 함께 동화되는 것이며 삶의 뒤안길을 보는 것이다.   추억의 그림을 한걸음 한걸음마다 그리며 길을 걸어온 세월의 향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인생에 한번 쯤 꽃들이 물들이는 길 우에 마음 가득 향기를 담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걸림돌을 디딤돌로 생각하며.   《도라지》2021년 4기(계정)  
197    의뢰인 댓글:  조회:282  추천:0  2022-02-18
의뢰인 □현청화   생명공학이 고도로 발달한 2522년. S시 생명과학연구소에서는 한 특별한 의뢰인을 맞이했다. “그 일이 발생한 후 단 한순간도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어요.” 눈앞의 녀인은 곧 쓰러질 듯 가녀린 모습을 한 채 눈물로 호소했다. “다 제 탓이였어요. 제가 한눈만 팔지 않았더라면… 하루, 아니 단 한시간만 다시 제 딸을 볼 수 있게만 해주세요. 그 대가로 내 목숨을 송두리 채 내놓는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뉴스에서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그게 원칙을 어기는 일이라는 건 알아요. 그래도 세상 일에는 원칙보다는 례외라는 것도 있는 법이잖아요.” 권소장은 임비서에게 눈짓을 했다. 임비서는 얼굴을 막고 오열하는 녀인에게 커피를 타주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그는 담배 한가치를 꺼내들었다. 연기도 나지 않고 니꼬찐 함량이 제로인 전자식 담배지만, 그 맛은 완연하게 오리지널 담배 맛을 닮아있었다. 산업화가 발전할수록 물질문명이 특이점에 가까워졌고 과거 감성에 대한 사람들의 의존과 추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례를 들면 백년 전에 사라졌던 커피가 다시 테이블에 등장했고 200년 전에 사라졌던 전자담배가 다시 사람들의 손에 들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옛것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다만 물건에만 제한된 게 아니였다. “엄마를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사랑하는 그녀와 작별인사도 못했어요.”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그동안 무수한 의뢰인들이 찾아왔지만 그의 간단한 한마디에 망설이다가 돌아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회한은 회한 대로 남겨야 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였다. “그렇다면 뉴스에 발표한 의미는 뭐죠?” 임비서도 궁금했는지 그에게 물었다. “범죄 수사를 돕기 위한 발표야. 수사 협조기관으로서 의무를 한 거지. 세간에서는 흔히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들 하는데 이제 그 규례를 깨고 죽은 사람에게 말을 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려야 범죄가 줄어들 게 아니야.” 의학이 발전하고 시약이 업그레이드 되자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암 바이러스 같은 건 사라졌고 대신 범죄와 심리질병이 창궐했다. 최첨단 과학기술은 교통사고나 자연재해 같은 것만 예고해서 사고를 대처할 수 있을 뿐, 지금 눈앞에 있는 녀인의 딸처럼 우울증 판정을 받고 고층 건물에서 뛰여내려 유명을 달리한 사실은 개변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묻고 싶었어요.” 녀인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임비서가 커피 한잔을 더 가지고 들어왔고 그녀가 비운 커피잔을 내갔다. “성적이 내려가서 조금 꾸지람한 게 다예요. 아무리 과학적으로 모든 지식을 시스템에 입력하는 세월이긴 하지만 뇌를 전혀 쓰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어찌 그런 모진 선택을…”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습니다.” 권소장은 드디여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찾아온 의뢰인들은 다 어머님처럼 자기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였어요. 고인이 된 분을 굳이 소환하게 되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뉴스에서 보시다 싶이 우리는 고인을 소환하는 데 불변의 법칙 즉 생명공학의 륜리원칙을 따라야 하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녀인이 다시 눈물을 쏟으면서 소리쳤다. “그 애는 내가 자길 싫어하는 줄 안단 말이예요! 