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바다는 국경선 있어도 물은 국경선 없다
남태일
1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대성은 문뜩, “행운을 파는 곳이 있으면 사고 싶다”라는 헤밍웨이 말이 떠올랐다. 당장 사채를 빌려서라도 행운을 사고 싶은 것이 지금의 갈급한 심정이다.
이때였다. 텔레비전에서 녀 아나운서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비 태풍’이 서해를 강타한 소식을 한창 방송하고 있었다.
“……단동시와 동항시는 ‘나비 태풍’의 반경에 들어있었지만, 기상청에서 미리 방송하고 사전의 충분한 준비가 되었으므로 피해가 적었다. 북조선에서는 급작스레 나타난 ‘나비태풍’을 예고하지 못하여 고깃배 수십 척이 침몰 되고 인명 피해도 적지 않았다…….”
단동시의 텔레비전 뉴스 방송을 듣고 난 대성은 요즘 잔뜩 부풀어 올랐던 희망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그는 담배 한 모금 깊게 빨았다가 내뿜으며, 담뱃재를 창문 밑에 열병처럼 세워 놓은 빈 맥주병 속에 털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안개는 마치 작은 벌레떼처럼 한 덩어리로 엉켜 있고, 부둣가 가로등은 열심히 어둠을 삼키며 불그레한 빛을 발사하고 있다. 어젯밤까지 미쳐 날뛰던 바다는 아침이 되자, 간밤에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침목을 지켰다. 해경은 오늘까지 모든 배와 선박을 출항 금지했다.
……대성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B 회사 회장을 대행하여 북조선 평안북도에 사는 회장의 친동생과 비밀리에 서해 코끼리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필이면 만나자 약속한 날, ‘나비 태풍’이 서해를 강타했다. 집채같은 큰 파도가 콘크리트 방파제를 대릴 때마다 인근 숙소의 유리창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지금 대성의 가슴에서 어지러운 잡념과 추측이 마치 열 받은 냄비 속의 물과 같이 들끓었다.
“아니야, 북조선 바다 인근에 사는 어부들은 자기 경험으로도 태풍 오는 줄 알고 출항하지 않을 것이야.”
“그래, 육손이 아저씨는 지금 북한에서 잘 계시고 있을 거야……”.
대성은 자기 마음을 달래며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해도 자꾸 불길한 예감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의 전화였다.
“아버지, 잘 계셨어요? 어쩐 일인 기요? ”
“이번 팔월 추석에 집에 올기가? ”
수술 후 변해버린 아버지 쉰 목소리를 듣자, 죄송한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울음이 울컥 딸려 나왔다. 대성은 은빛처럼 반짝이는 ‘망류하’가 푸른 평야에서 굽이쳐 흐르고, 아련한 추억들이 아버지가 갈아엎던 흑토(黑土) 덩어리같이 많은 고향이 오늘따라 간절하게 생각났다.
2
90년대 후기, 교화 시의 산간마을, 홍풍촌에도 봄이 찾아왔다. 마을을 가로지른 큰길 량쪽에 앙상한 백양나무들이 아직 가난한 색을 드러내며 열병처럼 서 있다. 큰길 뒷줄에 새로 지은 벽돌집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한가운데, 초라한 초가 한 채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가지런히 자란 치아 한가운데 썩은 충치 한 대가 거멓게 꽂혀 있는 것 같았다.
초가 집안에 들어가 보면 비록 흙바닥일망정 깨끗이 정돈되어 있고 가구들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정갈한 조선족의 집안 구조였다. 벽에는 누렇게 바랜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대성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릴 때의 큰아버지와 아버지였다. 만주에 오기 전에 한국 고향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예전에 깊이 숨겨둔 사진인데 한중 수교 뒤, 길이 트이면서 멋진 사진액자를 사서 벽 한가운데 번 듯이 걸어 놓았다.
고향이 한국 경북인 정 씨는 환갑 나이에 비운이 날아들었다. 대장암 3기로 수술을 받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또 재발하여 새집 짓는다고 은행에 저축해 두었던 돈을 몽땅 찾아 병원에 가져다주었다.
중국해군 부대에서 4년 복역하다 제대한 아들 대성은 친구 따라 큰돈을 번다며 전국을 누비고 다녔지만, 밑천이 없는 그에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여동생 은영은 아버지 때문에 다른 여자애들처럼 대도시에 돈 벌러 나가지도 못하고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었다.
장가갈 나이가 된 대성에게 처녀 소개는 많이 들어오지만, 결국 대성의 깊은 한숨으로 마무리 짓는다. 오늘도 외숙모가 인근 향에 사는 처녀를 소개했다. 아직도 가난의 냄새가 나는 초가집에 산다는 이유로 처녀에게 거절당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무어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가슴이 곧 터질 것 같았다.