그게 아니라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거예요. 그 애가 상상한 그 이상으로!” 그는 담배 한모금을 깊숙히 빨았다. 비록 연기가 나지 않았지만 그 고유의 혼탁한 맛은 그의 판단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생명공학이 어떻게 발전을 하든 생명의 륜리와 사망의 존엄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이 시대의 과학자들에게도 하나의 과제로 남은 신성불가침의 령역이 될 것이다. 한편 임비서는 의뢰실 밖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경찰서죠? 녀고생 추락사고 용의자 제보입니다. 커피잔에 남은 조직세포의 DNA가 녀고생 손톱에 끼인 살갗의 DNA와 동일하다는 분석결과가 나왔습니다. 네? 다른 증거요?” 임비서는 의뢰실 쪽을 한번 쳐다본 후 덤덤히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을 소환하는 게 가능한지 떠보는 사람은 있었어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걸 감수하고 고인의 하루 시간과 맞바꾸는 의뢰인은…단언컨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연변일보  
196    착각하는 유리와 착각하는 우리(외1수) 댓글:  조회:132  추천:0  2022-02-17
착각하는 유리와 착각하는 우리(외1수) 변창렬 핏줄을 감추려고 투명하게 웃는 게 유리다 무드러진 잔금을 없어지게 자신을 잠금해놓은 유리   핏줄이 튀어 나올까봐 평면으로 깔아 온 자신의 주름살 마주 보는 눈빛으로 반듯하게 오려준다   네모 속에 가둔 하늘 빛조차 집이라고 착각할 유리창 놀라서 꼰드라지더라도 낯빛은 변하지 말자고 투명하다   표정이란 숨길 수 있다는 진리를 혼자서 터득하는데  번개와 벼락이 도움 컸으리라 믿고 와장창 갈기는 날씨를 기다리고 있다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평면으로 완성이 된다고 무표정스레 살면서 햇빛으로 낯가림하는 묘법을 해맑은 반사로 가르쳐준 괴물   부서져도 조각으로 살아남는 비법을 모방하고 있는 인간들이 투명한 척 착각하는 인내성을  어김없는 표절하며 산다       폐점 된 지하의 헌책방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들의 유서가 누웠거나 섰거나 가득하다 책 껍데기는 서글픔이 부풀어 있다   대 시인께서 싸인해준 육필마저 근들이로 팔려 온 고물 반에 반값에 묶여 온 책은 재활용으로 사와서 다시 쌓여 있다   가파로운 계단 밑바닥에서 더는 물러날 곳 없다 나란히 쌓여 있는 공동체 머리카락이 희도록 갈고 닦은 시가 폐지로 다시 실려 가기 직전이다   묻혀서 아직 썩지는 않았으나 썩으면 어떤 냄새 날까 갑골문 냄새를 되새기는 흙은 아니겠지   내려오던 계단으로  다시 올라갈 글 햇빛에 곰팡이 말리는 헌책방 트럭 하나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송화강》2021년 6기  
195    친구 집의 냥이 ‘후우’ 엄정자 / 수필 댓글:  조회:191  추천:0  2022-02-14
친구 집의 냥이 ‘후우’   엄정자 / 수필   내가 ‘후우’를 처음 본 것은 10년 전이다. 일본조선학회 학술회의에 참석하러 도꾜에 갔다가 친구집에 들렸을 때이다.   역까지 마중 나온 친구를 따라 집에 들어서니 난데없이 “야옹-” 하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는데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웬 고양이 소리?” 하는 내 물음에 친구가 “버려진 길고양이를 주어와 키우고 있어요.” 하고 대답한다.   동네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끈끈이 쥐덫’에 붙어서 죽어가는 아기고양이를 발견했는데 어린 생명이 불쌍해서 집에 데리고 왔다고 한다. 원래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친구였지만 고양이를 살리려고 고무장갑을 끼고 가위로 끈끈이에 붙은 털을 한곳한곳 베여내여 구출해냈다. 바들바들 떨며 일어서지도 못하는 고양이를 종이에 싸안고 그길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입원시키고 길러줄 만한 주인을 찾았지만 한쪽 털이 다 잘려 못생겨진 고양이를 기르려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입양시킬 곳을 찾지 못한 친구는 결국 자기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였다. 친구는 조용하던 자기 생활에 한줄기 바람같이 나타난 고양이라고 ‘후우风’라는 일본어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날 저녁 그동안 그립던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친구 침대를 차지하고 누웠다. 