‘이번에 벌써 아홉 번째……, 정말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장가도 못 가보고, 포톨(외톨이) 귀신이 되겠다. 밑천 없이 장사해도 안되고, 에라! 모르겠다. 이제는 한국 가는 길밖에 없구나’
아들이 마치 물을 잔뜩 먹은 종이처럼 축 늘어져 집에 들어오자 대성 어머니는 벽에 걸린 누렇게 바랜 옛날 사진을 힐끔 바라다보며 원망 같기도 하고 나무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에 시아버지나 시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치고, 형님 되는 분은 그래, 하나밖에 없는 친동생을 초청해서 만나보면 얼마나 좋아요. 참! 인정머리도 없는 사람들이지. 편지 회답도 없고…….”
가만히 듣고 있던 대성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며 마누라를 나무랐다.
“뭐라카노? 또 시작이네, 한국 힝님이 살아만 있으먼 언제던 초청할기 아니가.”
며칠이 지난 뒤 대성이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집 식구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아버지, 어머니, 우리는 계속 이렇게 가난하게 살 수 없어요. 이틀 뒤에 저의 친구 성국이 소개로 심양시에 있는 한국회사에 가기로 했어요. 한국회사에서 2년 열심히 일하면 한국 본사에 연수생으로 갈 수 있데요, 한국에 가면 큰아버지를 꼭 찾아뵐게요.”
3
심양시 교구(郊區)정부에서 두 달에 한 번씩 축구 시합을 했다. 현지의 청년 축구팀과 중년 축구팀, 한국기업 축구팀이 모두 10개 팀이 참가했다. 중국 진출한 한국 B회사 사장과 부장은 축구를 즐기는 분들이지만, B 회사 축구팀은 해마다 시합에 참여해도 꼴찌를 겨우 면할 수준이었다.
대성이 B회사 입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축구 운동대회가 열렸다. 제비를 뽑다 보니 현지에 청년팀과 맞붙게 되었다. 금방 시작하여 얼마 안 되어 연속 골 두 개가 들어가면서 0 : 2로 지고 있었다. 대성은 금방 입사한 초보자다 보니 운동 구경도 못 하고 자질구레한 심부름하기가 바빴다. 금방 손수레에 물과 음료수를 싣고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 대원 한 명이 다리를 다쳤다. 김부장은 대성을 보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성씨, 일단 심부름은 그만하고 팀에 한사람이 모자라니 들어가서 숫자나 채워 주세요.”
부장이 시키는 대로 하던 심부름을 놔두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운동장에 뛰어 들어갔다. 몇 발자국 가지 않아 공이 앞으로 굴러왔다. 익숙한 발놀림으로 요리조리 공을 몰고 상대방의 선수들을 뒤로 젖히고, 골문 앞에 가서 살짝 슈팅하자 공이 골문 안으로 대굴대굴 굴러 들어갔다.
“와아!!” 환호성이 터졌다. 잠시 후 대성은 머리로 헤딩하여 또 한 골을 넣었다. 전반전이 끝나자 대성은 또 손수레를 밀고 간식을 사러 가려고 했다. 김 부장은 대성을 끌어당기며 성질이 나서 고함을 쳤다.
“지금 무엇 하는 거야, 누가 자네에게 심부름시켜서! 엉!”
김 부장은 화가 나서 고함칠 때 얼굴색까지 변했다.
“김 부장님이 시켰는데요.”
“뭐, 김 부장, 김 부장이 누구야, 당장 다른 사람 시켜!”
옆에 사람들이 하하하 웃자, 김 부장은 그제야 알아차리고 얼굴을 붉히며 같이 따라 웃었다.
후반전에 대성은 운동복 입고 정식으로 투입되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대성이 몸을 민첩하게 놀리며 무인지경처럼 혼자서 공을 몰고 들어가 멋진 슈팅으로 또 골을 넣었다. 대성이 골 세 개를 넣자 대원들이 투지가 살아나면서 더욱 신나게 공격했다. 결국, 청년팀과 4 : 2로 이겼고, B 회사는 중국에 진출한 후 처음으로 2등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김 부장은 음료수 뚜껑을 열어 대성에게 주면서 물었다.
“대성 씨, 옛날에 축구 해보았어?”
“네, 중학교 다닐 때 ‘성省 소년 축구팀’에서 축구 시합에 많이 참가해 보았어요?”
“그러면 그렇지!, 야! 앞으로 우리 축구팀도 희망이 있겠구만, 대성 씨는 어디도 가지 말고 우리 회사에서 해요. 하, 하, 하”
칠순이 넘은 B회사 회장은 시합이 끝나자 잰걸음으로 달려와 대성을 안아주면서 어깨를 살갑게 다독여주었다.
“나는 자네가 입사할 때부터 이미 우수한 사원이 될 것이라고 짐작했네, 열심히 하게, 내가 자네를 언제든지 중히 써 줄기다.” 흥분한 회장은 소리 내어 껄껄 웃었다.
“대성씨 수고했어요. 정말 대단해요.”
아침 공기처럼 상쾌한 젊은 녀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회사 인사과 과장, 회장의 무남독녀인 현미 과장이 대성이 옆으로 다가왔다. 대륙의 젊은 녀자보다 더 희고 맑은 얼굴, 자연스럽지 않을 정도로 쪽 곧은 콧대, 첫눈에 보기만 해도 전형적인 한국 젊은 녀성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쌩긋쌩긋 웃으며 대성 옆으로 다가섰다.
현미 과장은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손수건을 꺼내, 쑥스러워 어쩔 바를 모르는 대성이 이마에 돋은 땀방울을 꾹꾹 찍어서 닦아 주었다. 대성은 가슴이 세차게 뛰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자꾸 뒷걸음을 쳤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저 혼자 닦겠습니다.”
“대성 씨, 나는 대성 씨보다 한 살 더 많으니까, 나보고 누나라고 불러야 해요.”
“아닙니다. 과장님, 저 같은 사람이 어찌 과장님을 보고 누님이라고…….”
그때, 현미 과장과 대성의 눈길이 마주쳤다. 대성은 이상하게도 얼굴,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눈길에서 구름처럼 스치는 애수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4
봄 아가씨가 아지랑이를 폴폴 날리며 다가오자, 앙상한 나무들도 싱싱하게 살이 오르고 산과 들판은 점차 초록색으로 변해 갔다. 휴식 시간이 되면 현미 과장은 자주 대성을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대성이 사무실에 들어서면 그녀는 살짝 웃으며 얼굴이 삽시에 밝아지고, 커피를 타서 대성 손에 쥐여주었다. 대성은 회장의 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세련된 의복과 몸짓에서 범접하지 못할 생소한 기질을 느껴서 그런지, 자기도 모르게 그녀 앞에 서면 자꾸 위축감을 느꼈다. 때로는 너무 긴장하여 그녀의 앞에서 말을 더듬고 엉뚱한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진작 밖으로 나가면 향기 도는 아늑한 공간에서 그녀와 오래 얘기 못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날도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2층 현미 과장 사무실 앞으로 지나가면서 위로 쳐다보았다. 창문의 화분 통에서 자란 앙증스러운 꽃 몇 송이가 한 가닥 미풍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녀는 꽃 속으로 하얀 얼굴을 내밀며 2층으로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 단말기를 내밀면서 말했다.
“대성 씨, 휴대전화기가 없죠? 제가 오늘 휴대전화 단말기를 교체했는데 아직 새것이라서 버리기 아깝네요. 쓰던 거라서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으시다면…… ”
그녀가 준 휴대전화 단말기를 손에 쥐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없이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렇게 잘 대해 주는 걸까? 그는 온갖 생각을 다 해보았지만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남녀 관계에선 아예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아니, 정말 이해 안 돼!’ 대성에게는 현미 과장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일 뿐이었다.
목요일 저녁 퇴근할 무렵이었다. 검은 먹장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으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샤워장에서 몸을 씻고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었다. 전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현미 과장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쉰듯해서 뭔가 슬픔에 젖은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한국 K료리집에서 식사하려고 하는데 그곳으로 와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했다. 전화를 받자 긴장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비록 누나라 불러 달라고 말 한 적이 있지만, 아직 단둘이서 식사할 정도로 편안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현미 과장 앞에만 서면 자기도 모르게 위축감을 느끼며 항상 말과 행동이 혼란에 빠지기가 다반사였다. 갑자기 자기 같은 하층 일꾼을 불러 단둘이 식사하자고 하니 불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그렇다고 못 간다는 말은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은근히 묘한 흥분에 사로잡히며 알 수 없는 설렘이 온몸으로 번져 갔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시외(市外) 저수지 옆에 전망이 좋은 한국 K료리집으로 갔다. K료리집은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으나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한국 고급 료리집이었다.
비가 그치자, 부드러운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른 끝없이 펼쳐진 저수지는 마치 즐거운 꿈이라도 꾼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K 료리집은 말 그대로 푸른 산, 맑은 물, 일류의 풍미를 자랑하는 료리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거 같다.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서자 이미 식당 안은 많은 손님이 북적였고 중국 사람들의 특유한 고성으로 귀가 먹먹했다. 서빙을 하는 녀직원의 안내를 받아 2층의 특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푸짐한 음식상이 차려져 있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대성 씨”
그녀는 반가워하며 하얀 이가 약간 보이게 미소를 지었지만, 금방 얼굴색이 굳어졌다. 그녀는 오늘 어쩐지 아래위로 검은색 옷을 입었다. 대성은 현미 과장 정면으로 앉지 못하고 대각선으로 부자연스럽게 앉아 곁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웬일인지 여느 때같이 활기찬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깔끔한 피부는 몹시 창백하고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으며 두 눈이 약간 부은 듯했다. 그녀는 몸을 약간 일으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술 한 잔을 따라 주었다. 목소리는 조금 불안했다.