그때까지 침대 밑에 숨어있던 후우가 불을 끄자 나오더니 엄마 찾는 아기마냥 “야옹, 야옹”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침대 아래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웠던 친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고양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후우야, 저 사람 이모야, 무서워하지 마.”   “후우야, 밥 줄가? 배고파?”   “후우야, 여기 와. 안아줄가?”…   고양이와 친구의 대화는 밤새 이어졌다. 비몽사몽 중에 간간이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결국 나도 잠을 설치고 말았다. 생소한 사람을 꺼려서 밤새 우는 고양이를 큰소리 한번 안 내고 끊임없이 달래는 친구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소했다.    오히려 아침부터 털을 세우고 나를 째려보는 고양이의 모습이 더 친구의 옛날 모습 같았다.    길림조선족중학교에서 정치선생님으로 일할 때만 해도 친구는 까칠하고 모난 성격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하기 저어했다. 나 역시 차거운 인상 때문에 ‘랭면선생冷面先生’이라 불리며 사람들하고 휩쓸리지 못했다. 내 옆에 오면 찬바람이 부는 것 같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말 걸기도 어려워했다. 그렇게 개성적인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것은 우리가 같이 고중 3학년 수업을 맡게 되였기 때문이다. 외모는 차거워도 생각이 많아서 우유부단한 면이 있었던 나와 달리 맺고 끊고 잘하는 그녀의 성격이 나를 끌었다. 담임선생도 잘해서 주제반회를 하면 학교에서 따를 사람이 없었다. 나이 차이가 6살 났지만 같이 밥 먹고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놀러 다니며 서서히 가까와져 둘도 없는 친구가 되였다. 《장백산》2022년 제1호(계정)
194    시 - 그늘(외 3수) - 김춘산 댓글:  조회:211  추천:0  2022-02-11
▣ 시 그늘(외 3수)  김춘산     해를 등지면 그늘이 생긴다   나무는 키가 커서 그늘이 진다        터밭에, 길가에 납작 엎드린    가장 낮은 풀인 질경이와   봄에만 피는 민들레꽃의 향기에서    어두움을 본 적 있는가       너무 오래    내 가슴속에서 커진 네가   돌아서며 입가에 흘린   그 미소의 끄트머리에서도    난 그늘을 보았다       어느 날 하늘을 등지고 서면    내 앞에도 그늘이 길게 늘어질 것을   그리고 난 그것을 털어내지 못할 줄 안다    휘―휘 휘저으면    뻗은 팔마저 긴 그늘이 될 것을       세월에 흔들리며    나도 나무처럼 높이 컸나 보다       솔잎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솔잎은 평생    자신을 펼쳐 보인 적이 없다   늘 송곳처럼 뾰족해서   바람은 짓거리를 못하고   해빛은 자리를 못 찾는다       산자락이나 중턱 쯤에 서서   흘러가는 봄과 여름을 퍼덕이다가   스쳐가는 비바람에 허물을 만들다가   가을이 선사한 단풍이 벅차면   궂은 골짝에 주저앉아   끝나지 않은 계절을 연주하는   떡갈나무나 느릅나무의 하모니여!        돌바위 꼭대기에 서서    눈빛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솔잎은   남들이 다 떠나간    시린 겨울을 지키고 있어도   곁에는 아무도 없다   사철 푸른 솔잎일지라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먼 곳의 너       먼 곳의 너의 얼굴 보려고   봄, 여름 내내 키돋음하던 해바라기는   가을이 되면 고달픈 목 떨어뜨리고       먼 곳의 너의 노래 들으려고   밤마다 바람이 오는 쪽으로   귀 기울이던 나팔꽃은   가을 되면 울바자 그늘에 주저앉고       먼 곳의 너에게로 가려고    굽이 돌고 여울 지나던 시내물은    가을 되면 빈 가슴에 자갈돌을 내보이고       먼 곳의 너를 기다리는 나는    가을이 저 멀리 떠나간 아침에도   호수 속의 힘찬 버들치나 새끼붕어가 되여   해뜨는 동녘 향해 점프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미소       바람 한올에   기슭, 저 멀리 수풀 속   물미나리 잎새까지 퍼지는    물결의 흔들림을 보았다       해볕 한줌에    툭 터져 저 멀리 하늘가   구름의 자락까지 붉게 익는   봉선화의 향기를 보았다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에   너의 눈망울에    출렁이며 넘쳐나는 미소   만조의 밀물처럼 차올라    다시 내게로 덮쳐오는   세상에서 제일 큰 미소를 보았다. 《도라지》2021년 3기(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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