“저녁인데 쉬지 못하게 불러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식당에 불러 주셔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죠.’
대성도 현미 과장에게 술 한 잔을 부어 주었다. 서로 술잔이 부딪치자 현미 과장이 먼저 건배했다.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조용한 특실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그녀는 낮고도 조용한 목소리로 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대성 씨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 말하면 적잖게 불쾌할 수도 있어요.”
밝은 등불 아래 그녀의 얼굴에 눈물 자국을 볼 수 있었다. 날 파리 한 마리가 등불을 빙빙 돌다가 무거운 기분에 힘이 빠졌는지 테이블 한쪽 구석에 차분히 붙어 있었다.
“사실 저는 3년 전에 결혼했어요, 신랑은 저의 대학 동창이고 대학병원의 부교수였죠, 3년 전 바로 오늘이었어요, 둘이서 같이 점심을 먹고 신랑이 대구에 학술토론 하러 간다고 차를 운전하고 떠났어요. 평소에는 사람들 많은 곳에서 한 번도 안아 준 적이 없던 그이가 저를 꼭 안아주더군요. 그리고 세 시간 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교통사고라고. 허둥지둥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어요.”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엔 우울감이 비쳐 있었다. 검정 옷깃에 다인 하얀 목덜미는 윤기가 없고 메마르고 창백하였다.
“대성 씨가 처음 입사했을 때, 저가 대성 씨 이력서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대성 씨의 사진 속 얼굴이 돌아간 남편과 너무나 닮았어요, 넓은 이마와 눈, 코가 똑 닮았어요. 그때 제 가슴은 세차게 뛰고 현기증까지 났어요, 대성 씨의 이력서를 한쪽에 밀어 놓고 오랫동안 고민을 했죠. 아버지는 대성 씨가 저세상 사람인 사위와 많이 닮았다며, 나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채용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가 상관없다고 고집하자 아버지는 허락하시더군요. 축구 하는 모습까지 많이 닮았어요.
대성 씨를 죽은 남편과 생김새를 비교하는 거는 저 자신이 너무 황당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오늘만 지나면 그이에게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울 거에요. 그래야만 그이도 내 마음에서 떠나 천국으로 갈 수 있겠죠.”
대성은 현미 과장의 이런 사연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준 리해할 수 없었던 행동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애수의 그늘이 진 눈빛의 비밀도 알게 되었다.
죽은 사람의 환영(幻影)으로 인식되었다는 거는 분명 기분 좋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듣고 보니 젊은 녀자가 자기 앞에서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상처와 비밀을 토로했던 것은 그만큼 자기를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성은 현미 과장의 술잔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과장님, 저 같은 사람에게 한 젊은 녀자가 마음속 상처를 보여준다는 것은 저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과장님의 남편이 죽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저의 생김새도 저의 의지 되로 되지 않습니다. 과장님의 아픈 상처를 빨리 치유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서슴지 않고 돕고 싶습니다.”
그날 현미 과장은 술을 많이 마셨고 취했다. 택시를 타고 그녀의 숙소로 갈 때였다. 그녀는 머리를 대성의 어깨에 살짝 기대고 잠들었다. 깔끔하고 유난히 흰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에서 까만 머리카락 세 오리가 얼굴의 눈물 자국에 묻어 있었다. 이제까지 대성은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행복할 줄로만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남편을 잃은 현미 과장이 3년간 겪은 슬픈 시간은 가난한 자기보다 오히려 더 처참했을 거로 생각했다.
5
대성이 B 회사에 왔는지 3개월 되는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현미 과장이 숙소에서 쉬고 있는 대성이를 찾으러 왔다. 현미는 해맑게 웃으면서 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성씨, 회장님이 대성씨를 회장실에서 뵙겠다고 하네요. 회장님이 대성씨에게 큰일을 맡길 거 같아요. 중요한 일을 상의한다고 했어요. 빨리 올라가 봐요. ”
“네? 저하고 중요한 일을 상의하신다고요?”
대성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화장은 반갑게 맞이하며 악수까지 했다.
대성은 당황하여 어쩔 바를 몰랐다.
현미 과장이 따끈한 커피 한잔을 대성이 앞에 가져다주었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대성이 자네가 해군 출신이라면서?”
“네, 회장님”
“나는 솔직히 말해서 중국에 진출하면서부터 오랜 시간 동안 현지 동포 중에서 젊고 정직하고 담력이 있는 친구를 찾던 중이었는데……, 그래서 사실 자네가 입사한 뒤부터 줄곧 관찰 해왔네. 자네에게 에돌아 얘기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옛날 나의 고향은 한국 충청도였네, 우리는 남자 형제가 둘이었어. 어릴 때, 아버지가 벌목장에서 일하시다 사고로 돌아가게 되었네. 어머니 혼자서 어린 우리 둘 형제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겠지. 그 무렵 아들이 없는 큰외삼촌이 만주로 가면서 내 동생 영철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네. 그 뒤에 외삼촌이 만주 봉천에서 잘 있다고 편지를 써서 인편으로 보내왔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소문에 외삼촌이 병으로 돌아가고 외숙모가 재가하게 되자 동생 영철이가 공부를 더 하겠다며 북한으로 갔다고 했네, 그 뒤에 월남한 영철이 친구가 나에게 전하는 말에 의하면 평안북도에서 현지의 처녀와 결혼하여 살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네.”
잠시 말하는 동안 회장은 기침을 자주 했고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돋아났다. 회장의 창백한 얼굴에 잔주름은 많았지만, 눈빛은 강렬했다. 그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천천히 창가에 다가가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에 오동나무 파란 잎들이 회장의 조각난 기억처럼 미풍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작은 새 한 마리가 잎이 무성한 가지에서 한 송이 꽃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회장은 깊은 감회 속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중국 단둥시의 중국인들이 북한 평안북도의 주민들과 서해에서 민간 무역을 하고 있는데, 북한 주민 중 많은 사람이 이 기회에 탈북했다는 소문을 들었네. 그때부터 나는 믿을만한 조선족 젊은이들을 눈여겨보았네. 북한 주민들과 무역 거래를 하면서 동생 영철이를 찾아 중국에서 한 번이라도 만나 볼 계획이네.”
회장은 대성을 오래 관찰한 끝에 적임자로 선정하고, 현미도 적극적으로 추천하였기에 더 주목하게 됐노라고 말했다. 회장은 대성의 손을 꼭 잡으며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암 수술을 받은 사람이라 오래 살 수 있다는 보증도 없네, 내가 죽기 전에 동생 영철이를 한번 만날 수 있다면 한이 없네, 그렇다고 가족은 놔두고 동생만 한국으로 데리고 갈 생각은 없네, 동생을 찾은 뒤 거취 문제는 차차 얘기하기로 하게. 우리는 자네를 믿고 이 위험하고 고생스러운 일을 부탁하는 것이네, 자네 능력으로 꼭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네, 자네, 잘 생각해 보고 삼 일 안으로 확답 주기 바라네,”
“그리고 일만 성공하면 앞으로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유학하겠다면 경비까지 내가 다 책임지겠네, 만약 동의한다면 당장 각서까지 쓰겠네.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월급도 지급하고 모든 경비까지 내가 책임지겠네”
옆에서 듣고 있던 현미 과장이 웃는 얼굴로 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성 씨는 한국 유학하는 것이 제일 큰 소망이라고 말했잖아요, 호호호”
대성은 회장의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다가 벌떡 일어서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제가 비록 큰 능력은 없지만, 만약 그분이 살아 계시면 최선을 다해 동생분을 찾아서 회장님 앞에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역시 대성 씨는 기백이 있는 남자군. 꼭 기억해 둘 거는, 동생 영철은 1936년생이고 왼손이 여섯 손가락이야, 좀 특별하지, 허, 허.”
회장은 대성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마침, 단둥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친구가 있고, 인맥이 넓다고 하니 그 친구를 찾아가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대성이 짐을 꾸려 숙소에서 나왔을 때, 비가 구질구질 내렸다. 생각밖에 현미 자가용 자동차가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제가 대성씨를 기차역까지 대려다 줄께요.”
그녀는 대성 얼굴을 얼핏 보고는 머리를 돌려 막연하게 비를 맞고 있는 나무를 쳐다보았다. 그때 그녀의 눈빛은 비를 맞고 있는 축축한 나뭇잎처럼 우울하고 생기가 없었다.
“아니, 일없어요. 저 혼자 버스 타고 가면 돼요. 과장님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저 같은 일꾼까지 신경 쓰시고…….”
빗방울은 쉴새 없이 승용차 유리창에 부딪히면서 미끄러져 내렸다. 그녀의 두 눈에는 애수의 그늘이 자주 스치곤 했다. 오늘따라 새 옷을 갈아입은 대성은 키가 유난히 크게 보였고 헌칠한 몸매도 의젓하고 름름해 보였다. 개찰구 앞에서 현미는 잘생긴 대성 얼굴을 쳐다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성씨가 뜨나니 내 마음이 왠지 허전하네요. 자주 전화해요. 너무 위험하면 다른 회사에 가지 말고 꼭 우리 회사로 돌아와요. 내가 언제든 반겨 줄 테니까요.”
6
대성은 단둥시에서 식당을 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는 단둥에 오게 된 사연을 얘기했다. 친구는 대성에게 북조선이 가까운 동항시에 가서 통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어선보다 조그마한 무역 배를 타면 북조선의 민간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친구는 대성에게 허 군이라는 중국 선장을 소개해 주었다. 허 선장이 자그마한 배로 무역하는데 요즘 마누라가 병으로 죽고, 좋은 통역이 없어 돈벌이가 안 되니 좀 도와주라고 했다.
단둥시에 소속되는 현급시 동항시(東港市)는 중국 해안선에서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동항시 동쪽으로는 사품 치며 흐르는 압록강이 있고, 남쪽으로는 바다 파도가 높다는 서해를 끼고 있다. 북조선 평안북도 신도군(薪島郡)은 동항시에서 손만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북조선의 에 당국에서는 평안북도의 룡천군, 신도군 인근 바다를 중국 배들이 래왕하도록 눈을 감아 주었다. 북조선 사람들이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과 중국 곡물을 바꾸는데 편리를 위한 것이다. 그 후부터 룡천군과 신도군 인근 바다는 북조선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 같이 고기도 잡고, 물물교환하는 공해가 되었다. 북조선 사람들은 주요로 해산물과 구리, 동, 철, 때로는 귀한 약초도 가지고 나왔다.
허 선장의 디젤엔진으로 추진하는 소형목선에는 백화점같이 많은 물건이 꽉 차 있었다. 입쌀, 옥수수, 콩 등 여러 가지 양식을 비롯하여 과자, 사탕, 주류, 음료수, 채소 등 부식품이 있고, 화장품과 녀자들의 액세서리 등도 진열해 놓았다.
북조선 주민들이 바다에 나올 수 있다는 자체는 행운이었다. 내륙사람들이 몹시 부러워한다고 했다. 그들이 조금씩 캔 조개와 바지락을 들고 와서 양식과 바꾼 뒤 서비스를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다. 선장이 냉정하게 거절하면, 얼마 되지 않은 양식만 배낭에 넣고 힘겹게 배에 오르는 뒷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불쌍했다.
대성은 며칠 바다에 다니며 굶어서 뼈만 앙상한 동포들을 바라보고 가슴이 아팠다. 듣는 말보다 더 처참했다. 그래서 자기 혼자 계획을 세웠다. 한국회사에서 받은 월급은 은행에 저축하고, 배에서 통역하여 번 돈은 아예 량식을 사서 선창 뒤에 따로 보관해 두었다.
북조선 로약자들을 만나면 쌀을 푹푹 떠서 배낭에 넣어 주었다. 대성은 자기가 준 쌀을 배낭에 넣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할 때 가슴이 뿌듯했다. 앞으로 돈 벌어 현미와 함께 북조선과 무역도 하고 싶었다. 자기가 돈을 많이 벌어서 아무 방법 없이 굶고 있는 동포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성에게 배려를 받은 북조선 주민들은 돌아가서 사람 찾는 홍보도 많이 해주었다.
대성이 북조선 사람들과 물물교환하다, 우연히 북조선 신도에 육십 대 되는 육 손이 아저씨가 살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태양이 솟아오르자 신도 앞바다에 숲을 이루는 칼바위 봉오리들이 하얀 바닷속에서 서서히 솟아올랐다. 만조가 된 고요한 바다 수면에는 산봉우리가 투영한 길고도 검은 그림자가 마치 거대한 구렁이들이 기어가는 것같이 물속에서 일렁거렸다.
대성의 목선은 곧바로 신도 방향으로 달렸다. 신도가 가까울수록 육손이 아저씨를 정말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겠는가, 설레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사실 다지증(多指症)은 인구의 1000명 중 2명 정도라고 한다.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도 육손인 사람을 찾기 힘든데 북조선 사람 중에서 육손인 사람을 찾았다는 거는 희망이 보인다는 징표였다.
대성은 신도의 육손이 아저씨가 진짜 B회사 사장의 친동생이라면, 하늘이 행운을 준 것으로 생각했다. 일이 잘 풀리면 한국도 갈 수 있고. 한국의 큰아버지도 찾아뵙고, 몇 년 류학하여 중국에 돌아오면……그는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오색영롱한 그림을 그렸다.
초록색 하늘에 흰 구름이 굴러가고 그 아래 푸른 바다에서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북조선 아저씨들이 통나무 쪽배에서 노를 살랑살랑 저으며 고기 낚시를 하고 있었다. 숲을 이룬 칼바위와 돌기둥 사이로 다니며 낚시하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저분들이 굶주리지만 않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대성은 혼자 생각했다. 디젤엔진의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허 선장 배가 신도 바다로 진입했다. 그들은 중국 배라는 거를 이미 알고 허 씨 배에 붙였다.
쪽배마다 아침에 낚은 싱싱한 2~3킬로 되는 송어를 꺼내 놓았다. 북조선 사람들과 물물교환 할 때, 마치 상점에 상품같이 가격이 이미 정해져 있는 만큼 흥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술 담배 같은 서비스를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징징댄다. 마침, 대성이도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기에 북조선 아저씨와 같이 식사하자면서 술과 그들이 제일 즐겨 먹는 삶은 돼지고기를 꺼내 놓았다.
그들은 푸짐하게 쓸어 놓은 삶은 돼지고기를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했다. 굶다 보니 위장이 작아졌는지, 중국인보다 식사량이 적었다. 대신 술 4병은 눈 깜박할 사이에 다 마셔 버렸다. 그들은 남은 돼지고기와 과자를 조금씩 나누어 신문지에 싸서 배낭에 깊숙이 넣고 그 위에 다른 물건을 넣었다. 사람 좋게 생긴 아저씨는 아버지가 오래전부터 고기를 먹고 싶어 했는데 이제 소원을 풀 수 있다며 하늘의 룡고기라도 얻은 것처럼 좋아했다. 한 아줌마는 내일 군대에서 휴가오는 아들에게 고기에 시래기를 넣어 푹 끓여주겠다며 기뻐했다. 북조선 사람 얼굴에 항상 수심이 어려 있고, 사람끼리 경계하고 의심이 많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 대성은 육손이 아저씨 찾는 사연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저는 중국통역 해석(바다에서 부르는 별명)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찾으려는 육손이 아저씨 외삼촌 딸 되는 분이 중국에서 돈을 엄청 많이 벌었어요. 누구든지 육손이 아저씨를 찾아 주시면 수고비를 많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 동네 가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키가 작고 야위어 뼈만 앙상한 한 아저씨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신도에 육손이 아저씨가 살고 있고 나이도 비슷하다고 했다. 고기 낚시는 하지 않고 사리 때, 갯벌에서 조개 캐러 나온다고 했다. 그 아저씨는 육손이 아저씨 옆집에 산다면서 오늘 새벽 함께 바다에 나왔다고 했다.
대성은 그 아저씨에게 술 두 병, 담배 한 보루, 그리고 바가지로 쌀을 푹푹 떠서 배낭을 가득 채워 주었다. 썰물 전에 그 육손이 아저씨를 만나러 같이 가자고 했다. 대성은 육손이 아저씨가 있다는 곳에 다가갈수록 가슴 속에 솟구치는 희열을 억제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육손이 아저씨가 탄 배를 찾았고 그 옆에 나란히 배를 붙였다.
대성은 심장이 세차게 뛰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렸다. 그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 그 육손이 아저씨와 악수했다. 먼저 손가락을 보니 여섯 손가락이었다. 나이도 비슷하였다. 육손이 아저씨는 흐릿하고 정기 없는 눈빛은 낡고 도수 높은 안경에 가려 누구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낯선 사람을 거리끼는 기색이었다. 대화가 매우 힘들었다.
묵묵히 앉아 있던 육손이 아저씨가 갑자기 손을 내밀며 술 한 모금을 돌라고 했다. 비닐봉지 술 한 봉지를 건네주자, 그는 이빨로 물어뜯고 물 마시듯 꿀컥꿀컥 마셨다. 조금 뒤, 술기운이 오르자 대화가 순리로 워 졌다.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성은 출렁이는 파도가 뱃전에 부딪히며 하얗게 부서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육손이 아저씨에게 비닐봉지 술 5개, 담배 한 보루와 배낭에 하얀 입쌀을 가득 채워 주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마음이 자꾸 울적해지고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일이 잘 안 되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를 깬다고. 신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대성은 변장한 북조선 군인들의 배를 민간인 배인 줄 알고, 잘못 붙였다가 큰 낭패를 보았다. 군인들에게 배 안에 물건을 몽땅 빼앗겼다. 대성이 성질에 가만히 앉아 그들에게 빼앗기리 만무했다. 4명과 격투하다 나무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혼미해 쓰러졌다. 너무 심하게 폭행당하여 갈비뼈 4개나 부러지고 피투성이 되었다. 때마침 중국 해경 순찰 선박이 옆으로 지나가기에 다행이었다. 대성은 난생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 단동시에서 식당 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대성이 너, 북한 군인에게 당했다며? 너 그래도 운수 좋은거야, 북조선 군인들에게 그렇게 물건 빼앗기고 맞는 거는 보통이야, 그렇다고 어디 가서 해볼 자리도 없어……. 조선족 통역 중 80%는 한 번씩 당해 보았을 거야.
다음부터 신경 많이 쓰고 조심해, 그런데 대성아! 너,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허 선장네 빛 6만 원 다 갚았다메, 허 선장 완전히 너를 신(神)으로 떠받들더라. 너, 담력 있고 장사 잘한다고 우리 식당까지 소문이 자자하게 났어. 너 때문에, 나도 장사가 더 잘 되는 거 같다. 친구야 빨리 치료받고 우리 식당에 놀러 와! 내가 단동시 제일 고급 식당에 가서 대접할게. 친구 쨔유!
7
동항시에 조선족 통역협회가 있었다. 한 달에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하면서 정보와 경험 교류를 했다. 대성은 육손이 아저씨 찾는 단서가 단절되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마침 통역들의 모임에 참가했다. 친구들에게 자기의 고민을 얘기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통역 친구가 육손이 아저씨에 대한 단서를 고맙게 알려 주었다.
“남포시를 가기 전에 온천군에서 육손인 노인과 해산물 거래도 해보았는데 중국에 친척도 있다고 하더라.”
그 통역 친구는 한참 생각 뒤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포 바다에는 개방하지 않아 아무 사람이나 갈 수 없어, 오직 고속 보트만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전번에 우리가 보트에 물건을 잔뜩 싣고 돌아오는데 북조선군대가 목선으로 쫓다가 안 되니 총으로 사격하고 포까지 쏘았던 거야, 선장 허벅지에 총알이 관통하여 많은 고생을 했어.”
그러나 대성은 보트를 임대해서라도 꼭 가야겠다고 하자, 통역 친구가 함께 남포 바다에 다니는 다른 보트 통역이 북조선군대 총에 상처를 입어 병원 치료를 받고 있으니 그 보트 선장을 찾아가서 연락해 보라고 했다.
대성이 보트 선장을 찾아갔을 때, 통역 친구가 미리 선장에게 소개했었다. 대성은 이 바닥에서 장사를 잘한다고 선장들에게 인기가 좋다 보니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일주일 뒤, 대성은 고속 보트를 타고 남포 바다로 갔다. 비록 새로 구매한 고속 보트지만 외부에 총알 맞은 구멍과 포탄 파편에 찢어진 자리가 력력히 보였다.
남포 특별시는 수도인 평양과 해외를 연결하는 관문이자 북조선의 가장 중요한 무역도시이다. 고속 보트가 한 시간쯤 달리자 푸른 바다에 북조선의 작은 고깃배들이 보였다. 대성이 보트는 작은 섬 사이로 다니며 수산물거래를 했다. 북조선의 남포시 방향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거는 아주 위험한 도전이었다. 위험한 만큼 싱싱한 해삼, 골뱅이 등 조개류와 해산물을 저렴하게 곡물로 바꾸어 올 수 있다. 남포 바다에 가려면 목선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고속 보트로 남포 바다 범바위까지만 들어가면 싱싱한 해산물을 잠깐 사이에 선창을 가득 채울 수 있다.
계산이 끝나자 북조선 어부들이 아침밥을 못 먹었다며 빨리 식사를 하자고 졸랐다. 소고기볶음, 삶은 돼지고기 그리고 구운 닭고기에 술까지 마음껏 먹으라고 주었다. 금방까지 먹구름 끼었던 얼굴이 환해지고 눈빛이 반짝이었다. 그들은 조금씩 맛만 보고 더 먹지 않고 나누어 제각기 배낭 속에 넣었다.
대성은 담배 한 보루와 과자, 사탕을 꺼내 갑판 위에 놓고 어민들에게 사람 찾는 데 도움을 청했다. 찾아 주신 분에게 수고비를 돈이나 량식으로 섭섭하지 않게 주겠다고 했다. 듣고 난 그들은 집에 돌아가면 다른 일을 제쳐 놓고 육손이 아저씨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때였다.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오십 대 중반 되는 아줌마가 중요한 단서를 알려 주었다. 육십 대 되는 육손인 노인 한 분이 자기 며느리 친정 동네, 온천군에 살고 있다고 했다. 오늘 군대 초소에서 같이 바다로 나왔고, 그 사람은 자기 동생과 함께 다른 섬으로 갔다고 했다.
보트로 가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으니 지금 그곳으로 가면 육손이 아저씨를 만날 수 있다 했다. 대성은 그 아줌마에게 쌀 한 포대 주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 자그마한 섬을 몇 개 지나가자 넓은 갯벌이 나타났다. 북조선 사람들이 밀물이 서서히 차오른 갯벌에서 단골 중국 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성이 보트가 밀물 따라 그들에게로 다가 갔을 때, 배들이 서로 다투며 보트 옆에 붙였다.
대성은 육손이 아저씨를 만나 보았다. 아저씨와 악수를 하며 손가락을 보니 손가락이 여섯 개는 분명했다. 자세히 물어보니 그는 중국에 친척은 있으나 본적은 남포시라고 했다.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 쌀 한 포대와 사탕 한 봉지를 주었다.
남태일 약력 :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 시, 소설 등 수십 편 발표. 수상 다수
동북아신문